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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있어. 하지만 없다고 생각해.”
그 말에 청소년시절의 진혁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왜요 아저씨? 방법이 있으면 써야 하잖아요. 그 역귀란놈 엄청 무섭다면서요.
죽일 방법이 있으면 죽여야죠.”
아저씨라 불린 남자. 태영은 진혁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진혁 옆에 앉아있는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도 같은 생각이냐 상혁아?”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실 전 이해가 안되요. 그렇게 위험하고 나쁜 괴물들을 왜 그냥 봉인했는지.
방법이 있다면 다 죽였어야 하는게 맞잖아요.”
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설명했다.
그래. 그게 맞을수도 있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는 그게 맞을 수도 있어.
하지만 말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게 기계처럼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
조금 이르긴 하지만 너희에게 알려주마.
역귀를 상대할 유일한 방법이란걸 말이다.
써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왜 쓰면 안되는지 알아야 할테니.”
평소와 다르게 사뭇 진지한 태영의 모습에 상혁과 진혁은 둘다 긴장한채 태영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먼저 너희에게 내가 물어보마.
진혁아. 넌 네가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너희 형이나 내딸 예지를 대신 죽게 할 수 있을까?”
진혁은 곧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상혁이. 너도 위험해지면 동생이나 예지, 아니면 다른 마을 어린애들을 전부 바쳐서라도 살아나는게 맞다고 생각하고?”
상혁은 잠시 고민을 했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다른 사람 피를 밟고 올라서는 건 선택해서는 안될 짓이지.
아무리 그게 효과적인 방법이라도 말이야.
그럼 이제 말해주마.
역귀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바로 가장 순수한 피야.
알겠어? 어린아이가 흘린 피.
피를 뽑는다거나 그런 안일한 방법은 소용없어.
희생시킨다는 점이 중요한 거니까.
충분한 고통으로 만들어진. 마땅한 희생을 통해 얻어진 피를 날붙이에 묻히면
그게 바로 역귀를 상대할 무기가 되지.
결국 간단히 말해서 아이를 베고 찔러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무기로만 역귀를 해할 수 있단 얘기야.
우린 그걸 이빨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물어뜯어 해를 입힐수는 있지만 물어뜯는 순간 인간을 포기하고 짐승이 되는거니까.
아니 짐승만도 못한 존재지.
그 능력있는 사람들이 역귀를 죽이지 않고 봉인한 것도 그들이 사람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러니 우리가 그 유지를 이어야지.
이빨은 절대 안돼. 알겠지?”
상혁과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빨은 네가 간수해. 행여나 죽지 않도록 잘 관리하란 얘기야.
가방안에 지혈제랑 붕대 있으니까 틈틈이 치료해놔.
죽으면 곤란해.”
상혁은 허리에 묶여있던 끈과 가방을 건네며 말했다.
“먼저 동생을 찾아야 해. 그래. 널 습격한 그 녀석. 어디로 갔을까?”
진수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대답했다.
“그 녀석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이 있는곳은 압니다.
어쩌면 그쪽으로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몇명이나 되지? 아이는 있었나?”
상혁의 말에 진수는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확실치는 않지만 십수명은 되어보였습니다.
인원이 많으니 어린애들도 분명 있을겁니다.
사실 저도 그 사람들 쪽에 붙으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불안해서인지 받아주지 않아서 혼자 있던 참이었습니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내해. 동생이 있으면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어.
애만 데려오면 돼. 방해하면 다 죽여.”
진수는 안주머니에 넣은 식칼의 감촉을 느껴보았다.
누군가 지금껏 자신에게 죽이라고 말해준적이 있던가?
대부분은 반대였다.
그 사실이 이리도 황홀할거라 생각지는 못했다.
‘어쩌면 이런 세상이 된것도 이분을 만난것도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
진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황홀경에 빠져있던 진수는 상혁이 기다리자 급히 안내하며 물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그렇게 찾으시는건지?....”
상혁은 힘겹게 진수에게 끌려오고 있는 소년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말했지? 이빨이라고. 저게 역귀를 잡을 무기야.
무기는 많을수록 좋지. 아직은 비효율적이지만,
어느정도 자리만 잡는다면 효율적으로 그놈들을 죽여나갈 수 있어.
그러기 위해선 재료가 필요해. 괜찮은 거점도 필요하고.
그러니까 널 공격한 그놈. 진혁이를 찾는거야.
