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실화입니다.



때는 초등학교 1~2학년때.

그 당시 나는 또래보다 또랑또랑했고 말도 빨라서 우리동네 귀요미였다고 할 수 있었다.

심심하면 아랫동네 내려가서 할머니들 앞에서 남행열차 부르고, 개다리춤 추면서 천원 이천원 받아오는 해맑은 아이였음.

다만 이제 키가 작아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유치원생쯤으로 보이는 정도?

학교 마치고 가방 내려놓고 늘 그렇듯 동네를 쏘다니고 있었음. 평소대로 놀이터에 갔으면 됐을텐데 그날따라 혼자서 큰 사거리를 지나 대로변을 가고 있었음.
그 길은 인도랑 차도가 구분이 없이 아스팔트로 되어있어서 차도 많지 않고 신호등같은것도 없는 곳임.

그때 흰 차 한대가 내쪽으로 슬금슬금 붙어서 가볍게 빵하더니 창문을 내림.

"꼬마야. 00마트가 어딨는지 아니? 아저씨가 급한데."
"앗 그거 신평리시장에 있는데. 제가 그 근처 살아요! 여기서 쪼금 가다가 00노래방 나오면 거기서 이렇게, 이렇게 해서 쭉 가시면 돼요（대충 좌회전하다가 직진하란뜻）"

지금이야 어른은 어린애한테 도움을 안 청한다는 걸 알지만 당시의 어렸던 나는 어른이 나한테 뭔가를 도와달라고 하고, 내가 그걸 도울 수 있다는 게 마냥 좋았음.

막 신나서 어쩔줄 모르면서 창문에 붙어서 어떻게 가는지, 왜 가는지 묻고 난리났었음.


근데 그 아저씨도 웃긴게 급하다고 했으면 가기나 할것이지 내 걷는 속도 맞춰서 천천히 주행하면서 어디 유치원 다니는지 꼬치꼬치 묻기 시작함.
00초등학교 다닌다고 일학년이라고 대답해줬더니 아조씨가 나보고 차에 타라고 함.

뭐랬더라,

"우리 친구가 차에 타고 길을 가르쳐주면 안될까? 길 가르쳐주면 아저씨가 메로나 줄게."


나도 아주 잠시 고민했던거 같음. 근데 정말 우리집 근처고 내가 너무나 잘 아는 길이라 바로 올라탔음.

그 위치에서 마트는 어린아이인 내 걸음으로도 10분 안팎의 거리였기에 차로는 부웅 밟기만하면 1~2분컷임. 시장 안쪽에 있는거라 신호도 없고.

근데 엄청 천천히 가는거임.
우리집이 있는 골목을 지나서 단골 식육점을 지나서 가는 게 자세히 보일 정도로. 그래서 나는 막 신나서 별 얘기를 다함. 우리집은 저 골목에 있다. 저 식육점에서는 뭐를 사고 저 집 참기름은 5천원이다. 아마 이름도 말해줬던 듯.

"근데 아저씨 마트는 뭐 사러 가요?"
"뭐 살게 있었는데 이제 됐다."

이제 마트 다 왔는데 갑자기 저 소리 하더니 차를 유턴하기 시작함. 신평리시장 앞 길이 좀 넓은 편이긴 해도 한방에 유턴할정도는 아니라서 낑낑 여러번 해서 차돌림.

"아저씨. 마트는 저 뒤에 있는데요 왜 안가요?"

아저씨는 내 말에 대꾸하지 않음.
대신 차를 세울때까지 계속 이 말만 반복했음.

"00아. 절대 앞으로는 모르는 사람 차 타지마라. 알겠나."

내가 이상한걸 느낄 새도 없이 금방 눈 깜짝할 사이에 차를 세워줬음. 근데 거기는 마트도 아니고 우리집이 있는 골목도 아니고 내가 탔던 곳이었음.

"내려라."

뭔가 아까보다 쌀쌀맞아져서 무서워서 얼른 내렸음.

그리고는 대시보드를 열더니 메로나 두개를 꺼내서 차에서 낑낑 내리는 나한테 줬음.

"메로나 가져가라. 앞으론 누가 뭐 사준다고 해도 절대 차에 타고 그러지말고."

메로나 두개는 이미 봉지가 물렁할정도로 녹아있었고 아저씨는 웃지 않았음.

아저씨는 차를 출발하기 전 마지막에 조그맣게 나한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사라졌음.

당시에는 그냥 이상한 아저씨라고만 생각하고 들고간 메로나도 다시 얼려서ㅋㅋㅋ먹음ㅋㅋㅋㅋ
（엄마한테도 말함. 어떤 아저씨가 줬다고.）


그 아저씨가 진짜 나를 유괴하려고 했는지 아닌지는 모름.

그저 나이들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아저씨가 어떤 생각으로 나를 태웠고, 또 나를 보내줬는지 알 것 같아서.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덜 순진했거나 그 아저씨 신경에 거슬리는 말을 했다면, 그랬어도 그 아저씨가 나를 순순히 보내줬을까.

이미 얼굴을 봐버린 나를 해칠 생각은 안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