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다들 대수롭지 않게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당연히 원래 열려있었을거라 생각하며 사용을 하려다 행동강령이 생각나 화장실에서 후다닥 튀어나왔다.

내가 군생활을 그렇게 오래하진 않았지만 저 잠금이 풀린 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저게 풀려있는지 몰랐다. 이 일은 빠르게 소문이 퍼져 다들 2층 화장실 쪽만 얼씬 하지 않으려했다.

예외도 있었는데, 진짜 잠김이 풀린 걸 확인하고 도망가는 부류들과... 창구였다.

우연이였다. 창구가 그 화장실 앞에 서있는 걸 본 것은.

아마 본인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도 그냥 그런갑다 하고 지나가려했는데.

"우연이지 않겠습니까?"

지금 이 화장실 앞에는 창구, 그리고 나 밖에 없었다.

새끼가 싸가지 없이 경례도 없이 말거네?

"아니, 시발 경례는 어따두고 말부터 거냐?"

"아 죄송합니다."

요즘 선진병영이니 좆진병영이니 후임을 때릴 수도 없다 생각하며 창구 쪽으로 다가갔을 때 그의 표정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였다.

어떻게 그 얼굴을 보고 뭐라 더 하겠는가 그저 나는 한숨만 쉬고 다시 갈 길 가려했는데 창구가 화장실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

나는 순간 잘못봤나 싶었다. 발걸음 소리가 분명 화장실 안쪽으로 났으며 창구의 움직임도 화장실로 향하였다.

"ㅈ..제가 또 증명하면 되는거 아니겠습니까?! 뻔합니다. 제가 한 행동때문에 2층 화장실 잠금이 풀렸느니 뭐니 하면서 폐급 취급할게 뻔합니다."

창구는 울부짖듯 말하곤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나는 다리가 얼어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신같은 건 무서워하지 않지만 이 상황 자체는 충분히 겁났다. 끝의 칸과 잠금이 풀린 것과, 창구의 무언가가 풀린 것. 모두.

"뭐해!"

뒤에서 빠르게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화장실로 날아가선 창구의 목덜미를 잡고 끌고 나왔다.

"ㅊ..충성!"

누군지 확인했을 때, 나는 자동으로 경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게 행동강령을 준 '차여진 상병' 이였다. 짬찌니 경례할 사람이 많은건 당연한거지만.

"뭐하냐?"

세글자가 이렇게 무서울 수 없었다.

"아니다 일단 너네 생활관으로 가자."

차여진 상병은 화장실에 가장 가까운 생활관인 14생활관. 창구의 생활관으로 갔다.

'똑똑'

노크를 한 후 바로 문을 열고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을 바로 들어왔다.

"충성!"

"충성!"

"됐어 경례하지말아봐."

안에 있던 후임들은 선임이 들어오니 바로 경례부터 한다. 바로 두 달 전의 내 모습이랑 다를 바 없었다.

"너 뭐하는거야?"

차여진 상병은 곧바로 창구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창구는 벌벌 떨며 죄송하다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아니, 너 '구서' 안 받았어?"

"받았습니다."

"그럼 아는 놈이 왜그러냐? 대충 말하기 뭐하니까, 알잖아? 방금 전 행동 분명..."

차여진 상병 역시 말하기 꺼려했다. 중간 중간 비는 부분이 생기지만, '구서'를 언급함으로서 무얼 말하는지 대강 읽히긴 하니까.

"제가...ㅍ..폐급 취급 받는 게 싫어서..."

"뭐?"

창구는 점차 말하기 시작했다.

"이거...'구서' 라고 불리는걸 가짜라는 걸 증명해서...으흐흑"

창구는 울기 시작했다. 솔직히 보기 맘편하진 않았다. 내가 창구와 친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힘들지는 짐작이 갔기 때문이였다. 이렇게 고립된 곳에서 거의 왕따당하며 살고, 무엇을 해도 인정받지 못했으니까. 나와 불침번 근무를 섰을 때 나한테 얼마나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을지를 생각하니 미안한 감정도 조금 들었다.

"...그거 누가 가짜래?"

"예?"

"예는 씨발 '잘못들었습니다.' 겠지."

혼자 창구에게 안쓰러움을 느꼈을 때 차여진 상병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아까는 조금이라도 창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말투였지만 지금은... 매우 화가 난 것 처럼 보였다.

"너는 씨발 '이걸' 장난질할라고 애들한테 돌렸다 생각한거냐?"

차여진 상병은 '구서' 를 꺼내 집어들고 보이며 말햐었다

"..."

창구의 표정은 순식간에 얼었다. 나도 그 순간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동기들과 후임들 사이에서도 사람 좋다고 소문 차여진 상병이 화를 내고 있다.

지금 눈 앞에서 말이다. 나도 얼빠진 표정으로 상황을 볼 수 밖에 없었다.

"네가 한 행동 간부님들 귀에 들어갔으면 벌써 징계감이야! 좆도 모르는 새끼가 존나 물흐리고 있었네? 아니 하지말란 건 안해야되는게 정상 아니냐?"

이미 생활관 안에 있는 후임들도 얼어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물론 설명을 못하니까 너네한테 무조건 이대로 행동해라 라고 한 건 분명히 있지, 근데 거기에 써있지 않냐? 의심하지 말라고? 그리고 언급하지... 아 씨발 니 때매 언급했잖아 좆같네 진짜!"

