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

“됐으니까. 멍하니 있지말고 그냥 나와.”

마당이 충분히 넓은걸 확인한 상혁은 차고있던 칼 두 개를 전부 빼들었다.

왼손엔 검은칼. 오른손엔 붉은 칼.

두 개의 칼을 들고 가볍게 휘두르고 있자 상당히 화난 표정의 진혁이 다른 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놀랐지? 최루탄이었어. 아무리 나라도 거기서 수류탄을 던지는 미친짓은 안하지.”

진혁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고통스러워 하며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좁은데서 그러지 말고 넓은데서 제대로 한번 가보자.

내 생각은 여전해. 네 팔다리 한짝씩 잘라낼거야.

무서우면 지금이라도 다 털어놓고 꺼지던가.”

“그딴짓 안해!!”

화가난 진혁은 상혁에게 달려들며 정글도를 휘둘렀다.

하지만 상혁은 여유있게 피하며 진혁과 거리를 벌렸다.

“이렇게 넓은데선 안통해.

그보다 어깨도 온전치 않은데 계속 그렇게 휘두르면 오래 못버텨.”

진혁의 어깨에서는 대충 조치한 상처에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 다른 사람들이 최루탄 피해에서 벗어나면 골치 아파 질테니

서둘러 진혁을 제압하는 것이 상혁의 일이었다.

상혁은 주저하지 않고 양손에 든 칼을 매섭게 휘둘렀다.

이번엔 반대로 진혁이 간신히 막아내기만 할뿐 몸을 빼지도 반격을 하지도 못했다.

“너무 원망하지마. 일단 팔한짝 가져간다.”

상혁은 빨리 마무리 하려는 듯 검은칼로 진혁의 방어를 깨고 반대쪽 칼로 왼팔을 노리고 들어갔다.

그순간, 진혁은 팔을 빼거나 막아내는 대신 그대로 내어주며 상혁의 품안으로 한발 들어갔다.

“몸싸움을 하시겠다? 그럼 팔 하나로 마음껏 해봐!”

비웃음을 흘리며 그대로 상혁의 왼팔을 내리친 상혁은 예상치 못한 느낌에 당황했다.

살과 뼈를 가르는 느낌이 아닌 둔탁함.

‘이 새끼 팔에 뭐야?’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진혁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칼을 버리고 진혁에게 바싹 다가갔다.

그리곤 칼을 휘두를 간격이 나오지 않아 다급히 물러서려는 상혁의 얼굴에 주저없이 주먹을 꽂아 넣었다.

“어금니 꽉 깨물라고 했지? 한방 더 간다!”

이번엔 가슴에 발길질.

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 상혁은 들고있던 칼을 모두 놓쳐 버렸다.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진혁은 뒤로 밀리는 상혁의 목덜미를 붙잡더니 그대로 바닥에 매다 꽂아 버렸다.

“컥!!”

둔탁한 소리와 함께 상혁은 바닥에 대자로 쓰러졌다.

“칼싸움은 몰라도 몸싸움은 원래 내가 더 잘했어.”

그렇게 중얼거린 진혁은 칼이 내리쳐진 왼손을 바라보았다.

황반장이 챙겨준 보호구 하나만 믿고 도박수를 던졌는데 다행히 어느정도 먹힌 모양이었다.

다만 완벽하진 않았기에 보호구는 갈라졌고 피역시 적지 않게 배어 나왔다.

그 사이 진아와 다른 사람들 역시 서서히 시력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제 상혁이 끔찍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잘 가둬두고 감시만 하면 된다.

하지만 진혁의 안도는 너무 빠른 것이었다.

“팔이 많이 아팠나봐? 버틸만 한데?”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상혁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비틀 거리며 일어나 간신히 칼을 집어든 상혁은 힘에 겨운지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대었다.

“너무 늦었어. 다치고 싶지않으면 그냥 얌전히 따라와.

아니면 한번 더 눕혀줄까?”

상혁은 헛웃음을 삼켰다.

확실히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얌전히 항복해서 유유자적하게 감금생활을 보낼 생각도 없었다.

