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할 부분이 많습니다!ㅠㅠ 오류인 부분은 결말까지 쓰고나서 고칠 예정이니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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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아, 너는 여자친구는 안 사귀니?”
“필요 없어요.”
“너 혹시 남자 좋아하니?”
“어머니.”
“그 일이 힘들었다는 건 알아. 하지만 평생 그러고 살거야? 그렇게 외롭게?”
“어머니는 항상 제가 의사가 되길 원하셨잖아요. 우리 아들이 의사가 되면 소원이 없겠다고. 그 소원 이뤄드렸잖아요. 원하시는대로 되드렸는데, 왜 또 다른 걸 바라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나는 그저 네가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래서.....!”
“그 말씀을 성적 떨어졌다고 알몸으로 집 밖으로 쫓아냈을 때 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요.”
“저쪽 상가 몇 개 운영하는 집 딸이 참하더라. 만나봐.”
“싫어요. 게이 될게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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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많이 죽고도 죽었다. 그 동안 규칙을 알아내려고 해봤는데, 많이는 아니지만 충분히 알아냈다.
1.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면 일주일까지 가지 않아도 더 빨리 돌아올 수 있다.
2. 내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면 내 살인자가 와서 열 받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그래도 역시 죽는 건 무섭다.
뭐, 왜, 뭐.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낸거지, 안 그래?
불리할 땐 여차하면 죽음으로 도망가면 된다. 그러면 이렇게 다시 10월 5일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따뜻한 볕 속에 눈을 뜨고, 엄마가 해주는 팬케이크와 핫초코를 먹으면서 이번 주에는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한다.
이제 곧 엄마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 시간이다.
지난 주에 선생님이랑 상담해봤는데, 아무래도 탐정은 좀 그렇지 않니? 라는, 이제는 외워버린 그 말을.
“미래야.”
그런데, 이번만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엄마는 널 사랑해, 미래야.”
나를 답답하도록 끌어안았다. 왜냐고 물어도 고개만 저었다. 그저 사랑한다는 말만 했다.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내 시선이 냉장고로 향한다. 냉장고에는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가 있다. 이 이상한 세계에 오게 된 원인일지도 모르는 게.
그냥 열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은 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마주 엄마를 껴안으며 말했다.
“나도 엄마 사랑해.”
느리막하게 나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건너편에서 지한이도 나왔다. 왜인지 화난 것처럼 보였다.
“지한아, 화났어?”
“아니.”
“어머님이 또 너 성적으로 뭐라고 하신거야?”
“안 났다니까.”
거짓말. 지한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본 시간이 얼마인데, 내가 모를거라고 생각한 건가? 지한이는 말은 솔직하지 않더라도 행동으로 솔직하게 드러난다.
기쁘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슬프면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웃었다. 화가 나면 티내지 않으려다 숨을 거칠게 쉬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할 때면 입술을 깨물어댔다.
지한이는 화나면서 슬퍼하고, 그걸 나한테 거짓말하고 있었다.
“나, 네가 날 좋아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좋은 친구로라도 남고 싶어.”
“그러면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짓이나 하지 마.”
“뭐?”
“왜인지 모르지 않을텐데.”
얼굴이 성큼 가까워졌다. 지한이는 이를 뿌득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나를 노려다보던 눈이 슬쩍 내 팔목을 향하며, 거 보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때맞춰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지만 지한이는 타지 않고 계단으로 가버렸다.
“왜.... 지한이가 그걸 알고 있지?”
방금 전에 쳐다보던 팔목, 분명 내가 자살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했다. 지한이는 절대 알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한 번도 지한이 앞에서 죽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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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무슨 고민 있어?”
“아니.......”
사실 털어놓고 싶다. 나는 이 이상한 세계에서 이미 몇 십번이나 죽었다고, 외롭고 괴로우니 제발 여기서 꺼내달라고. 좋아하는 남자애가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그냥 뭐, 평소처럼 동생이 아파서 그래.”
말할 수 있을리 없다. 그랬다간 이 애들도 이 세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마네킹 인간이 되어서 돌아올 수 없으면 어떻게 하지.
