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아빠."
 
아빠가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연락을 했다. 역시 난 불효잔가? 최근 기록을 보니 일주일 정도는 집에 연락을 하지 않았다.
 
최근 신경쓰는 일이 워낙 없었어야 됐는데...
 
"어 주하야, 잘 지내냐?"
 
푸근한 목소리다. 오랜만에 들으니 뭔가 마음이 차분하면서도 긴장하게 된다.
 
"아 예."
 
"연락이 없어서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 훈련이라도 한거니?"
 
"죄송해요. 별 일 없어요."
 
죄송한 마음이 든다. 확실히 군대 특성상 연락도 자주 안하게 되고 연락을 안하면 가족들이 걱정을 하게 되니까.
 
"그렇구나. 그럼 다행이고."
 
아빠는 안심한 목소리로 말하셨다.
 
"그냥 연락하신거죠?"
 
"뭐 그런 것도 있고. 곧 할머니 기일인데 휴가 나올 수 있니?"
 
"아..."
 
생각해보니 저번 신병 휴가 때도 분명 부모님께서 말한 것 같았다.
 
다행히 나갈 수 있는 기간이기도 했고 휴가가 없던 것도 아니라 나갈 수는 있었고 분명 미리 신청도 해놨지만.
 
상황이 상황이였다. 그래도...
 
"설마 못나오니?"
 
"아뇨, 나가요."
 
난 급하게 대답하였다. 아빠께선 한 번 더 안심한 목소리로 말하셨다.
 
"그래...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했다. 얘기 해준다 해놓고 말을 안해서 궁금해서."
 
"네."
 
"그래 그럼 끊는다. 사랑한다 아들, 곧 보자."
 
"예 저도 사랑해요."
 
오그라들지만 사랑한단 말은 꼭 하는 편이였다. 후회할 만한 일은 안만드는 편이니까.
 
전화가 끊기며 나는 다시 생각해야됐다. 분명 휴가 전까지도 시간은 있지만 무슨 방법과 무슨 여력으로 내가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
 
이제 일꺽이 다됐는데 밑에 있는 계급은 몇이나 있을까.
 
게다가 이젠 시간도 확 부족하다.
 
위에 있는 계급이 훨씬 많을 짬인 난 정말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나마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동기가 다른 사람들을 꼬드기는 것을 말리는 것.
 
그리고 이미 '구서' 를 어긴 사람이 누군지도 분간이 안가는 상황이니 '구서' 를 어기는 행동을 유도하는 사람을 따르지 못하게 해야되고.
 
소문을 만들어야되나 싶었다. 휴가를 갔다오고 난 후에 수습할 걸 최대한 줄여야됐으니까.
 
마음편하게 나갈 수는 없을 듯 했다. 일단은 같은 생활관 애들한테 조금의 변명과 상황 설명을 바꿔서 메세지로 말해주었다. '구서' 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와 함께.
 
궁금한 사항은 최대한 답변해주고. 그리고 메세지로 된다는 방법을 알게 되면 다른 생활관에 친한 애들한테도 '구서' 에 관련된 것이니 어느정도 소문은 금방 퍼질거라고 생각했다.
 
동기한테는 귀뜸해주지 않았다. 별 큰 일 없을거라 믿고는 싶지만, 차여진 상병의 말을 들으면 절대 그럴 일 없겠다 싶었으니까.
 
말해봤자 좋은 일도 없을 것 같고. 같은 생활관 애들한테도 동기 귀에는 최대한 안들어가게 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생활관 애들이 이런 걸 일부러 안지키는 애들도 아니고.
 
그리고 만약을 위해 어기고 싶더라도 며칠동안 기다렸다가 동기가 하는 행동을 보고 고민해보라는 보험도 들어놨다.
 
보험에 보험으로 이걸 내가 돌아올 때 까지 지키면 선물도 사온단 말도 했고.
 
아무튼 그렇게 해놓고, 창구한테도 부탁을 했다.
 
"창구야."
 
"일병 엄창구."
 
"그, 뭐냐 나 휴가동안 부탁 하나만 해도 되냐?"
 
