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별다른 이변 없이 역귀들을 잘 상대하고 있습니다.

생존자 구출도 순조롭지만 사실, 문제는 식량입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늘어가다 보니 비축된 식량이 아주 부족합니다.

물은 어떻게든 조달할 수 있지만 당장 식량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원의 보고에 최대위는 고민했다.

구조자들 중 일부를 부대에 편성하고 무기수급 역시 어느 정도 가능해졌지만

아무래도 식량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먹을 입이 많아지고 관리자는 적다 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식량 먼저 찾아야겠군. 구조활동은 일시적으로 중단해.

부대는 둘로 나눈다. 수색팀, 그리고 확보팀.

수색팀은 이빨부대 정예로 뽑아서 식량 수색을 최우선으로 한다.

나머지 부대원들은 확보팀.

확보팀은 일반인들중에서 지원자 받아서 부족한 인원을 보충한다.

부대원은 관리자. 일반인은 노동자로 운영하란 거야.

수색팀이 식량 있는곳을 찾으면 확보팀이 투입해서 거점으로 옮겨온다.

대형마트건 창고건 가정집이건 못 갈 데는 없으니 가능할 거야.

구조활동은 식량 비축분이 충분해지면 재개한다.

물론 역귀 척살은 마찬가지로 계속 진행해.”

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이건 부대원 중 한 명이 얘기한 건데,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연기가 나는걸 봤다고 합니다.

산불 같은 건 아니고 신호 같았다기에 밤에 높은 곳에서 확인해보니

그쪽에 불빛이 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면 구조신호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반대로 안전지역에서 생존자를 불러들이기 위한 방안일 수도 있다.

역귀에게 들키기 쉬운 불을 신호로 사용한다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안전지역엔 충분한 식량이 있을거고, 그를 거점으로 한다면 좀더 수월하게 역귀 사냥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대위는 확인할 필요성은 있다고 판단했다.

“수색팀 꾸려서 준비해.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어. 해 떨어지기 전에 출발한다.”



준비는 빠르게 끝났다.

군용 대검으로 무장한 병사 10명과 줄에 묶인채 겁에 질린 얼굴로 끌려오는 아이 2명.

최대위는 인원을 파악하고는 멀리서 솟아오르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의도적인 신호처럼 보였다.

안전지역 표식이라면 들어가서 활용 동의를 얻으면 되고,

단순 구조신호면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대략 30분 정도 거리로 보인다.

관리병은 아이들 결속 잘하고 최우선적으로 보호해.

역귀가 나타나면 아이들을 가운데 두고 순차적으로 이빨을 만들어 상대한다.

이번엔 토벌이 목적이 아니니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면서 싸움은 최소로 한다.

전부 알아들었으면 출발해.”

관리병이란것은 이빨이 될 아이들을 관리하는 병사를 말한다.

오로지 이빨부대에만 있는 보직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가장 보호받으면서 또 가장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위치에 있게 되었다.

최대위 역시 대검과 총을 점검하고는 연기가 나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부디 안전지역이길 바라면서.







“자동차 구해놨어. 무서울게 없어졌으니 효율적으로 움직여야지.

그러니까 짐은 최대한 많이 실어놔. 식량 우선적으로 챙기고.

준비되는대로 바로 출발할테니 서둘러. 우리가 왔던 그 도시로 되돌아갈거야.

방법을 찾았으니 그놈이 일을 잘해놨길 바래야지.”

상혁의 말에 혜정은 안도하며 식량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시 걸어 돌아갈 생각에 정신이 아득했는데 다행히 편히 돌아갈 수 있을 모양이었다.

상혁이 구해온 SUV에 만족스러울 만큼 식량을 실은 혜정은 상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끔씩 웃기도 하고 다른 표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저런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원래 감정표현이 적은 사람일까?

과거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 가지 주워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봤을 때

자신의 아내와 딸을 희생시킨 것 같았다.

어쩌면 그때 이후 저런 얼굴이 된게 아닐까?

