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컵 4강 2차전, 타이거즈 vs 파이브 스타즈


"크리스 매클레인 하프라인 근처에서 왼쪽으로 밀어줍니다. 코너킥 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는 우준 선수! 박스 안쪽으로 이어지는 크로스!"


"제임스 헤딩! 아깝게 머리에 맞추지 못합니다."


"우- 우-"


축구 경기장 가득 제임스를 향한 야유가 쏟아졌다. 홈팬, 원정 팬 구분 없이 모두가 야유를 보냈다.

야유뿐만이 아니었다.

제임스 아웃, 제임스 죽어라 등 관중석에는 그에 대한 반감이 담긴 피켓들로 즐비했다.


"팬들의 야유소리가 경기장에 울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최근에 제임스 선수에게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때문인 듯한데"


"지금 경기장에 관중 하나가 난입한 거 같습니다."


"네, 가끔 저런 관중들이 있습니다. 저런 행동은 경기를 흐름을 끊기 때문에 진정한 축구 팬이라면 절대 해선 안됩니다."


"근데 저 관중 엄청 빠르네요."


타이거즈의 붉은 유니폼을 입은 관중 하나가 미친 듯이 경기장 가운데로 달려갔다.

보안 요원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얼굴에는 타이거즈의 굿즈인 호랑이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기다란 검이 들려 있었다.

그는 제임스를 향해 달렸고, 제임스는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뭔가 위험하다는 걸 인지하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난입 관중은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제임스를 따라잡았다.

그리고는 미끄러지듯 슬라이딩하며 검을 휘둘렀다.


"끄아아아!!"


제임스는 비명을 지르며 잔디에 쓰러졌다.

쓰러진 제임스 선수 옆에 깔끔하게 잘려 나간 오른쪽 다리가 보였다.

푸른 잔디에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필드에 있던 선수들은 허둥대며 밖으로 빠져나갔고, 경기장은 순식간에 비명으로 가득 찼다.

해설자와 캐스터는 끔찍한 광경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처참한 장면은 카메라를 타고 생중계되었다.

마스크에 묻은 피를 닦아낸 그는 검을 고쳐 잡으며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가슴팍에 달려 있던 캠을 꺼내 들었다.


[실시간] 빌런 프로듀스 공개지원 타이거즈 vs 파이브 스타즈, 제임스 다리 절단 생방송


빌런 진검, 실시간 시청자 수 （61598）





EPISODE 1. 힘센 공무원


"어젯밤 범죄자를 호송 중이던 차량이 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차 안에는 며칠 전 유명 축구선수를 습격해 중태에 빠뜨린 범죄자 '진검'이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은 반정부 조직의 소행으로 보고 있으며"


라디오 소리를 뒤로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가 콧속 깊숙이 들어온다.

몇 걸음 걷자 정류장 건너편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보였다.


- 한마음 무료 급식


해가 반밖에 뜨지 않아 어둑한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이 줄지어 서 있다.

길게 이어진 줄은 안개에 파묻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늘고 길게, 낮고 어둡게.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아침 광경은 언제 봐도 음울하다.

그들이 내뱉는 입김에서 허기가 보인다.

허기가 들린다.

커다란 국통의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은은한 육향이 코끝을 맴돈다.

배식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 약간의 생기가 돈다.

일부는 탄성을 쏟고, 일부는 수군 거리기도 한다.

무료 급식으로 고깃국이 나오는 것에 법석을 떠는 그들의 모습을 곁눈질로 보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다.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 배식해주는 것뿐이었다.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생각보다 이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

처음 배식을 도우러 왔다가 정말 깜짝 놀랐다. 간단한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든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아이부터 노인까지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빨리 히어로가 되어서 이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두 번째 불쌍한 것과 선악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받는 걸 당연시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런 인간들은 전혀 돕고 싶지 않지만 예비 히어로로서 그런 마음은 고이 접어 내 마음속 깊은 어둠에 담아두기로 했다.

처음에는 히어로가 되기 위한 스펙 쌓기용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느 순간 적당한 의무감까지 생겨버려 지금까지 하고 있다.

히어로가 되기 위해 필요한 봉사점수는 진작에 채웠다.

하지만 부족했다.

아무리 내가 이곳에서 봉사한들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기에 생기는 공허함이었다.

급식소에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날마다 증가했다.

동화국의 국가 경제는 점점 성장하는데 말이다.





"히어로 지망생 씨! 고생 많았어요"


자원봉사자가 내게 음료를 건네며 말을 걸었다.

처음 봉사를 할 때부터 계셨던 분인데 붙임성이 좋으신 분이라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무료급식소는 이번 주 주말까지가 마지막이니까, 히어로 지망생 씨는 오늘이 마지막이겠네요.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봉사자는 널브러진 식판을 차곡차곡 정리하며 말했다.


