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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절대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특히 남자는 얼굴이나 외모, 직업만을 보고서 판단하면 안 된다고. 꼭 상대방의 속을 확인해야 한다고 커서도 귀에 못이 박힐 때까지 들으며 자랐어요. 그래서일까? 어려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사람도 몇이나 가리며 만났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성형수술은 하지 않았어요. 외적 기준에 대해서는 어디서도 꿀리지 않는 거 보이시죠? 키도 크고 가슴도 작지 않고 군살도 없고 목소리, 건강상태 하나 나무랄 게 없으니까요. 하여튼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얼굴값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웃는 표정도 상냥하게 말 하는 법도 거울을 보며 연습했어요. 거짓이라도 그걸 보는 사람들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공부도 이를 악물고 했어요. 학교에서도 전교 5등 안에서만 지내며 성격도 좋은 우등생으로 지내왔어요. 그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갔고 어떻게 저랑 하루 보내려고 치근덕거리던 남자들이 여럿 꼬이더라고요. 속이 너무 뻔히 보이는 속물들이라서 적당히 둘러대며 적당히 거절도 하고 무시도 하며 인맥을 지켜갔어요. 제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사람이 재산이라고들 하니까 그렇게 열심히 제 길을 꾸준히 걷다보니 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거죠. 어린 시절 관리했던 평판을 발판삼아 인맥에 신경을 많이 쓴 보답을 받기도 했어요. 알음알음해서 개원한 작은 이 병원도 다른 친구들 보다는 시세에 비해 엄청 저렴하게 개원했고 말이죠. 주위에서 저를 보고 재원이라고 치켜세워도 최대한 겸손하게 지내오며 항상 웃으며 친절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지내면서 평판을 지켜왔어요. 절대 속마음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았어요. 그러다 그이를 만났어요. 수수한 외모에 멋 낼 줄도 모르고 센스도 없고 센 척하는 주제에 툭하면 우는 그런 남자였어요. 쉬는 날도 없이 일하면서 고작 월 200 버는 그런 남자. 그이가 제 병원에 진료 받으러 왔을 때 처음 보았죠. 환자와 의사의 그냥 그런 사무적인 만남이었을 텐데 자기 몸 아픈데도 부끄러워서는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모습이 의외로 귀엽게 보였어요. 미련하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몇 번 진료를 받으러 오고 그 때마다 귀여워 보이는 그이에게 저는 먼저 다가갔어요. 우리 만나보자고. 놀라서 손사래 치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그이는 직장도 자기 형편도 그래서 인지 몰라도 어딘가 많이 위축되어 보였어요. 갑자기 저 같은 여의사가 대시를 하니 많이 놀라긴 했을 테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이의 놀란 표정과 그 반응이 이해는 가요. 간간히 그이를 만나면서 난 가끔씩 놀라곤 했어요. 그 중에 하나 생각나는 게 있다면 어디보자. 아! 그래요. 처음 만남도 아니고 세 번째 만남에 꽃을 사 오더라고요. 그것도 꽃다발도 아니고 그냥 장미 한 송이만.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그깟 꽃 한 송이에 처음으로 가슴이 설렜어요. 그 동안 주변에서 다가오는 속물들은 모두 자기가 가진 경제력, 외모, 학력 이런 스펙만 내세우면서 내게 다가왔었으니까. 명품선물? 빨간 스포츠카? 찬란한 귀금속? 다 받아봤지만 그냥 꽃 한 송이는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더 설렜는지 모르겠어요. 그이는 차가 없어서 우리는 만나려면 항상 전철역 근처에서 만나야 했어요. 제가 차를 끌고 가서 만나더라도 항상 헤어짐은 전철역이었어요.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해도 그이는 거부했어요. 아마도 자격지심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이와 만나면 어린 친구들 연애하듯이 그렇게 놀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길거리 음식도 사 먹고 장난감 총도 쏴보고 오천 원짜리 머리핀도 사면서 너무 즐겁더라고요. 가끔씩 제가 준비한 데이트 코스로 뮤지컬이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고 스테이크가 맛있는 레스토랑도 가고 했지만 그이와 길에서 보낸 시간들이 더 재미있었어요. 해보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길거리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편의점 커피를 마셔도 그이와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항상 행복했고 언제나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게 너무 괴로웠어요. 언제쯤이었을까? 그때가. 만난 지 꽤 지나고서 그이가 먼저 전화를 했어요. 일하던 회사에서 진급을 했다고 이제 적어도 야근은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저와 더 오랫동안 같이 있을 수 있겠다며 웃으며 말하더라고요. 그이가 그렇게 나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전화기 넘어 전해져 오는 그이의 기뻐하는 목소리에 몸이 이상하게 떨려왔어요. 그날 밤 우리는 어느 전철역 앞 작은 호프집에서 만났어요. 그이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어요. 나는 그때 생각했어요. 이 사람이라면 충분하다고. 만난 지 꽤 됐지만 그이는 날 한 번도 품으려 하지 않고 아껴줬어요. 하지만 그 날은 내가 그이를 안고 싶었어요. 그 날 그이의 웃는 얼굴이 너무 사랑스러웠으니까요. 이상하게도 욕심이 났어요. 내 앞에서 웃고 있는 그이의 모든 걸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몰래 화장을 고치러 간다고 하고선 자주 들르던 호텔에 예약을 하고 자리를 옮기자고 말하고선 먼저 그이의 손을 잡고선 끌다시피 하면서 택시를 잡고서 급하게 호텔로 이동했어요. 