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뭐야! 얘네 왜 이래!"

빌런 프로듀서 피디, 브이 피디가 테이블을 치면서 일어나자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됐다.

브이 피디는 상심한 얼굴로 터벅터벅 걸으며 사무실 중앙에 있는 둥근 테이블에 앉았다.


"회의합시다, 박 실장, 아이나, 제이 윌모, 에이타 테이블로 와주십시오"


"네~"


직원들이 대충 대답하고 미적미적 거리자 피디는 손뼉을 치며 그들을 독려했다.


"힘든 거 아는데 급한 일입니다. 이거 우리 일정 다 꼬이게 생겼어요."


직원들은 하나 둘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긴급 상황이 뭡니까? 피디님?"


박 실장이 수첩을 펴면서 묻자 브이 피디가 말했다.


"박 실장님 우리가 새로 영입할 빌런이 누구였습니까?"


"버닝이요. 피디님도 지원 영상 보시고 만족하셨잖아요."


"그렇죠? 버닝이죠? 저는 버닝 지원 영상보고 진짜 팬이 되었습니다. 그 누가 엘 타운에 불을 지를 생각을 하겠습니까?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문제 제기도 좋았습니다. 거기다 불을 쓰는 능력까지! 와우! 너무나 데려오고 싶습니다."


브이 피디는 두 손을 모으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체포된 거 때문에 그러십니까?"


박 실장이 브이 피디를 보며 말하자 브이 피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닝 잡힌 거 때문에 그러세요? 진검 때처럼 뱅가드를 보내면 되잖아요. 호송 차량 습격해서 빼면 쉬운데, 저번처럼"


마케팅 부서의 아이나가 펜을 딸깍거리며 말하자

브이 피디는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안경을 벗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안경을 썼다.


"아이나 씨,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회의를 할 필요가 없지요?"


아이나는 입술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방금 경찰 브리핑을 봤는데 진검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히어로 측에서 버닝을 데리고 있다고 합니다."


브이 피디는 말을 마치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직원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었다.


"히어로 본부요?"


컨셉 담당 제이 윌모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리고 잠시 멈추더니 되물었다.


"근데 그게 왜요?"


"히어로 본부에는 히어로들이 상주하고 있어서 버닝을 구해오기 쉽지 않을 겁니다. 뱅가드도 히어로를 상대로는 버겁습니다. 브이 피디님, 버닝 영입은 포기하거나 미루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분석팀의 에이타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말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만 골라서 하는 탓에 잠자코 듣던 브이 피디의 인상이 더욱 구겨졌다.

얼굴에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버닝은 왜 공개 지원을 해서~어~"


브이 피디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끝을 질질 끌었다.


"진검이 컸죠. 공개 지원 영상이 멋있잖아요. 임팩트가 빡!"


아이나가 주먹을 불끈 쥐고 브이 피디에게 밀어 보였다.

브이 피디는 아이나의 주먹을 고스란히 쥐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확실히 진검 이후로 공개 지원 영상이 많아졌죠? 덕분에 공개 지원했다가 잡혀간 범죄자도 늘어나고"


박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빌런 진검의 영상 덕분에 빌런 프로듀스의 입지가 굳어진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조회 수와 노출도가 달라졌다.


"확실히 진검의 여파가 컸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한 눈에 받았죠. 게다가 빌런 프로듀스를 어그로 취급하던 사람들도 실제로 빌런 프로듀스 측에서 진검을 빼내는 걸 보고 신뢰가 올라갔습니다. 공개 지원 영상이 급증한 것도 그때부터입니다. 여기 자료 있습니다."


에이타가 진검의 데이터를 브이 피디에게 건네며 말했다.


"에이타, 히어로 본부 습격하는 건 역시 좀 아닌 건가?"


버닝에게 미련을 못 버린 브이 피디가 눈을 꿈뻑거리며 묻자 에이타가 바로 대답했다.


"피디님 전면전하려고 빌런 프로듀스하는 거 아니잖아요. 애초에 전력부터 차이가 납니다. 버닝은 포기하는 게 맞습니다."


"에이타 말이 맞아요. 지금은 버닝 영입보다는 진검 런칭에 집중합시다. 제이 윌모, 진검 스타일링은 마무리된 거죠?"


박 실장의 말에 제이 윌모가 진검의 프로필 사진과 장비 세팅을 보여주며 말했다.


"진검은 언제든 런칭 가능합니다."


"오, 깔끔하고 괜찮은데요?"


"머리 스타일 때문에 좀 트러블이 있었지만"


"머리 스타일?"


"그분이 긴 머리를 고수하시는데 세련된 이미지를 위해 숏컷을 추천했거든요. 결국 단발로 합의 봤습니다. 설득하기 힘들었습니다."


제이 윌모는 이마의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피디님 진검 타겟은 국토부 전 장관으로 가는 겁니까?"