"네?"


식판을 정리하던 손이 멈추었다.


"모르셨구나! 여기 이제부터 운영을 못 하거든요. 이쪽 부지에 쇼핑센터가 생겨서 공사 때문에 운영 못 한대요. 어쨌든 그동안 진짜 수고 많았어요. 나중에 히어로 되시면 진짜 응원 많이 할게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는 뒤돌았다. 마지막이라는 소식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솔직히 가끔 의무감 때문에 해서 귀찮다는 감정이 들 때도 있었고, 다른 사람을 도우며 뿌듯한 감정이 들 때도 있었다.

그나저나 무료 급식을 운영하지 않으면 저 사람들은 어떻게 끼니를 해결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음료수 캔을 땄다.


-치익


시원한 소리와 함께 음료수 캔에서 오렌지 향이 올라온다. 한 모금 들이키려는데 옆에 식사를 마친 노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몸을 웅크리고 퀭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라처럼 수분이 쭉 빠진 거처럼 홀쭉한 그를 보자니, 갈증이 났지만 음료를 마실 수 없었다.

내 손은 어느새 그 노숙자에게 음료를 건네고 있었다.

의문이 든다.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오는 걸까?

내가 히어로가 되면 해결될까?





힘센 공무원.


내 우상이었던 히어로 'SUN'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히어로를 간단하게 표현해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그가 자기를 낮추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히어로가 된다면 태양처럼 모두를 비추는 그런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히어로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 채용되거나 국가에서 치르는 국가 공인 히어로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합격해도 바로 히어로가 되는 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실습과 히어로 적성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실습 테스트는 치안 관련 업무부터 재해복구와 같은 민간 지원 등이 있었다.

나는 공인 히어로 시험에 합격하고 실습 및 테스트를 남겨둔 상황이었다.

지금은 비록 예비 히어로지만 새로운 히어로 디오（D O）가 탄생 직전이었다.

디오는 나의 히어로 네임으로 행동하는 히어로라는 의미를 가졌고, 내가 직접 만들었다.





방범 실습 첫날.

예비 히어로들은 복장에서부터 정의로움이 묻어났다.

각각의 개성에 맞는 코스튬.

히어로 실습부터는 실제 현장에 나가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의 복장을 착용할 수 있었다.

물론 히어로 부서에서 어느 정도 규제가 있긴 했다.

노출 정도라던가, 부적절한 히어로 네임 혹은 사용하는 무기에 대해서 상식선을 벗어난 건 금지했다.

하지만 대체로 예비 히어로들은 정해진 규율 내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이 담긴 코스튬을 들고나온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이트 톤의 의상에 복면에는 나의 히어로 네임을 새겨 넣었다.

하얀 색상 때문에 혼자 튀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현장에서 직접 예비 히어로들의 코스튬을 보고 느낀 건, 나는 정말 수수하다는 것.

다들 화려한 코스튬과 장비들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졌다.

오직 한 명만 멀쩡한 차림이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리고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예비 히어로 여러분. 저는 히어로 지원부에서 온 이미나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히어로 실습은 야간 방범 순찰입니다.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특히 요즘 일련의 사건들로 분위기가 흉흉하니까 각별히 신경 써주세요. 참고로 인이어는 본부 하고만 연락이 가능하니까 유사시 지원이 필요할 때 연락하시면 되겠습니다."


히어로 담당 공무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건장한 체격의 히어로 실습생 하나가 근육질의 팔뚝을 들어 올리며 질문했다.


"범죄자가 나타나면 현장에서 처벌해도 되는 겁니까?"


"네, 가산점이 있습니다. 이것도 실습이니 평가에 영향을 줄 겁니다."


"저희 예비 히어로들도 즉결 심판권이 있는 거 맞습니까?"


"네, 예비 히어로라도 규정상 실습 기간에는 히어로와 동일하게 간주하므로 유효합니다."


"오케이!"


대답을 들은 근육 히어로 실습생은 만족한 듯 주먹을 쓰다듬었다.

그의 눈은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욕으로 반짝거렸다.

생기가 넘쳤다.


히어로 즉결 심판권.

히어로를 '힘센' 공무원으로 만들어준 법안으로 히어로들은 범죄 사건에 대해 통상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신속하게 형을 선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형의 수준은 히어로의 재량에 맡겨진다.

히어로가 스스로 형벌을 조정함에 있어 과연 완벽한 판단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해 의결 당시 논란이 많았던 법안이다.

그럼에도 법안은 통과되었고 결론적으로 범죄율이 낮아지긴 했다.



"일단 2명씩 4개 조로 나눌 테니, 조별로 구역을 정해서 순찰을 돌아주세요. 일단 스틸 윙님이랑 장전님 앞으로 나와주세요, 두 분은 A구역을 순찰하실게요."