분명 어딘가 안전한 곳에 사람들을 모아놨을 테니까.
거길 뺏어서 기지로 삼고. 거기 있는 사람들로 이빨공장을 만들거야.
다음으로 역귀들을 몰아내고 다시 세상의 주인이 되는거지.
일처리만 잘 한다면 너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어.”
이빨공장... 세상의 주인....
진수는 또다시 희열을 느끼며 입맛을 다셨다.
한번은 꿈꾸었던 일이다.
모두에게 무시받고 모두에게 버림받고 모두에게 천대받는 삶 대신
하고픈 일을 마음껏 하며 사람들을 밟고 우뚝 서는 그런 세계가 오는 꿈.
역귀가 판을 치고 사람 목숨이 가벼워진 후에도 와닿지 않았지만
상혁을 만나고 나자, 모든 것이 정리되면서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네! 대장님! 이 한 몸 바쳐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상혁은 대장이란 호칭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써 보였지만 더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진수는 신이 나서 앞서가기 시작했다.
“안전지대가 확보되었으니 미뤄놨던 곳에 가야겠지.”
진혁은 대형마트로 향했다.
생존자 그룹이 남아있다면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다.
물자들도 풍족할테니 꼭 들러야할 곳이기는 했지만
반대로 역귀나 사람 습격률이 높아서 상당히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물론 생존자 그룹이 진혁에게 호의적일거란 보장도 없다.
과연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난관이 예상되었기에 여러 가지 계획이 필요했다.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던 그때,
‘쾅’
멀지 않은 곳에서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이런 젠장.”
분명 진혁이 향하고 있던 대형마트쪽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무슨 일이 일어난지는 모르지만
큰 소리를 듣고 곧 모든 역귀들이 그쪽으로 몰려갈게 분명했다.
이대로 돌아가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진혁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진혁은 우선 상황을 지켜보고 움직이자 생각하고는 서둘러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렸다.
“이제 금방 역귀들이 몰려올거 거든?
너희도 살고 싶을테니 선택권을 줄게.
첫 번째. 이대로 자존심 세우며 버티다가 역귀들한테 전부 쓸려나간다.
두 번째. 당장 전부 내 앞에 엎드려서 목숨을 구걸한다.
시간 없으니 빨리 결정해. 자리를 피하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하니까.”
진수는 경악을 하며 상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생존자들이 모여있는 마트에 와서 대표자랑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물론 이전처럼 외부인을 꺼려했고,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채 열어주지 않았다.
흔히 보는 대형마트의 유리문이긴 했지만,
내부에 가구따위로 견고하게 바리케이트를 쳐놓은 탓에 억지로 들어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그 순간, 상혁은 주머니에서 수류탄을 꺼내어 주저없이 입구에 던졌다.
소리에 놀라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진수가 고개를 들어보니,
파편과 시체가 널부러진 입구를 유유히 걸어들어가 저리 말하고 있는것이다.
그 당당한 태도와 시원한 해결법 덕에 진수는 경외감마저 느꼈다.
진수에겐 존경스러운 모습이겠지만 다른사람에겐 공포였는지
곧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비틀비틀 걸어나와 상혁앞에 엎드렸다.
죽은 사람을 제외하고 남자가 넷. 여자가 하나.
전부 성인들이었다.
진수는 다급히 그들 중 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기 몇 명이나 있어? 어린애들은? 어디에 있어?”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말을 않자 진수는 슬쩍 상혁을 돌아보았다.
상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수는 웃으며 칼을 뽑아들었다.
“자. 한번만 더 물을게. 여기 몇이나 있고 어디에 쳐박혔어?”
“..그...그”
진수는 곧장 칼을 목에 박아 넣었다.
“너무 늦잖아. 다음. 넌 똑바로 대답해.”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의 멱살을 잡아채고 다시 물으니 그 사람은 곧장 대답했다.
“위층에 다섯명 더있어요! 남자 둘 여자 하나. 어린애 두명.”
상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사람하나는 잘 봤네. 잘했어.
전부 데려가기엔 많으니까 다 죽여.”
그렇게 말한 상혁은 칼을 뽑아들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 쟤는 좀 아까운데....”
진수는 벌벌 떨고있는 여자 한명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에이! 그래도 대장 명령인데 들어야지!”
미련을 털어버린 진수는 거리낌 없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폭발 여파로 크게 다친 그들은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쓰러져갔다.
“크아아악!!!”
