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따로 알려드리진 않습니다. 한 번 추리해보세요.

가장 진실에 근접하신 분이 나왔기에 더는 드릴 개념은 없습니다...ㅠㅠ

풀이가 필요하신 분은 댓글을 읽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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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귀신이 있다고 믿냐?”

오랜 지병이 있는 아버지조차 술을 마시게 되는 날이었다. 건강이 걱정되어 나는 만류했지만, 동네 사람이 어찌 이런 자리에 빠져서 되겠냐고 아버지는 기어이 약주를 하시겠다고 했다.

오랫동안 자제해온 아버지의 간만의 즐거움을 말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러면 오랜만에 한 잔 따라보겠다며 병을 내밀었다. 술잔을 기울이며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굉장히 이상한 질문이었다. 잘못들은 것이 틀림 없다 생각하며 대답을 하지 않자, 아버지가 재차 물었다.

“너는 귀신이 있다고 믿냐?”

“아, 죄송..... 저한테 물으신 건줄은 몰랐죠. 제가 옛날에 귀신 이야기라도 꺼내면 엉덩짝을 후리면서 그딴 거 궁금해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궁둥이가 아파오구만....”

“내가 그랬나?”

아버지는 술을 홀짝이며 귀 뒤를 긁었다. 딱 봐도 잘 기억하면서 모르는 척하는거다. 부끄러운 모양이지.

아들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후려팬게.

민망함을 덜어주고자 애써 유쾌함을 가장하며 잔을 부딪혔다.

“에이, 저수지도 메우고, 이제 우리 집도 재개발되어서 보상금 두둑히 받는데, 왜 갑자기 옛날 일을 꺼내고 그래요.”

보상금을 받게 되어 열린 잔치였다. 분위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안색이 이상했다.

“잊혀질 것이 무서워서 그런다. 무서워서.....”

“뭐가 그리 무서운데요?”

장난스럽게 되묻는 나와는 달리 아버지의 얼굴은 더없이 창백했다. 그러고보니 아버지는 저수지를 두려워했다.

저수지 쪽으로 나나 동생이 가려고 하면 그 점잖은 사람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와 사람을 죽일듯이 패고는 했던 것이다.

“황소가 우는 날엔 시체가 떠오른다는 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 아니냐.”

황소가 우는 날엔 시체가 떠오른다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마을에서 내려오던 괴담 같은 것이었다.

함부로 입을 놀리면 언젠가 못 볼 꼴을 보게된다고, 그리도 입조심을 당부하던 아버지가 정작 본인이 귀신 이야기를 하다니, 장난을 하는건가 싶어 안색을 살폈지만 여전히 창백하고도 공포스러워보였다.

“그게 뭔데요? 귀신 이야기 아니에요?”

“아니다, 전혀 아니야......”

아버지는 술잔을 들이키시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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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진하게 내려앉은 여름 밤의 공기를 제끼며 황소 우는 소리가 들려오면 아버지가 살던 마을은 아무도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저 집 안에 틀어박힌 채 있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집에만 있었다고 한다.

음머-머-머-

마을의 아이들은 황소의 귀신이 나타났다며 겁에 질려 발발 떨었고, 어른들은 애써 불안감을 무시하며 그런 아이들을 다그쳤다.

분명 저건 아무것도 아닐거라고, 괜시리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그런 자기위안식 다그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 날 저수지엔 시체가 떠올랐다.

발견한 것은 새벽 낚시를 하러 나온 이 씨였는데, 검은 수초 같은 것이 밀려와 건져내자, 흰 고무 장갑 같이 생긴 게 옆에 떠올라서 기겁을 하며 사람을 부른 것이었다.

건지고 보니 허옇게 퉁퉁 불은 얼굴은 이목구비조차 알아보기 어려웠고, 불쾌하게 부풀어오른 배는 임산부처럼 불러있었다.

팔에 낀 팔찌를 통해 겨우 그게 얼마 전 사라진 처녀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처녀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혼례 준비로 바쁘던 그 집 어른들은 졸지에 혼례에 쓰일 것들을 장례식에 쓰게 되어버렸다.

“도망을 갔으면 이것아. 행복하게라도 살아야지.... 왜 이리 돌아왔어. 응?”

그때는 아직 부모가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시대였다. 원치 않는 결혼 같은 것은 세 집 건너 하나씩은 있었고, 사랑의 도피 역시 꺼내놓으면 길거리에 널부러질만한 흔한 것이었다.

결혼을 며칠 앞두고 사라진 처녀도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래서 그 처녀 역시 그런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시체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이게 다 소 때문이야. 소에게 우리 모두 홀린 거라고!”

죽은 처녀의 어머니는 악에 받혀 소리질렀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어 동조하지도 않았다.

그 집 처녀의 약혼자였던 저수지 집 막내아들만 이건 전부 자신의 잘못이라며 오열했다.

황소가 우는 밤엔 시체가 떠올랐다.

인과관계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게 진실이었다.

황소가 울었던 몇 일 전날의 밤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의 시체가 떠올랐다. 이번엔 그 처녀였을 뿐이었다.

음머-머-머-머-

낮에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비명 같은 괴성이, 밤에는 황소의 울음이. 괴악한 울음소리가 작은 마을에 그득하게 들이찼다.

그리고 그 틈으로 마을 사람들은 소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인 것마냥 저들끼리 은밀하게 속살거렸다.

