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타운은 엘 시티 중심가 어디에서든 보이는 초고층 아파트로

이름 있는 정·재계 인사들이 사는 럭셔리 아파트다.

정말 엘리트 중의 엘리트, 부자 중의 부자들만 거주하는 곳이다.

그 근처를 지나갈 때면 압도적인 외관과 더불어 휘황찬란한 조명에 시선을 빼앗긴다.

특히나 주변을 감싼 외벽이 인상적이다.

마치 다른 세상과의 경계인 듯, 철저하게 이 세상과 선을 긋는다.

나와 인파워가 엘 타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소방차들이 큰길 쪽에 줄줄이 서 있었다.

건물 바깥에서 전체를 쭉 훑어봤는데 화재의 흔적, 불이라던가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


"오셨습니까?"


작은 체구의 남자가 엄청난 속도로 나와 인파워 앞으로 나타나 말을 걸었다.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옅은 녹색 의상에 고글.

고글을 보고 그가 예비 히어로 돌풍임을 알았다.

그는 몸집이 작은데도 쉽게 눈에 띄는데 그에게서 풍겨오는 특유의 정신없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인파워는 돌풍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랐는지 자연스럽게 가드를 올렸다.


"놀라지 마세요, 저 예비 히어로 돌풍입니다. 하핫"


돌풍은 두 손을 흔들며 인파워를 진정시켰다.


"후, 놀랐다기보다는 저의 방어 본능입니다."


인파워는 민망했는데 가드를 내리며 둘러댔다.


"상황은 괜찮은 겁니까? 불은 내부에서 난 겁니까?


돌풍에게 묻자 돌풍은 자연스레 우리를 지하주차장 입구로 안내하며 대답했다.


"불은 엘 타운 지하에 있는 지하주차장에서 났습니다. 스프링클러도 작동했고, 소방관들이 빨리 출동해주셔서 불은 다 껐습니다. 사실 불 끄는 건 그들이 전문가니까"


"사상자는 있습니까?"


나는 걱정되는 마음으로 물었다.


"다행히 사상자도 없습니다. 근데 자동차를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 굉장히 마음이 아프더군요. 다시 생각해도 울컥하네요. 그 슈퍼카들이 고철 덩어리가 되다니"


"슈퍼카들? 몇 대나 불에 탄 겁니까?"


인파워의 물음에 돌풍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글 때문에 더욱 눈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전부 불에 탔어요. 그 비싼 것들이 몽땅 타버렸습니다. 주차장에 있던 모든 차가 동시에 불에 타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질렀군요?"


"예쓰!"


고개를 과하게 끄덕이는 돌풍 뒤쪽으로 새까맣게 타버린 차를 들고 올라가는 사람이 보였다.

같은 예비 히어로인 소드맨과 에프에잇（F8）이었다.

방범 실습 첫날 본 히어로들이었는데 그다지 마주칠 일은 없었다.

돌풍은 빠른 속도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정확히는 그들이 아니라 불에 타버린 자동차에게.


"이럴 수가!! 파이브 스타 모터스에서 만든 판타지 스타?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돌풍은 시꺼멓게 타버린 슈퍼카를 앞에 두고 호들갑 떨며 말했다.

그러면서 손으로 문드러진 엠블럼을 새끼 고양이 다루듯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돌풍 씨는 안 옮기십니까?"


돌풍을 무심하게 바라보던 소드맨이 자동차였던 것을 잠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소드맨이 조곤조곤 말했지만 제3자가 보기에 뉘앙스는 분명했다.

너도 일 좀 해라.


"저는 다른 분들처럼 자동차를 들만한 근력은 없어서요, 속도 몰빵 히어로라서 죄송합니다. 근데 이거 잠시 검색 좀 해볼게요, 출시일이 언제였더라?"


생각보다 뻔뻔했던 돌풍은 소드맨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켜서 차량을 검색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소드맨은 고개를 젓고는 다시금 차를 들어 올렸다.

밑으로 내려가던 나와 인파워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도와드릴까요?"


내 물음에 소드맨은 뒤를 힐끗 봤다.

뒤에는 같이 자동차를 들고 있는 에프에잇이 보였다.


"에프에잇 덕분에 여긴 둘이 들어도 괜찮으니까 밑에 다른 히어로님들을 도와요, 보니까 인파워씨는 힘 좀 쓰겠구먼"


그 말을 들은 인파워는 히죽 웃더니 팔을 위로 쭉 뻗어 스트레칭하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밤새 힘을 써야 하나?"


