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덜컹'

노크 직후 문이 열리는 소리다. 방금까지 꽤 시끄럽던 짬찌들의 생활관이지만 선임 한 명이 들어온다고 분위기가 얼어버렸다.

"충성!"

"충성!"

"충성!"

"충성!"

곳곳에서 크게 경례소리가 나며 침대에 누워있던 동기들도 전부 순식간에 앉는다.

"어어 그래, 너희 생활관인데 편히 있어."

확실히 선임이라 그런지 여유로워 보인다. 그 선임은 주변을 싹 한 번 둘러보다 나를 보곤 시선이 멈춘다.

"네가 새로온 애구나?"

"예 그렇습니다!"

"살살해 살살."

"옙!"

그러고보니 선임의 손엔 종이가 있다.

"아직 이거 못받았을거야. 혼자 조용히 읽고 웬만하면 외워둬. 갖고 있어도 되긴 하는데..... 일단 읽어. 아 그리고 소리내서 읽진 마. 볼 일 다봤으니 난 간다"

"옙! 수고하십쇼. 충성!"

"ㅇㅇ ㅅㄱ"

'덜컹'

그 종이를 받자마자 느낀 것은 군가나 선임들의 이름이 써있을거라 생각했으며, 이것들을 외워야 되는건가 싶었다. 하지만 중간 문단부터 전혀 뜬금없는 내용...까진 아니지만 뭐랄까, 괴상한 내용이였다.

'44대대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 써있는 내용들은 절대적으로 사실이며 필수적으로, 누구의 명령보다도 우선적으로 지킨다 생각하며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전역날까지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서라면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눈으로 여기까진 읽었을 땐 그냥 주의사항 정도인가 싶었다.

※44대대 행동강령

1. 불침번 근무 설 때, 절대로 졸지 마라. 근무태만은 둘째치고, 진짜 너무 피곤하고 힘들면 선임이라도 좋으니까 협조 봐라.

2. 2층 화장실 제일 끝에 칸은 늘 잠겨있다. 열려있다면 웬만하면 다른 층 화장실이나 반대편 화장실로 가라.

3. 다른 생활관 들어올 때 노크해라. 너네가 짬 차더라도 후임 생활관 노크는 하고 들어가.

4. 44대대인 만큼 4번 항목이 정말 중요한데, 보급병이 너무 바쁠 때 물류창고에서 사람 구할텐데 누가 물류창고에서 부르면 바로 당장 달려가라.

5. 야간 위병소 근무 설 때 가끔 탄약고랑, 지휘통제실, 행정반에서는 무전이 올 수 있는데 어디서 보낸지 정확히 언급 안한 무전에 수신하지 마라.

6. 우리 대대는 14생활관까지 있다. 가끔 15생활관 16생활관이라고 착각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뒤도보지말고 너희 생활관으로 뛰어가.

7. 8시 넘으면 휘파람 불지마. 비슷한 소리도 내지마

8. 불침번 근무 때 시계 봤는데 시간 자체가 안 흐르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행정반으로 달려와서 당직부관한테 말하고, 당직부관이 나가서 돌아올 때 까지 절대로 행정반에서 나가지 말고, 웬만하면 눈감고 귀막고 있어라.

9. 견장달고 있는 분대장 중에 김재봄, 가라견장달고 있는 부분대장 중에 허수한 이란 이름 가진 사람들 보면 절대 경례도 하지말고 못본 척 지나가. 아저씨야.

10. 그리고 이 항목들을 절대 소리내서 읽지마라. 절대로. 그리고 이거에 관련해서도 누구한테도 물어보지 말고, 너부터 잘지키고 문서로만 유지시켜서 신병들한테 계속 넘겨.

11. 여기 항목중엔 4번 항목 없다. 만약에 있다면 이거 넘겨준 선임한테 갖다주고 다시 받아와. 절대 써있는대로 행동하지말고.

"...뭐야 이게...?"

그 종이엔 항목이 그렇게 11번까지 써있었으며 다 읽고 나니 의구심만 들었을 뿐이다.

"장난이라면 좀..."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다지만 이런 식의 부조리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그 선임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그, 혹시 방금 선임분 누군지 알아?"

바로 옆에 있는 동기한테 물어보자 동기는 생활관까지 어딘지 말해주었다.

"2생?"

