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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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찾습니다.

 이름: 최미래

 나이: 만 20세（실종 당시 고 3, 18세）

 실종 당시 교복 착용, 외투는 착용하지 않음.

 정말 소중한 아이입니다. 집으로 돌려보내주세요.-

 죽는다는 건 밑이 없는 바닥으로 밀려 떨어지는 것 같은거다. 

 그렇지만 내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추락의 마지막은 언제나 침대 위다. 

그러면 나는 다시 10월 5일부터 살아가게 된다.

 "아악!"

 악몽을 꾼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면 엄마가 화들짝 놀라면서 내 방으로 온다. 

폭신폭신하고 따뜻한 침대의 잔열이 방금까지 내가 여기에 누워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래야, 안 좋은 꿈이라도 꿨니?"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엄마가 걱정을 해준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켜서 날짜를 확인한다. 10월 5일, 토요일. 이 루프가 다시 시작됐다는 뜻이다.

 "코코아라도 좀 마셔. 미래야."

 "으응...."

 "다 마시면 거실로 나와서 핫케이크 먹어라?"

 "네에..."

 비몽사몽 졸린 척 눈을 부비며 대답하면 엄마는 내 볼을 쓰다듬다가 방을 나간다.

거실에는 방금 만든 듯한 퐁실퐁실한 핫케이크가 시럽이 뿌려진채로 새하얀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맛있니?"

 "네, 맛있어요!"

“냉장고에 케이크도 있으니까 좀 먹어.”

“네.”

 식탁의 두 개의 빈 자리를 보지 않으려 애쓰며 밝게 대답했다. 

내가 화를 내거나, 이상함을 느끼거나 아빠와 미주의 행방에 대해 따져 물으면 엄마는 화를 냈다.

 나는 다정한 엄마가 좋았다. 

비록 가짜일지라도, 다정한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이다. 

그냥 엄마가 해준 핫케이크가 맛있다고 하는 것이 토요일을 넘기는 가장 나은 방법이다.

 "그러면 분리수거라도 좀 하고 올래? 부탁이야."

 말 없이 핫케이크를 우물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플라스틱과 소주병, 박스 쓰레기를 낑낑거리면서 들자, 건너편 집의 문이 열린다. 김지한이다.

 "안녕?"

 인사를 건네자, 옆집에서 나온 김지한은 나를 가볍게 무시한다. 

 "인사 좀 받지?"

 발가락으로 툭툭 건들며 말하자 그제서야 날 돌아보았다.

 "아, 있었냐? 안녕."

 "정말 인사해줘서 고맙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어색함이 가득하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보려고 했지만 그것마저 쉽지는 않다.

 "지한아."

 "말 걸지 마."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띠꺼운 대답이기 때문이다.

 "우리 친구잖아."

 "그랬을지도."

 "왜 갑자기 나한테 차갑게 구는거야?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주근깨가 내려앉은 콧등과 하얀 피부, 그 위로는 서늘한 눈빛이 있었다. 

루프 속의 지한이는 항상 나에게 차갑다. 그걸 마주할 때마다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나는 지한이도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내 고백에 수줍게 웃으면서 수능이 끝나면 답해주겠다고 하던 지한이는 어디로 가버린걸까?

이 루프 속, 이 이상한 세계를 벗어나면 다시 다정한 지한이를 만날 수 있는걸까?

루프가 반복될 때마다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넌 잘못이 없어. 내 마음의 문제였지."

 "다른 여자애가 좋아졌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줘."

“그건 아니야. 한 번도 그런 적 없어.”

“그래. 독서실 가는 길이지? 잘가.”

 매 루프마다, 나는 지한이에게 묻는다. 그럴 때마다 지한이는 대답한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문제는 자기의 마음이라고. 

분리수거를 마치고 돌아와서, 나는 다시 방 안에 쳐박힌다.

엄마가 식사하라고 부를 때 빼고는 나가지 않는다.

 "미래야, 밥 먹어야지~"

 이번에는 생선구이에 된장국이었다. 

엄마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준비한다. 

평소라면 해주지 않았을텐데도.

사실 내가 이상한 루프를 알아차린 것도 엄마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핫케이크와 생선구이다. 핫케이크엔 시럽도 쫙쫙 뿌려져 있다. 

이상한 일이다. 엄마라면 절대 이럴리 없다.

 "엄마, 미주는 병원에 있나?”

이전 때처럼 다시 같은 것을 묻는다. 흥분한 상태도 안되고, 별 것 아니란 듯이 물어야 한다. 

그러면 엄마는 호호 웃으면서 대답해준다.

“어머, 얘는. 병원에 가 있잖아.”

“아빠도?”

“그럼그럼. 미래야.... 엄마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장래희망에 대한 거로 학교에서 연락왔어?”

엄마가 입을 열기 전에 대화를 미리 가로챈다.

“그러긴 한데.”

 내 꿈은 탐정이다. 그래서 학교에도 그렇게 써냈다. 

그랬더니 담임이 장난치지 말라고 왼손으로 뒤통수를 갈겼다. 

진지하다고 말하니 오른손으로도 뒤통수를 갈겼다.

“알아, 엄마 말대로 탐정이란 직업이 대한민국 어디에 있어. 다른 좀 현실적인 걸로 바꿔놓을게. 그래야 면접 볼 때 할말이 있지.”

“으응....”

엄마는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온다. 

방문을 완전히 닫아두어도 엄마는 어느 새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빈틈으로 날 지켜본다.

액션퍼즐패밀리를 플레이하면서, 학교 점수를 올리다가 어느 새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에 든다.

 일요일엔 엄마가 교회에 간다. 미주가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러 가는 것이다.

자유시간 같은 게 생기는 것이다. 있어봤자 별 건 없다.

