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쿵쿵.

“누구세요?”

“나야. 문 열어...”

“뭐야 상혁이냐?”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친숙한 목소리에 조금은 의아해 하면서도 문을 열었다.

원래 좀 이상한 녀석이긴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말없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올거면 전화 먼저 하지 나 이제 막 자려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은 문을 벌컥 열어 제치고 들어와서는 내 멱살을 잡아 냅다 집안으로 내던졌다.

“어딨어!!!”

한손에 칼을 든 녀석은 눈이 뒤집혀서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영문을 알 수 없었던 나는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잠깐. 잠깐만. 일단 그거부터 내려놓고 얘기해.

뭐든 내가 찾아줄테니까. 칼 내려놓고 천천히 말해봐.

지금 찾고 있는게 뭔데?”

애초에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했던 녀석이기에 우선 상황파악을 위해 녀석을 조심스레 달래며 물었다.

“모른척 하지마. 네놈이 우리 사랑이 빼돌린거 내가 모를줄 알아?”

당혹감이 몰려왔지만 다행히 금세 진정 할 수 있었다.

난 녀석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쓰러진 자세 그대로 천천히 대답했다.

“사랑이? 네가 키우는 강아지 사랑이 말하는거지?”

“그래. 우리 사랑이 어떻게 했어? 똑바로 말 안하면 진짜 찔러 버린다!!”

녀석은 정말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듯 칼을 들이밀며 말했다.

“잠깐만. 그거 내려놓고 얘기하라니까.

자 잘들어봐. 너 입원치료 받는 동안 나한테 사랑이 돌봐 달라고 했었잖아. 맞지?

사료량 장난감이랑 이런저런 물건들 전부 다 챙겨와서 나한테 부탁했었잖아. 기억나지?

그래서 내가 2주동안 맡아서 돌보다가 3일전에 네가 다시 데려갔어.

고맙다면서 나한테 밥도 사줬잖아. 맞지? 기억나?”

사실이었다.

부모도 친척도 없던 녀석은 입원한 동안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라고 생각했던 듯 했다.

“나도 알아! 근데 그건 사랑이가 아니야! 우리 사랑이가 아니었어.

다른 사람들 다 속여도 내 눈은 못속여. 그거는 사랑이가 아니야. 그냥 똑같이 생긴 다른애야!”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일이 커지기 전에 어떻게든 잘 구슬려서 진정시켜야 한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사랑이 맞아. 하얀털에 작은 강아지. 맞잖아.

너 없는 동안 내가 잘 돌보고 있다가 다시 돌려줬다니까?

그날 너도 오랜만에 보니 더 예쁘다면서 좋아했었잖아.”

“거짓말 하지마. 그건 우리 사랑이가 아니었어.

사랑이는 겁이 많아서 누가 찾아와도 내품에서 꿈쩍도 안했었어.

이 한심한 나를 믿고 의지하는 유일한 애였다고.

근데 이놈은 아니야.

그리고 눈빛도 달라. 사랑이는 그런 눈이 아니었어.

솔직히 말해. 그건 우리 사랑이가 아니야. 그렇지?

네가 날 속였잖아. 맞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상혁아 잠깐, 잠깐만. 너 약 먹었어? 의사가 준 약 있지? 그거 제대로 챙겨 먹은거 맞아?

너 그거 빼먹으면 불안증 생기고 또....”

“내말대로 잘 돌봐줬어?”

“뭐?”

“내가 말해준 대로 잘 돌봤냐고. 내가 분명히 말했었지?

사료는 비율에 맞게 잘 섞은 다음 제때 딱 맞춰서 줬어?

사랑이는 예민해서 정확한 시간에만 밥 먹는다고 내가 얘기 했었지?

물도 오래 떠놓은건 안먹으니까 1시간 마다 꼭 생수로 채워줘야 한고 말했는데?

산책은? 산책도 제 시간에 정확하게 시켰어?

하루라도 빼먹으면 사랑이가 엄청 스트레스 받는다고.

또 배변 패드는? 깨끗해도 무조건 주기적으로 갈아줘야 한댔잖아.

잠자리는? 담요는 못해도 이틀에 한번 빨고 꼭 양지건조 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거 다 지켰어?

정확하게 딱 맞춰서 지켰냐고? 대답해봐. 정확하게 다 지켰어?”

폭풍처럼 뱉어내는 녀석의 말에 난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내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녀석의 얼굴이 한층 더 싸늘해 졌다.

“너, 내가 한 말들은 다 기억해?

내가 간식은 어떻게 주라고 했었어? 무슨간식을 언제 주라고 했는지 대답해봐.

사랑이 장이 예민하니까 간식줄 때 어떻게 줘야 한다고 했었어?”

“어... 그게..”

“제대로 듣지도 않았구나? 간식 제대로 안챙겨줬지?

아니, 밥은 제때 줬어? 산책은?

배변패드는? 아예 깔지도 않았지?

그래, 뻔하지. 사랑이 따윈 안중에도 없고 그냥 좋다고 술이나 마시러 다녔겠지.”

“상혁아, 그게 아니고. 좀 들어봐.”

