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올린다구 해놓고 이제서야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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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걔 기억나?

- 걔?

- 그 있냐, 갑자기 실종됐었던 걔. 이름은 잘 기억 안 나는데, 미리였나? 미.... 미 뭐였는데. 잘 기억 안나네.

- 미래? 최미래 말하는거야?

- 응응! 그 이름이었어. 최미래였지. 암튼 최미래 말이야. 걔 일로 우리 고 3때쯤에 시끄러웠잖아. 경찰도 오고.....

- 맞아. 다들 쉬쉬하느라 바빴잖아. 다른 반 애들 영향 안 가게 하려고 입단속 했었는데 소용 없었지. 반나절만에 퍼지지 않았나?

- 그런데 6개월쯤 지났을 때 걔 책상 위에 국화 놓여있었던 거 알아?

- 그거 내가 치웠잖아. 내가 당번이었어서. 진짜 기분 나빴어. 조롱하는 것도 아니고 뭐야, 다시 생각해도 기분 나빠. 그런데 그건 왜? 집 돌아왔대?

- 아니, 그건 아니고. 얼마 전에 걔네 가족 소식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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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죽고 죽는 루프했냐고 묻는다면, 루프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의외로 얼마 되지 않았다. 매번 루프가 시작될 때마다, 일어났던 일들을 잊고 돌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39번째 루프는 달랐다.

39번째 루프의 시작점에서 엄마는 나를 위해 팬케이크와 핫초코를 만들어줬다. 언제나처럼.

“냉장고에 케이크도 있으니 먹어.”

처음엔 별 생각 없었다. 내 생일이 되기까지 일주일도 더 남았지만 왜 케이크가 벌써 냉장고에 들어있는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모든 루프에서 그랬듯이.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봤을 때, 냉장고 속에는 흰색 케이크가 덩그러니 있었다. 흰 색 케이크는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어보였다. 그저 아주 맛있어보일 뿐이었다. 흰 생크림은 부드럽게 발려있었고, 아기자기하게 스프링클로 장식되어 있었다. 앙증맞게 체리를 껴안고 있는 설탕과자까지, 너무도 완벽했다.

기이할 정도로.

그래서 깨달았다. 그 완벽해 보이는 케이크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걸, 이런 완벽한 케이크가 있는 이 세상은 전부 거짓말이고 기만에 불과하다는 걸. 설명은 할 수 없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이건 전부 끔찍한 거짓말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내 세상이 뒤집히며 잊고 있던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첫 번째의 나는 목이 졸려 죽었다.
두 번째의 나는 옥상으로 도망치다가 떨어져서 죽었다.
세 번째의 나는 호수에 잠겨 죽었다.
다섯 번째의 나는 칼에 찔려 죽었다.
여섯 번째의 나는 독극물을 먹어 피를 토하다가 죽었다.
일곱 번째의 나는 학교 냉장고에 갇혀 죽었다.
여덟 번째의 나는 머리를 얻어맞아 죽었다.
아홉 번째의 나는 불타는 창고에 나올 수가 없었다.
열 번째의 나는 소방도끼에 머리가 쪼개져서 죽었다.

열한 번째의 나는 치킨이 목에 걸려서 죽었다.
열두 번째의 나는 미끄러지다가 머리를 부딪혀 죽었다.
열세 번째의 나는 온 몸이 불타오르다 죽었다.
열네 번째의 나는 이상한 가스를 마시고 죽었다.
열다섯 번째의 나는 야구 배트에 얻어맞아 죽었다.
열여섯 번째의 나는 사나운 개들에게 물려 죽었다.
열일곱 번째의 나는 식칼에 난도질 당해 죽었다.
열여덟 번째의 나는 지하철에 떠밀려서 죽었다.
열아홉 번째의 나는 떨어지는 철근에 몸이 꿰뚫려서 죽었다.
스무 번째의 나는 가스폭발에 휘말려서 죽었다.

