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병장에 집합을 했을 땐, 다들 웅성거리기 바빴다.
 
"야, 우리가 왜 집합하냐? 행사하는 것도 아닌데 진짜 뭐한다고 여기로 갑자기 모이기도 한다?"
 
"시발, 별일 아니겠지?"
 
"플래그 세움 ㅅㄱㅋㅋ"
 
"아 지랄 ㄴ"
 
"정수우욱!"
 
대대장님이 집합해있는 인원들 앞에 모이셨다. 1중대장님이 그걸 보곤 외치셨다.
 
"아, 여러분 고생이 많다. 다름이 아니고 우리 대대가 다 좋은데..."
 
벌써부터 불안하다.
 
"양기가 너무 가득한 것 같아, 음기 좀 끌어오게 우리 못 하나만 만들라고. 그리고 이 작업 이후엔 대대관리투표가 이어질 것이다..."

원래는 대대관리투표에 관한 것으로 음기 끌어올 걸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대대장이 단독적으로 생각한 듯 하다.

"못?  철물점에서 사오면 되지 않냐? 우리가 대장장이냐?"
 
누군가 속삭이듯 말하였다.
 
"연못, 등신아"
 
그래도 친구는 똑똑해서 다행이다.

"그럼 바로 작업 시작해자, 막사 뒤 쪽에 파면 된다."

대대장은 그렇게 말하고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다 들었지? 창고에서 다 삽꺼내!"

2중대장님이 앞에서 크게 말씀하셨다. 그래놓고 대대장님은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아 씨발 말년에 이게 뭐냐!"
 
"좆박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서 말년엔 낙엽도 조심하라였나, 이미 삽은 들고 있다.
 
우리는 그 말 때문에 삽을 들고 전부 막사 뒤로 가고 있었다.
 
그렇게 200명이나 땅을 파는데 돌은 돌대로 나와서 삽도 안들어가서 곡괭이도 갖고오고 난리도 아니였다.
 
그리고 오전이 지났을 때는 꽤나 많이 파져있었다. 못은 꽤나 크게 만들어지고 있었고, 이제 깊게만 파면 대대 인원 전부 쓰고도 남는 넓은 수영장으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느낀 건... 정말 군대는 사람이 많아서 그 인력을 다 쓰면 뭐든 할 수 있겠구나 였다.
 
피라미드는 사람이 지은게 맞을거다. 분명.
 
아무튼 우리는 오후에도 똑같은 작업. 며칠동안 계속하다 보니. 들어가보니 허리까지 오는 깊이의 넓은 구멍을 만들게 되었다.
 
"이야, 존나게 파긴 했다 우리."
 
"농땡이친 새끼는 아가리하시구요ㅋㅋ"
 
"ㅇㄱㄹㅇ ㅋㅋ"

"숟가락만 얹는거 역겹죠? 삽도 숟가락처럼 생겨서 또 착각했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반데."
 
그러던 중 대대장님이 한 번 슥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너무 깊이팠네. 조금 메꾸자."
 
그 말을 들은 우리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고, 중대장님들도 우리가 이걸 얼마나 파신지 아셨기에 3중대장님이 조용히 한 마디 했다가 개털렸다. 상대는?
 
"아 씨발!"
 
"군대특, 어제 한 일: 뭐 만들기, 오늘 하고있는 일: 만든거 부수기, 내일 할 일: 부순 거 다시 만들기."
 
"에라이 진짜."

짬 좀 찬 병장들은 벌써 삽이랑 곡괭이 던지고 난리났다.
 
그렇게 이틀 안되서. 허벅지 중간 즘 되게 흙을 다시 채웠다.
 
대대장님은 그제서야 마음에 드는지 모두 삽을 내려놓게 하셨다.
 
우리는 환호했고 그 다음은 비닐을 들게 되었다. 그 넓은 땅은 비닐로 전부 덮으라하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이미 다들 맛이 많이갔다. 하지만 이 작업은 꽤 일찍 끝나고 다들 비닐을 손에서 내려놓게 되었다.
 
다음은 방수포, 그리고 다음은 다시 파놨던 흙을 조금 깔고, 자갈을 깔고, 물을 넣었다.
 
이 작업을 하다보니 난 어느 새 병장을 달고 있었고, 작업을 하다 집을 간 동기들도 생겼다. 나는 중간군번이라 아직 조금 남았다.
 
연못이 작았다면 모를까... 아무튼 그렇게 물까지 넣으니 꽤나 스케일 있는 연못이 되었다.
 
그제서야 대대장님은 마음에 드는지 수초를 주시곤 심으라 하셨다.
 
"시발."

그렇게 또 일주일이 안되서 작업이 끝날 땐 모양새가 완전 갖춰져 있었고, 작업을 한 인원전원 2박 3일의 포상휴가를 받게되었다.
 
"와! 휴가!"
 
"작업 완전 어.렵.습.니.다."
 
