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여력이 되시는분은 여기 좀 도와주세요!"
팔이 부러진 사람과, 머리와 몸이 분리된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잔해들.
평화롭던 작은 마을에 몇차례 굉음이 들리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부숴져버렸다.
반투명한 구조물안에서 살아남은 나는 부숴진 건물 잔해들 사이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존여부만 겨우 확인하는게 최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던 어느날.
하늘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몇차례 울려퍼지더니 견고하고 영원할 줄 알았던 우리 삶의 터전이
마치,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리듯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항상 그 자리에서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던 보안관은 충격의 여파로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구석에 나뒹굴고 있었고,
잔해에 깔려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 그들에게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건 측은하게 쳐다보는 것이 전부였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나요?'
내가 기억을 잃고 이 마을의 구성원이 되기 전, 태초에 이 마을이 처음 세워질때 함께 있었다는 한 노인에게 물었다.
그 노인은 잔해들 사이에서 무릎을 꿇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사방에서 들려오던 신음소리가 차츰 잦아드는 무렵에, 노인이 입을 열었다.
"이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일세. 자네는 여기가 처음인가?"
내 귀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친 노인의 헛소리라고 단정짓고 무시하기엔 그간 그들이 나에게 보여줬던 성의과 배려가 무색해진다.
기억을 잃고 이 마을의 일원이 된 그날.
가족도, 직업도 없던 나에게 그들은 선뜻 내가 살아갈 공간을 내어주었고 함께 지낼 가족이 되어주었다.
그랬던 그들이 세상이 무너지는데 이토록 평온할 수 있을까
내가 온 이후로도 몇명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었다.
처음엔 이곳이 사람이 죽으면 오게되는 사후세계나 그 중간쯤 되는 그런 곳인줄알았다.
그러나 똑같이 그들과 함께 느끼고, 공감하고 숨쉬며 살아왔는데,
이 모든 것이 한 줌 먼지로 돌아간 것이다.
"어르신, 도무지 무슨 소린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세상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간다구요."
점점 감각이 무뎌지는 팔과 다리를 열심히 휘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우리가 발을 딛는 모든 것은 만들어지고 또 다시 부서지고,"
"다시 하나씩 쌓아 다시 만들고의 반복일세."
비명과 패닉이 가득한 이곳에서 노인은 말도 안되는 소리만 하고 있고,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며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무언가 강력한 힘이 이 공간을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소명을 다한 사람들과 잔해들은 하나, 둘씩 하늘로 올라가 빛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주위의 모든 것이 하늘로 사라질 때 마다, 난 제발 다음이 내 차례가 아니길 간절히 기도했다.
잔해들로 가득했던 이곳은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며 황량해지기 시작했고,
머리위에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내 온 몸을 감싸는 온기와 함께 난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신이 내 몸을 감싸 들어올리시듯이, 난 썩 나쁘지 않은 느낌으로 하늘의 빛에 닿아감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빠 고마워요!"
오늘도 13번째 생일은 맞은 영수의 입가에 미소가 완연했다.
자기 몸보다 큰 크기의 선물상자를 보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뜯어볼래?"
"네!"
이번 선물은 악마의 성이다.
작년에 미국 서부 개척시대 카우보이 블록 선물을 받은 이후, 두번째 장난감이다.
표지의 거대한 성과 어두운 밤 하늘의 박쥐, 그리고 성을 지키는 악마와 그 악마와 맞서는 용사까지.
영수의 머리속에는 이미 세상을 구하기 위한 용사와 악마의 전투가 진행중이다.
"아빠! 나 이번에는 악마와 맞서 싸우는 카우보이 세상을 만들꺼에요!"
작년부터 지금까지 영수의 방을 지키던 블록을 허물고, 다시 처음부터 조립할 생각에 영수는 케잌을 먹는 둥 마는 둥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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