입을 다물고 침묵한다. 그러자 몇 번인가 말을 걸어오던 애들도 그래, 하고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편하게 멍 때리면서 머리만 굴렸다. 지한이는 어떻게 알까, 이야기 나눠보고 싶은데 피하겠지. 생각을 하다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미래, 뭐해. 밥 먹어야지.”
“미안, 오늘 좀 아파서. 너희들끼리 먹어.”
“최미래. 이야기 좀 해.”
혜수가 안경을 들어올렸지만,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생각해야할 게 산더미인데, 내가 죽는 걸 막을 수도 없고 기껏해야 할 수 있는게 죽음으로 도망가는 것 밖에 없는데 남이 화내는 것 따위 무섭지도 않다.
“무슨 이야기?”
그래, 화내봐라. 무섭지도 않아. 어차피 혜수도 맨날 날카롭게 말해놓고 후회하니까, 그것만 넘어가면 되지.
“오늘 점심 코다리조림 나오니까, 치킨 먹으러 갈까?”
혜수는 화내지 않고 부드럽게 웃었다.
“엥? 하지만 우리가 항상 먹던 건 떡볶이잖아?”
또 기존 루프에서는 일어나지 않던 일이 일어난다. 무섭다. 도망치고만 싶다.
“너 떡볶이 별로 안 좋아하잖아. 우리가 좋아하는거라 맞춰준거였지. 아냐?”
“아냐, 나도 떡볶이 좋아하는데......”
“바보야, 너 동생피셜 너 최애는 치킨이라는 거 다 들었거든. 뻥카 그만치고 얌전히 따라오셈.”
엥?
에엥?
에에에에에에에에엥?????????????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우리는 사이좋게 치킨집에 앉아있었다. 혜수는 씨익 웃으면서 날개를 내밀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다.
으에에에에에에에엥????????????????
뭔일이지.
이해가 안된다.
“너 날개 좋아한다며. 이것도 너 동생한테 듣고서 처음 알았다.”
“내 동생을 봤어?”
미주는 항상 아프다. 미주 인생의 절반 이상은 병원에서였다. 학교조차 제대로 다닌 적이 없다. 그리고 난 친구들에게 동생을 보여준 적이 없다.
“어디서 봤는지 궁금해?”
“응.”
“안알랴줌.”
“뭐야!”
“너는 우리한테 솔직하지 않았으면서 메롱이다, 이년아. 이제 솔직하게 말해보시지, 뭐가 문제야?”
“말해줄 수 없어.”
혜수가 다시 안경을 들어올렸다. 긴장해서 몸을 움츠렸다. 분명 한 번은 참았지만, 이번엔 화낼거다, 분명.
“그러면 말해줄 때까지 기다릴게.”
혜수가 손을 들어 내 머리 위에 얹었다. 그리고 마구 흐트러놓았다. 멍하니 보고 있으니까, 혜수가 다시 부드럽게 웃었다. 기분이 이상하다. 좋기도 한데, 잘못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혜수가 이렇게 키가 컸던가?
“혜수야.”
“으응? 말해줄 기분이 들었어?”
입을 떼려다가 내 현실을 떠올렸다. 궁색하게 사과를 내놓는다.
“미안.”
“야, 니가 왜 미안해 함. 정 미안하면 치킨 너가 사든가.”
“알았어.....”
지갑을 꺼내려는 순간 희고 작은 손이 막아선다. 지연이가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하! 그럴 줄 알고 미리 계산했다!”
고양이처럼 웃으면서 유연하게 팔짱을 껴온다. 참을 수 없는 죄책감이 발을 타고 스믈스믈 올라온다. 그 죄책감은 배를 지나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른다.
“혜수야, 지연아. 나 말이야. 너희한테 하지 못한 말이 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나중에 꼭 말해줄게. 말해줄테니까, 그러니까.......”
“아, 기다린대도?”
나는 이 세계가 좋다. 내가 반복적으로 죽어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 내가 이 세계에 갇힌 이유를 대략적으로 알고 있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이다.
“히잉....”
“어, 미래 눈에서 즙짠다, 즙짜!”
“아니거든?”
“에, 울다가 웃으면 똥꼬에서 털 존나 나는뎅.”
“씨잉.”
“우짜냐, 똥꼬 수북이 되겠네.”
지연이가 히히 웃으며 나를 껴안았다. 놀림 당해도, 그 안에 들어있는 게 애정이란 것을 안다.