“그럴수는 없지. 내 스타일은 아니긴 한데. 아무래도 도박을 좀 해봐야겠다.”

그렇게 말한 상혁은 즉시 몸을 돌려 벽에 붙어있는 부적들을 뭉텅이로 떼어내기 시작했다.

당황한 진혁이 말리려 했지만 이미 제법 많은 부적들이 떨어져 나간 뒤였다.

“안되요... 이제 지켜주지 못해요..”

진아의 말이었다. 진혁은 상혁에게 소리쳤다.

“뭐하는거야? 다 죽을 생각이야?”

상혁은 주머니에서 휴대용 호신벨을 꺼내들며 대답했다.

“글쎄. 어쩌면 다 죽을거고. 어쩌면 다 살거고. 어쩌다 운이 좋으면 나만 살겠지.”

상혁이 핀을 뽑아내자 놀라울 정도로 큰 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진혁이 상혁에게 달려가려던 그 순간, 일행의 맨 뒤에있던 수지가 비명을 질렀다.

돌아보니 진수가 벌개진 얼굴로 손에 피 뭍은 식칼을 든 채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그의 앞에는 수지가 피나는 다리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었다.

정신을 차린 진수가 부엌에서 칼을 찾아서 끈을 잘라버리고 기어나와서는 눈앞에 있는 수지를 무작정 찌른 것이다.

맹하고 바보같은 모습만 보였던 진수였지만 돌이켜보면 그는 이미 사람 여럿을 죽인 살인자였다.

그를 증명하듯 그의 칼엔 주저함이 없었다.

“이 개같은 년놈들이 날 엿먹이고 병신 취급해?

오냐. 이 샹놈의 새끼들아 오늘 내가 너희 전부다 토막내 주마.”

진수가 칼을 휘두르려 하자 모두 물러났고 진혁이 재빨리 그 사이에 껴들었다.

고통스러워 하는 수지를 보며 화가 치밀었지만 지금은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전부 나가요! 반장님! 다 태우세요. 상우는 수지 업어!”

그렇게 외친 진혁은 진수를 노려보았다.

진수역시 진혁을 마주 노려보며 칼을 들어올렸다.

“그래. 특히 너. 성질 더러운 새끼. 넌 오늘 나한테 뒤졌다.”

하지만 누가 움직이도 전에 상혁이 소리쳤다.

“그만! 혹시 모르니 이빨은 아껴!”

진수는 아차 하마 칼에 뭍은 피를 바라보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악!!!!”

그때 역귀의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진혁이 잠시 밖 상황에 귀기울이는 사이, 상혁은 진혁의 뒤쪽으로 여전히 울리고 있는 호신벨을 던졌다.

진혁이 떨어진 호신벨을 밟아 부수는 동안 상혁은 진수의 뒷덜미를 잡아 집안으로 끌고 들어가 문을 잠갔다.

위험부담은 있지만 이미 도망치긴 늦었기에 최대한 버티다가 이빨을 믿고 몸을 뺄 생각인 듯 했다.

진혁은 이대로 상혁을 놔줄수 없기에 �i아 들어가려 했지만 문이 견고해 들어갈 수 없었다.

“크아아악!”

벽 바로 너머에서 역귀 울음소리가 들리자 진혁은 포기 하고 돌아섰다.

상혁을 그냥 보내는게 내키지는 않지만 모두와 함께 자리를 피하는게 우선이다.

곧 담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기에 진혁은 뛰어나가며 황반장에게 소리쳤다.

“출발하세요! �i아 옵니다!”

모두를 태운채 준비하고 있던 황반장은 즉시 전동차를 출발시켰다.

“어디든 잘 잡고 있어. 간다!”



진혁은 전동차 짐칸 가장 끝쪽에 자리잡고는 상황을 살펴보았다.

앞좌석 두자리에는 운전을 하는 황반장과 급히 지혈을 한 수지를 무릎에 앉힌 상우.

방안에서 구해낸 여자아이는 전동차 뒷자리.

짐칸 한켠엔 상처입은 남자아이. 그걸 돌보고 있는 진아.

사람이 너무 많았다.