"지금 여론 봤을 때는 장관을 죽이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쇼핑센터 허가 정보 유출로 수천억 차익을 내놓고 고작 직위 해제? 많은 국민들이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진검 스스로도 원하고 있습니다. 빌런 진검 컨셉과 취지에도 맞고"


브이 피디가 이마를 만지며 말하는데 아이나가 핸드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었다.


"아이나 씨 뭐봐요?"


브이 피디가 황당해하며 묻자 아이나가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버닝이요. 이거 일반 시민들이 찍은 건데 인기 엄청 많아요! 화재 현장에서 시민들도 구했대요. 여기 봐봐요."


아이나가 핸드폰 화면을 브이 피디의 얼굴에 내밀었다.

영상에서는 버닝이 히어로들과 함께 아이들을 구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나왔다.


"잠깐 정지"


브이 피디는 아이나의 핸드폰을 뺏어서 직접 봤다.


"여기 같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브이 피디는 아이나의 핸드폰을 에이타에게 건네며 물었다.

에이타는 화면을 보자마자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비 히어로 디오와 인파워입니다."


"버닝을 업고 있는 사람은?"


"디오입니다. 여기 예비 히어로 분석자료 있습니다."


에이타는 파일에서 문서를 뒤적이다가 예비 히어로의 프로필을 꺼내 브이 피디에게 건넸다.


"예비 히어로도 분석했습니까?"


"빌런 1호, 장전이 지금 예비 히어로니까 당연히 조사해야죠."


브이 피디는 찬찬히 디오의 프로필을 살폈다.

히어로 네임 디오.

본명 도은호.

프로필을 살피던 브이 피디의 눈에 가족란이 비어있는 게 보였다.


"이 디오라는 히어로, 가족은 없는 겁니까?"


"그게 찾아봤는데 예전에 파사 쇼핑센터 붕괴사고 때 가족을 전부 잃었다고 합니다."


브이 피디는 입을 벌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파사 붕괴 사고, 전문가들이 붕괴 위험 있다고 경고했는데, 안전 검사 허가 났다고 오픈했다가 결국 참사가 벌어졌었죠. 근데 알고 보니 허가도 다 거짓이고?"


"하여간 사기꾼들이야"


아이나가 표정을 찡그렸다.


"사기꾼"


브이 피디는 안경을 다시 썼다.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눈을 뜨자 안경에 가려졌던 날카로운 눈매가 드러났다.


"사기꾼"


"네, 사기꾼"


"사기꾼?"


브이 피디는 강하게 탁자를 쳤다.


- 탁!


"진검 런칭합시다. 당장"


"지금요?"


"타겟도 바꿉니다. FS건설 박영택 사장으로"


브이 피디의 말에 박 실장이 당황해했다.


"국토부 전 장관이 아니라 박영택 사장이요? 물론 박영택도 리스트에 있긴 한데 현재 준비된 플랜이 아예 없습니다."


박 실장의 만류에도 브이 피디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플랜은 필요 없습니다. 아이나 씨, 24시간 안에 박영택 죽인다는 예고 영상 제작해 주세요. 진검 목소리가 꼭 들어가야 합니다."


"영상은 만들 수는 있는데 언제까지요?"


"퀄리티는 낮아도 좋으니 1시간 안에, 빠를수록 좋습니다."


"30분이면 됩니다."


"오케이!"


브이 피디는 말을 마치며 손가락으로 아이나의 자리를 가리켰다.

아이나는 바로 자신의 자리로 힘찬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박 실장은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플랜도 없는데 살인 예고 영상이라니요! 진검의 공식적인 첫 빌런 활동인데 실패라도 하면"
브이 피디는 자신에게 따지는 박 실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박 실장, 지금 진검이 살인 예고를 하면 경찰이랑 히어로가 어떨 거 같습니까?"


"당연히 예고하면 경찰이랑 히어로들이 박영택을 지키겠죠."


"그렇죠? 대비를 하겠죠? 빌런 진검이 어떤 캐릭터인지 아니까, 축구장에서 선수 다리 자른다고 진짜로 가서 자르는 놈이니까. 거기다 우리 쪽에서 자신감 있게 대놓고 공격한다고 하면? 더욱더 과하게 대비를 하지 않겠습니까?"


"아! 사기! 진검을 막으려고 히어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본부를 치는 거군요."


박 실장은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빌런은 솔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사기 한 번 칩시다."


브이 피디는 사악하게 웃었다.





책을 읽던 장전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 나가더니 문을 열었다.


"어디 가십니까?"


"잠깐 화장실 좀"


장전은 짧게 대답하고는 문을 닫았다.

밖으로 나온 장전은 조준경을 장착했다.

그리고는 상황실로 향했다.

상황실에 있던 대원들은 장전을 보고 가볍게 인사하고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

장전은 상황실 맨 뒤로 가더니 순식간에 마취 총으로 대원을 전원 기절시켰다.