소드맨은 뒤쪽을 힐끗보며 웃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왜요?"


"지나가겠습니다."


순간 뒤쪽에서부터 누군가 차를 들고 저공비행으로 날아와 우리 머리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의 날아가는 자태를 보고 놀라서 멍하니 바라봤다.

썬 이었다.


"썬 님이 계시니까요"


소드맨이 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썬 님은 정말 볼수록 대단하네요. 마치 히어로가 되기 위해 선택받은 거 같습니다."


인파워 역시 동감했다.

히어로들의 히어로. 압도적인 괴력과 비행능력까지 거기에 인성은 덤.

많은 히어로들의 귀감이다.

정말이지 귀한 히어로.

나는 멀어져가는 썬을 보며 말했다.

팬심을 가득 담아.


"가까이에서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네요. 물론 지금보다 가까이서 본 적은 있지만, 우리도 얼른 썬 님을 도와 차를 옮깁시다"


"대박사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돌풍이 소리쳤다.


"연예인 스캔들 기사라도 봤나요?"


소드맨이 약간 비아냥거리는 투로 묻자 돌풍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우리에게 건넸다.

그가 건넨 스마트폰 화면에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30분 전] 빌런 프로듀스 공개 지원 빌런 버닝, FIRE!!!


빨간 선글라스에 빨간 가죽 재킷. 검은색 가죽바지.

마치 불에 타고 있는 듯한 스타일의 남자가 주차장 한가운데 서더니 카메라를 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세상 모든 부자의 돈을 태우고 싶은 버닝입니다. 여러분 그거 아세요? 엘 타운 거주자들이 쇼핑센터가 들어오기 전에 근처 땅을 모조리 사버렸다는 사실. 땅값이 얼마나 뛰었을까요? 10배? 우습네요. 100배 뛰었습니다. 아마 더 오를 겁니다. 참고로 우리끼리 이야기인데"


버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카메라에 대고 속삭였다.


"쇼핑센터를 건설하기로 한 FS건설 사장님과 허가를 내준 국토부 전 장관님이 엘 타운에 살고 있다네요. 여기 거주하시는 분들, 돈도 많이 벌었으니 슈퍼카 정도는 좀 태워도 괜찮잖아? 물론 이 정도 손실은 티도 안 나겠지만"


버닝은 카메라를 보며 다시금 웃더니 양팔을 벌리고 외쳤다.


"그들의 모든 돈을 태우기 위해!"


그의 손에서 작은 불길이 치솟았다.

이내 그 불은 점점 커졌고 남자는 그 불덩이를 주차장에 있던 차들에 쐈다.

강력한 불길은 차량을 하나하나 집어삼켰다.

그는 돌아다니며 차량을 모두 태웠다.

사이렌이 울리고 스프링클러가 작동했다.

카메라 앵글로 돌아온 그의 머리 위로 물이 쏟아졌다.

그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매력적일 정도로 광기 어린 미소가 보였다.





"돌아이 아니야?"


영상이 끝나자마자 인파워가 힘껏 인상을 쓰며 말했다.


"빌런 프로듀스?"


내 물음에 돌풍이 대답했다.


"빌런 프로듀스 몰라요? 최근에 활동하기 시작한 테러조직이에요. 얼마 전 축구선수 제임스 다리 절단한 것도 얘네 소행입니다."


"그 다리를 절단한 진검은 빌런 프로듀스의 도움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되었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빌런 프로듀스에 영입되었으니 머지않아 나쁜 짓을 하고 다니겠지요. 애초에 말이 됩니까? 범죄자들을 지원해 주는 단체가 있다는 게"


소드맨과 말을 주고받던 돌풍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듣기는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진검만 미친 게 아니었군요."


빌런 프로듀스라는 단체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역시 그 사건이 컸다.

제임스 다리 절단 사건.

생방송으로 방영된 빌런 진검의 충격적인 만행으로 많은 이들이 빌런 프로듀스를 알게 되었다.

나 또한 그 사건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진검은 당신들 생각보다 더 미친놈입니다."


소드맨이 뭔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말했다.

궁금증이 커졌다.

스마트폰을 확대해서 버닝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정지된 화면 속 버닝은 미치광이처럼 보였다.