평소처럼 공부하는 척 좀 하다가 엄마가 해둔 밥을 먹고 게임을 하면 된다.

 다만 냉장고는, 냉장고만큼은 열면 안된다. 

 냉장고에는 이 모든 것의 원인일지도 모르는 것이 있다.

 바로 하얀 생크림 케이크다.

그 다음 월요일.

 ......월요일 점심의 급식엔 맛없는 코다리 강정이 나온다. 

원래는 싫어했지만, 익숙해지니 먹지 못할 것도 없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싫어하는 것이라도 반복적으로 들이밀어지면 점점 익숙해져가는 것이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이 코다리 강정을 먹었다. 

몇 번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시간은 일주일 이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게 다음 주는 오지 않는다. 

그러니 중간시험을 보는 일도 없고, 츄러스를 뜯으며 젤리소다를 마시고, 롤러코스터를 타볼 일도 없다. 

 나는 내가 살해당하는 이상한 일주일에 갇혀있다. 

내 일주일은 토요일부터 시작해서 금요일로 끝난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 나는 어김없이 살해당한다.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연극에 갇혀있는 것 같다.

연극. 그래, 연극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하다. 

이 일주일 간, 난 옆반 아이들을 본 적 없다.

내 일주일 동안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전부는 아니다. 내 반복되는 일주일 속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X자 표가 그려진다.

그 X표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내 눈에만 보인다. X자가 그려진 사람들은 다음 일주일에서 사라져버린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나와 같이 급식을 먹었던 소희도, 아빠도 사라져버렸다.

 소희는 3번째의 화요일이었다.

그 날, 소희는 내내 뭔가를 참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점심 때, 울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하지 말자고 했어. 이건 옳지 않다고 했어.' 

지연이와 혜수는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소희의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묻자, 어색하게 웃으면서 소희를 끌고 가버렸다. 

'미래야, 넌....미래가.....' 

팔다리를 버둥거리면서 소희는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지연이와 혜수는 철저히 소희를 막아서 들을 수 있는 건 많이 없었다. 

우는 채로 끌려간 소희는 얼굴에 X자가 쳐진채로 돌아왔다. 

돌아온 소희는 미묘하게 혼이 빠져있는 것 같았다. 

 아직도 소희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지 궁금하다.

 -미래야, 넌..... 미래가.....

 내게 미래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그렇다면 왜 그걸 말해주려고 했을까?

다시 한 번 소희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연이와 혜수는 우리를 단 둘이 두지 않으려고 했다. 

다음 루프에서, 소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른 아이들에게 소희에 대해 물으면, 소희는 아파서 쉰다고만 했다. 

오래된 친구가 되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생긴다.

지연이와 혜수는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소희는 그 뒤로 볼 수 없었다.

 아빠는 14번째였다. 

14번째 금요일에 엄마와 싸우던 아빠는 내 얼굴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미안해, 미래야. 미안해. 아빠랑 가자, 저 집에 있으면....!'

꺼으으억 꺼으으억 짐승같은 소리를 내면서 내 손을 잡아채고 달렸다. 

집으로부터 벗어나 달렸다. 

집에 있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만 같았다. 

양말차림으로 정신없이 달리다가, 아빠는 멈춰섰다. 

그러다가 끼릭거리면서 목을 돌리며 나를 돌아봤다. 

이질감이 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래야, 왜 밖에 있니? 들어가자.'

얼굴에는 X자가 쳐져 있었다.

 -미안해, 미래야. 미안해. 아빠랑 가자, 저 집에 있으면....!

 집에 있으면 뭐가 문제가 생기는 걸까? 아니면 집에 있어서 이 모든 일이 생겨난걸까?

아빠는 그 뒤를 말해주지 않았다. 

소희가 그랬듯, 그 다음 일주일부터 아빠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하예은. 

하예은은 원래 나와 말을 섞는 일도 없는 애였다. 

그런 애가 어느 날 갑자기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하예은을 싫어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래서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다. 하예은이 사라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 루프엔 규칙이 있다. 

정해진 행동을 벗어나는 사람은 얼굴에 붉은 X표시가 생긴다. 

X자가 생긴 사람은 사라져서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학교에 돌아가면 하예은이 사라져있겠지.

그래서 저번 주에는 하예은이 최고의 한 주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죄책감이 사라지진 않는다. 어느 날, 이 루프가 풀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걸까.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가버린걸까. 

신발코 끝을 보면서 걷다보니 어느 새 학교에 도착했다.

도착한 학교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동안 없던 몇몇 선생님들도,  다른 반 애들도, 전부 있었다.

하예은과 하예은의 무리, 그리고 소희만 없는 걸 빼면, 완벽하게 루프 이전의 세계 같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거지?

“안녕, 미......꺄아아악! 미래야! 칼, 그 칼 내려놔!”

 모든 루프에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한다.

언젠가 악몽에서 깨어나는 방법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죽으면 깨어날 수 있다고. 지금껏 내가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건 내가 꿈 속에서 살해당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럼... 살해당하는 게 아니라면 괜찮은게 아닐까? 

이렇게 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다음주에서 깨어날 수 있는 게 아닐까?

피가 솟는다. 더 없이 붉은색이다. 

놀란 지연이와 혜수가 달려온다. 

그리고 그 둘의 너머로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서 있다.

항상 날 살해하는 그 남자. 남자는 얼굴을 감싸쥐고 있었다.

“아아아아악! 젠장!”

왜인지는 몰라도 내 행동이 엿을 먹인 모양이다.

너만 날 죽일 수 있는 줄 알았나보지? 나도 할 수 있어, 개새꺄.

붉다.

붉게 변해간다. 

붉은 것은 어둡게 삼켜져간다.

다시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