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산골짜기 끄트머리에
위치한 큰댁에 간다는건
4살 먹은 어린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주황 빛 노을이 산 너머로 사라질때쯤
시커먼 밤이 마당을 짚어 삼키고 나면
불안함은 두려움으로 커져만 갔고
어린 나는, 주름이 깊게 패여 나뭇결 같은 증조할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행여나 들킬까봐 숨 죽이며 잠들었었다.

시커먼 밤도, 고요한 적막도, 시골 공기 특유의 풀내음이
익숙해 질때쯤이면

-투다다다다닥 !

거리는 소리가 천장 위에서 들려왔었다.

시커먼 어둠도, 짙은 안개도 무섭지 않았지만
저 투다닥 거리는 소리는 큰 댁에 올때마다 나를 너무
긴장하게 만들었었다.

저게 무어냐는 물음에 증조할머니는 항상 깜쥐라고 했다.
소리로만 증조할머니의 말로만 들어왔던 깜쥐를 처음 본건
내가 5살이 될 무렵.

한 밤중, 소변이 마려워 요강을 찾던 그 때.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보이던
구석에 놓여진 요강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을 때였다.
무서움도 잊은채 호기심에 요강에 다가가자
강아지보다 큰 검은색 쥐가 날뛰다가 창호지를 뚫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 밤중, 소동으로 모두가 잠에서 깨어났고
거친 호흡으로 울던 나를 달래주던 증조할머니는
내가 본 그것이 깜쥐라고 했다.

그 뒤, 큰 댁에 간다는건 두려움도, 불안감도 아닌 공포로
다가왔다.

어둠속에서 어렴풋이 보였던 형체, 홀로 빛나던 눈동자
사촌 형의 말로는 사람 손톱을 먹어서 그렇다던데
내 키만큼 커지면 사람이 된다고 했다.

그 뒤로는 큰 댁에서 잘때마다 경기를 일으켰고
집안 식구들중 누구도 내가 자고가는걸 반기지않아
어둠이 마당을 다 짚어 삼키기전에
아버지와 마을버스로 집에 돌아오고는 했었다.


몇 일, 몇 주가 지났는지도 모를 시간이 흐르고
아침 일찍 울린 전화를 받고 아버지는 급히 나를 품에 안고
큰 댁으로 향했다.

이제 본인의 삶이 얼마남지 않았다는걸 어렴풋이 느낀
증조할머니는 마지막 인사를 위해 식구 모두를 불러 모았고
나를 그 앙상한 무릎위에 앉혀 투박한 손으로 쓰다듬어 주며
갈대밭에 부는 바람처럼 속삭이듯 말씀하셨다.

-우리 아가 깜쥐가 무섭드나..?

-응, 할미

-아가, 할미가 우리 아가 무섭지 말라고 깜쥐 잡아먹어주까.

-응 깜쥐 무서워 할미야

할머니는 귀엽다는 듯이 웃어 보이셨고
큰 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로 불러 본인 제사는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30살이 되기까지 꼭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밤.
이상하게 깜쥐 소리가 들리지 않던 그 밤.
그 검은 밤에 증조할머니는 모두가 모인 그 자리에서
주무시듯이 돌아가셨다.

장례를 모두 치르고 사촌형과 뒷 마당 한켠에 앉아서
고모가 쥐어 준 비눗방울을 불고 있었는데
왠지 모를 스산한 시선이 느껴졌고 그 곳에는
나뭇결 같은 비늘로 뒤 덮인 커다란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너무 무서워 사촌형과 울음을 터치자 그 것은 어른들이
채 달려오기전 바람처럼 사라지고 없어졌다.


그 뒤로 깜쥐를 본적도 그 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고
시간이 흘러 내가 27살에 결혼하고
아내가 딸아이를 출산하면서
당신 자식들에게 짐을 안겨주기 싫다며
집안 어른들은 그해 추석에 올린 차례를 마지막으로
모든 제사를 없애버렸다.

딸아이가 두 돌이 된 오늘, 딸아이가 잠투정을 심하게 하기에
아내가 아이를 달래며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

-무셔무셔

무섭다며 칭얼거리는 딸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건물 옥상에 올라가 담배 입에 물었다.

-투다다다다다닥!

어디선가 들어본 두려운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그 곳에는

내 키만큼 다자란 깜쥐가 두발로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