그날따라 택시가 정말 안 잡혔어요. 내 몸이 긴장과 환희로 떨려오는데 난 그이를 어서 안고 싶은데. 마음이 초조해져서 택시가 오는 그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나 봐요. 그렇게 호텔에 도착하고선 그이를 먼저 방에 두고선 그의 입술을 내가 먼저 포갰어요. 그이가 몸을 움찔하더니 이내 내 허리를 감싸고서 더 진하게 키스를 해주었어요. 미칠 것 같았어요. 더 이상 참을 자신이 없었어요. 그이를 잠시 밀어내고 샤워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어달라고 말하고서 난 호텔 로비로 걸어 가 룸서비스를 주문하고서 그이를 위해 준비했던 내 짐을 가지러 병원을 들러서 다시 방으로 돌아왔어요. 작은 가방이 하나 더 늘어서 왔지만 그이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어요. 이런 호텔은 처음 온 사람이었으니까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샤워 후 샤워가운을 꽁꽁 싸매도록 입고서는 다리를 떨면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 모습을 보지 않고는 어떤 건지 아마 모를걸요? 나도 샤워를 마치고서 바디로션을 바르며 흥분한 내 몸에 냄새를 감추려 했어요. 그리곤 그이의 무릎에 앉아 아까 못했던 키스를 잠시 더 나누고 있었어요. 룸서비스가 왔다는 벨이 울리지 않았다면 아마 그 밤은 무척이나 짧았을 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침대에 걸터앉아 룸서비스로 온 와인을 나눠 마셨어요. 안주로 그이는 내 입술을 원했지만 난 허락하지 않았어요. 대신 내 가슴을 그이에게 물려주고 내 허리를 핥으라고 전해주었어요. 그리고 몇 분 동안 우리만의 첫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이는 미안하다며 말끝을 흐렸어요. 아니 그 한 마디도 채 제대로 못하면서 스르륵 쓰러지듯 잠에 빠져 들더라고요. 곤히 자는 모습이 마치 갓난아기 같았어요. 그이의 와인에 몰래 넣은 수면제가 이렇게 빨리 효과가 나타나는 게 조금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맛있게 마시는 그이의 모습에 흥분한 나머지 그이의 입술에 젖었다면 나도 잠에 빠졌을 테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잠에 빠진 그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었어요. 그이의 몸을 가리고 있는 샤워가운을 벗겨내고서 일하느라 검게 타버린 구릿빛 팔을 바라보며 핏줄이 도톰하게 올라온 그이의 팔을 혀로 핥으며 프로포폴을 꺼내 그 도톰한 핏줄 가운데 바늘을 찔러 넣고서 혹시 몰라 침대에 그이의 팔 다리를 묶고서야 그이의 몸을 맛봤어요. 귀, 목덜미, 가슴, 손가락, 허리, 배, 허벅지 사이부터 발목까지 그이는 너무나 달콤했어요. 이상하게 내 몸이 떨리면서 그이를 맛보며 내가 젖어버렸어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나는 젖어버린 몸을 끌고서 떨리는 다리를 끌면서 아까 챙겨왔던 가방을 곤히 자고 있는 그이의 옆에 두고선 안에서 소독용 알코올을 꺼내 그의 몸을 구석구석 정성스럽게 닦아주었어요. 우리 둘에게 있어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니 내 몸이 더 젖어왔어요.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한 나는 그이의 탄탄한 가슴부터 시작해 빨간 선을 그었어요. 수술용 메스로 말이에요. 피부가 갈라지면서 생기는 붉은 선에서 빨갛고 예쁜 피가 솟아나기 시작했어요. 너무 아름다웠어요. 하아...그이는 겉뿐만 아니라 모든 게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꿈틀거리는 근육들도 피에 흠뻑 젖어도 하얗게 보이는 그 뼈와 팔딱거리는 심장. 마치 인체표본같이 정돈 되어있던 그의 장기들이 나를 유혹했어요. 그이의 장기를 하나하나 떼어내서 병 안에 모으고서 카베르네 소비뇽 같은 선홍빛을 뿜는 그이의 피를 입안에 하나 가득 물었어요. 아....그 때 온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 내 허리가 휘었어요. 그만 절정에 취해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이를 안고 싶었어요. 더 그이를 사랑하고 싶었어요. 가슴이 열려 점점 하얗게 변해가는 그이의 모습이 더 섹시하게만 보였어요. 그래서 그이의 옆에서 나만을 위한 그이의 와인에 내 몸을 적시며 잠이 들었어요. 지금도 그 날 같이 취해있던 그 때를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어요. 엄마가 말씀 하셨던 건 다 사실이었어요. 상대방의 속을 확인하고서 속까지 사랑하라는 그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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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라디오하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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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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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방아 |
고맙습니다. 2년전 쓴 습작인데 아직 부족하네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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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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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방아 |
말하는 여자의 시점이 '저' 에서 '나' 로 변하는 점도 나름 신경은 써 봤는데 말이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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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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