거기에 여러 짐까지 실었으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대로 도시만 벗어난다면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이미 한 마리가 �i아오고 있었고

상혁덕에 주변에서 역귀들이 계속 몰려오고 있는 중이었다.

과연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작은 희망을 걸어봤지만 곧 역귀들이 더 나타나기 시작했다.

셋. 넷. 다섯.

역귀는 움직이는 전동차를 발견하고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i아오고 있었다.

아직 전동차의 속도가 더 빠르지만 확실하게 거리를 벌리지도 못하고

역귀들을 꽁무니에 매단채 내달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짐 전부 버려요!”

진혁의 말에 짐칸에 실려 있던 식량과 물건들은 전부 밖으로 내던져 졌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역귀들을 떨쳐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배터리 소모가 심해. 이 속도로 오래 달리진 못할걸세.”

황반장의 말이었다.

저녀석들은 지치지도 않고 포기할 줄도 모르니 언제까지고 따라 붙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배터리가 바닥나면 꼼짝 없이 역귀에게 잡힌다.

멀리서도 확연히 보이는 역귀들의 기괴하고 역동적인 움직임은 모두를 절망에 빠트리기 충분했다.

뭔가 방법이 필요했다.

“아저씨... 지금일까요?”

진혁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졌다.

“진아씨. 지도 아직 가지고 계세요?”

진아는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진혁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반장님. 무슨일이 있어도 뒤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세요.

안내는 진아씨가 해줄거에요.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제 이름을 대세요. 그럼 들여보내 줄거에요.

진아씨. 다친애들을 좀 부탁드릴게요.

일단 무사히 도착만하면 잘 치료 할 수 있을거에요.”

진아는 상혁의 팔을 붙잡았다.

“안돼요. 지금 이상한 생각하고 있죠?

그러면 안되요. 다같이 가야죠.”

진아가 잡은 진혁의 손은 안쓰러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그걸 느낀 진아는 다시금 이야기 했다.

“당신도 무섭잖아요. 그러니까 하지마요.”

진혁은 주저했다.

그리고 곧바로 고작 말 한마디에 주저하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문득 상혁의 말이 떠올랐다.

‘넌 아저씨를 이어갈 자격이 없어.’

내심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 가슴 시리게 와닿은 적이 없었다.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아 보았지만 그럼에도 바보같이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삼촌....”

그때 칼에 찔린 고통에 울고 있던 수지가 진혁을 불렀다.

“이빨이요..... 내가 이빨 할게요.”

수지는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진수에게 이야기를 들은 수지는 이빨이 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상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진혁을 바라보았다.

“우리... 다 같이 살아요. 죽으면 안되요...”

수지의 말에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수지의 그 한마디가 진혁의 떨림을 멈추게 했다.

진혁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한데. 내가 맹세를 했거든? 그러니까 이빨은 절대 안쓸거야.

대신 나도 안죽어.

무조건 살아서 찾아갈테니까 다시는 그런소리 하지 마!

약속할게. 꼭 찾아갈 테니까 날 믿고 기다려 알겠지?”

그 말을 끝으로 진혁은 차에서 뛰어내렸다.

“진혁 삼촌!!!”

수지가 울면서 소리쳤다.

“안되요! 세워요. 돌아가야되요.”

진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황반장은 돌아보지 않았다.

전동차에서 내려선 진혁은 칼을 뽑아들고는 심호흡을 했다.

“명심해. 지켜야 할건 두가지야.

전동차에 탄 사람들. 그리고 나.

마지막 싸움이 아니야.

약속했으니까. 역귀들을 유인하고 나도 살아나가는거야. 할 수 있지?”

몸을 푼 진혁은 그 자리에서 크게 소리쳤다.

“살아나가자!!!!!”

그 소리는 모든 역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진혁은 역귀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친 다음.

전동차 진행 방향과 다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역귀들은 모두 멀어지는 전동차 대신 눈앞에 있는 살덩이인 진혁을 �i았다.



진혁 일행이 떠난 뒤 집안에 숨어 시간을 보내던 상혁과 진수는

어느 정도 조용해지자 밖으로 나왔다.

