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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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육포 [8]

작성자

자르반3세

쪽지 | 작성자 글보기

번호 81735 추천 142 답글 8 조회 14,637 작성시간 2022-04-25 18: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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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동네에서 음식 솜씨 좋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근처 주민들 뿐만 아니라 지역 유지들, 군수 아저씨까지 명절날만 되면 할머니를 찾아와 직접 담그신 장이며 김치며 받아가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해주시는 반찬은 나물 위주의 조촐한 밥상으로 호화롭진 않지만 어린 우리들의 입맛에도 잘 맞아서 우리 형제들은 매번 밥을 2공기 이상 먹곤 했다.

딱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고기 반찬을 구경하기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젊으셨을 때 부터 힘이 장사셨다.

가진 것 한푼없이 독립하여 나무를 캐며 생활하시다가 남의 밭의 소작농으로 일하셨다는데, 워낙 일을 잘하고 힘이 좋으니

다른 사람이 일주일 동안 할 일을 이삼일이면 끝내셨다고 한다.

그렇게 알뜰하게 돈을 모아 땅도 사고 소도 키우며 자수성가 하신 분이셨다.

가부장적이지만 아내 사랑만큼은 각별하셨던 할아버지가 딱 하나 못참는게 있다면 밥상에 고기반찬이 없을 때였다.

할머니가 밭일로 바빠 미처 장을 못보거나 혹은 비나 눈이 많이 와서 장이 안열리는 날에 미처 고기를 못사온날에는

할아버지가 밥상을 엎으며 큰소리로 할머니를 꾸짖으셨단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해야 되는데 고기를 안먹으면 힘을 못쓴대나 뭐래나

늙어서 밭일은 쉬고 계시지만 기운은 정정하신터라, 할머니는 우리에겐 나물과 김치, 간장종지만 반찬으로 내 주어도, 할아버지 밥상에는 꼭 삶은 고기든, 찐 생선이든 항상 고기가 올라갔다.

하지만 젊으실 때 부터 먹성이 엄청나셨던 할아버지는 본인이 먹기에도 부족한 고기를 우리 손주들에게 양보할 리가 없으셨고, 우린 할아버지와 다른 밥상에서 자린고비마냥 침을 질질 흘리며 구경하는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마당에서 동생하고 제기차고 있던 나를 사촌형이 조용히 부르더니,

"야, 할아버지 방에 고기 반찬 있는거 아나?'

라고 넌지시 말을 건네는게 아닌가.

"에이, 반찬은 밥먹을때 할머니가 요리하는데 할아버지 방에 고기가 왜있어." 하고 대답했더니,

"사실 아까 할아버지가 요지 갖다달라고 하시길래 방에 들어갔다 왔는데, 빼다지 젤 밑에 보니까 육포 같은거 모아둔 반짓고리가 있더라고"

"육포?"

"어, 어두워서 제대로 못봤는데 노란색깔 얇은 육포가 가득 담겨있더라니까. 좀있다가 할아버지 주무시면 몰래 가지고 와서 먹어보자"

우리 형제들은 살면서 육포라는 걸 본적도 먹어본 적도 없었다.

다만, TV에서 간간히 양반집이나 명절날에 고기를 얇게 져며서 양념을 발라 말려놓고 간식처럼 질겅질겅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며 저거 맛있겠다고 우리끼리 몇번이고 얘기하곤 했다.

해가 중천에 뜬지 2시간 정도 지났을까.

할아버지는 항상 이시간에 낮잠을 주무시고, 할머니는 저녁 찬거리를 살겸 나물을 팔러 장에 나가실 시간이다.

우리 셋 중 가장 체구가 작고 날렵한 내가 잠든 할아버지 방에 몰래 들어가 육포 반짇고리를 몰래 들고 나오기로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할아버지 방 미닫이 문이 낡아 삐걱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끼이익 하는 소리 뒤에 잠시 정적이 흘렀으나, 이내 깊이 잠든 할아버지의 새근새근한 숨소리에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고,

아까 사촌형이 말했던 서랍장 제일 마지막 서랍을 열었다.

그곳엔 날카로운 구둣칼과 할아버지가 가끔 쓰시는 붓과 종이책, 그리고 사촌형이 말했던 네모난 보석함 같은 상자가 있었다.

이 상자가 아까 그 형이 말한 육포 상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행여나 잠든 할아버지가 깨어나실까봐 열어둔 서랍은 그대로 두고 종종 걸음으로 미끄러지듯이 방을 나와 열려있던 문을 닫고 나왔다.

마당에선 어차피 보이지도 않지만 괜히 기둥 뒤에 숨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맹렬하게 관찰하는 눈 4개가 있었다.

"형 여기 가져왔어"

사촌 형이 뚜껑을 열 때, 우리 셋 모두 동시에 침을 꼴깍 삼켰다.

상자의 뚜껑을 열고 보니 안에 얇고 투박한 모양으로 썰린 노란 빛의 육포가 가득했다.