혜정은 왠지 상혁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스스로 상혁의 방을 찾아갔던 그 날 이후로 상혁은 문을 잠가놓지 않았다.

때문에 혜정은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슬쩍 진혁의 방으로 찾아가곤 했다.

물론 상혁의 얼굴에 변화는 없었다.

애정이 느껴지는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런 상혁에게 자신은 위로받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었기에 상혁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묻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못하고 차에 올랐다.

뒷좌석엔 아이가 있었고 혜정의 자리는 조수석이었다.

혜정은 다시한번 부부가 연상되어 작게 웃었다.

상혁은 별다른 말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혹시나 역귀가 따라오지는 않을까 했지만, 다행히 그런일은 없었다.

“가까운곳은 미리 청소 해놨어. 네 덕에 칼이 상당히 쓸만해졌으니 어렵지 않지.

가기전에 몇군데 들러서 필요한거좀 챙길거야. 난 주변 둘러볼테니까 네가 들어가서 가져와.”

상혁은 미리 적어놓은 리스트를 혜정에게 건네었다.

대부분 의약품이었고 간단한 생필품이나 옷가지 들도 적여있었다.

얼마간 평화롭게 주행하던 차는 길 한쪽에 있는 휴게소 건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턴 역귀가 나올수도 있어. 내가 밖에서 지켜볼테니까 들어가서 쓸만한거 챙겨와.”

혜정은 가방 두 개를 짊어지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휴게소 건물은 엉망이었다.

약탈이 있었는지 식량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어차피 지금 필요한건 식량이 아니었다.

다행히 편의점에는 쓸만한 물건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적혀진 대로 진통제와 소독약, 붕대 따위를 챙긴 혜정은 문득 리스트에 적혀있지 않은 물건 하나에 눈이 갔다.

임신테스트기.

괜히 죄를 짓는 느낌에 눈치를 살피며 몇 개 챙겨 주머니에 넣고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척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무겁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물건을 챙겨 돌아갈 수 있었다.

“약 같은건 많이 챙겼어요. 생필품도 있었고. 먹을건 없었는데 다행히 콜라는 몇 개 있네요.

미지근하지만 맛있을 거에요.”

혜정은 상혁에게 캔콜라 하나를 내밀었다.

역시나 상혁은 고개한번 까닥이지 않고 그걸 받아들이고는 느긋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혜정은 떨고있는 아이에게도 하나 건네준 뒤 상혁을 바라보았다.

“전 당신한테 어떤 사람이에요?”

갑자기 튀어나온 질문에 당황한 것은 상혁이 아니라 혜정이었다.

물어보려던게 아니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질문을 내뱉은 것이다.

혜정이 허둥대는 사이 상혁은 전혀 동요없이 대답했다.

“아무것도. 그냥 필요할 뿐이지.”

이후 더이상 말이 없었다.

다 마신 캔을 대충 구겨서 버린 상혁은 그대로 차에 올랐다.

혜정 역시 우울한 얼굴로 차에 올랐다.

이후 오랜시간 동안 혜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말이야. 촌장님은 역귀들 중에서도 특출난 녀석들이 있다고 하시던데

그건 무슨 이야기인가? 난 역귀라면 그냥 다 비슷한줄 알았네만.”

운전을하고 있던 황반장의 말이었다.

짐칸에 걸터앉아 칼을 만지고 있던 진혁은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뭐 저도 실제로 보거나 그런건 아닌데요.

그놈들도 급이 있어요.

기록된건 별로 없고 저도 아저씨한데 들은거라 얼마나 정확한지는 알 수 없는데

역귀가 오래 살거나 사람을 계속 뜯어 붙여서 커지다 보면 이제 두억시니가 된대요.

그것들은 덩치도 엄청크고, 힘도 셀 뿐더러 어느정도 자아가 생겨서 지능까지 있다고 하더라구요.

중요한건 그게 역귀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는거죠.

그냥 더 쎄고 똑똑한 우두머리 역귀가 두억시니라고 생각하시면 될거에요.