"진짜 다 맛갔네 얘네."
 
그리고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연못은 꽤나 아름다웠고, 흉측해지진 않으며 예쁘게 자리를 잡았다. 수초도 점점 늘고 있었고 보기 좋았다.
 
"그래도 뺑이친거 만큼 볼만하네."
 
"개꿀부대가 순식간에 뺑이부대 됐었다."
 
"후임들한테 우리가 만들었다 하면 믿을까?"
 
"자연연못이라 하는게 더 신빙성 있을 듯."
 
그렇게 연못은 한참 구설수에 계속 올랐다. 대대장님도 마음에 드셨는지 주말에도 한 두번 오셨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은 다목적실로 집합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모은 사람은 대대장님.

"시발 또 뭐지?"

"제발제발제발제발"
 
"대대관리투표하는 거 아니냐?"

대대장님은 단상위에 오르셨고 다들 이목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 연못은 정말 잘 만들었는데..."
 
다들 침을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확실히 그 안에 풀만 있으니 적적하더라고. 그래서 그런데 안에 물고기나 풀려고 하는데..."
 
또 작업인가...? 했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저 경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방심은 할 수 없는 법.... 마저 듣기 시작했다.
 
"이번 투표는 거기에 키울 물고기를 투표하려고. 금붕어도 좋고, 잉어도 좋고. 뭐든 좋으니 종이를 나눠줄테니 쓰도록. 대대의 전 인원이 만든거니 내가 함부로 정할 수 없을 거 같아."
 
이제와서 우리를 생각해주는 척 하지만 이미 대대관리병들은 대대장을 보는 눈빛이 마냥 좋지 않다.

그건 그렇고 이번 투표는 이렇게인가? 아마도 저번 투표는 어림풋이 기억하기론 꽃 심는 거였지... 덕분에 벌레가 엄청 나와서 관리하기 조금 빡세긴 했다만....

도서관이나 만들기는 안했다만 결국 연못은....
 
"아, 지금 당장 생각 못할 수 있으니, 이번주 금요일까지 써서 각자 중대 행정반에 제출할 수 있도록."
 
대대장은 그렇게 말하고 집합한 인원들을 해산시켰다.

꽃 다음은 물고기인가...

밖에서 못한 일을 군대에서 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런 것까지 할 줄은 몰랐다. 좆같기도 하고 요즘 군대 이따구로 돌아간다 하소연하고 싶기도하고.... 그렇기에 오랜만에 그립기도 해서 여진이형한테 전화했다.
 
"에이 또 구라친다."
 
"아, 형 진짜라니까!"
 
"알았어, 믿을게. 이번에 대대관리투표할 때가 되긴 했지"
 
"근데 나여도 못 믿긴하겠다. 사진찍을수도 없고."
 
"전역날 거기서 찍음 되겄다. 예쁘다메, 뷰도 괜찮겠네."
 
"그런가?"
 
최근에 있던 일들을 우선적으로 이야기하고, '구서' 관련된 이야기도 하였다. 그제서야 작업 때문에 밀렸던 '구서' 생각이 나서 여진이 형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아 맞아, 내가 대충 유추해봤는데..."
 
그렇게 나는 설명을 엄청나게 했고...
 
"그러니까, 네 말은 예전에 건물을 짓는 도중에 도닦는 이무기들이 나왔길래 살처분하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그 이무기들의 원한이 가득 쌓여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거야?"
 
"어, 그런 거 같아. 게다가 능욕하듯 위에 44（蛇死）라고 써놨으니..."
 
"인간이 잘못한거긴 하네."
 
"근데 이걸 어떻게 막을 방법은 없네."
 
"어디서 독수리라도 데려와."
 
여진이형은 뜬금없는 소리를 하였다.
 
"웬 독수리?"
 
"독수리가 뱀 먹잖아. 천적을 갖다놓으면 사라지지 않겠냐?"
 
"에이."
 
"시도는 해보지?"
 
"여기서 어떻게 구해, 구할 수 있으면 진작 구했겠다."
 
"확실히..."
 
여진이형과 나는 잠깐 정적에 빠졌다. 꽤나 틀린 말은 아닌지라 시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는 느꼈지만 도저히 할 방법은 없었다.
 
"야, 근데 저번에 동기가 주임원사 사진보고 원래대로 돌아왔잖아, 이유 모르겠냐?"
 
항목 하나하나를 해석하진 않았기에 아직 그 부분은 몰랐었다.
 
"어, 그러네? 왜 그걸 생각 안했지?"
 
"주임원사 사진을 대대 곳곳에 붙여놓는건 어때?"
 
"징계먹을 일 있나..."
 
"하긴..."
 
그리고 잠시 또 정적.
 
"근데 왜 진짜 주임원사 사진보고 풀린거지?"
 
"용사들의 천적은 행보관인데 말이지."
 
"...아까부터 천적이란 말이 계속 나오네."
 