그렇게 장전은 아무런 의심을 받지 않고 히어로 본부를 돌아다니며

짧은 시간 동안 모든 대원들을 기절시켰다.

그리고는 본부 중앙에 소형 EMP탄을 설치했다.


"EMP탄 설치 완료, 30초 후 작동 예정입니다. 앞으로 통신은 안 되니 히어로 본부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장전, 썬을 비롯한 주력 히어로가 엘 타운에 있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버닝 구출 작전 시작합니다."


뱅가드 대원들과 진검 그리고 브이 피디는 히어로 본부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왔다.

EMP탄 때문에 방어 시설이 작동하지 않았고, 모든 경비 대원들이 전부 기절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입구에는 장전이 서 있었다.


"장전, 수고했습니다. 작전 수행 중에 문제가 되는 점 없었습니까?"


브이 피디가 장전에게 질문했다.


"지하로 가는 문이 잠겨 있어서 그쪽에 있는 사람들은 기절시키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히어로가 아닌 이상 전투력은 저희가 위입니다."


"그리고 또 한 명 기절을 못 시켰습니다. 마취총을 맞았는데도 기절을 안 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대기실에 있습니다."


"못 맞춘 거 아닙니까?"


진검의 말에 장전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알겠습니다. 버닝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하 시설에 감금되어 있는 거 같습니다."


"EMP 때문에 전자 폭탄을 못 써서 구형 폭탄인데 괜찮겠습니까? 폭발음이 클 텐데"


"3~6시간 동안은 절대 못 일어 나니까 안심하십시오."


"그렇다면 제가 나설 일은 없겠군요."


진검의 말에 장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전과 진검 그리고 브이 피디와 뱅가드 대원들은 아무런 교전 없이 평온하게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실은 두꺼운 문이 있었다. 뱅가드 대원들은 폭탄을 설치했다.


"뒤로 물러나십시오."


-쾅!!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와 파편이 튀었고, 지하로 가는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지하에 있던 히어로 본부 직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EMP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해 갇혀있었다.


"뭐야 당신들"


뱅가드가 총을 겨누자 그들은 모두 손을 들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장전이 손을 들고 있는 직원들에게 마취총을 쐈다.


"그거 도대체 몇발 있는 겁니까?"


진검이 신기해하며 묻자 장전이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대답했다.


"비밀입니다."


지하에 있던 히어로 본부 대원들을 제압하고,

끝에 다다르자 철문 너머 창으로 손이 물에 담긴 채 포박되어 있는 버닝이 보였다.

버닝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은 무리를 보며 놀라 소리쳤다.


"어? 뭐야? 진짜 빌런 프로듀스? 구하러 온 겁니까?"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빌런 프로듀스에서 나왔습니다."


철문은 단단하게 잠겨 있었다.


"여기도 들어가려면 폭탄을 써야겠습니다."


브이 피디의 말에 뱅가드 대원들은 다시 한번 폭탄을 사용했다.


-쾅!!!


폭탄이 굉음과 함께 터지고 문이 열렸다.

뱅가드 대원들은 안으로 들어가서 버닝의 포박을 풀었다.


"와! 이렇게 빨리 구해준다고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빌런 프로듀스의 브이피디입니다. 3호 빌런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오예!!"


브이 피디의 말에 버닝은 물에 팅팅 불은 손을 흔들며 기뻐했다.

버닝이 뱅가드와 브이피디를 조우하는 동안 밖에서 망을 보던 진검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누구십니까? 괜찮으십니까?"


진검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봤다.

커다랗게 DO가 적힌 복면을 쓴 남자가 진검을 향하고 있었다.

진검은 검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히어로는 전부 엘 타운에 있는 거 아니었나?"


진검이 장전에게 따지듯 물었다.


"진검? 왜 여기에?"


디오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히어로는 전부 엘 타운에 있다고 했잖아요."


진검의 말에 장전이 대답했다.


"저 사람은 히어로가 아닙니다."


장전의 대답에 진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앞에 있는 사람의 모습은 히어로였다.


"그럼 저 복장은 뭡니까? 누가 봐도 히어로인데"


"예비 히어로 디오입니다."


장전의 대답에 진검은 울화통이 터졌다.


"아니!! 그럼 히어로가 있는 거잖아요. 예비 히어로는 히어로가 아닙니까?"


진검의 고함에도 장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진검 옆으로 다가서며 대답했다.


"예비 히어로와 히어로는 엄연히 다릅니다."


뱅가드 대원들과 버닝을 데리고 나오던 브이 피디가 후다닥 뛰어나오며 말했다.


"잠깐만 디오가 있다고요?"


브이 피디가 가까이 가자 디오는 전투 자세를 취했다.

브이 피디는 황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헬멧을 벗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함께.


"반갑습니다. 디오 씨, 빌런 프로듀서의 브이 피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