"네!"


큰 크기의 기계 날개를 착용한 히어로와 총기로 무장을 한 히어로 둘이 대답을 하며 나왔다.

둘은 의식하듯 서로를 바라봤다.

공무원은 둘에게 인이어와 손전등을 하나씩 건넸다.

스틸 윙은 인이어는 받고, 손전등은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날개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녀의 날개에서 환한 빛이 들어왔다.

심지어 색깔도 반짝거리며 변했다.


"와우!"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순찰할 때 날아도 됩니까?"


스틸 윙은 매력적인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네 뭐, 편하신 대로"


공무원 역시 눈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저도 손전등은 필요 없을 거 같습니다."


장전 또한 자신의 총기에 장착된 플래시를 켜보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두 분은 바로 순찰을 해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순간 빠른 속도로 스틸 윙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녀가 일으키는 바람에 공무원의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던 머리가 헝클어졌다.

스틸 윙과는 상반되게 장전은 느긋하게 지나갔다.

공무원은 머쓱했는지 머리를 대충 정돈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다음은 디오님이랑 인파워님, 두 분은 B구역을 맡아주세요."


"네"


공무원은 우리 둘에게 인이어를 건넨 다음 머뭇거리며 물었다.


"혹시 손전등 필요하십니까?"


"네 주십시오"


"저도 하나"


대답을 듣고서야 공무원은 웃어 보이며 손전등을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두 분도 바로 순찰을 돌아 주시며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다음은 돌풍님과 소드맨님 두 분은 C구역을 맡아주세요"


"예압!"


왠지 요란할 거 같은 히어로들을 뒤로하고 큰길로 나왔다.

인이어를 착용하고 손전등을 켜보았다.

바닥을 비추자 내 앞에 커다란 발 두 짝이 보였다.

손전등을 서서히 들어 올려 앞을 비추자 거대한 사내가 내 앞에 있었다.


"반갑습니다. 히어로 실습생 인-파워입니다. 인파워는 인피니트 파워의 약자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손을 잡았는데 나는 그가 두 손으로 악수를 하는 줄 알았다. 그만큼 그의 손은 두껍고 컸다.

눈빛 또한 강렬했다.

그의 코스튬은 레드와 블루가 조화롭게 이루어졌다.

그는 머리 스타일과 하관을 공개한 채, 눈만 가리는 가면을 착용했다.

얼굴 전체를 덮는 복면을 착용한 나와는 다른 스타일의 코스튬이었다.


"네, 반갑습니다. 저는 디오라고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디오님, 그래서 복면에 DO라고 적혀있었군요. 멋지십니다!"


"인파워님도 멋지십니다."


형식적인 칭찬이 오가고 나자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당연하게도 일면식도 없는 상대가 편할리 없었다.

나와 인파워는 그렇게 한 블록 정도를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둘은 그저 밤거리에 넘실거리는 손전등 빛만을 보며 걷고 있었다.

고요한 밤거리의 적막을 깨고 말문을 연 건 인파워였다.


"이쪽 지역은 처음이라서 그런데 어디부터 순찰을 돌면 되겠습니까?"


"B구역은 얼마 전부터 큰 규모의 공사를 시작했으니 공사장 근처부터 순찰을 도는 게 좋겠습니다."


"오우! 이 지역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셨습니까?"


"아뇨, 공사장이 들어서기 전에 이곳에 무료 급식소가 있었는데 봉사활동을 하러 몇 번 왔었습니다."


내 대답에 그의 눈이 다시금 반짝거렸다.


"역시 히어로! 봉사활동을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그의 칭찬에 멋쩍어진 나는 머쓱해졌다.

봉사활동을 시작한 동기가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스펙을 위해 했었기에 약간 민망했다.

나와 인파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순찰을 돌았다.

두 시간 정도 순찰을 돌면서 해결한 업무라고는 술에 취한 취객을 집까지 안내한 게 전부였다.


"굉장히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네요."


"이쪽이 상대적으로 못 사는 동네라 그런 인식이 조금 있긴 하죠"


엘 시티는 도시 내 시민 간의 빈부격차가 가장 큰 기형적인 구조의 도시다.

중심가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로 불리는 엘 타운이 있는, 소위 말하는 부자 동네이고,

그 외곽은 컨테이너촌이 쭉 이어져 있는 상대적으로 못 사는 동네, 아니 절대적으로 못 사는 동네이다.

엘 타운과 컨테이너촌이 공존하는 그곳이 바로 엘 시티이다.


인파워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아 아쉬운 듯했다.

물론 실습에서 가산점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베스트 아니던가.

근데 확실히 밤거리가 고요하긴 했다.