"뭐 해답을 찾는데는 마구잡이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니까."
 
"독수리, 주임원사..."
 
잠깐 되뇌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뱀의 천적' 을 인터넷에 검색하였다.
 
"생각보다 많네."
 
"뭐가?"
 
"뱀의 천적."
 
"용도 천적 있을걸? 가루다라고."
 
"그런 게 있어?"
 
"상상의 동물이야."
 
그렇게 통화를 계속 하며 나는 게시글을 살펴보았다.
 
"몽구스, 맹금류, 더 강한 파충류...대형 조류한테도 잡아먹히고... 고슴도치나 스컹크, 이런 애들도 못먹나보네..."
 
그리고 계속 스크롤을 내리며 살펴보았다.
 
"라텔? 아 벌꿀오소리한테도 먹히네, 멧돼지... 멧돼지?"
 
사진을 보는데 하필 그 사진은 정말 지금 우리 주임원사랑 닮았다. 저번에도 그 양반 얼굴상이...
 
"에이 억진데."
 
"왜 그래?"
 
"형, 지금말고 저번 주임원사 얼굴 기억나?"
 
"야, 그 얼굴을 어떻게 기억 못하냐? 덩치도 엄청크고...엥? 지금 생각해보니 지금 주임원사도 그런 느낌 아니냐? 딱 떡대좋고 그런."
 
''구서' 항목 때문에 일부러 이런 사람들만 앉힌건가... 따로 전해져 내려오는게 있다고 들은 건 없는데...'
 
나는 한 번 생각해봤다. 일단 유추는 되지만 말이 돼야하는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시도를 해보는게 나을 것 같아."
 
"뭘?"
 
"해보고 알려줄게.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삐로록'
 
나는 빠르게 아까 정리한 자료들을 한 번 살피고, 인터넷에 '이무기의 천적' 을 검색했다.
 
그러자 용의 천적이... 지네? 라는 것 까진 나오고...
 
속설 정도로 저수지에서 물고기가 안잡히면 이무기탓을 했는데... 이 때 '자라'를 물에 풀면 그런 일이 사라졌다. 라는 글.
 
"자라...?"
 
지네나 가루다는 아직 용이 되지 못했으니 의미 없을테고, 뱀의 천적인 몽구스, 맹금류 들을 어떻게 구하는가...
 
따지고 보면 자라도...
 
그렇게 혼자 고민을 하며 끙끙대던 중 눈앞에서 찰랑이는 연못의 물이 보였다.
 
"아, 이건가...? 그래 이거다...!"
 
나는 빨리 집합 때 받은 종이에다가 '자라' 라고 적었다. 한 명으론 부족하니, 동기와 창구도 설득시키고 주변 사람들을 최대한 설득시켰다.
 
우리 중대 사람들은 대게 내가 자라라고 쓰라하였고, 말이 안통하면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해결하였다. 그렇게 최대한 자라표를 많이 만들고...
 
금요일이 되었다. 우리는 전부 다목적실에 모이게 되었고 대대장님은 투표 받은 걸 집계하였다며 하나씩 발표한다고 했다.
 
"의견이 꽤 나오고, 생물 다양성을 위해서... 제일 높은 순위 별로 3개까지 키우도록 하자. 그럼 바로..."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누군가 입으로 효과음을 내자 대대장님은 마음에 든다는 듯 휴가 하루를 주었다.
 
"3위는 잉어. 뭐 다른 곳에서도 연못에서 헤엄치는 거 자주봤을테니까. 예상했고."
 
"두구두구두구"
 
아까 휴가를 받은 걸 본 이상 다들 입으로 효과음 내기 바쁘다.
 
"2위는 자라! 뜬금없이 나온거지만 여러분의 의견이니 적극 수용하도록 할게."
 
선방이다. 다행히 자라를 넣었다.... 그런데... 뭐가 100표 가까이 될만한 자라를 이긴거지?
 
"두구두구두구"
 
"1위는...."
 
순간 대대장님의 표정은 썩어문드러지며, 취소하시며 4위로 뽑힌 붕어를 채택하신다 하며 집합한 인원들을 해산시켰다.
 
"뭐였길래 그러지?"
 
여러 중대 인원들이 갸우뚱해 하는 동안 1,2 중대 아저씨들은 웃고 있었다.
 
"저기가 뭔 짓 했나보다."
 
동기들은 그렇게 말하며 해산하였고, 그 행동이 뭔지는 궁금은 했으나, 자라를 연못에 키우게 된다는 걸로 마무리가 된 이상 굳이 다른 걸 더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정신없이 지내는 동안... 어느 새 전역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근데 2주나 남았네....
 
조금은 무서웠을 지 모를 그 군생활을 생각보다 꿀빨며 마무리한 것 같다. 여러의미로 다른 부대였으면 겪지도 못했을 만한 일이였을테지만...
 
꽤나 흥미로운 군생활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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