"ㅇㅇ"

동기의 말을 듣고 2생이 있는 1층으로 내려가 2생활관을 찾았다. 나는 바로 노크를 한 후 문을 열었다.

"이병 이주하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선임들은 귀찮은지 경례에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마저 하던 일을 하였다. 나는 끄덕인 고개를 확인하며 생활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까 내게 행동강령이라 써있는 종이를 준 선임분을 눈을 빠르게 돌리며 찾았다.

"아, 저..."

바로 선임께 말을 건 후 말없이 종이를 보여드렸다.

"여기 4..읍"

말하려하자 마자 선임은 놀라며 조개가 입을 닫듯이 내 입을 손으로 빠르게 막아버렸다.

"뭐해!"

그 순간의 소란으로 선임생활관은 어수선해졌다.

"죄송합니다!"

정확히 무엇때문인지 몰랐지만 얼추 왜 그러는지는 알 수는 있었다. 컨셉에 잡아먹힌 괴물이라던가, 정말 연기를 잘한다던가, 아니면 저게 정말 사실이라던가.

"일단 밖에서 이야기하자."

선임은 나를 끌고 생활관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뒤에서 수근대는 선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불안했다. 오자마자 찍히는 건 아닐지...

그런 걱정 속에서도 바로 눈앞에 무서운 존재가 당장 혼낼 것만 같았기에 마음은 순간적으로 매우 혼잡해졌다.

"...흐음..."

걱정하기 쪽팔리게 선임은 내가 아닌 오히려 내가 가져온 종이를 관심 깊게 살피던 중이였다. 다행일지도 몰랐겠지만 인상쓰는 선임 얼굴에 나는 더욱 긴장하였다.

"일단... 말 하며 안되는거니까..."

선임은 말하다 말고, 종이에 써있는 부분을 그저 손으로 가르키며 보여줬다. 그는 4번 항목과 11번 항목을 왔다갔다하며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슨 영문이냐는 표정을 하였다.

그걸 본 나도 그저 끄덕였다.

"게다가 예전 거네. 기다려봐"

그는 기다리라며 어디론가 잠시 사라졌다 5분이 안되어 다시 나타났다.

"가져가."

이번에도 종이였으면 따끈따끈했다. 방금 인쇄한 듯 싶었다.

"너네 동기중에서도 그런 적 없는데 이상하네."

선임은 이상하다는 듯 말하며 먼저 자리를 비웠다.

"수고하십쇼 충성!"

경례를 박으니 선임은 웃으며 다시 자기 생활관으로 향했다.

'진짜일까...'

혼잣말로도 말하면 큰일날까 싶어 일단은 속으로 생각하며 종이를 들고 조용히 다시 생활관을 향하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종이에 항목이 추가적으로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번과 11번 항목이 뒤로 밀리고 몇 개가 더 서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귀신같이 4번 항목은 존재하지 않았다.

10. 2층 화장실에서 물을 틀었는데, 빨간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거 녹물이니까 바로 보고 드려라.

11. 주임원사실 문에 붙어있는 주임원사님 사진 10초 이상보지마라.

12. 자다가 이유없이 깨면 불침번이랑 5분 정도 이야기하다가 다시 들어가서 자라. 만약 불침번이 없다면 옆 생활관에 들어가서 기다리다 나와라.

13. 야간 위병소에서 어디로 무전보내는지 꼭 말하고 송신해라.

14. 임무분담제 또는 병영생활지도 시간에 청소하다가 이게 여기 왜 있지 싶은게 나오면 건들지 말고 바로 보고 해라.

15. 만약 뭔가 중요한 걸 잊어먹은 듯한 생각이 들면 최대한 생각해라. 그걸 잊어먹기전에 어딘가에라도 써놓고, 기억해내라 최대한.

추가된건 5개 항목 정도. 그리고 뒤의 16, 17번 항목은 원래 받았던 종이의 10번과 11번 항목이였다.

그나마 조금 추가된거라면. 16번 항목에 의심하지 말라고 써있었다.

물론 장난이거니 싶었지만... 아까 선임의 행동이 너무 신경쓰였고... 지킨다고 나에게 피해가 올만한 행동은 없을거라 생각했기에 일단은 계속 지켰다.

그렇게 별탈은 없지만 힘들고 버겁게 자대생활을 2달 정도를 하고 빛과 같은 신병휴가를 갔다오니...

일이 터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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