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병이었던 17년도 중순에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부대는 강원도에 있는 한 수송부대입니다. 본부중대원들을 제외하면 모두 운전병인데다가 인원도 많지 않았고 작은 여단 소속이었기에 따로 근무병들을 파견받지도 못해서 50명 내외의 운전병들이 각각 근무와 부대관리, 그리고 파견과 운행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솔직히 개꿀빨줄알고 왔던 운전병인데 꽤나 높았던 근무 강도에 운동부족 공대생이었던 저는 나날이 시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근데이거 경어체 쓰려니까 힘드네요 그냥편하게쓸게요

금요일이었을거임
훈련지원 파견이 있어서 두돈반끌고 나갔음
뭐 차 한 대 안다니는 강원도 시골 촌구석 다니는 주제에 나이제운전좀치는듯? 하고 자신감이 쓸데없이 붙어있던 터라 야간운행인데도 그냥 설렁설렁 옆 간부 네비 따라서 가고 있었음
그지같은 비포장도로라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는데 이게웬걸 갑자기 뻥뚫린 왕복2차선 포장도로가 나왔음
나는 너무 신나서 그냥 4단 풀악셀（그래봐야 60km/h） 때려밟았고 빨리 차박아놓고 생활관가서 디비잘 생각밖에 없었음
근데 갑자기 도로변에서 고라니가 튀어나온거임
운전병이었던 사람은 알겠지만 뒤에 사람이 타고있으면 야생동물이 튀어나왔다고 급제동하면 안됨. 뒷사람이 튕겨나가서 다칠수도 있어서 그냥 치고 지나가라고 교육받음.
그래서 뭐 어쩌겠나 그냥 쳐버리고 앞에 깜빡이키고 차를 세웠음.
이제부터는 뭐 뻔한 레퍼토리임
내가 친 그 무언가를 내가 보는데 22살의 멘탈로는 견디기가 쉽지 않았음.
다행히 다친사람은 없고 차도 문제 없어서 간단히 헌병대랑 119에 연락만 하고 다시 출발했음. 잠은 잘 안오더라.

다다음날 아침（일요일） 다시 부대로 복귀한 나는 아 주말근무 ㅈ같네 하면서 근무자 신고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왔음. 다들 축구하러 나갔는지라 생활관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도 선임이 축구하러 나오라고 하긴 했는데 내 소중한 주말 아침 게다가 이따 근무도서야하는데 요새잠도잘못자서 피곤한데 아 그냥 잘까 하고 누웠음

잠을 자긴 하지만 어느정도 긴장해서 금세 깨버리는 ‘짬찌의 잠’ 상태였는데 갑자기 영내방송이 울림

“아아 지휘통제실에서 전파합니다. 1중대 유xx일병은 지금즉시 지휘통제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지통실에서 나를 찾는거임. 속으로 쌍욕 스물여섯번정도하고 아 나뭐 잘못했나 하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안움직였음. 정신은 말짱하고 눈도 떴는데 몸이 안움직였음. 가위에 눌린거임.
뭐 평소에 귀신같은거 믿지도 않고（무서워는함） 평생 한 번도 가위눌려본적이 없는 나름 기쎈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위를 직접 당해보니깐 숨이 턱 막히는거임
하필이면 생활관에 아무도 없어서 깨워줄사람도없고
그렇다고 일병따리가 자빠져 자다가 방송 못들었다하면 개털릴거고
손가락이나 발가락 한곳에 힘을 집중해서 깨보려고해도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고
그렇다고 막 귀신이 보이거나 한 건 아니라 체감상으로 1시간 정도 혼자 끙끙대고 있었고 아 ㅈ됐다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을 때쯤 누가 문을 열고 들어왔음
당직사령이었음. 사람이라 ㅈㄴ반갑다는생각과함께 난이제끝이다라는 생각을 했음.
내가 누워있는 자리까지 뚜벅뚜벅 전투화 소리내면서 걸어오는데도 몸은 움직일 생각을 안하고 진짜 미쳐버릴거같았음
당직사령이 내 자리앞에서서 “유xx” 하고 이름을 부르는데 눈이 마주쳤음.
진짜 저만번만 만져주세요ㅠㅜㅠㅜㅠㅠㅠ하고 미친 동공 컨트롤로 빙빙 돌렸더니
야 괜찮아? 하면서 내 발목을 딱 잡더라
그때 가위가 딱 풀리면서 그냥 바로 무릎꿇고 죄송합니다부터 박았음
말 안듣는 문제아인줄알고 직접 왔는데 애가 죄송합니다만 하고 있으니까 사령도 의아했는지 왜그랬냐고 물어봤음 그래서 진짜 미친놈처럼보이시겠지만 가위에 눌렸습니다 방송 다 듣고 가려고 했는데 몸이안움직였습니다 하고 존나 울먹이면서 말하니까 얼탱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보더라고. 결국 안믿어주더라 내 미친 동공댄스를 봐놓고서도. 그래서 그날 진짜 하루종일 선임들 간부들한테 불려다니면서 털렸음. 지휘통제실에 부른 이유는 근무자총기함 앞에 총번이랑 뭐 적는거 글씨 대충썼다고 다시쓰라고 부른거더라

문제는 그날 밤 다시 가위에 눌렸음. 밤에 화장실가려했는데 또 몸이 안움직이더라. 귀신은 여전히 없었는데 밤이라 무서워서 그냥 눈뜨려는 시도조차 안했음.

다음날 중대장이 당직사령한테 인수인계 받았는지 나를 중대장실로 불렀음.
아 또 혼나는구나 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차분하게 왜그랬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속는셈치고 가위에 눌렸다고 얘기했음 어차피 혼날거 차라리 이컨셉으로 나가면 그린캠프를 갈수있을거같았음.
근데 믿어주더라
그날 입었던 전투복 가져오라더니 바로 태워버리고
곧 전역하는 선임꺼 전투복 하나 뺏어가지고 새로 보급 시간걸리니까 일단 이거 입으라면서 챙겨주기까지했음

그날 이후로 스물여섯살이된 지금까지 가위 눌린적은 한번도 없었고, 그때 일은 내가쳐서 죽인 고라니의 복수였다고 생각함

마지막으로 그 고라니한테 한마디 하면


미...미....미친놈아 니가먼저 잘못했잖아


공포+개그 컨셉이랑 뭔가 잘어울릴거같아서 제 군대썰 하나 풀어봅니다 다들 좋은하루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