뭐 그런놈들은 가급적 안만나야겠죠.”

가만히 듣고 있던 진아가 말했다.

“아! 저희 할머니가 그런 얘기를 해주셨었어요.

역귀들이 나타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 하신말씀인데,

괴물들도 몸뚱아리 안에 영혼이 담겨있대요.

그래서 힘들긴 해도 조금만 노력하면 그 영혼의 눈을 빌려서

과거 기억을 읽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구요.

그때에는 설마 싶었는데

자아가 있고 지능이 있다면 영혼이 있는것도 가능하겠네요.”

황반장은 잘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난 잘 모르겠네만 좀 더 독한 놈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구만.

그보다 일단 그때 거기로 돌아가고 있네만 그거면 되겠나?”

“네. 어차피 뭔가 방법이 있는것도 아니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지요.

그때 급하게 도망 나오느라 버려 두고온 물건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고.”

황반장은 그때 막 생각 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래. 내 장비들도 버렸었지.

쓸만한게 참 많았는데 찾을 수 있으면 참 좋겠구만.”

진혁과 황반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진아가 문득 하늘을 가르키며 말했다.

“저쪽에 저거 연기 아니에요? 왜 연기가 나지?”

모두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직 거리가 있었지만, 확실히 인위적인 듯한 연기가 보였다.

“아무래도 뭔가 있어보이는구만. 마침 방향이 같은데 저기먼저 가보는게 어떤가?”

진혁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네. 그게 좋겠어요. 생존자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으니까 들리는게 좋겠어요.”

진혁 일행은 연기가 나는곳을 목표로 차를 이동시켰다.







“아이들 상태는 좀 괜찮나?”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최대위가 관리병에게 물었다.

“네. 상처 치료는 잘해놔서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애가 너무 겁을 먹어서 그게 좀 걱정입니다.”

의무병이자 관리병인 정신우 상병이 대답했다.

최대위는 고개를 끄덕이곤 마을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규모가 있는 마을이었다.

역시 안전지역이 맞았던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보기엔 대략 60여 명은 생활하고 있는 듯했다.

다만 특별한 방벽이나 역귀에 대한 대비책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기에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안전지역으로 보이니 우선 들어간다.

적의가 없다는 걸 확실히 하기 위해 무기는 꺼내지 않는다.

다만 유사시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관리병과 아이는 최후열에서 따라온다. 자 출발.”

최대위와 부대원들은 모두 천천히 마을로 향했다.

곧 마을 사람들도 군인들을 발견하고는 입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최민규 대위라고 합니다. 연기 신호를 보고 찾아왔습니다.

혹시 마을대표님이나 책임자분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군인을 경계할지 모른다 생각하여 일부러 양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지만

다행히 마을 사람들은 큰 거부감이 없이 최대위와 부대원들을 맞았다.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 같았기에 안심하던 찰나,

마을 사람들이 길을 내주며 노인 한명이 나타났다.

“어서오십시오. 잘 찾아오셨습니다. 제가 마을 이장입니다. 저와 이야기 나누시지요.”

자신을 이장이라 소개한 노인은 부대원들을 전부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이제 아무 걱정 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마을은 수호신이 있어 역귀로부터 안전하니까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 괴물들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는 지역이 있다는 뜻일까?

이빨 사용법을 알려준 진수가 비슷한 말을 한적은 있지만,

그건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데다가 범위도 한정적이어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고 있었다.

최대위는 곧바로 물었다.

“안전하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아는 한 그 괴물들이 발디디지 못하게 하는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안전하다니요. 그리고 수호신이라니 그게 대체 무엇입니까?”

노인은 인자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 소싯적에 박수무당이었습니다.

말이 박수무당이지 제대로 점사도 못보는 반쪽짜리라

금세 접고 농사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제가 모셨던 신께 치성을 드리는건 잊지 않았지요.

그런데 역귀들이 나타난 이후, 수호신님께서 제게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저와 이 마을을 지켜주시겠다는 말씀이셨지요.