신나게 칼질을 하고 있던 진수는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진수에게 찔린 사람의 비명이 아니었다.
진수가 피맛에 너무 취한 나머지 역귀가 가까이 온것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조금 당황했지만, 다행히 상혁이 돌아왔다.
여자 한명과 어린아이 둘을 줄줄이 묶어서 손에 쥔 채였다.
“이거 받아. 그 이빨은 날 주고. 쓰던거 마저 써야지.
많이 몰려들면 골치아파 지니까 가로막는 역귀들이나 쳐내고 바로 빠져나가자.”
상혁은 소년을 넘겨받고는 붉은 손잡이의 환도를 꺼내들었다.
검은색 손잡이는 사람. 빨간색 손잡이는 역귀를 잡을 때 쓰는것이었다.
묶여있던 소년은 상혁이 칼을 뽑는것만으로도 두려움에 떨며 발악했지만
상혁은 솜씨 좋게 소년의 팔 한쪽에 칼을 깊숙이 박아넣었다.
“지혈하고 붕대로 감아. 길 열어줄 테니까. 그놈들 전부 잘 챙겨서 따라오고.”
피에 적셔진 칼을 들고 진혁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이게 뭐야?”
진혁이 대형마트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폭발로 뻥 뚫린 입구. 파편으로 갈가리 찢긴 시체들.
그리고 칼에 찔려 죽은 사람들.
시체들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역귀짓은 아니었다.
습격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생각하던 진혁에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난도질 당한 역귀의 시체.
볼수도 없고 봐서도 안되는 그것 때문에 진혁은 이를 악물었다.
이런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 뿐이었다.
쫒아가야 할까 고민하던 그때, 뒤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살려... 주...”
폭발에 휘말렸지만 간신히 살아남은 남자가 상처를 입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진혁은 우선 그부터 구하기로 했다.
“괜찮아요. 금방 구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진혁의 마음은 급했다.
피냄새를 맡고 곧 역귀들이 몰려올 것이다.
서둘러 움직이지 않으면 역귀에게 둘러싸일지도 모른다.
뭣보다 이 남자는 큰 상처를 입었고 의식을 잃으려 하고 있었다.
진혁은 남자의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 계속 말을 걸며 상처를 지혈했다.
“자. 괜찮아요. 눈뜨세요. 정신 잃으면 안되요.
제가 구해드릴게요. 안전한곳이 있어요.
여기서 조금만 가면 역귀가 못오는 당집이 있으니까 거기까지만 가면 되요.
거기 도와줄 사람이 있으니 걱정마요.
우선 상처 지혈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정신만 잃지 마세요.”
다급함에 손이 떨려왔지만 섬세하게 상처를 지혈하는 한편
주변에서 역귀가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늦지않게 응급처치를 마무리한 진수는 들것으로 쓸만한 무언가를 찾기위해 몸을 일으켰다.
“올줄 알았지. 오지랖 넓고 멍청한 너라면.”
진혁은 깜짝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상혁이 소년을 묶은 줄을 들고 서있었다.
상처투성이 소년을 강아지처럼 끌고있는 상혁의 모습을 본 진혁은 다시금 분노가 치밀었다.
“이거 다 형 짓이야?”
상혁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너 거주지 꾸려 놓은데 있지? 어디야?”
진혁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상혁은 한숨을 쉬며 소년이 묶인 줄을 한쪽에 단단히 묶어 놓고는 천천히 진혁에게 다가갔다.
진혁은 도망칠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벌벌떠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상혁을 노려보았다.
“금세 역귀들이 몰려와. 난 상관없어. 이빨이 있으니까.
근데 넌 없네? 그러니 괜히 시간 질질끌지 말고 말해.
네가 사람들 모아놓은 거주지가 어딘지.
말안하고 버틸 생각은 하지마. 내 성격 잘 알잖아?”
그럼에도 진혁은 흔들림이 없었다.
“형이 이러는거 보면 아저씨가 뭐라고 할까? 기껏 목숨바쳐 살려줬더니...”
그러자 이번엔 상혁이 화를냈다.
“아가리 닫아 이 개새끼야. 그사람 얘긴 꺼내지도마.
그리고 나도 너 살려줬어. 아니 전부다 살려줬지.
고맙단 소리 필요없으니까 어딘지나 불어.”
상혁은 검은 칼을 꺼내들었다.
진혁 역시 정글도를 꺼내들며 상혁과의 거리를 가늠했다.