“괜찮겠죠? 다 저놈들 �i아가지 않았을까요?”

상혁은 욱신거리는 목을 주무르며 대답했다.

“모르지. 그러니까 이빨 잘 들고 있어.

어지간하면 도망치는게 좋겠지만 여차하면 써야 하니까.”

진수는 손에든 식칼을 보며 불안한 듯 말했다.

“이거 대장님이 쓰시는게 낫지 않을까요? 전 그놈들 좀 무서운데...”

사실 진혁 역시 그러고 싶었지만 지금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괜히 이빨이랍시고 저런걸 들고 앞으로 나섰다간 역귀한테 당할수도 있다.

차라리 사지 멀쩡한 진수가 쓰는 것이 나았다.

게다가 앞장선 진수가 이빨을 제대로 사용못해도 미끼정도는 될테니 굳이 자신이 앞장설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주저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진수였기에 적당히 이용해 먹을 생각으로 데리고 다닌 것 뿐이니 죽는다고 아쉬울건 없었다.

“그냥 네가 써. 너정도면 역귀 한두마리는 어렵지 않게 상대할테니.”

마음에도 없는 말로 대충 기세를 올려준 뒤 상혁은 앞으로 계획을 구상하려 했다.

“크아아악!!!”

하지만 생각할 새도 없이 어딘가에서 역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있다고 광고 해주니 오히려 고맙네. 멍청히 있지 말고 움직여!”

상혁은 대략 역귀의 위치를 가늠하며 진수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진수는 당황했는지 사방을 두리번 거리기만 할뿐 움직이지 못했다.

“멍청아 빨리!”

“크으으으윽”

낮게 으르렁 그리는 소리. 방향은 모르겠지만 아주 가까웠다.

진수는 패닉이 왔는지 비명을 지르며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향을 잘못잡은 덕에 역귀 한 마리와 정면으로 마주쳐 버리고 말았다.

“으아악!!! 죽어 이 괴물 새끼야!!!!”

다행히 발악적으로 휘두른 진수의 칼이 역귀에게 제대로 박혔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역귀에게 달라붙어 몇 번이나 칼질을 한 후에야 진수는 이성을 찾았다.

역귀는 이미 완전히 죽어 버린 후였다.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던 상혁은 그 모습을 보곤 괜찮은 생각을 떠올렸다.

“잘했어. 재능이 있네. 아무래도 임무를 하나 줘야겠다. 우선 돌아가자.

안전한 곳에서 앞으로 계획을 얘기해줄테니.”

얼떨떨한 표정으로 칼과 역귀 시체를 들여다 보던 진수는 색다른 희열을 느끼며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난 힘이 있다. 대장님이 내게 힘을 주셨어. 난 힘이 있다. 괴물도 죽일 힘이....’

칼을 든 진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역귀에게 맞서는 것만해도 쉬운일이 아니지만 역귀에서 살아남는 건 더욱더 어려운 일이었다.

적어도 지금껏 진혁이 배우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 중

역귀들의 이목을 끌어 유인한뒤 다시 따돌리는 방법따위는 없었다.

자신보다 빠르고 덩치큰 상대와 술래잡기를 한다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진혁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나무위에 올라가면? 역귀라면 나무 정도는 이쑤시개처럼 부숴버리겠지.

가까운 건물에 뛰어들어 몸을 숨길까?

괜찮긴 하지만 지금은 너무 가까워. 따돌리지 못하는 순간 다음은 없어.

산으로 도망치는 방법?

보나마나 내가 먼저 지치겠지.

그러면 물에 뛰어드는건?”

역귀가 물을 두려워하거나 빠져 죽지는 않겠지만

수영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 근처엔 깊은 물 따윈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살아나가야지. 집중해!”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역귀들은 진혁과의 거리를 점점 좁혀가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며 죽을힘을 다해 달리던 진혁의 눈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지하철 입구!

지금은 전기가 끊어졌으니 당연히 지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있다.

진혁은 주저없이 지하철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예상대로 입구를 제외한 사방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이제 진짜 술래잡기다...”