이후 실제로 저희 마을엔 역귀들이 들이닥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수호신님 덕에 저희 마을이 건사한 것이지요.

이 하해와 같은 마음에 감사하고 또 모두와 나누기 위해

그리 신호를 보냈던 겁니다.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겠단 일념 하나로 말입니다.”

최대위는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었다.

진수에게 들은바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괴물을 상대한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조금 다른 문제 같았다.

“믿기 힘드신건 알고 있지만 보시다시피 사실입니다.

저희 마을은 역귀로부터 안전하지요. 다 수호신님 덕분입니다.”

확실히 이곳은 매우 안전해 보였기에 어느정도 납득을 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역시 개운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그보다 많이 시장하실텐데 식사부터 하시는게 어떠실지요?

이래뵈도 저희 마을은 풍족한 작물이 자라고 있어서 먹을것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대원들은 내심 반가워 했지만 최대위는 아직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모두 먼저가서 식사하고 좀 쉬고있어.

난 이장님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최대위의 명령에 부대원들은 마을 사람들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나갔다.

둘만 남게 되자 최대위는 조금 강한 어조로 이장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말씀하신 것이 모두 사실입니까?

굉장히 무례한 이야기라는건 잘 알고 있지만 솔직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수호신이 안전하게 지켜준다니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무언가 숨기는게 있으신 것 아닙니까?”

노인은 여유있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말에 거짓은 없습니다.

수호신님이 역귀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있고. 한사람이라도 더 모시기 위해 신호를 보내고 있지요.

그보다 저야말로 대위님께 무례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겠군요.

보아하니 그저 도망쳐온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뭔가 목적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게 무엇입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 어떻게 지금까지 역귀들로부터 살아남으신 겁니까?”

최대위는 고민했다. 여기서 자신의 카드를 열어보이는게 과연 똑똑한 짓일까?

사실 이 마을에 이빨부대가 주둔한다면 상호협력하여 굉장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식량이 풍부하고 안전한 이곳을 거점삼아 아주 안정적으로 역귀들을 사냥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최대위는 적어도 자신의 목적은 이야기 해주기로 했다.

“제가 이곳에 온 목적은 두가지입니다. 한가지는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두 번째는 역귀 사냥의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저에겐 역귀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협조를 요청드리고 싶습니다.”

최대위의 말에 노인은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노인이 놀란 이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것이었다.

“역귀 사냥이라니 그건 곤란합니다.”

“아뇨 가능합.... 방금 곤란이라고 하셨습니까?”

노인은 다시금 확실히 말했다.

“네. 곤란합니다. 그래선 안되지요.

저희 마을의 수호신이시자 제가 모시는 두억시니님께서 그걸 원하지 않으십니다.”

곧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좀 이상하지 않아요?

저렇게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역귀로부터 안전할까요?”

먼발치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던 진아가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래. 방벽을 둘러서 숨기기라도 해야되는데

저기는 숨기기는커녕 여기있소 하고 광고를 하고 있으니.

원래대로라면 역귀떼가 몇 번씩으고 들이닥쳤을텐데.”

진혁이 있던 마을 역시 외진곳에 위치해 있고

방벽이나 위장등을 통해 역귀들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그 예전에 진아네 집처럼 보호받고 있는게 아니겠나?”

황반장의 질문에는 진아가 대답했다.

“그랬다면 제가 조금이라도 느꼈을거에요.

그런 기운은 전혀 없어요. 게다가 저정도 마을을 통째로 보호할 방법도 없구요.

그보다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있는 것 같은데 뭔지 잘 모르겠네요.”

진혁은 고민했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았다.

“어차피 곧 해가 떨어질테니까 더 이동하지 않는게 좋겠어요.

그렇다고 지금 저 마을로 들어가는건 내키지 않으니

이 근처에서 야영하고 저긴 내일 밝을 때 내려가보죠 뭐.”

그렇게 결정한 진혁 일행은 야영을 준비했다.