스물한 번째의 나는 깨진 유리창에 목동맥이 베여서 죽었다.
스물두 번째의 나는 피복 벗겨진 충전기에 감전당해 죽었다.
스물세 번째의 나는 피아노 줄에 목이 잘려 죽었다.
스물네 번째의 나는 계단에서 떠밀려서 목이 부러져 죽었다.
스물다섯 번째의 나는 가슴을 움켜쥐다 죽었다.
스물여섯 번째의 나는 목이 돌아가 죽었다.
스물일곱 번째의 나는 수영장에서 질식해서 죽었다.
스물여덟 번째의 나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었다.
스물아홉 번째의 나는 집에 화재가 일어나 빠져나가지 못한 채로 죽었다.
서른 번째의 나는 다시 칼에 찔려 죽었다.
...........................................................

서른한 번째의 나는 도끼에 찍혀 죽었다.
서른두 번째의 나는 공업용 끈에 목이 졸려 죽었다.
서른세 번째의 나는 등에 녹슨 철근이 박혀 죽었다.
서른네 번째의 나는 사시미 칼이 배에 박혀 죽었다.
서른다섯 번째의 나는 산에서 누가 떠밀어 미끄러져 죽었다.
서른여섯 번째의 나는 목도리로 목이 졸려 죽었다.
서른일곱 번째의 나는 몸 싸움하다 벽에 머리를 부딪혀서 죽었다.
서른여덟 번째의 나는 도망가다가 육교에서 떨어져 죽었다.

.................................................................

서른아홉 번째의 나는 다른 때와는 다르게 냉장고를 열었다.

그저 완벽한 케이크가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 케이크를 의심하는 순간, 잊혀졌던 그 모든 죽음들이 당연하다는 듯 내 기억에 들어찼다. 소희와 아빠가 내 세상에서 사라졌던 날들, 아무것도 모른채로 있다가 무력하게 죽어가던 날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빠와 소희가 내 세상에서 사라지던 날도 떠올랐다.

[집으로 가자, 미래야. 집으로 가자....]

[난 하지 말자고 했어. 이건 옳지 않다고 했어. 미래야, 넌 미래가....!]

여태까지 없는게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아빠와 소희는 내게 진실을 말하려다가 사라졌던 거다.

“시....싫어......싫어.......내가 왜 죽어야 해?”

삼십 구번째 루프에서 왜 내가 죽어야 하냐고 절규하자, 나의 살인자는 평소보다 빨리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그 다음 루프부터는 절대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 뒤는 정말, 살기 위해서 발버둥쳤다.

사십 번째의 나는 잠을 자듯 죽었다.
사십일 번째의 나는 목에 칼이 찔려 죽었다.
사십이 번째의 나는 방에 갇혀있다가 죽었다.
사십삼 번째의 나는 옥상으로 도망치다가 발이 미끄러져 떨어져 죽었다.
사십사 번째의 나는 차에 치여 죽었다.
사십오 번째의 나는 계단에서 밀쳐져서 죽었다.
사십육 번째의 나는 죽는 것이 무서워서 울다가 일찍 살해당했다.

반복해서 죽다보니 옛날에 지한이네 집에서 봤던 영화가 생각났다. 지한이 부모님이 늦게 들어오시던 날, 전자레인지용 팝콘을 사서 소파에서 같이 봤던 그 영화 속 주인공은 나처럼 자신이 살해당하는 시간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나처럼 일주일이 아니라 하루지만. 뭐, 어쨌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죽어가며 살 방법을 찾았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미칠 것 같은 마음을 다 잡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솔직해짐으로서 루프에서 벗어났다. 그 여자는 주인공과 함께 방법을 고민해주고, 주인공은 완전히 정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거기서 힌트를 얻었다. 그리고 결국 루프에서 빠져나가서 다음 날을 맞았다.

하지만 나는?

가족은 이상하고, 세계도 이상한 법칙에 따라 굴러간다.

좋아하던 남자애는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 속에서 나는 반복적으로 죽어간다.