“크아아아아악!”
멀찌감치서 들려오는 역귀 소리에 진혁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역귀가 온다면 상황은 훨씬 더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쓰러진 사람을 버리고 혼자 도망칠수는 없다.
뭣보다 혼자 몸을 빼려해도 상혁이라면 쉽게 보내주지 않을게 분명했다.
그 초조함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상혁은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안되겠지? 이대로 가만히만 있어도 넌 그냥 죽는거야.
난 보통 선택권을 주는 편이지만 넌 그럴 자격없어.
어차피 순순히 불 생각은 없을거고,
다리든 팔이든 하나쯤 쳐내서 끌고 갈테니 미리 인사나 해둬!”
상혁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칼을 휘둘렀다.
진혁은 미리 대비 했던 듯 그 자리에 꼼짝않고 버티며 휘두르는 칼을 침착하게 막아냈다.
가볍게 몇 번 칼을 부딪히고 물러선 상혁은 조금 의아해 하며 진혁의 모습을 살펴보고는
이내 미소지었다.
“왜 안피하고 거기서 막아대나 했는데 지킬 생각이었구만, 그 산송장.
그렇다면 얘기가 빨라지지.”
상혁은 웃으며 다시한번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쓰러진 남자 쪽이었다.
진혁은 다급히 상혁의 칼을 막아내었다.
“평소에도 못이기던 놈이 지키면서 어떻게 싸우려고 그러냐?”
또 한차례 신명나게 공격을 퍼붓던 상혁은 웃으며 물러섰다.
진혁은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힘들어도 일어나야되요. 내가 버티고 있을테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서 도망쳐요!”
진혁의 말에 남자는 어떻게든 일어나 비틀비틀 걸어갔다.
혹여나 상혁이 또 달려들까 싶어 견제하고 있었지만 상혁은 굳이 방해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그것보다는 이제 사방에서 들려오는 역귀 울음 소리가 더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이제 진짜 가야겠다. 더 몰려들면 피곤해지니까.”
상혁은 검은 칼을 집어넣고 붉은 칼을 꺼내며 묶여있던 소년에게 다가갔다.
진혁이 막으려 하자 상혁은 품속에서 총을 꺼내 겨누었다.
“역귀한테는 안통하지만 사람한테는 또 이것만한게 없지.”
총구는 잠시간 진혁의 머리쪽에 머물다가
방향을 바꾸어 도망치던 남자의 다리로 향했다.
탕!!!
총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도망치던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제 됐지? 병신마냥 거기서 그러지 날 따라와. 죽기 싫으면.”
그 순간 마트 안으로 역귀가 들이닥쳤다.
역귀는 먼저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던 남자를 발견하곤 괴성을 질러대었다.
진혁이 어떻게 대응하기도 전에 역귀가 남자를 집어들고는 정성스레 잡아찢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산채로 찢겨지는 남자의 비명과 역귀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끔찍한 소리를 내었다.
동시에 역귀는 찢어진 살점들을 몸에 가져다 붙였다.
처음 본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상혁 역시 기분나쁜 표정으로 그걸 잠시 지켜보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칼을 들어올렸다.
상혁의 붉은 칼은 다시한번 소년의 몸을 헤집었다.
소년역시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었다.
그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던 진혁은 화가나서 상혁에게 소리쳤다.
“이제 완전히 미친놈이 됐네, 형. 형은 죄책감도 없어?
난 아직도 꿈에 예지가 나와. 하영이 안고 우는 예지가!!”
상혁은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그때, 남자를 다 떼어붙인 역귀가 진혁에게 눈을 돌렸다.
역귀는 다시한번 긴 비명소리를 내뱉고는 진혁에게 돌진했다.
다급히 몸을 돌린 진혁이 도망치려하자
상혁은 재빨리 움직여 역귀와 진혁 사이를 막아섰다.
그리곤 단 두 번의 칼질 만으로 역귀의 상반신을 갈라놓았다.
별거아니라는 듯 역귀의 체액을 털어내며 도망치려던 진혁에게 다시 총을 겨눈 상혁이 말했다.
“널 죽게 두지는 않아. 아직 나한테 해줄말이 있으니까.
그러니 도망칠 생각 마.
어설픈 짓거릴 했다간 대가리에 구멍이 뚫릴테니 까불지 말고 무기 버려.”
진혁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소년이 묶여있던 곳으로 돌아온 상혁은 묶어두었던 끈을 풀어 다시 허리에 메었다.