야영 준비라 봐야 전동차 옆에 침낭 세 개를 죽 깔아놓는 정도가 다였다.

불을 쓸 수 없으니 식사는 간편했다.

밀로 만든 딱딱한 빵과 말린 과일.

진아가 민옥이모에게 얻어온 삶은달걀 몇 개.

“한창 좋은 것 먹고 예쁜것만 봐야할 때에 이리 고생해서 안되었구만.

자네도 그렇고 진아도 그렇고.”

황반장의 말이었다.

“왜요. 이것도 맛있는데. 경치도 좋구요. 저희 할머니께서 그랬어요.

어디서 뭘 먹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누구랑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우리 듬직한 반장님도 계시고 옆에 이리 잘생긴 신랑감도 있는데 얼마나 좋아요.”

고마운 말이었기에 진혁은 더욱더 진아가 안쓰러웠다.

당연히 진혁 역시 진아에게 좋은 것만 보게하고 좋은것만 먹여주고 싶었다.

걱정되긴 했지만, 마을에서 잘 지낼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리 같이 밖을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진혁의 표정이 좋지 않은걸 봤는지 진아가 진혁의 팔을 토닥이며 말했다.

“내가 원해서 따라온거잖아. 괜히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웃어요.

우리 할머니가 꿈에까지 나와서 말씀하신걸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일 테니까 너무 신경쓰지말고.”

진혁은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에 진아의 손을 잡아주었다.

“빨리 일끝내고 돌아가야지 안되겠어. 얼른 신혼방 차려주든가 해야지 이거 내 얼굴이 다 빨개지는구만.”

황반장의 농담에 다들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마쳤다.







“이장님. 아무래도 이 사람들 이빨을 쓴 것 같습니다.”

문이 벌컥 열리며 마을 사람인듯한 청년 하나가 아이 두명을 이끌고 들어왔다.

이빨부대에서 데려온 어린아이들이었다.

노인은 아이들 몸에 난 칼자국들을 살펴보곤 최대위에게 말했다.

“설마 했는데 진짜 이빨로 역귀를 사냥하고 계셨군요.

그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체 이빨 사용법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당신은 길영마을 출신은 아닌 것 처럼 보입니다만.”

다급히 고개를 돌려 문밖을 바라보자 그곳엔 부대원들이 묶여있었다.

아무래도 식사중에 공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대체 이게 뭐야. 넌 이빨을 어떻게 알아? 두억시니는 또 뭐고 사냥은 안된다는건 뭐야?”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당신은 질문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묻는 말에 먼저 대답을 하세요.

이빨에 대해 어떻게 아셨습니까.”

최대위는 분위기를 살피다가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우연히 알게되었어. 어떤 미치광이 하나가 역귀사냥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지.

그 사람한테 배운거야.”

이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망쳐 나온 길영마을 사람이겠지요. 그렇다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역귀 사냥은 곤란합니다.

그건 두억시니님 뜻에 맞지 않거든요.

두억시니님을 배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간 전부 죽겠지요.”

“좋아. 난 대답했으니 이제 네 차례야. 넌 이빨을 어떻게 알아?

두억시니는 또 뭐고.”

노인은 최대위를 잠시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이고는 설명했다.

“네. 뭐 말씀드려도 괜찮겠지요. 전 역귀들의 탄생지인 길영마을에서 무속일을 했습니다.

사실 말이 무속이지 마을 사람들에겐 천대를 받았지요.

제가 모신 것은 두억시니였거든요.

두억시니가 무엇인고 하니, 이무기가 여의주를 물고 용이 되듯

괴물에 불과한 역귀가 영혼의 눈을 떠 스스로 신이 된 존재입니다.

저희 선조들은 대대로 두억시니를 섬겼지요.

다만 신력은 거의 없다시피 해서 사실상 제사 지내듯 치성을 드린게 전부이지요.

역귀들이 풀려난 날. 전 정말 정신없이 도망을 쳤습니다.