그리고...............

오십삼 번째엔 한 번, 안 하던 짓을 해보기로 했다.

내 살인자가 나를 죽이러 오기 전에 죽어버리는 것.

오십사 번째의 내가 눈을 떴다.




따뜻한 볕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보송보송한 이불을 걷어내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따뜻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날짜였다.

[2013년 10월 5일 월요일]

......루프의 시작점이다.

“일어나, 밥 먹어야지, 미래야.”

“네에.”

졸린 척 눈을 비비고, 엄마에게 건성으로 대답했다. 퐁실퐁실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마시멜로우가 떠있는 핫초코가 내밀어졌다. 버터가 끼얹어진 팬케이크는 덤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이다.

“엄마, 미지는 어디있어?”

“얘는, 아빠랑 같이 병원에 있잖아.”

“그런가?”

“그래.”

언제나 나누었던 대화를 반복했다. 매번 나는 질문하고, 엄마는 대답하고. 나는 의아해하고, 엄마는 못을 박는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팬케이크를 포크로 찢어 입에 넣으며 대화는 마무리된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버터가 혀 사이로 스며들었다. 컵을 들어 살짝 식은 핫초코 위에 올려진 마시멜로 거품을 후후 불어 걷어내고, 쪼롭 마셨다. 많은 양은 아니고, 팬케이크를 녹여먹을 수 있을 정도만. 팬케이크는 살짝 따스한 핫초코에 개어 혀로 뭉개자 질척해지면서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갔다.

“왜 그래, 미래야? 맛이 없어?”

엄마가 미간에 내천（川）자를 만들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조심해야 한다. 엄마가 나를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의심하게 되면 죽음은 더 빨라진다.

“아뇨, 엄마. 맛있어엉.”

팬케이크를 입에 잔뜩 우겨넣고 일어났다. 엄마는 뭔가 더 말하고 싶은 것 같은 눈치였지만 아침 식사 자리에서 일찍 일어나는 일은 중요하다.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이 아니다. 엄마는 내가 조금이라도 까칠한 모습을 보이거나, 울면 그 때부터 나를 딸이 아니라 ‘딸을 흉내낸 무언가’로 취급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의심을 받으면 그 때부터는 방 안에 갇혀 나올 수 없다.

29번째, 39번째, 42번째, 46번째는 전부 다 그렇게 죽은 회차들이었다.

씻고, 교복을 챙겨입고, 준비를 한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유행하는 노래를 머릿속으로 흥얼거리며 현관문을 나선다.

“엄마, 쓰레기는 이것밖에 없지?”

“아이, 놔두면 엄마가 할게~”

“됐어. 나가는 김에 하지 뭐.”

“그래, 고마워 딸~! 잊지 말고 우산 챙기고!”

쓰레기 봉투와 우산을 휘휘 돌리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곧 있으면 김지한이 나온다.

김지한.

어쩌면 이 루프의 시작이 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지한에 대해 설명하자면, 9년 동안이나 우리 집 옆집에서 살았다. 키는 대략 나랑 비슷하고, 주근깨가 코에 얹혀있다. 웃을 때는 눈이 서글서글 잡히고, 공부를 잘한다. 엄마가 워낙 극성이라 그렇다. 의사 아들이 그렇게나 갖고 싶대나 뭐래나.

나랑 처음 만난 것도 웃긴데, 그 날은 비 오는 날이었다. 나한테 그 날은 우리 집 개 뽀실이가 죽은 날이었다. 그런데 걔한테는 성적이 떨어진 날이었다. 나는 집에 혼자 남아있다가 뽀실이를 묻어주려고 나왔고, 걔는 성적 떨어졌다고 집에서 알몸으로 쫓겨났을 때 나에게 없는 무언가를 덜렁거리면서 자기 집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뽀실이를 따라 가고 싶었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에 입고 있던 가디건을 건네주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훌쩍훌쩍 울던 김지한은 훌쩍훌쩍 울면서 엉거주춤하게 내 가디건을 허리춤에 매고 나랑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다.