"어떤 거 말이십니까?"
 
"만약에 여기있는 사람들이 조금 이상해지면 그거 다 보고 나한테 알려줘."
 
"사람들이 이상해지면 말입니까? 그 김동기 일병님처럼 말입니까?"
 
"어. 눈치 빠르네."
 
창구는 잠깐 벙쪘다.
 
"알고만 있고, 이건가 싶으면 네가 알아서 나한테 연락해. 번호 이거고 문자 보내봐. 특히 동기 말이야."
 
이렇게 말하니 창구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챈 느낌이였다. 저번 불침번 때 동기 이야기를 먼저 꺼냈으니까.
 
"예...알겠습니다."
 
혹시 모를 정보통도 구해놨다. 동기들한테도 말해놓을까 싶었지만, '구서' 에 관련된거니 애초에 어긴 사람을 시키는 게 나을까 싶었고, 어느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며 다시 어길 친구도 아니였으니까.
 
'일병 엄창구입니다.'
 
'확인'
 
그리고 창구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는 말을 해놓았다.
 
'아마도 이상해진 사람들은 '구서' 를 어긴 사람일거야.'
 
책임을 묻는 말이였다. 미안한 구석은 있지만 이 사태가 커진 것에 창구도 한 몫 했을거라 스스로 생각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이걸로 충분히 창구는 내가 맡긴 역할을 해줄 것이다.
 
메세지를 보자 창구는 질문을 하려했다.
 
'그거 이렇게 말해도 되는겁니까?'
 
움찔한 듯 싶었지만 애써 다른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그럼 저도 이상해집니까?'
 
'글쎄다'
 
생각해보니 창구도 이상해지려나, 그런 것 치고는 여태 별 일 없었는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기긴 했다. 항목에 해당한 걸 어겼어도 아직까지 이렇게 멀쩡한 사람이 있긴한데...
 
'특정한 걸 어긴 사람만?'
 
'그럽니까?'
 
'확신은 못하겠다'
 
이렇게 된다면 생각보다는 수월할지도 모르겠다. 왜 여태껏 이 생각을 안했을까.
 
항목중에도 '이제' 는 어겨도 패널티가 안생기는 것들, 즉 어겼을 때 '구서' 의 어길만한 상황을 만드는 항목들은 비해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 확신을 하면 안되지만.
 
애초에 '어떤 항목을 어기더라도' 라는 생각 때문에 더 어렵게 생각했던 것 같다.
 
분명 동기도 붉은 물이 나오는 화장실을 쓴다던가 했으니까. 일단은 이 사항을 어긴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이상하게 변할 거다.
 
조금은 희망적인건가. 일단 이것만 하지말라고 소문을 내야되나...
 
'아무튼 알고만 있어.'
 
'예 알겠습니다'
 
나는 창구에게 그렇게 말해놓고, 나는 동기가 이상해지기 전까지, 내가 휴가를 나가기 전까지 일이 커지지 않고 최대한 수습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해놓고, 나는 할만큼 해놨다. 이제 기다리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 뿐...
 
그리고 일주일이 안되서 조금 급하게 짧은 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그간 일주일 간은 생각보다 그리 나쁜 상황이 오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동기도 멍때리는 것만 하고 별 다른 증상은 없었다.
 
여러 방면으로 맘 편하지 않은 휴가... 그리고 곧 할머니의 기일이 다가왔다.
 
엄마는 일때문에 같이 못오시고 동생은 학교, 다 같이 갈 수 있었다면 좋겠다만 아빠와 둘만 시골로 내려가는 중이였다. 아빠는 장남만 가면 된다는 느낌이였나.
 
시골로 내려가는 길이 익숙한 느낌이였다. 
 
분명 저번 신병 위로 휴가 때 복귀할 때 이런 느낌이였다. 시골길들의 길주변은 대부분 논이였으니까.
 
그나마 다른 건 아빠가 운전하고 있는 차를 타고 있단 거였다.
 
슬슬 다 와갈 때 쯤엔 정말 우리 부대가 나올 것 같아 무서웠다.
 
"그래 군생활은 할 만해?"
 
