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를 타고 미친 듯이 달렸다.

새벽 시간이라 차가 없어서 속도를 한계치까지 올렸다.

엘 타운까지 가장 빠르게 달려야 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최대한 빨리 엘 타운에 있는 히어로들에게 본부가 습격당한 사실을 알리는 것.

중심가에 다다르자 엘 타운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 어둑한 엘 타운 상공 주변에서 헬기들이 라이트를 비추었다.

좀 더 가까이 가자 엘 타운을 둘러싼 벽 주위로 배치된 경찰 병력과 히어로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은 빠른 속도로 달리는 나를 경계하는 듯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 내려왔다.

스틸 윙이었다.


"디오?! 무슨 일입니까? 지원 요청은 한 적이 없는데"


스틸 윙은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히어로 본부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내가 바이크를 타고 엘 타운까지 왔으니,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당장 모두에게 알리세요. 히어로 본부가 공격당했습니다."


나는 하늘에 떠 있는 스틸 윙을 올려다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뭐라고요?!!"


언제 나타났는지, 돌풍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스틸 윙도 완전히 바닥에 내려와 내 앞에 섰다. 그리고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본부가 공격을 당하다니"


"박영택 살인 예고는 모두 연막이었습니다. 빌런 프로듀스의 진짜 목적은 버닝입니다!"


내 말에 둘의 표정이 굳었다.


"이럴 수가! 본부와 교신도 안되는 겁니까?"


"본부와 교신은 되지 않을 겁니다. EMP탄을 썼는지 본부 내에 모든 전자 장비가 불능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왔습니다."


"본부 상황은 어떻습니까?"


"심각합니다."


"일단 수리 대장님한테 보고하겠습니다."


스틸 윙은 인이어를 키며 말했다.

그리고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수리에게 보고했다.


"수리 대장님, 히어로 본부가 빌런 프로듀스에게 공격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박영택이 아니라 버닝 구출이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검은 무언가가 내려왔다.

수리 대장이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리는 인이어를 통해 모두에게 전했다.


"긴급 상황입니다. 히어로 본부가 공격당했습니다. 경찰 병력을 제외한 히어로는 전부 본부로 지원 갑니다. 오버 제트 이륙 준비해 주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무언가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썬이었다.


"스틸 윙은 비행할 수 있으니 썬을 뒤따라가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히어로들도 전부 이동합시다."


스틸 윙과 수리는 동시에 위로 올라갔다.


"빨리 오버 제트로 갑시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돌풍이 안내했지만 나는 잠시 멈추고 돌풍에게 물었다.


"박영택은 지금 엘 타운에 있습니까? 혹시 다른 곳으로 대피시키지는 않았습니까?"


"다른 입주자들과 박영택 사장의 가족들은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박영택은요?"


"박영택 사장은 엘 타운에서 보호받는 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해서 본인 자택에 있습니다."


"몇 층인지 아십니까?"


"55층이요"


나는 곧장 엘 타운으로 들어갔다.

히어로라서 그런지 경찰들이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엘 타운의 내부 역시 경찰 병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넓은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히어로 본부로 복귀하기 위해 내려온 히어로들이 나왔다.

그들은 나를 힐끔 보고 지나쳤다.

조용히 기다렸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55층을 눌렀다.

순간 닫히던 문 사이로 굵은 팔뚝이 들어왔다.

문이 다시 열렸고, 등 뒤에 커다란 대검을 장착한 남자가 섰다.

예비 히어로 소드맨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당황하며 묻자 소드맨이 살벌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히어로 본부에 진검도 왔습니까?"


"네, 진검도 왔습니다."


"후우-, 그렇군요. 근데 어디 가시는 겁니까? 오버 제트로 안 가십니까?"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알겠습니다."


소드맨이 막고 있던 팔뚝을 치우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는 조용하고 빠르게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경찰과 경호원들이 보였다.

그들은 나를 멀뚱히 바라봤다.

나는 유유히 엘리베이터를 나오며 그들의 위치를 스캔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둘, 복도 쪽에 넷. 순간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 하나가 나를 막았다.


"어디 가십니까? 용건이 있다면 저한테 말씀하십시오"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빠르게 가격했다.


-퍽!!


그의 몸은 공중으로 붕 떴다.

나는 한 바퀴 돌며 발차기로 옆에 있던 경찰도 날렸다.


"크헉"


날아간 동료를 보고 날란 경찰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복도 한쪽 벽을 밟고, 점프해서 그의 얼굴을 무릎으로 찍었다.

뒤에 있던 경찰이 나를 붙잡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초인을 제압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를 넘기고, 가볍게 벽으로 던졌다.


-쿵!


요란한 소리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과 경찰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복도를 전진하며 주먹으로 경호원을 날렸다.


-탕! 탕!


순간 뒤에 있던 경찰이 내게 총을 쐈다.

한 발은 빗나가고, 한 발은 왼쪽 어깨에 맞았다.

나는 천천히 돌아 경찰에게 다가갔다.

경찰의 얼굴은 겁에 질려있었다.

나를 조준하고 있던 그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팔을 잡고 비틀었다.


"으악!!"


복도에는 쓰러진 경찰과 경호원들로 가득했다.