같이 도망치던 사람들은 어느새 뿔뿔히 흩어지거나 역귀에게 희생되고

남은건 저를 포함한 고작 몇 명의 사람들이었지요.

죽기살기로 도망쳐 당도한 곳이 이 마을이었습니다.

간신히 몸을 숨기고 제발 살려달라고 기도하던 그때.

저희 앞에 두억시니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보통 역귀보다 너댓곱절은 큰 덩치에 다른 역귀와 달리 그 수많은 눈 하나 하나 마다 명백하게 깊이가 있었습니다.

영혼이 있다는 뜻이지요.

모두가 좌절한 그때 전 두억시니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곤 말했지요.

신님의 종이 여기에 있으니 분부를 내려달라고.

그러자 기적처럼 두억시니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두억시니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제물을 바치면 살려주겠노라고.”

최대위는 노인의 말을 전부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대략 상황을 파악 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 꾀어다가 괴물한테 던져주고 연명했다는 얘기 아니야!

개같은 새끼들. 그따위로 뻔뻔하게 살아남아 놓고 수호신 타령을 해?”

노인은 크게 웃었다.

“이빨을 써서 역귀를 사냥한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우습군요.

저희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모두를 구합니다.

두억시니님께서는 제물만 주기적으로 잘 바치면 역귀들이 해를 가하지 않도록 저희를 보호해 주십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살기 위해 아이들을 희생시키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에, 아이들이라니. 어찌 그리 끔찍한 짓을 하신 겁니까?”

최대위는 화가나서 소리쳤다.

“필요한 희생이었어. 역귀들을 막기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그리고 난 아이들 목숨을 함부로 하지 않아.

누구보다 더 안전하게 보호하고 치료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어.

절대 죽지 않도록 보호하고 역귀 사냥이 끝나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할거야.

그러는 너는 뭔데? 희생자들은 뭐 자진해서 역귀밥이 되나?

그냥 너희 살겠다고 무고한 사람들 막 죽이는거 아니야. 안그래?”

노인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역귀들은 절대 막을 수 없습니다.

고작 몇 마리 사냥해본 경험으로 그리 오만하게 말씀하시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요.

하지만 두억시니님은 자애로우십니다.

일주일에 한두명만 희생하면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지요.

마을이 얼마나 풍족한지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저희도 아무나 제물로 바치지는 않아요.

지원자가 최우선. 그 다음이 죄지은자. 마지막이 제비뽑기입니다.

물론 뽑기에서 어린아이들은 제외되지요. 당연합니다.

미래의 희망인 어린아이들을 제물로 삼다니요.”

최대위는 비웃었다.

“그래서. 본인들이 불안하니 사람들을 자꾸 모은건가?

제물로 바칠 상관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그저 많은 이들이 두억시니님을 섬기고 안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실제로 연기를 보고 찾아왔다가 감화되어 두억시니님을 모시는 사람도 많지요.

평화롭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당신이 어린아이들의 피로 역귀를 사냥하겠단 안일한 생각을 하는동안.

저는 수십의 사람들을 먹여살리고 있습니다.”

“지랄.... 목숨 담보로 협박 했겠지.

그럼 대답해봐. 마을로 들어온 사람들은 본인이 원하면 떠날 수 있나?”

노인은 대답하지는 못했다.

“그렇겠지. 떠나지도 못하게 묶어놓고 누구는 죄를 만들어서 제물로.

또 누구는 뽑기를 조작해서 제물로.

이정도면 가족으로 협박해서 지원하게 만들기도 했겠군. 어때? 내말이 맞지?”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과 더 이야기 하는건 무의미하겠군요.

수호신님을 욕보이고 역귀를 사냥한 죄.

미래의 희망인 어린아이들을 해한 죄.

그 죄를 물어 당신과 동료들 전부 구금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재물로 바쳐 두억시니님의 화를 잠재울 것입니다.”

최대위는 더 참지 못하고 권총을 꺼내 노인을 겨누며 소리쳤다

“이 늙다리 새끼가 감히 누굴 제물로 바쳐!!!”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