큰 규모의 쇼핑센터가 들어오기로 하면서 이 지역에 있던 컨테이너촌이 대대적으로 철거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사람이 없어 텅 빈 거리, 불이 모두 꺼진 빈 집들, 관리가 안 돼서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

가로등 밑에 걸린 철거 반대 현수막이 더욱 도시를 휑하게 만들었다.


"근처에 편의점은 있습니까? 커피 좀 마시고 싶은데"


인파워가 두꺼운 손가락으로 눈을 과격하게 비비며 물었다.

사실 그가 스스로 눈알을 뽑는 줄 알았다.


"두 블록만 더 가면 편의점이 있습니다."


어스름한 가로등 몇 개를 지나자 눈에 편의점이 들어왔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갈 때 가끔 들렀던 편의점이었는데 규모가 작아 물건은 별로 없지만 사장님이 친절했던 걸로 기억한다.

순간 편의점 문이 강하게 열리고 검은 그림자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그리 빠른 움직임은 아니었다.


"도둑이야!!!"


편의점 사장님의 외침에 나와 인파워는 서로를 동시에 바라봤다.

인파워의 얼굴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신나 보였다.

그리고 냅다 달렸다. 나 역시 그를 뒤따라 달렸다.

인파워의 뜀박질은 짐승의 것과 비슷했다.

그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진동이 느껴지는 거 같았다.

커다란 몸집답게 움직임이 크고 과했다.

도둑과의 거리는 금방 좁혀졌다.

사실 히어로 체력시험을 통과한 입장에서 일반 사람의 달리기를 따라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인파워는 도둑의 뒷덜미를 잡고 냅다 땅에 휘둘렀다.

도둑은 바람 빠진 공처럼 힘없이 바닥에 굴러갔다.

그가 훔친 걸로 보이는 도시락과 음료 그리고 몇 가지의 간식거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흩어졌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도둑이 고개를 들어 우리를 올려다봤다.

인파워는 그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렸다.

가로등 빛에 가까워지자 그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

낯이 익었다.

그는 한마음 무료 급식소를 찾아오던 사람이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며칠 동안 굶어서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그는 꾀죄죄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그의 퀭한 두 눈에서 땟국물이 벌건 볼때기를 타고 흘렀다.


"이 범죄자 놈! 용서할 수 없다. 인피니~~트!"


인파워는 한껏 근엄한 표정을 짓더니, 묘하게 거슬리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겁을 주는 거겠지? 설마 진짜 때리려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인파워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퍼어어언치!"


-퍽!!!


인파워의 흉악한 주먹을 두 손으로 막았다.

찰진 타격음과 함께 손바닥에 고통이 느껴졌다.


"디오군! 무슨 짓입니까?"


인파워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봤다.

가로등 빛 아래 음영이 가득한 그의 얼굴은 도저히 히어로로 보이지 않았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잖습니까"


나는 주먹을 감싼 손을 놓으며 소리쳤다.


"지금 범죄자를 보호하는 겁니까?"


고개를 돌려 남자를 봤다. 멱살이 잡힌 채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불쌍한 사람이 보였다.

인파워가 멱살을 잡고 흔들자 그의 후줄근한 옷에서 초코바 하나가 떨어졌다.

결과적으로 이 사람은 도둑이었다.

내가 히어로가 되어서 도와주고 싶었던 사람이 도둑이 되어있었다.

범죄자가 되어버린 그를 보자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비켜요!"


인파워는 나를 밀치고는 다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인피니트 펀치!!"


-쿵!!


나를 의식했는지 아까보다 조금 빨라진 박자로 필살 펀치가 날아갔다.

끔찍한 충돌음과 함께 붉은 핏방울과 이빨 조각이 퍼졌다.

남자는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쓰러졌다.

경련 때문에 몸이 움찔거렸다.

인파워는 나를 한 번 내려다보고는 인이어를 켰다.


"범죄자 하나 잡았습니다."


인파워는 한 손에는 초코바, 다른 한 손으로는 범죄자를 질질 끌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는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를 향해 말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디오군. 할 거 없으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이나 주워요. 편의점 사장님의 소중한 자산이니까.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건 선량한 사람들과 그들의 자산이지. 이런 쓰레기 같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인파워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범죄자를 잡는 일은 국가 공인 히어로의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나는 얼이 빠진 채, 인파워의 말대로 땅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웠다.

도시락과 물 컵라면 등을 주섬주섬 주웠다.

대충 계산해봐도 얼마 안 되는 값어치의 물건들이었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생명을 연장시켜 줄 소중한 양식이었겠지만.

혼란스러웠다.

터벅터벅 물건을 들고 좀 걷자 가로등 불이 닿지 않는 곳이 나왔다.

그곳은 빛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아 한없이 어둡고 컴컴해서 숨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