"예, 뭐 요즘 군대가 군대가 아니라잖아요."
 
"나때는...."
 
아빠 시절 군대 이야길 들으면 어떻게 했는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잠깐 아빠의 군대이야기를 들으니 내 표정은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랬어. 그 땐 그랬지."
 
"으..."
 
아빠는 질색하는 내 모습을 보니 오히려 재밌어하셨다. 그래도 나름의 배려인지 군대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근데 오랜만에 오니 뭔가 바뀐 것 같다. 작년이랑 제작년엔 아빠도 바빠서 못왔는데. 이런 불효자가 없다."
 
씁쓸해 하는 아빠의 모습은 뭔가 짠했다. 나는 부모님께 어떤 자식일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
 
"추석 때랑 설 때도 할아버지만 올라오셔서...자식이란게 참.."
 
"듣기 슬픈 이야기네요."
 
그리고 잠깐의 정적.
 
"오랜만에라도 찾아뵈니까 다행이죠, 올해도 못왔으면 어떻게 해요."
 
"그건 그렇지."
 
"그래도 어릴 땐 자주 뵈러간 거 같은데... 아 맞아, 할아버지가 옛날얘기도 많이 해주시고."
 
"맞지. 아버지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지. 아빠 어릴 때도..."
 
아빠가 어릴 적에도 할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나보다.
 
"제 이름도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구슬 주, 물 하 구슬처럼 빛나고, 물처럼 맑은 사람이 되라고 그렇게 지어주셨거든."
 
"어렸을 때 들었을 땐 구슬 안에 물이 들어있는 걸 생각했었는데, 뭐 대충 뜻은 유추하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그러셨는데 이름이란 건 계속 불리기에 기운이 붙어서 그렇게 된다는 거라네."
 
"흐음..."
 
"사람이 하는 말에는 힘이 있다잖아."
 
"아 맞아, 물에다가 칭찬이나 욕을 하면 결정의 모양이 바뀐다는 '유사'과학영상이 한 때 유행하긴 했죠."
 
어째설까 아빠와 이야기하다보니 '구서' 의 항목이 생각나는건...
 
기본 룰이 말하지 말라였는데 비슷한 느낌이였을려나.
 
그렇게 조금 떠들다보니 점심 안되서 도착했다. 애초에 일찍 출발하긴 했으니까.
 
시골 집은 언제 와도 확실히 들뜨는 편이다. 어릴 땐 도시와 다른 그 느낌이였지만 지금은 여기가 더 익숙한 느낌인데 어째서일까.
 
"왔는가?"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반겨주셨다. 나는 곧바로 껴안아드리고 안부를 여쭤봤다. 뭐 잘 지내신 거 같지만.
 
엄마와 동생은 왜 안왔는지 설명해드렸지만 그래도 아쉬우신 모양이였다.
 
도착한지 얼마안되서 돗자리와 상을 챙겨서 바로 다시 차를 탔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아빠는 좀 지쳐보이셨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산소는 얼마 안가서 있었다.
 
돗자리, 제삿상, 그리고 술을 올려드리고 절도 올려드렸다. 아빠와 할아버지도 잠시 엄숙함을 가지셨다.
 
그리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아버지의 질문.
 
"그래 군대는 지낼만 혀?"
 
확실히 밖에 나오면 늘 듣는 이야기라 늘 똑같이 대답한다.
 
"네...뭐, 힘든 건 없어요."
 
"어디로 갔어?"
 
"그.."
 
"주하 XX도 용탄으로 갔어요."
 
내가 말하기 전에 아빠가 중간에 대답을 가로채셨다.
 
"용탄?"
 
"예 용탄이요. 나름 앞쪽이긴 한데, 별 큰 일 없이 잘 지내는 거 같죠?"
 
"그러냐...."
 
그리고 잠깐 차 안은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가 할아버지는 다시 말씀을 하기 시작했다.
 
"용탄이면 아! 그래, 주하야 할아비가 얘기해준거 기억혀?"
 
"할아버지가 워낙 많은 이야기를 해준게 많아서 잘..."
 
"그 용이 못된 이무기 이야기."
 
