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손가락 두 마디나 되는 이 생명체는 수조 바닥에 자리 잡은 후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끔씩 좌우로 몸을 흔들 뿐이었다. 다음 날, 나는 스포이드를 사용해 생명체가 담긴 수조에 우유를 몇 방울 떨어트렸다. 그러자 맨 윗부분이 벌려지면서 우유를 빨아들이곤 조금 뒤 같은 구멍으로 회색 액체를 뿜어댔다. 짐작컨데 배설 행위와 섭취 행위를 같은 구멍으로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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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얘는 입이 똥구멍이구만...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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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고 있자니 저 생명체를 뭐라고 부를지 정하지 않았다는걸 깨달았다. 그렇게 이름을 고민하던 찰나 순간 왠지 모를 거부감이 나를 감쌌다. '저게 뭐든 간에 내 정액으로 만들어진거라면... 생물학적으로 내가 저 생명체의 아빠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드니 괜히 이름 짓기가 찝찝해져서 그냥 읽었던 책의 내용 따라 '호문쿨루스' 라고 부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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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이러고 보니 집에 어항 놓고 물고기 키우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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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럭무럭 자랐다. 검지 손가락 두 마디 만했던 크기가 어느새 중지 손가락 보다 더욱 길어졌고, 엄지 손가락 보다 두꺼워졌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문득 또 다른 호기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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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우유 말고 사람 피를 줘도 된다고 했지...? 줘도 될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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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책에선 우유와 인간의 혈액을 섭취한다고 했으니 한 번 시도 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곧바로 집에 돌아다니는 커터칼 하나를 주워 대충 소독한 다음 손가락 끝을 그어 수조에 떨어트려 보았다. 그러자 녀석은 우유를 줬을 때보다 더욱 격렬히 피를 빨아들였고, 생기가 생긴 듯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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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허 요놈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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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활발하게 움직이는 녀석을 보고 있으니 피를 주기 전의 약간의 불안이 사라졌다. 그렇게 계속 관찰을 하던 중 녀석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팔딱팔딱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마치 인간의 핏줄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심장이 두근거렸다. 단지 피 몇 방울을 주었다고 이렇게까지 빠르게 반응 할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흥미가 생긴 나는 그 후로도 우유 대신에 나의 피를 조금씩 주었고, 녀석은 우유를 먹였을 때보다 더욱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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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의 몸 길이가 30센치정도 될 무렵 녀석의 입에서 촉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통에는 작은 구멍이 생겼는데 녀석은 그 곳으로 배설물을 배출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길지 않은 시간에 소화기관과 배설기관이 나뉘어 진듯 보였다. 그리고 녀석의 몸 길이가 40센치가 될 무렵, 입 주위에 또 다시 구멍이 생겼는데 진동에만 반응하던 녀석이 수조를 건들이지 않아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기울기 시작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 구멍은 청각기관을 담당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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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날이 갈 수록 진화를 하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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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녀석의 비정상적인 속도의 신체 변화는 더이상 성장이라고 불릴 수준이 아니였다. 신체가 커져감에 따라 여러가지 기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만 보더라도 단순 성장으로는 설명하기 힘들었다. 여튼 녀석은 계속해서 자랐고, 녀석의 몸길이는 어느덧 50센치 가까이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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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48.9센치... 슬슬 책 내용대로 폐기를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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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대로라면 이제 폐기를 해야 하지만 녀석을 키운 시간 동안 정이라도 생긴 걸까? 나는 녀석을 쉽게 버릴 수가 없었다. 버리자니 그동안 키운게 아까웠고, 그대로 두자니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들어 어찌하나 고민을 하다가 더이상 먹이를 주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방치하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문득 눈에 띈 녀석은 힘없이 추욱 늘어진 채 쪼글아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괜히 측은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결국 마지막으로 피를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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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앗 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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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에게 피를 주기 위해 칼로 손가락 끝을 긋는 순간 생각보다 깊게, 어긋나게 베어버렸다. 베어진 살점은 덜렁덜렁 거리다가 결국 핏방울과 함께 수조로 떨어졌고, 녀석은 오래 굶주린 듯 빠르게 피를 흡입하다 떨어진 살점마저 먹고 말았다. 아픔도 잠시, 내 살점을 삼켜버린 그 녀석을 본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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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고기는 절대 먹이지 말라고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