“그래도 우리가 사랑해줄게.”
나를 껴안은 지연이로부터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와서 나도 모르게 울음이 쏟아져나왔다. 한참 후에야 진정할 수 있었다.
“나 말이야. 동생이랑 이야기하고 싶어. 해야할 말이 있었는데, 전혀 하지 못했어.”
“동생한테?”
“응.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런데, 내가 못나서 마주보고 싶지 않았어.”
“.....응원할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꼭 말해줘야 해?”
그래, 대화하는 방법은 크게 어렵지 않다. 뭐든지 진심으로 부딪히는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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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등교하는 아침이면 지한이는 나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다.
“오늘은 나 안 죽여도 돼. 나 결심했거든. 이 세계에서 빠져나가기로.”
“뭐?”
“너잖아. 날 죽여온 거.”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른 척 하지 마. 유일하게 내가 스스로 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은 게 너야. 넌 언제나 죽고 싶다고 말했잖아. 나는 매번 10월 5일로 돌아오지만, 내가 돌아오고 나서 남아있을 네가 날 따라서 죽을까봐 무서웠어. 그래서 네 앞에서는 절대로 안 죽었어. 그런데 넌 내가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
나를 죽인 살인자는 나와 같은 일주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 살인자 역시 내가 한 행동을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에 내가 살인자 앞에서 한 행동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보여주지 않은 내 행동을 안다면 그 사람이 내 살인자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나 외의 모든 사람들이 짜고 칠 가능성. 하지만 그 경우에도 지한이와 대화하는 수 밖에 없다. 내 살인자가 지한이와 소통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 그러면 더 숨길 필요는 없겠네.”
모른 척 눈을 동그랗게 뜨던 지한이가 표정을 싹 지우고 킬킬 웃었다. 믿고 싶지 않게도, 정말 이 세계의 지한이가 내 살인자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비뚜름하게 웃으면서 지한이가 내게 다가왔다.
“나..... 내가 왜 이 세계에 갇힌지 알아.”
처음 이 세계에 갇혔다는 것을 깨달은 것 은 냉장고를 열었을 때였다. 냉장고에는 있을리 없는 생크림 케이크가 들어있었다. 그 생크림 케이크는 있을 수 없는, 끔찍한 가짜였고 거짓말이었다. 그렇기에 반복해왔던 모든 죽음을 떠올리고 이 세계가 가짜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줬다.
“10월 8일은 내 생일이었어. 미주 상태도 나아졌고 내 생일파티도 열어준다길래 기대했지. 8년만에 맞는 생일이었거든. 그 동안은 내 생일 때 근처로 미주가 아파서 챙겨본 적 없었는데, 오랜만에 미주 상태가 괜찮았거든.”
“아, 그래?”
“나는 생크림 케이크가 먹고 싶었어. 다른 애들 생일파티에 놀러갈 때면, 생일 모자 쓰고 축하 받는 그게 너무 부러웠었거든. 지한이 네가 카스테라 사와서 축하해줄 때 기뻤지만, 엄마 아빠한테도 축하받고 싶었어.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우린 널 사랑한다고, 그 소리 하나가 너무 듣고 싶었어. 그런데 힘들어하는 엄마 아빠한테 티도 낼 수가 없는거야. 그런데 생일파티 해준다니까, 너무 좋았어.”
“........”
“정말 너무 기뻐서 엄마한테도 오랜만에 애처럼 애교부리면서 생크림 케이크 사달라고, 너무 먹고 싶다고 징징거렸어. 엄마는 어색해하면서도 그래, 하더라고. 너무너무 좋아서 하루 종일 학교에서 자랑도 했어. 혜수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
“그런데 집에 오니까, 내 생크림 케이크는 없더라고. 당근 케이크가 있더라. 내 생일인데, 아무리 그래도 내 생일인데.”
지한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다. 한심해보이는거. 구차하고 구질구질해 보이는 거.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집을 나갔다고?”