차여진 상병은 끝없이 밀어붙이다. 자신이 '구서' 의 일부분을 언급한것을 눈치채고 더욱 화를 내었다.

"말한김에 말하는건데, 짬찌새끼들은 아무것도 몰라서 네가 말한게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진짜 지랄 쌈싸고 있다. 시발 조상 선임들이 애들 놀릴라고 만들어? 그거는 말이야, 대대 지을 때 부터 내려..."

차여진 상병은 흥분해서 계속 말하던 중 뭐에 신경쓴건지 끝부분에서 말을 하다 말았다.

"더 말해서 뭐하냐 됐다 그래. 아는 놈들은 알고 있으니 그 때 닥치고 있었지. 네가 그거 가짜네 뭐네 하던거 괜히 가만히 둔 거 아니야. 불똥이 튀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보기만 한거지."

이제는 조금 차분히 말하였다.

"하아..시바 어떻게 하지..."

차여진 상병은 머리를 짚고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하였다.

"잘못들었..습니다?"

"다 잘 쳐들었잖아. 네가 한 행동들이 간부님들한테 딱히 걸릴 행동이 아니라 여태 안 걸린거야. 하아 씨발...운 좋은 새끼. 아아아 왜그랬냐 창구야!"

그리고 잠깐의 정적. 나도 그 장면을 벙찐 상태로 멍하니 보다가 이제야 조금 정신이 차려졌다.

차여진 상병은 분명히 무언가 알고 있다. 하지만 언급하기를 꺼려한다. 나는 물어보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 거렸지만, 창구꼴을 보니 바로 그 질문들을 꾹 삼켰다.

"이제라도 알면 되니까, 꼭 지켜라. 하아..."

이제 조금 풀린건지 확실히 말의 날이 느슨해졌다.

차여진 상병의 창구를 보는 눈이 방금과는 좀 달라졌다. 조금 힘이 풀린 상태로 쳐다봤다.

"그거 잘 지키면 오늘 하려했던 행동들과 여태 일도 다른 놈들이 왈가왈부하는거 내 밑으론 싹 다 닥치게 해줄테니까."

차여진 상병은 조금 진정이 된 듯 하였다. 그리고 창구에게 제안을 했다.

"예..? 아니 잘못들었습니다."

"흥분해서 욕까지 한 건 미안하고 지난 일은 다시 할 수도 없는건데 그런걸로 지랄하는 놈들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진다고, 너는 지금부터 '구서' 지킬 수 있는 부분은 다 지켜라. 난 분명히 말했다."

그 와중에 사과도 했다. 차여진 상병의 말을 들으니 창구는 멍을 때리다가 울면서 감사하다고 하였다.

"너희도 창구랑 잘 지내라."

"옙!"

강제적이였지만 창구의 동기들한테도 바로 적용시켰다.

"미안하다. 씨발 존나 뭐라 그랬네... 수고해라."

차여진 상병은 나를 데리고 창구의 생활관에서 나오며 말하였다. 나는 나를 데려가는 차여진 상병 옆을 천천히 따라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몇발짝 안가서 차여진 상병이 말하기 시작했다.

"야 주하야, 나 마편 찔릴려나? 애한테 욕 너무 많이 한 거 같은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이다.

"마무리를 어떻게 훈훈하게 그런 소리하긴 했는데... 아 미치겠네! 시발 후회할 짓을 왜 하냐고..."

아까 그렇게 몰아세우면서도 속으론 이런 걱정 중이였나보다. 그래도 차여진 상병답다.

"그건 그렇고 얼추 듣긴 했는데 이렇게 심각한 지는 몰랐네."

차여진 상병은 자신을 걱정하는 말에서 바로 주제를 틀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 화장실 말ㅆ"

"창구 말이야... 얼마나 힘들었으면 혼자 그랬겠냐? 보니까 너네 맞선임 라인들이 그거 이후로 ㅈㄴ 별거 아닌것도 이상하게 소문냈더만."

나는 당연히 심각하다길래 잠금이 풀린걸 생각했는데 그는 사람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일단은 또래상담병이니까 보고는 드려야겠고, 애들도 좀 타일러놔야겠다. 너도 좀 도와줘. 나중에 음료나 하나 사줄게."

그는 그런 와중에 열심히 자신의 군생활도 하고 있었다. 상당히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차여진 상병님...?"

"근데 그렇게 걱정하시고 지금 이렇게 창구한테 잘해주시려는 거 같은데 아까는 왜...?"

목숨걸고 질문했다. 나는 지금 당장 뺨따귀를 맞아도 할 말이 없다.

"...무서워서 그래."

예상 외의...아니 어느 정도는 예상 안의 답변. 하지만 도대체 뭐가...? 영문을 전혀 모르니 그 답안을 들어도 내 질문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풀릴 수 없었다.

"됐어, 소름끼치니까 이야기하지 말자."

차여진 상병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거기에 대고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 날의 일은 그렇게 넘어갔다.

그 후 창구는 폐급취급까지 받지는 않았다. 예전보다는 나아진 듯 하였고...

그렇게 별 탈이 없이 내 군생활은 다시 조용해졌어야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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