"형, 이게 육포야?"

TV에서 보던것관 사뭇 다른 비쥬얼에 형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형은,

"야, 우리 할매 손맛이 얼마나 좋은데. 참기름으로 양념해서 고기가 노랗게 된거잖아. 분명 맛있을거다." 형은 한심하단 듯이 대답했다.

"형 우리 이거 먹어도 될까?"

이제와서 괜한 걱정이지 싶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내 양심 고백은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양심도 잠시, 육포 한조각을 입에 넣어 우물거리는 형을 보고 나와 동생도 얼른 한점씩 집어 입에 넣었다.

"우와...이게 육포구나.."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고기의 맛이었을까.

노란 빛의 육포는 입에 들어갈때만 해도 엄청 딱딱하고 질겼지만, 몇번 씹다보니 짭잘한 맛과 함께 침과 섞여 부드러운 형태가 되어 씹으면 씹을 수록 그 고소함이 올라오는게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서너 조각을 더 집어 먹고서야 형이 다시 뚜껑을 닫고 제자리에 돌려놓자고 하였고, 내일 이시간에 다시 가져와서 먹기로 했다.

오늘 너무 많이 먹으면 티가나서 들킨대나 뭐래나.

다시 원래 자리에 갖다 놓고, 혹시나 나중에 할아버지가 일어났을때 걸릴까봐 조마조마 했지만 다행이 그날 밤에 저녁을 먹고 밤잠에 드실때 까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삼형제의 육포 서리는 며칠간 계속되었다.

신기하게도 이 육포상자는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가도 다음날엔 또 조금 채워져 있고

정작 주인인 할아버지는 드시지 않는 듯 하여 점점 우리의 육포 섭취량은 자신감을 얻어 첫날 서너조각 밖에 안먹던걸 이젠 하루에 여섯 일곱 조각씩 거덜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육포 서리가 멈추게 된 것은 처음 맛본 이후로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주말 점심 나른한 차에 왠일로 할아버지는 오침을 안주무시고 방에 앉아 티비를 보고 계셨다.

매일 이시간마다 잠든 할아버지 몰래 육포를 꺼내먹던 우리는 얼른 할아버지가 잠에 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할아버지 옆에 조로록 앉아 티비를 같이 보며 연신 곁눈질로 할아버지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할아버지가 사촌 형에게,

"아야, 마지막 빼다지에서 반짓고리랑 구두칼이랑 갖고 오니라" 하는게 아닌가,

순간 우리 셋은 얼어 붙었고, 사촌형은 한껏 달아 오른 얼굴로 덜덜 떨며 서랍에서 육포 상자와 구두칼을 가져다 드렸다.

'형...우리 큰일 나는거 아냐..?'

'쉿. 모른척 하고 있어.'

귓속말로 동생과 난 걱정을 주고받았고, 할아버지는 우리의 속이 타는지도 모른채 편한자세로 앉아 육포 상자를 열으셨다.

그리고...

바닥에 신문지를 크게 까시더니 거기에 80년 묵은 발을 올려놓고 구두칼로 발바닥 굳은 살을 밀어내시는게 아닌가.

그렇게 벗겨진 굳은살은 우리가 며칠동안 육포상자라고 알고 있었던 반짓고리로 집어 넣으셨다.

"우욱-"

옆에 서서 보고있던 사촌형의 헛구역질을 필두로 우리 셋은 동시에 입을 틀어막으며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아 새기들이 갑자기 와그라노. 더위먹었나? 끌끌..."

양발의 굳은살을 꼼꼼히 벗겨내시며 혀를 차는 할아버지와 우웩우웩 연신 마당 화단에 구역질을 해대는 우리의 잊고 싶은 어린날의 추억이 생겨버렸다.

* 컨텐츠 출처 : 작성자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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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1

롬브로단로

다른건 실화이길 바라는데 이건 실화가 아니길 바래..

39 0

추천

반대

이동

답글

2022-04-27
11:52

답글마당 (8)

웃픈냥

헉 예상이 맞아버렸어...

추천

반대

답글

2022-04-25 21:02:03

윌슨퍼시벌힉스버리

으아아ㅏㅇ아ㅏ아아아가아아아ㅏㄱ

추천

반대

답글

2022-04-26 13:10:22

심심한나무

우웨엑 ㅠㅠㅠ

추천

반대

답글

2022-04-26 16:04:21

롬브로단로

다른건 실화이길 바라는데 이건 실화가 아니길 바래..

390

추천

반대

답글

2022-04-27 11:52:16

만렙찍으꺼야

치킨먹고싶었는데 해결댐

추천

반대

답글

2022-04-29 23:32:32

tptwwo

나 저거 먹어본 적 있음

추천

반대

답글

2022-08-18 01:48:50

자르반3세

이걸 왜...

추천

반대

2022-08-18 15:46:32

웃대22학변

인육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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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답글

2023-01-15 13: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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