“어딜 가려고?”

“아무데나.”

“왜 가는데? 비가 이렇게 오는데.”

“뽀실이가 죽었어..... 그런데 엄마는 상관 없대. 그깟 개 같은 건 중요하지 않대. 근데 뽀실이는 뽀실이 하나 밖에 없었는데. 엄마가 병원가면 나한테는 뽀실이 하나밖에 없었는데.”

차갑게 변해버린 뽀실이의 몸이 손 안에서 점점 추욱 늘어졌다. 눈물샘도 같이 처져 버렸는지 눈물이 주룩주룩 새어 나왔다.

“뽀실이는 성격도 드러웠어. 맨날 뭐 물어뜯고. 모르는 사람 오면 짖어대구. 근데 나한테는 안 그랬어..... 근데 왜 나 계속 따라와?”

“밖에 비가 오잖아.”

“알아.”

“감기 걸릴지도 몰라.”

“너가 무슨 상관이야. 내 친구도 아니잖아.”

“근데 옆집이잖아. 상관 있어.”

“저리 가. 내 맘이거든.”

“나도 내 맘대로 하는거다. 뭐.”

김지한은 옛날부터 그랬다. 자기가 알몸으로 쫓겨나도 먼저 남을 걱정해줬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도, 내 옆에서 고집스럽게 비를 맞아가며 화단에 뽀실이를 묻던 내 옆에 있어주었다.

처음 만난 날, 우리는 사이 좋게 감기에 걸렸다. 거의 알몸이던 지한이는 더 심한 감기에 들렸다. 지한이네 엄마는 날 싫어하며 같이 어울리지 말라고 말했지만, 지한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이 학교를 가고 종종 영화를 봤다. 시험공부도 하고 카페도 갔다. 하루 종일 떠드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란 날들이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이 루프 속의 김지한은 나를 싫어한다.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고, 나를 보면 멀어진다. 친근하게 말을 걸어도 좀처럼 대답해주지 않는다.

내가 좋아했던 나의 소꿉친구는 멀어져버렸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도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은 공기가 느껴진다.

그래, 난 고백을 했다. 김지한에게. 좋아한다고. 나는 얘도 날 좋아하는 줄 알았다.

김지한은 거절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락도 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나면 답을 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 루프 안에서는 쭈욱 이 모양이었다. 나를 불편해하고,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밖에는 비가 온다. 다시. 예전과는 다르다. 지금은 이 비를 그대로 맞더라도 감기는 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아예 비를 맞지 않도록 펼쳐들 우산도 있다.

“너, 울어?”

김지한은 어느 새 가까이 다가와서 착잡해보이는 얼굴로 우산 아래의 나를 살피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나와 키가 비슷할 줄 알았던 김지한은, 어느 새 나보다 한 뼘은 더 자라있었다. 우리 사이도 언제까지고 비슷할 줄 알았다.

그건 단지 내 바램이었고, 그 바램대로가 아니었을 뿐이다. 지한이네 집 엄마는 날 싫어한다. 공부밖에 모르는 아들 못된 거 가르쳐놨다고. 지한이도 지쳤을 뿐인거다. 그러니까 이건 울 일이 아니다. 원래 우린 친구도 아니고 ‘그냥 옆집’이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울자 어색해진 이후라도 쭈뼛거리며 걱정해주는 김지한은 세상에서 무엇보다 잔인하다. 뭘 걱정하는걸까, 얘는. 난 어차피 금요일에 죽는데.

“신경 꺼.”

눈물을 소매로 비벼 닦으며 먼저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내 등을 보고 있는 시선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비웃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코다리강정을 떠올리며 씩씩한 척 걸었다.

월요일 점심에는 내가 싫어하는 코다리강정이 나온다. 하지만 그래서 더 코다리 강정이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것들은 이미 이 루프 속에서 ‘죽을 정도로’ 먹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