"기억날 것 같은데.....아!"
 
어렸을 적 해줬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 엄청 똑똑하고 잘나가는 이무기였지만 욕심이 많아 여의주가 9개여도 왜 용이 된지 몰랐다가 결국엔 다른 이무기들에게도 자신의 여의주를 나눠줘서 같이 용이되어 승천했다는 이야기였을거다.
 
"기억나요, 기억나요. 결국엔 이무기가 욕심을 버리고..."
 
"맞다, 맞다 그거다. 그 이야기가 용탄의 설화여."
 
"그래요?"
 
"이름부터 용을 낳는 곳이네."
 
아빠가 중간에 말씀하셨다.
 
"거기가 옛날에 엄청 예쁘다 소문이 났지, 물도 맑고 꽃도 많고 숨만 쉬어도 편안해지고, 예술가들은 용탄을 안들름 출세를 못한단 이야기도 있었어~"
 
할아버지는 신난듯이 웃으며 이야기 하셨다.
 
"지금도 예쁘제?"
 
"예, 꽃도 많고 물도 맑고 그건 맞는 거 같아요."
 
"워낙 아름다운 곳이라 기운이 좋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그런 설화도 있던거여, 뱀이나 잉어들이 거기서 도 닦으면 용된다고."
 
옛날에 들은 이야기를 오랜만에 들으니 감회가 새롭기도 했지만 다른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좋은 이야기만 있는 곳에 왜 하필, '군 시설' 이 들어선걸까? 환경파괴도 많이 될 것 같고 그 지역에도 엄청 좋다고 할 영향은 없을텐데. 지역 주민들을 도와주는 정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상하기도 했고 무언가 있지만 아직 퍼즐 조각이 부족하다.
 
"기운 좋은 곳에서 군생활 하니 어뗘? 더 기운차고 그러냐?"
 
왜인지 할아버지의 저 질문은 분명 좋게 대답해야겠다고 생각은 들지만...
 
오히려 부대 안의 분위기는 정말 좋지 않은데 말이다. 잠깐 고민하고 나는 대답했다.
 
"예...그런 것 같아요."
 
말하면서도 괜히 마음에 좋지 않다다. 거짓말을 한 탓은 아니였지만 다시 그 괴상한 일들이 펼쳐지는 곳으로 돌아가야된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말을 나누다 어느 새 시골집으로 도착했다.
 
아빠는 확실히 지치셨다. 아마 오늘 저녁 늦게 쯤에 집으로 올라가겠다 싶었다.
 
"좀 쉬어."
 
"에이 아버지 그래도 오랜만에 내려왔는데."
 
"힘든게 다 티난다. 조금이라도 쉬어둬, 오늘 자고 못가는 거 안다. 말이야 조금 이따 하면 되는거고."
 
아들을 걱정하는 할아버지는 반강압적으로 아빠를 작은 방에 들어가 눕게 하셨다.
 
"음료수 좀 줘?"
 
"네. 어딨어요? 제가 꺼내먹을게요."
 
그러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와 오랜만에 뵌 김에 말동무나 오래해드려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그 쪼까난 것이 이렇게 많이 컸구나..."
 
"그러게요..."
 
할아버지는 내 뒷머리를 쓰다듬고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벌써 군대도 가고..."
 
결국 아빠와 내가 다시 올라가면 할아버지는 혼자겠구나 싶었다.
 
여러가지로 정말 생각을 많이 하게되는 날이였다.
 
그렇게 오랜만에 효도아닌 효도를 하고 늦은 저녁이 되어 할아버지를 두고 나는 아빠와 다시 올라갈 때가 되었다.
 
아빠도 누워계시다 중간에 일어나셔서 할아버지와 많은 말씀을 나누셨다.
 
뭐 전화도 자주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사람 기운이 있는 게 나은건가 싶다.
 
그렇게 집으로 올라가는 중에 아빠한테 너지넉히 말하였다.
 
"할아버지는 또 한참 혼자 계시겠죠?"
 
"..."
 
괜히 울적한 말을 한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울리는 핸드폰을 보니
 
창구의 메세지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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