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글쓴이가 겪은 실화를 기반으로 쓴 글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꽤나 바쁜 시기였다. 학교까지는 넉넉잡아 3시간 통학이었고, 수업은 아침 9시부터 오후까지 빽빽하게 잡혀 있었다.

덕분에 그 시기의 나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학교에 가고, 18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때보다 빡센 시간표에 동기들과 혀를 내두르는 게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그 일상이 피크를 찍었던 중간고사 기간에 일어났다.

학점은 1학년 때부터 챙기란 말을 선배들에게 귀가 빠져라 들었기에 저녁에 집에 돌아온 뒤엔 시험공부에 전념했다.

내가 수강 신청한 학점은 20학점, 그러나 1~2점짜리 과목이 많아 과목 수는 10개였다.

덕분에 시험 준비로 밤을 새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고등학생 때보다 일찍 일어나 왕복 5~6시간 통학길, 거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시간표에 진이 빠진 채 밤을 새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니 나는 물론이고 동기들도 좀비 같은 몰골이 돼버렸다.

근데 쓰다 보니까 생각난 건데 멸치로서 밤을 새던 그때보다 바디프로필까지 찍어본 지금이 더 피곤하다. 왜지

아무튼 며칠 밤을 새었더니 너무 피곤했다. 난 스탠드의 불은 켜놓은 채 잠깐 침대에 몸을 뉘였고, 그대로 깜빡 잠에 들어버렸다.



꿈 얘기에 앞서 말하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난 귀신과 관련된 일을 겪은 적이 거의 없다.

남들 다 눌려봤다는 가위도 27살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눌린 적이 없다.

가위는커녕 악몽을 꾸는 일도, 악몽을 꾸기는커녕 꿈을 꾸는 일도 꽤나 드물었으니 귀신과는 한참 인연이 먼 체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의 꿈은 꽤 달랐다.



팔 뻗는 것조차 힘들 만큼 좁은 통로였다.

통로의 풍경은 마치 해리포터가 죽먹자들에게 쫓기며 빌빌대던 시기에 자주 보았을 법한, 서양의 폐가 복도 같았다.

어둑한 풍경을 둘러보던 나는 오싹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지 말아야 했다. 흔히 말하는 ‘드라군 자세’를 한...

그런데 팔다리 관절들은 전부 부러진 듯 기괴하게 뒤틀린 귀신이 뒤에 있었다.

그리고 내가 돌아보자마자 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걸 보자마자 나도 황급히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자세는 우스꽝스러웠지만 속도까지 그러진 않았다. 등 뒤에 바짝 따라오는 게 소리로 느껴졌다.

죽어라 뛰다 보니 통로 끝에는 문이 있었다. 문을 부술 듯이 열며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다시. 처음 그 자리로 돌아왔다.

혹시나 했던 난 뒤를 돌아보았다.

씨발... 돌아보지 말아야 했다.

그놈이 또 그 자세로 있었다. 그리고 또 뛰기 시작했다.

그 짓거리를 세 번쯤 반복했을 무렵이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문을 열었을 때...

이번엔 ‘그 자리’가 아닌, 새로운 방으로 들어섰다.

방을 살필 시간도 없었다. 곧바로 방문을 닫고 문을 걸어 잠갔다.

문을 잠그자마자 굉음이 터졌다.

쾅!

그리고 곧바로 머리로 문을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계속 들렸다.

쾅! 쾅! 쾅! 쾅! 쾅!

문이 금방 부서질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에 방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금방 깨달았다. 이 방은 내 방이었다. 현실 속의 내 방.

참고로 내 방의 구조는 이랬다.


문
------ ㅣ책（컴퓨터）
------ ㅣ
침 ----ㅣ상（스탠드）
대 ---- 옷장
창문 창문 창문


돌이켜보면 내 최선의 선택은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18층이었기에 그 선택지는 아예 떠올리지도 못했던 나는 숨는 길을 택했다.

그래도 옷장 안이나 침대 밑은 너무 뻔하니 책상 아래를 택한 건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생각한다.

위에 보이는 기다란 책상 중 ‘책’ 위치의 아래로 들어가 의자로 몸을 숨겼다.

의자가 커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숨을 죽인 채 문 쪽을 바라보았다.

몸을 숨긴 직후 굉음은 멈춰 있었다. 그리고 문 쪽을 바라보자...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끼익-

숨을 죽인 채 시선까지 돌렸다. 이내 들어온 ‘그것’이 여기저기 뒤지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 위.

침대 밑.

옷장 안.

‘상’ 자리의 책상 밑.

그리고...

내 자리의 의자가 서서히 뒤로 빠져나갔다.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의자를 치운 귀신이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찾았다.”

귀신의 두 눈은 칼로 후벼 파기라도 한 듯 텅 비어 있었다.

그 얼굴을 본 나는 비명과 함께 꿈에서 깼다.

“으아악!”

탈출하듯 침대에서 뛰쳐나와 전등을 켰다.

불을 켜고 살펴보니 시간은 새벽 2시였다.

몸은 온통 땀범벅이었는데 등에선 칼로 척추를 쑤시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

정신을 추스르고 나니 타는 듯한 갈증이 느껴졌다. 방을 나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물을 마시고 방에 돌아갔을 때였다.

내 방 맞은편, 안방에서 나온 아버지가 놀란 얼굴로 서 계셨다. 아버지가 물었다.

“악몽 꿨어?”

그랬노라고 말했다. 왜 깼냐고 되묻자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비명 지르길래.”

그 말을 들으니 등골이 오싹했다.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까지 비명을 질렀던 모양이었다.

대충 괜찮다 대답하고 아버지를 지나쳐 내 방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꽤나 걱정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굳이 더 캐묻진 않으셨다.

늦은 시간이고 별 해괴한 일까지 겪었다 보니 마저 공부할 맘이 싹 사라졌다. 전등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다 보니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스탠드 불을 껐었던가?

왜 꺼져 있지?



...



다행히 이후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런 악몽을 꾼 건 딱 한 번, 전역자가 겪는 ‘그 꿈’뿐이고 귀신 꿈은 한 번도 꾸지 않았다. 웃대 무당에게 상담을 받을 만큼 불길한 꿈을 꾸긴 했었지만, 역시 꿈은 그냥 꿈이었고 난 여전히 귀신과 연이 없는 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문득 생각나 그때의 학점을 보았다.

확인해보니 그렇게 꿈에서 귀신을 보면서까지 공부한 1학년 1학기 평균 학점은 3.25였다.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