“앞으로 몇 마리가 더 올지 몰라. 조금만 더 늦으면 진짜 역귀소굴이 될테니 고집 그만부리고 칼 버려.”
진혁은 자세를 풀고 칼을 든 손을 늘어뜨린 채 상혁에게 다가갔다.
“칼부터 버려야지 뭐하는거야.”
그 순간 진혁은 이를 악물고 상혁에게 뛰어들었다.
“이 미친 새끼야!”
상혁은 다급히 외쳤지만,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했다.
아직 들을 이야기가 남았으니 진짜 죽이지는 못할거라는 진혁의 계산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진혁은 상혁의 권총을 칼로 쳐서 멀리 날려버리고는 품 안으로 파고 들었다.
하지만 곧, 왼쪽 어깨에 불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바닥에 널부러져야 했다.
“이 손에 든건 장식이냐? 이빨이면 뭐 사람한텐 안들어?
멍청한 새끼 아니야 이거. 안되겠다. 진짜 양팔 다 쳐내고 개처럼 끌고가야지.”
“크아아아아악!!!!”
“으으으악!!!”
이번엔 두 마리의 역귀가 모습들 드러냈다.
처음 녀석보다는 더 컸지만, 상혁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혁이 칼을 들어올린 순간 불안감이 찾아왔다.
“잠깐, 이빨에 다른사람 피가 섞이면 어떻게 되지?”
칼에 진혁에 피가 묻어있을테니 이게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혹시 모르니 다시 이빨을 만들기 위해 소년을 찾던 상혁은 허리춤에 묶어둔 끈이 잘려나간걸 발견했다.
다급히 고개를 돌렸을 때, 진혁은 어느새 일어나 소년을 들쳐업고는 밖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이런 젠장!”
소리치는 상혁에게 역귀 두 마리가 달라붙었다.
“너희 우리 대장 봤지? 위대한 분이야.
난 보자마자 바로 알았다니까?
대장님이 이제 괴물새끼들을 몽땅 몰아내고 나라를 다시 세울거야.
아니, 옛날에 그 쓰레기같은거 말고.
진짜 옳게된 나라를 세우실 거라고.
난 그분 오른팔인거지.
가장 신뢰받고 믿음직한 부하.
너희는 그러니까.... 그 나라의 주춧돌이 되는거야.
그러니까 영광으로 알아 이 새끼들아.”
진수는 묶어놓은 아이들과 여자에게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마트를 빠져나오고 나자, 상혁은 말했다.
‘이 녀석들 데리고 먼저 돌아가. 데리고 다니면 번거롭기만 하니.
그놈이 올거야. 원체 참견하기 좋아하는 녀석이니 확실해.
금방 데리고 갈꺼니까 준비하고있어.’
그랬기에 홀로 이들을 끌고 상혁이 미리 일러둔 은신처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상혁이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대장..님...? 다치셨어요?”
상혁은 피범벅이 된 채, 지친 모습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냅둬. 내 피 아니니까. 시건방진 새끼... 날 엿먹여?”
상혁은 욕설을 내뱉으며 짐을 내려놓고는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다행히 이빨은 피가 섞였어도 어느정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날이 무뎌진 느낌이랄까 그전처럼 쉽게 베이지 않아 위험한 상황이 많았다.
게다가 소년이 사라진 상황에서 여유있게 싸울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칼에 역귀 체액이 묻으면 날이 더러워지며 점차 힘을 잃는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다시 아이를 찔러야 할테지만 진혁이 소년을 데려가는 바람에
최대한 아껴야 했다.
사방에서 역귀가 몰려드는 최악의 상황에서 처절하게 싸우느라 이 꼴인 것이다.
아무래도 이빨의 단점을 서둘러 보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놈이 만든 거주지 찾는건 우선 뒤로 미뤄야겠어.
일단 이빨을 효과적으로 잘 쓸 수 있는 방법부터 찾아야지.
고향집을 좀 뒤져보면 뭐가 나올거야.
그전에 들를데가 있으니 바로 준비해. 복수는 하고 갈테니까.”
상혁은 그렇게 말하며 진혁이 쓰러진 남자의 의식을 붙잡기 위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안전한곳이 있어요.
여기서 조금만 가면 역귀가 못오는 당집이 있으니까 거기까지만 가면되요.
거기 도와줄 사람이 있으니까 걱정마요.’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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