“고작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나 말이야, 미주가 먹고 싶어한다고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집에 와도 엄마 아빠 하나도 없고, 맨날 그렇게 살았어! 알잖아. 그래도 미주가 밉진 않았어. 누구보다 아픈 건 걔니까. 제일 낫고 싶은 것도 걔라는 거 알아. 그런데 내 생일인데도 미주도 먹어야 된다고 내가 싫어하는 당근 케이크 사온 걸 보니까 그냥 눈물이 차오르는거야. 그래도 내 생일인데, 그 날만은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못 할 말을 뱉어버렸다. 너 같은 거 축하는 필요 없다고. 평생 엄마 아빠랑 셋이서만 행복하게 살라고. 나는 이 가족인 적 없다고.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어. 뽀실이가 죽던 날에, 미주가 무지 아팠거든. 그래서 엄마가 뽀실이를 신경 못 써줬어. 나, 그러면 안되는 거 알면서도 미주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고 했어. 뽀실이도 가족이라고, 가지 말라고 땡깡을 부렸어. 그러고 뽀실이 묻어주러 갔다가 비 맞아서 크게 아팠잖아. 그제서야 미주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금은 알겠더라. 그 날 이후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미주가 아픈 것은 절대 미주의 잘못이 아니다. 엄마 아빠가 바쁜 것도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런 말을 내뱉은 건 내 잘못이다.
“그러니까...... 이 지옥에 갇힌 건 전부 내가......내가 미주한테 그런 못된 말을 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전부 바로 잡을거야. 미주한테 찾아가서 못된 말 해서 미안하다고 할거야. 네가 축하해주면 기쁘다고 할거야.”
지한이의 입술이 실룩인다.
“나.... 수능도 보고 싶고 젤리소다랑 츄러스 먹으면서 롤러코스터도 타고 싶어. 대학도 가보고, 연애도 할거고. 그러니까 네가 내 살인자라도 이 일주일 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같이 찾아볼거야. 그러니까......”
“하, 하핫!”
갑자기 지한이에게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별안간 튀어나온 웃음소리에 당황스러웠다. 나 웃긴 이야기 한 적 없는데. 지한이의 실룩이는 입술에서는 웃음이 새어나오다가 아예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핫! 진짜 무슨 소리를 하나 했다. 멍청하긴.”
그러다가 갑자기 정색했다.
“그건 절대 미래 잘못이 아니야. 잘못이 있다면 미래를 한 번도 돌아봐주지 않은 무심한 가족 잘못이었지. 그게 왜 잘못이야. 씨발. 미래는 그냥 사랑 받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늘 참아오던 애가 참고 참다가 투정 부린 것 뿐이었는데. 무엇보다 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내 추리에 틀린 게 있어?”
“너, 이 세계의 내가 미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전혀 아니야. 미래가 날 좋아했듯 나에게도 미래밖에 없었어.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어딜 가도, 뭘 해도, 뭘 먹어도 미래랑 같이 해야지, 미래가 이거 좋아하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왜......”
왜 내 마음을 짓밟았어? 왜 나에게 차갑게 굴었어? 왜 나를 계속 죽여온거야? 목구멍에 톡 걸려 고정된 것처럼 입이 떼지지 않는다. 입 밖으로 꺼내 기정사실로 만드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당연한 거 아니야? 넌 최미래가 아니니까! 내가 사랑했던 그 애인 적은 한 번도 그런 적 없으니까! 넌 그저......그저...... 최미래의 흔적일 뿐이야!”
화를 내던 말투는 점점 자조적으로 가라앉았다. 무슨 말을 하는거지, 얘가? 지한이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꼬나문다. 손으로 감싸며 담뱃불을 붙인다.
“10년.”
깊게 빨아들이며 담배를 태운다. 담배는 불길에 갉아먹혀 길게 담뱃재를 만들었다. 지한이는 입에서 담배연기를 뱉어내고 나에게 다가온다. 킬킬대는 지한이에게서부터 담배냄새가 훅 끼쳐온다.
“10년이야.”
어느 새 지한이는 지한이가 아닌 상태였다. 키도 더 커졌고, 좀 더 늙은 것 같았고, 눈도 날카로워졌다. 날카로워진 눈 아래에는 다크서클을 드리운채로, 눈이 발개지도록 나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있으니, 그대로 숨을 빨아들여 담배를 다 태우고서는 마저 입을 열었다.
“벌써 10년이 지났어, 최미래가 죽은지.”
그리고 가장 끔찍한 거짓말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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