나는 천천히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힘으로 문을 잡아 뜯었다.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현관에 들어서자 커다란 거울이 보였다.

하얀 코스튬에는 붉은 피가 얼룩덜룩 묻었다.

나는 지금 어떤 표정일까?

복면을 벗고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는 예비 히어로 디오가 없었다.

인간 도은호도 없었다.

거울 속의 남자가 누군지 모르겠다.

복면을 봤다.

DO.

더 이상 나는 디오가 아니었다.

모르겠다.

손가락에 묻은 피로 D와 O 사이에 unn을 썼다.

피로 쓴 글자가 서로 이어붙어서 마치 삐뚤어진 이빨처럼 보였다.





DunnO





모르겠다.

무엇이 정의인지, 누가 악당이고, 누가 히어로인 건지.

내가 히어로가 되고 싶기는 했던 건지.

지금 내 행동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이게 무슨 소란이야! 잠을 잘 수가 없잖아"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듣고 황급히 복면을 썼다.

돌아보자 박영택이 나이트가운을 입은 채 나왔다.

그는 나를 보고 놀랐다.


"누, 누구야?"


나를 보고 놀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허리를 양손으로 휘감고 쭉 내달렸다.

그의 뒤로 커다란 창이 보였다.

창밖으로 해가 막 떠오르려는 엘 시티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있는 힘껏 창에 부딪혔다.

강한 충돌에 창이 깨지며 바깥으로 떨어졌다.

55층은 생각보다 높았다.

태양마저 가깝게 느껴지는 아득한 높이였다.

하지만 곧 태양과 빠르게 멀어졌다.


"으아악!"


박영택의 비명과 바람 소리가 크게 들려 귀가 아팠다.

하지만 바닥에 처박히면 그거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정말 고통스럽다.

그에게도 꼭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웃고 있던 브이 피디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상당히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내게 질문했다.


"FS건설 박영택 사장을 누가 지키고 있습니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의 반응에 브이 피디는 한 걸음 다가오며 계속 말을 이었다.


"히어로와 경찰들이 지키고 있죠? 누구는 먹을 밥이 없어서 빵을 훔쳤다가 감옥에 갑니다. 근데 누구는 수천억을 해 먹고도 호화로운 집에서 삽니다. 심지어 공권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그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웃기지 않습니까? 누군가는 죄가 무죄가 됩니다."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컨테이너 촌에 불을 지른 거 누군지 아십니까? FS건설입니다. 거주지를 구하지 못한 불쌍한 시민들을 내쫓기 위해 불을 질렀습니다."


브이 피디의 말에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숨이 막혔다.


"국토부의 비리를 내부 고발했던 공무원은 실종되었습니다. 근데 누구도 찾지 않습니다."


그의 목소리 톤이 점점 격앙되었다.


"그 공무원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경찰과 히어로가 모를까요?"


그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봤지만, 복면 속에 감춰진 내 눈은 그를 바라보지 못했다.


"이런 세상을 지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덧붙여 이런 소식 전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FS건설의 박영택 사장, 당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파사 쇼핑센터 책임자였습니다."


그의 말에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뻔했다.

그는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당연히 돈과 권력으로 죗값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인간이 지금도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습니다. 10년 전이랑 지금 바뀐 게 있습니까?"


그는 한 발자국 물러났다.


"10년 후에는 바뀔까요?"


복면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눈물이 흘렀다.

슬픔이 아닌 분노와 증오의 눈물이.


"빌런의 유래가 뭔지 아십니까? 농장일꾼입니다. 옛날에 영주들과 귀족들의 횡포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도둑질을 하면서 그 뜻이 악당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 템포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악당들은 세상을 바꿨습니다."


그가 돌아서서 등을 보이며 내게 말했다.


"히어로로 남아 이 빌어먹을 세상을 지키시겠습니까? 아니면 빌런이 되어 세상을 바꾸시겠습니까?"





나는 최악의 순간 내가 초인이라는 걸 알았다.

가족들이 전부 죽고 내게 남은 건 유산과 정부에서 나온 약간의 보상금.

유족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도, 부실 공사의 책임도 없었다.

이 세상에 도저히 혼자서 살아갈 용기가 없었다.

모든 걸 잃은 그때 나는 투신자살을 했다.

온몸이 부러지고, 내장이 터지는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살아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옷을 들춰보니 몸 상태는 그대로였다.

그날은 도은호가 죽고 디오가 태어난 날이었다.

그리고 오늘 예비 히어로 디오도 죽는다.





빠른 속도로 떨어졌지만 모든 게 느리게 보였다.

박영택은 의식을 잃었는지 눈이 풀려 있었다.

아래를 바라보자 바닥이 점차 가까워졌다.


-퍼억!!!!


바닥에 충돌하자 박영택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졌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전신에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도은호가 죽었을 때보다는 견딜만했다.

물론 뼈가 으스러지고 몸이 안에서부터 폭발할 거 같은 끔찍한 고통은

또렷한 정신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진다.

죽어버린 나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두고 일어난다.

부서진 뼈와 으깨진 살점들이 빠르게 회복된다.

아직도 어떤 게 옳은 것인지 나는 모른다.

아마 평생 모를 것이다.

근데 확실히 아는 게 있다.

나는 지금부터 히어로가 아니다.

빌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