"빌런 프로듀스는 발탁된 빌런의 범죄행위를 물심양면 돕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범죄자들이 자신의 범죄행위 영상을 채널에 올리고 있고요. 버닝이라는 이 놈처럼요"


돌풍은 영상을 종료하며 말했다.

빌런 프로듀스에 대해서 더 알고 싶었다.


"방화범 주제에 스스로를 포장하는 거부터가 인격적으로 성장이 덜된 겁니다. 불을 다루는 슈퍼 파워를 고작 자동차 태우는 데 쓰다니, 좀 더 좋은데 쓰지, 쯧."


인파워가 혀를 찼다.


"문제는 이런 범죄자들을 추종하는 무리가 생겨났다는 점입니다. 이 영상의 댓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멋지다는 칭찬이 수두룩합니다."


"미쳐돌아가는구만!"


인파워는 분이 안 풀리는지 주먹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세게 쳤다.


"근데 이거 범인이 밝혀진 거나 마찬가지인데 보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30분 전에 업로드된 거면 아직 근처에 있을 거 같은데"


"본부에 보고는 이미 했습니다."


돌풍이 손을 들고 대답했다.


"빠르시네요"





다른 히어로들과 함께 자동차를 옮기는데도 시간이 꽤나 걸렸다.

엘 타운에 거주하는 인원은 많지 않은데 가구당 소유한 차량이 많은 게 그 이유였다.

게다가 썬을 포함해서 모든 히어로들이 빌런 버닝을 수색하기 위해 투입되어 더욱 시간이 지체되었다.

오직 예비 히어로들만 남아서 불에 탄 차량을 옮겼다.

심지어 몇몇 예비 히어로는 보이지도 않았다.

인파워와 함께 차를 밖으로 끌어올린 다음 대기하고 있던 트레일러들에 실었다.


"이것도 히어로들의 의무겠지요?"


손을 털며 내가 묻자 인파워가 대답했다.


"힘센 히어로들이 해야 할 일이죠, 저희가 아니면 누가 합니까"


내가 생각했던 거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의 히어로 활동이었다.

마치 부잣집 일꾼이 된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도 몸을 쓰니 잡념이 조금은 사라졌다.

순간 하늘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스틸 윙이 내려왔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돌풍이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거의 다 끝나가니까 오시네요"


착륙한 스틸 윙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있었다.

전에 봤던 생글생글 웃던 나이스 한 표정은 사라지고 입술을 꾹 다문 채 주변을 살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눈치를 봤다.


"본부에서 지원 요청 못 받았습니까?"


"요청받고 엘 타운으로 온 거잖습니까?"


"A구역 컨테이너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지원 요청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서 직접 온 겁니다. 소방차도 이곳에 다 있고, 예비 히어로들도 전부 여기서 노닥거리고 있네요. 그곳은 지금!"


스틸 윙은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점점 높이다가 이내 화를 삭이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듣던 돌풍이 대답했다.


"근데 컨테이너촌은 철거되서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아직 거주지를 구하지 못한 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 그곳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직접 불을 끄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다시 가보겠습니다. 당신들도 빨리 그쪽으로 출발해요. 우리 예비 히어로라도 히어로답게 행동합시다"


"죄송합니다. 근데 저희도"


돌풍의 대답이 채 끝나기 전에 스틸 윙은 날아 올라갔다.


"저희도 얼른 가봅시다. A구역으로"


"제가 주차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상황보고 할게요."


돌풍은 그렇게 말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나와 인파워는 소방차에 몸을 싣고, 소방관들과 출동할 준비를 했다.

순간 소방차 문을 돌풍이 두들겼다.


-똑똑똑


"저기 인파워님이랑 디오님은 내리셔야 될 거 같습니다."


"다른 차를 타고 이동합니까?"


내 물음에 돌풍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 본 모습 중 가장 느린 모습이었다.


"그게 아니라 본부에서 컨테이너촌에는 소방차만 출동하고 저희 예비 히어로들은 엘 타운에 남은 차들을 옮기라고 하네요"


어이가 없어서 순간 멍했다.


"네? 아니 히어로는 시민들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거 아닙니까?"


살짝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상부의 명령이라"


나는 당장에 인이어를 켜고 본부에 연락했다.


"들리십니까, 예비 히어로 디오입니다."