진혁은 각오를 다지며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돌아가요! 진혁씨 구해야 되요!”

진아가 소리쳤지만 황반장은 고개를 저었다.

“죽으러 간게 아니니 너무 걱정 말게.

돌아온다 했으니 돌아오겠지.

그 친구가 아가씨랑 이 아이들을 맡겼으니 난 안전하게 데려다 줄 생각만 할거야.

지금 돌아가면 정말 다 죽을 수 있단 말일세.”

단호한 태도였지만 진아는 포기 하지 않았다.

“그럼 저라도 내려주세요. 제가가서 구해올게요!”

“바보같은 소리. 아가씨 혼자가서 뭘 어쩌려고.

혹여나 잘못되면 내가 진혁군 볼 낯이 없지 않은가?

그러지 말고 길이나 알려주게. 서둘러야 해!”

“... 제발요. 하다못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지금 가면 다시는 못볼지도 모르잖아요.

진혁씨 엄청 떨고있었어요.

사실 엄청 무서운데 저희들 지키겠다고 무리해서 뛰어나간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발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조금만 기다렸다가 다 같이 돌아가요.”

가만히 듣고있던 상우도 거들었다.

“맞아요. 같이 가야죠. 목숨걸고 우리 구해주신 건데 그냥 갈수는 없어요.”

그쯤되자 황반장도 더 이상 단호하게 나갈 수는 없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본 황반장은 모두에게 말했다.

“우선 도시 외각으로 나가서 기다리는걸로하지.

그쪽은 비교적 안전할거고 진혁군이 온다면 무조건 지나갈 길목이니

보아하니 내가 준 이어폰도 그 난리통에 떨어뜨린 것 같으니 방법은 기다리는 것 뿐이야.

거기서 안전한곳에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는거지.

오래 기다리지는 못할걸세.

딱 해떠있는 동안만, 태양열로 조금이나마 전동차 충전을 해둘테니

해떨어지면 곧장 다시 출발할거야.


대신 절대 어디 돌아다닐 생각하면 안돼. 너무 위험하니까.”

모두가 수긍하자 황반장은 도시외각에 위치한 작은길을 따라 차를 몰았다.

마침 농기구창고로 쓰이는 듯한 작은 건물을 발견했기에 전동차를 안전하게 숨기고 진혁을 기다릴 수 있었다.

건물에 난 작은 구멍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상우에게 진아가 다가왔다.

“저 여자애 시현이래. 여덟살. 겁을 많이 먹었는데 다행히 괴롭힘당하진 않았나봐.

붕대 감고 있는 남자애는..... 아직 힘든지 눈을 못뜨네.

저렇게 어린애한테 어떻게 저럴수 있는지...”

진아의 말에 상우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누나... 저 아까 수지가 이빨이 되겠다 했을때요...”

진아는 수지를 돌아보았다.

아직은 상처가 아픈지 짐칸에 걸터앉아 시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제가 나서서 말렸어야 되는데. 못했어요.

그러지 말라고 혼을 냈어야 되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면서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 줄 아세요?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제 살았구나.

이러면서 안심했어요.

동생 지켜주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한 주제에.

진혁 삼촌 형이란 사람이 꼬마애 저렇게 만든거 보고나서 속으로 엄청 욕했는데

전 욕할 자격이 없어요..

수지한테 너무 미안하고, 진혁 삼촌한테도 미안하고, 아빠한테도 미안해요...”

상우는 애써 참고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진아는 상우가 안쓰러웠다.

사실 상우의 잘못은 없었다.

그때 상황이 너무 급박했고 위험했기에 누굴 탓할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린애 상대하듯 위로하며 다독여줄수도 있었지만

진아는 지금의 상우에게 보다 어른스러운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가족들이 모두 죽고 나서 며칠동안 동생을 지켜냈고 언제나 동생을 챙기던 상우였다.

스스로 어른이 되려는 상우에게 어린애 취급은 상우의 노력을 무시하는 처사였다.

“지금까지 상우가 수지를 위해서 얼마나 많이 노력하고 얼마나 많이 신경썼는지 알아.

