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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밝은 탓에 숲길을 달려나가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길을 알리는 없었지만 간절한 마음 하나로 어두운 숲속을 무작정 달리는 중이었다.
이러다간 진짜 죽겠다 싶은 순간까지 다리를 멈추지 않았지만
마침내 한계가 왔는지 힘이 탁 풀리는 바람에 그 자리에 멈춰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숨소리는 거칠었고, 조여오는 심장의 통증때문에 한손은 가슴을 움켜진 채였다.
잠시 숨만 고르고 다시 움직이려 해봐도 현기증 때문인지 한발짝 내딛는 대신 그대로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커다란 달이 떠있는 하늘은 아름다웠지만 여유있게 별을 감상할 때가 아니니 눈을 감고 집중했다.
“자. 진정하고.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뭐하는거지? 지금 뭘해야 되지?”
다행히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었다.
“도움. 그래. 어디든 가서 누구한테든 도와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나 자신에게 설명하듯 열심히 상황을 정리했다.
“자 생각해봐. 여자친구랑 산부인과 다녀오는 길이었어.
오는길에 말싸움을 했지. 그래. 임신 때문에.
난 내 가족, 딸하나 키우는것도 벅차. 애하나 더키우는건 불가능해.
그래서 지우자고 했고. 그녀는 화를 냈어.
나도 짜증이 나서 속도를 너무 내는 바람에 커브길에서...
맞아. 굴러떨어졌어. 가드레일 들이받았잖아.
눈떠보니까 여자친구는 피흘리고 있었고. 난 빠져나왔어.
날 보면서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그래서 난 사람들 부르려고 했는데 핸드폰은 어디로 날아갔는지 안보이고...”
헐떡이며 그렇게 미친사람 처럼 떠들어 대다 보니 슬슬 호흡이 돌아왔다.
“그래서 일단 어떻게든 도움 청하려고... 그래. 빨리 가야....”
하지만 아까의 기세와는 달리 다시 일어나지도 달려나가지도 않았다.
뜨거워졌던 몸이 식어감과 동시에 머리속도 차갑게 식어갔다.
“아냐... 안돼....”
그렇게 중얼거리곤 두서없이 마구 떠오르는 생각들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이런말을 하면 안된다는건 잘 알고 있지만 사실 그녀를 살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오히려 일이 지금보다 훨씬 더 복잡해 질 뿐.
감정을 떠나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아이를 하나 더 키울만한 능력은 내게 전혀 없다.
그러면 결국 남는건 가정파탄이라는 처절한 결과 뿐일게 분명했다.
천천히 일어나 앉은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그 아름다운 밤하늘을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밝고 둥근달이었다.
그리고 딸애가 좋아하는 별들.
그리곤 생각해냈다. 이건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래. 내 가정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아무래도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난 몸을 돌려 내가 뛰어온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이번엔 최대한 늦장을 부리는 중이었다.
내가 마주할 것이 시체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할 테니까.
다시 원래 장소로 돌아오는데는 올때보다 몇배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 덕에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지만, 사고 현장은 그다지 달라진게 없었다.
한참을 굴러 떨어져 옆구리에 나무를 들이받은 차.
찌그러진 조수석 사이로 그녀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눈을 감은 채 움직임이 없는 것을 보고 기대감을 품는 자신에게 약간의 섬뜩함을 느꼈지만
이미 결정한 이상 독하게 마음 먹기로 했다.
모든건 다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딸을 위해서다.
가까이 다가가 피로 얼룩진 그녀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차가웠지만 시체가 주는 그런 차가움은 아니었다.
그리고 선명히 뛰는 맥박도 느낄 수 있었다.
아쉬워 하는 자신에게 다시 한번 섬뜩함을 느끼고는 빨리 움직이기로 했다.
재빨리 차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안전벨트를 풀고 구겨진 차체에서 꺼내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듯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뱉었지만 눈을 뜨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그녀를 바닥에 눕히곤 숨을 골랐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기다림이 고통스러울지언정 죄책감은 덜할테니.
하지만 내심 마음이 불안했다.
누군가 망가진 가드레일을 보고 경찰에 신고할지 모른다.
만약 누구든 이 상황을 본다면 그녀는 살아날 것이고 우리가족을 지킬 마지막 기회는 그대로 날아가버릴 것이다.
그렇게 둘수는 없었다.
난 다시한번 각오를 다지고는 차 트렁크에서 야전삽을 꺼내었다.
“처음부터 넌 여기 없었던 거야. 난 그냥 혼자 사고가 난거야.”
마음을 굳게 먹으려 독한 말을 내뱉고는 그녀를 질질 끌고 숲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충분하다 싶을 만큼 끌고 들어와서는 그녀 옆에 구덩이를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완벽하고 깊게 묻을 생각은 없다.
그저 며칠동안, 사고 처리가 다 끝날 때까지만 눈가림 하면 된다.
제법 고생했지만 오래지 않아 사람 하나 간신히 넣을 만한 구덩이 하나가 생겨났다.
이제 가장 어려운 일이 남았다.
손으로 양 볼을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두세번 후려치며 각오를 다지고는 그녀의 몸뚱이를 구덩이 속에 굴려 넣었다.
길이가 충분하지 않은 탓에 거의 구겨넣듯 억지로 팔다리를 접어 넣어야 했다.
떨리는 손으로 야전삽을 집어들고는 빠르게 구덩이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공포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죄책감 때문에 정신을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듯 난 거의 광적으로 삽을 놀려대었다.