“아가리 닥쳐 이새끼야! 믿고 맡겼는데 그 이쁜애를 나몰라라 방치해?

그래서? 진짜 사랑이는 어떻게 했어?

죽었어? 죽었지? 내가 화낼까봐 어디가서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를 사온거야.

맞지? 똑같이 생기면 내가 속아넘어갈거라고 믿으면서.

저 지능 딸리는 새끼는 지새끼도 몰라보고 실실 웃으면서 속을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런거 아니라니까. 난....”

“웃기지마! 제대로 돌보지도 않아놓고 그런 거짓말하면 내가 믿을 것 같아?”

말문이 턱 막혔다.

분명 첫날 녀석이 내게 해준 말들은 대부분 잊어버렸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애초에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녀석을 안심 시켰을 뿐.

녀석은 입원해 있어서 참견하지 못할테니 괜찮을거란 안일한 생각으로 밥주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그치? 내말 맞지? 그래. 역시 그랬어. 그건 사랑이가 아니었어.

어쩐지 처음부터 조금 이상하더라니....

내가 모를줄 알았어? 그럴 리가. 내가 왜 몰라.

모를 리가 없지. 그래 애초에 널 믿는게 아니었어.

우스웠지 내가? 얼마나 비웃었을지 눈에 선해.

근데 이번엔 나도 그냥 안넘어가.

감히 나한테 사랑이 대신 가짜를 넘겨줘?

잘들어. 내가 그 가짜놈을 어떻게 했는지 알아?

숨통을 끊어 버렸어.

이 칼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고.

그러니까 이제 똑바로 얘기해. 사랑이 어디있어?

진짜 굶겨 죽였어? 아니면 차에 치었어? 어떻게 되었는지 똑바로 말해!”

녀석이 한짓에 난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녀석을 진정 시킬 수 있을까?

“잠깐. 내말 좀 들어봐. 사랑이는 무사해. 내가 지금 데려올게.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마.”

“거짓말 하지마! 이제 네 말 안믿어.

이미 들었어. 요새 강아지 구한다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다며.

우리 사랑이 사진 보여주면서 똑같이 생긴 강아지 찾아서 데려갔다며. 아니야?”

“.....”

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거기까지 들었다면 내가 뭐라고 말해봐야 소용없을게 분명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까?

뭐라도 말해서 진정 시켜야 했지만 전혀 떠오르는게 없었다.

“생으로 굶겨버린거지? 애초부터 사랑이가 죽길 바랬던거야.

그래. 네가 사랑이를 죽였어. 내가 웃는 모습이 보기 싫었으니까.

내가 평생 방구석에 쳐박혀서 살기를 바랬던 거야.

그래. 내가 왜 너를 믿었지? 내가 왜 너한테 사랑이를 맡겼을까.

아니 이제 다 필요 없어 이제 네말 안들어. 다필요 없어! 그냥 다 죽여버릴거야!”

“야 잠깐!!!”

내 다급한 외침에도 상혁은 눈이 뒤집혀서는 내게 달려들며 칼을 휘둘렀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몸부림 쳤지만 쓰러진 상태로 제대로 피할 수 있을리 없었다.



내가 운이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눈돌아간 상혁이가 내지른 칼이 조금은 어설펐는지

칼이 내 심장을 꽤뚫는것만은 피했지만 복부를 깊게 관통해 버렸다.

비명도 나오지 않는 끔찍한 고통에 입만 뻐끔거리며 힘겹게 상혁을 올려다 보았다.

“죽어서 사랑이한테 속죄해!

그 불쌍한게 어두운데서 굶어죽었을 생각을 하면 찢어 죽여도 속이 안풀리지만.

그냥 거기서 천천히 불쌍하게 죽어버려.

그 예쁜 애를 굶겨죽인 짐승만도 못한 새끼한테는 그게 더 어울리겠지.”

어떻게든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건 옅은 신음소리 뿐이었다.

녀석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아저씨. 이 사진 좀 봐주시겠어요? 혹시 이렇게 생긴 강아지 구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생긴 강아지요? 이건 그냥..... 인형이잖아요.”

“네 저도 아는데 비슷하게라도 생긴 강아지가 혹시 있나 해서요.

친한 친구놈이 옛날 사고 후유증으로 뇌에 이상이 좀 있는데, 이 인형을 진짜 강아지처럼 끔찍하게 아끼거든요.

사료도 챙기고 산책도 시키고 하면서...

이번에 큰 수술 받느라 고생 할텐데 다 끝나고 나오면 축하하는 의미에서 이 인형이랑 닮은 진짜 강아지를 선물하려구요.

사고로 가족도 다 잃은 녀석이라 챙겨줄 사람이라곤 나뿐일텐데 뭔가 의미있는 선물 해주고 싶거든요.”

“아이고, 그런 사연이... 참...”

“좀 안쓰럽죠? 그래서 저도 계속 신경 써주게 되네요.

인형대신 강아지를 안겨주면 사랑이가 진짜가 되었다고 신나할거 같은데...

어때요? 혹시 구할 수 있을까요?

녀석이라면 분명히 잘 돌볼 수 있을거에요.”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