상우를 나쁜 사람이라고 비겁한 사람이라고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하지만 상우가 진짜로 동생에게 미안하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낀다면.

앞으로 절대 다시는 흔들리지마.

진혁삼촌이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

그때 못이기는척 수지를 아프게 할 수도 있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내렸잖아.

그걸 기억하고 언제나 마음을 다잡아야해.

그리고 수지를 위해서 네가 할 수 있는걸 찾아.”

다행히 상우는 진아의 말에 기운을 얻은 듯 했다.

보통의 어린아이 였다면 속상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상우는 받아들이고 반성하고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여린구석이 있어 눈물이 떨어지는걸 막지는 못했다.

진아는 그런 상우를 꼭 안아주었다.

“쉽지 않을거야. 그래도 상우는 잘 할 수 있어.

힘들겠지만 대신 가끔씩은 누나가 이렇게 상우 어리광 받아줄게. 알겠지?”

상우는 진아의 품안에서 소리없이 어리광 부렸다.

어른스러워진 상우에게도 가혹하고도 힘든 세상이었다.



“사람들을 모아. 지금부턴 따로 행동할거니까.

난 고향마을에 다녀올테니 넌 역귀들을 상대할 사람들을 찾아.

훈련시키고, 이빨을 찾고, 역귀를 쳐 내면서 기반을 마련해 놓으란 말이야.”

은신처로 돌아온 상혁의 말이었다.

“그럼. 제가 대장님의 이빨부대를 만들란 말씀이십니까?”

진수는 황홀한 듯 물었다.

그 이름이 거슬리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겠다 싶었는지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든간에 만들어봐. 세세한 부분들은 알아서 하고.

너무 어중이 떠중이는 안되니까 적당히 잘 모으고.

싸울줄 아는 사람이 필요해. 선악을 너무 따지지는 마.

역귀한테 원한이 있는 사람이나 싸우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거야.

그런 사람들을 잘 구슬려서 편으로 만들어.”

“그럼, 대장님은 고향 마을엔 무슨일로 가십니까?”

진수의 물음에 진혁은 붉은 칼을 가르켜 보였다.

“지금 이빨 사용법은 너무 비효율적이야.

다른 방법이 분명 있을테니 고향마을로 가서 정보를 좀 모아올거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잘 해봐.

마지막 이빨을 놓고 갈테니.”

상혁은 남아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에게는 선택권을 주지.

첫 번째. 저녀석과 여기에 남아 첫 이빨공장이 된다.

두 번째. 나랑 같이 고향마을로 가서 역귀를 상대할 다른 방법을 찾는걸 돕는다.”

진수는 내심 기대감 어린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저... 저는 당신을 따라갈게요.”

두려움에 떠는 여자의 대답을 듣고 진수는 아쉬워 했지만 사실 당연한 결과였다.

애초에 상혁은 선택권을 주는 척 하지만 사실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상혁은 야투경을 준비하며 여자를 준비시켰다.

“먹을걸 충분히 챙겨. 발소리 안나게 신발은 적당히 갈아신고.

양손을 다 묶어놓진 않을 테지만 한쪽 팔은 나와 연결해 놓을거야.

혹여나 줄 풀려는 순간 머리통을 날려버릴테니 죽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어.

밤에만 이동할테니 놓치지 말고 잘 따라와. 소리도 내지 말고.

해 떨어지면 바로 출발한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진수는 환희에 가득차서 중얼거렸다.

“대장님이 내게 힘을 주셨다. 이빨부대를 만들라고 하셨어...

그래. 사람들을 모으는거야.

버림받은 사람들. 악한 사람들. 혼자남은 사람들.

그 사람들을 모아서 이 세상을 뒤엎어 버리는거야.

힘없는 자에게 힘을 주고. 죄지은자의 죄를 사하여 주고. 겁많은 자에게 용기를 주고...

그래 이빨부대로 다시 태어나서 역귀를 찢어죽이는....

내가 대장님의 이빨이다. 아니 송곳니. 내가 송곳니야.”

진수의 얼굴에 광기어린 미소가 걸렸다.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