그덕에 간간히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살려달라는 소리, 고통에찬 신음 소리.
그리고 원망어린 목소리와 저주섞인 욕설들을 들으면서도 견딜 수 있었다.
다만 구덩이가 다 메워지고 땅을 잘 다져서 도저히 목소리가 새어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음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쉬지 않고 내 머릿속에 울려대었다.
“이 방법 밖에 없어. 이게 마지막 기회야. 다 가족을 위해서야. 그치?
우리가족이 살려면 이 방법 밖에 없어.”
나 자신에게 확인시켜주듯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돌아서서 사고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길지 않은 길을 되돌아오는동안
머릿속에 울려대는 그녀의 목소리에 몇 번이고 머리를 후려쳐야 했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사박거리는 소리가 구덩이를 파헤치고 빠져나온 그녀가
내뒤를 따라오는 발소리처럼 들리는 바람에 기겁을 하며 뒤돌아봐야 했지만
어떻게든 돌아올 수 있었다.
“됐다.”
이제 급한 일은 끝났다.
남은건 어디서든 도움을 청해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죽는줄 알았어요. 동승자요? 아뇨 없어요. 저 혼자 뿐입니다.
저 혹시 전화좀 빌릴 수 있을까요? 가족들에게 전화하려구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사고 처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해진다.
좀 더 완벽한 처리를 위해 흙투성이 셔츠를 벗어서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에 묻은 피를 되는대로 닦아 내었다.
이 역시 어딘가 적당히 묻어버리면 그녀가 있었다는 마지막 증거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마음이 놓이니 뒤늦게 통증이 찾아왔다.
무리도 아니었다 사고로 다친 상황에서 격하게 움직였으니.
이런 상태로 이 숲길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차안에서 해가 뜰때까지 기다리자.
그전에 누군가 나를 발견하면 더 좋고.
난 절뚝거리며 차에 올라타서는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잠들 생각은 없었는데 몸상태 때문에 기절하듯 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통증 때문에 다시 깬 것 까지는 좋은데 뭔가 이상했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뭔가가 천천히 이쪽으로 오고 있다.
도움을 주려는 사람일까?
아니 그렇다면 저런 소리를 내진 않을게 분명했다.
이건 분명 무언가가 낙엽위를 기어오는 소리다.
그리고 이정도로 크게 들린다는건 이미 코앞까지 도착했단 뜻이었다.
난 이를 악물고는 옆에 놓았던 야삽을 양손으로 집어들었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톡...... 톡........ 톡........
차를 두드리는 그 소리에 비명이 터져나오는걸 간신히 틀어막고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밖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차라리 무언가 다른 끔찍한 것이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기다릴까?
그냥 무시하고 기다리다 보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 어떻게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온걸까?
설마 아이때문에?
아이 때문에 맘편히 죽지 못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기어나온걸까?
머릿속이 복잡해져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곧 선택의 여지는 없어졌다.
톡. 톡. 톡.
“살려주세요...제발... 내가.. 내가 잘못했어...”
머릿속에서 간신이 쫒아냈던 그녀의 목소리가 귀속으로 파고들어온 그 순간
난 공포심과 죄책감과 분노가 한번에 몰아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씨발!!”
거칠게 내뱉고는 그대로 차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금세 바닥에서 덜덜 떨고 있는 흙투성이의 여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정말 죽지 않고 그 구덩이에서 기어나온것이다.
섬뜩한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보단 분노가 더 컸다.
난 미친것처럼 괴성을 지르며 머리라 여겨지는 곳에 있는 힘껏 야삽을 휘둘렀다.
“씨발! 뒤져! 뒤지라고!
독한년! 어딜 남의집 돈을 뜯어 갈라고.
뭐 양육비? 아내한테 들키기 싫으면 돈을 내놓으라고?
어디서 그따위 협박을 해?
꽃뱀같은 년이! 애초에 돈이 목적이었지?
너같은 년 만나는게 아니었는데!
그냥 죽어! 죽어 이 씨발년아!”
모든 울분을 담아 휘두른 덕에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내 눈앞에는 처참하리 만큼 망가진 시체가 쓰러져있었다.
피와 흙과 낙엽이 뒤엉켜 엉망이된 머리칼은 그녀가 누구인지 다시한면 되새기게 해주었다.
지금은 끔찍한 모습이지만 난 이 머리칼을 참 좋아했다.
관리가 귀찮다는 이유로 단발을 고수하는 아내 대신
그녀의 긴 머릿결을 쓰다듬고 향기를 맡으며 부족한 애정을 채워나갔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덜컥 임신 사실을 밝히고는 양육비 얘기를 꺼내지만 않았어도 제법 좋은 연인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녀를 사랑하고 또 아내와 딸을 사랑하면서 그렇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씁쓸한 마음에 심호흡을 두어번 크게 내지른뒤 아까보다 거침없는 몸놀림으로 시체를 다시 구덩이로 끌고가기 시작했다.
이번엔 좀 더 완벽하게 묻어 넣고 다시 한번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었다.
내 사랑하는 아내와 더욱더 사랑하는 내 딸.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
By. neptun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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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1 [1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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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라디오하조 |
하....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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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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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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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헌 |
작품 기다리고 있었슴다ㅠ 몰입감 긴장감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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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4 |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게시물에 상관없는 답글이나 추천유도성 답글을 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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