"네, 히어로 본부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인이어로 굉장히 딱딱한 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비 히어로들도 컨테이너촌 화재 현장으로 출동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본부의 직원은 내 물음에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마치 기계처럼.


"그건 소방관들이 할 일입니다. 예비 히어로분들은 엘 타운의 마무리 작업을 해주십시오. 두 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명령입니다."


"하아-"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왔다.

인파워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인이어를 껐다.

스틸 윙의 다급했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의 표정을 봤을 때, 분명 컨테이너촌의 상황은 심각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었다.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저는 컨테이너촌에 가야겠습니다. 두 분은 본부에서 지시했으니까 이곳에 계세요. 혹시라도 명령을 어겨서 불이익을 당할지도 모르니"


내 말에 인파워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차보다는 사람이 우선 아닙니까"


나와 인파워는 본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소방차를 탔다.

그리고 화재 지역으로 출동했다.





소방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라본 광경은 불지옥을 연상케 했다.

컨테이너 빌라는 컨테이너를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들어진 탓에

하나가 불에 타면 모든 컨테이너에 불이 옮겨붙었다.

컨테이너들은 줄줄이 타올랐고, 하늘은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소화기도 거의 없다시피 해서 시민들이 양동이에 물을 퍼 나르며 불길을 제압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도 보였고, 아직 안에 사람이 있다며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불현듯 파사 쇼핑센터가 무너졌던 그날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DO.

행동해야 했다.

소방관들은 서둘러 화재 진압을 준비했고,

나와 인파워 역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저기 위에 아직 아이들이 나오지 못했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이 건물입니까?"


"네 꼭대기 층에 있어요, 제발 제발"


아주머니는 흐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나와 인파워는 망설임 없이 컨테이너 빌라로 향했다.

쌓아 올려진 컨테이너 옆으로 앙상한 계단이 있었지만, 불길이 세서 접근하기 힘들었다.

그냥 무시하고, 돌진하려는 순간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길이 갈라졌다.

마치 길을 터주듯.

옆을 바라보니 붉은 재킷을 입은 남자가 나와 인파워 뒤에서 손을 뻗고 있었다.

버닝이었다.


"뭐해요? 빨리 올라가요!!"


버닝은 놀라서 굳어있는 나와 인파워에게 소리쳤다.

버닝은 불길을 조절하며 우리에게 길을 터줬다.

덕분에 불길을 피해 계단 꼭대기까지 갈 수 있었다.

올라가자마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인파워는 당장에 문을 잡아 뜯어버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누나로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자신의 남동생을 꼭 끌어안은 채 벌게진 얼굴로 울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문을 부수고 들어온 우리를 보자마자 더욱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얘들아 이제 괜찮아 우리가 구해줄게"


나와 인파워는 아이들을 한 명씩 안고 밖으로 나왔다.


-우지끈!! 쿠궁!!


순간 계단이 바스러지며 무너졌다.

당황한 인파워는 뒤로 물러섰다.


"이런!"


"아이들은 이쪽으로!!"


순간 하늘 위에서 소리가 들렸다.

올려다보니 달빛을 등진 스틸 윙이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펴고 내려오고 있었다.

인파워는 서둘러 두 아이를 스틸 윙에게 맡겼다.

스틸 윙이 아이들을 양팔에 한 명씩 안고 날았다.

그녀가 떠나자마자 컨테이너가 무너질 거처럼 기울었다.


-쿵!


"우리는 뛰어내립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높이면 다리가 부러지겠죠?"


버닝의 물음에 돌아봤다.


"당신 초인 아닌가요?"


"불을 다루지만 당신들처럼 튼튼하지는 않습니다."


버닝은 어이없다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에게 등을 돌리고 무릎을 굽혔다.


"업혀요"


"어? 나 빌런 지망생인데 구해주는 겁니까?"


"일단 업혀요"


"감사합니다."


버닝은 감사하다며 내 등에 살포시 업혔다.


"이얏!!"


나와 인파워는 약속이라도 한 듯 불길을 피해 동시에 점프했다.

높지는 않았지만 떨어지는 순간이 슬로모션처럼 느껴졌다.


느리고, 길게.


코를 마비시키는 타는 냄새,

옆에 보이는 눈을 질끈 감은 인파워,

은은한 밝기로 우리를 비추는 새하얀 만월.

히어로 본부의 명령도 어겼고,

등 뒤에는 빌런이 업혀있는데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왜 자꾸 웃음이 나오려는지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