분명 이건 초롱이의 귀신일거라고. 그러니 저수지 집 막내아들이 제 탓을 하는 것이라고.

초롱이는 저수지 근처에 살고 있던 집이 키우던 소였다.

저수지 집은 초롱이를 아꼈다. 소가 그 시절에 귀한 재산이라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아끼는 것은 아니었다.

똑똑하고 영민한 것이, 인간이 말을 걸면 곧잘 알아듣고는 길을 비켜서기도 하고, 알아서 집에도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뿐인가.

도둑이 들라치면 기막히게 눈치채고는 음머음머 울어대는 것이었다.

이름을 부르면 알아채고 순진한 눈망울을 꿈벅대며 고요히 쳐다보는데 어찌 예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 초롱이를 처음 받아내고 키운 그 집 막내아들이 유독 초롱이에 애착을 가졌다.

하지만 동물은 어디까지나 동물, 인간 이상으로 될 수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무리 예쁨받았어도 초롱이는 결국 동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두가 어렵던 시절이었다. 소가 있는 집은 동네에 네 다섯집 있을까 말까 하였고, 글도 모르는 무지렁이 농부들은 더욱 흔했다.

그래서 저수지 집이 소를 판다는 말에 동네 사람들은 기겁을 하며 말렸다.

“아니 소는 왜 팔어. 으디 아파? 병원에 가야하는거면 차라리 우리가 꿔줄텡께 초롱이는 기냥 두어.”

“그럼 우짜요. 아들램이 공부 좀 하겠다는디, 말려서야 되것소.”

배운 것 없는 농부에게 소는 큰 재산이었다. 그런 농부에게 소를 팔 결심이라는 것은 굉장히 큰 것이었을 것이다.

평생을 배우지 못했던 한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제 자식이라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초롱이는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유난히 똑똑한 막내아들이 대학을 갈 수 있다는데 소가 귀히 여겨졌을까.

여상을 나와 경리로 일하던 그 집의 계집아이들도 모두 대학을 가라며 부추기는 와중에 초롱이를 아끼던 그 집 막내아들만이 안된다며 울었지만, 그러면 학업을 접을거냐는 말에 단숨에 입을 닫고 훌쩍이기만 했다.

그렇게 초롱이가 팔려가기로 정해진 날, 저수지 집 막내 아들은 좋은 건초를 끌어모아 여물통에 넣고 먹이려고 했다.

하지만 초롱이는 도통 먹질 않고 커다란 눈망울을 꿈벅이며 눈물을 흘리기만 했다.

“어여 먹어. 초롱아. 어여 먹어.”

보내기 전 든든히 먹이기라도 하려고 했던 막내아들의 속만 탔다. 시간은 어느 새 오고, 저수지 집 농부는 초롱이를 잡아끌었다.

“이눔아, 가야지.”

영특하긴 영특한 모양이었는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초롱이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줄을 당기는데도 힘을 주어 버티며 울기만 하는 것이었다.

달래도 보고, 화도 내보았지만 초롱이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음머- 머- 머-

“아, 왜 이리 안 와!”

저수지 집 농부는 화를 내며 몽둥이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휘두르는 것이 잘못되었는지, 초롱이의 이마에 맞아버렸다.

초롱이는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주저앉았다.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을 때는 늦은 상태였다.

눈깔은 새하얗게 뒤집혔고, 바글바글 더러운 거품같은 것이 입에서 흘러내렸다. 무언가 잘못되었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아래로는 피와 똥을 푸드덕푸드덕 쏟아내며 경련했다.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이었다.

그 집 막내아들은 주변에서 어떻게 돈을 빌려서 대학을 보냈다. 동네는 전부 아는 사람이었고, 정 또한 많았을 때라 가능한 일이었다. 갚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초롱이가 죽었을 때 초롱이는 임신 중이었다. 초롱이가 죽으며 아래로 쏟아낸 것들에는 거의 만삭이었던 송아지도 있었다.

어떻게든 살려낸 송아지를 키워내자, 저수지 집은 이듬해 그 송아지를 우시장에 팔아 돈을 갚을 수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어느 날 밤부터인가 황소가 우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송아지가 우시장으로 팔려나가던 밤부터였다고 한다.

음머---머-머-머-

황소가 우는 소리에 잠이 깬 동네 사람들은 어느 집 소인지,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확인이나 하려고 눈에 핏줄을 세우며 밖을 나갔지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마을에서 사라졌던 사람들의 시체가. 퉁퉁 불고 기괴하게 뒤틀려서 누비 솜인형같은 엉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음머-머-머-머-

제일 처음에는 과수원을 하고 있는 집의 치매걸린 노인이었다. 두 다리가 분질러지고, 짐승에게 공격이라도 당한 듯 몸 전체를 생채기들이 메우고 있었다.

튀어나온 눈알과 뒤틀린 입가만이 생전에 고통을 겪다가 가게되었다는 것만 짐작하게 해주었다.

음머-머-머-머-

그 다음에는 대학생이었다. 농활을 온 대학생이 함부러 밤에 나오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고 나왔다가 다음 날 시체로 돌아왔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인간 모양 인형처럼 저수지 귀퉁이에 밀려나온 것을 대학생의 친구들이 발견했다.

그쯤되니 마을은 공포에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다. 경찰은 실족사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동네 사람들 중에 아무도 없었다.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민간신앙이 있었다.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을 돌보는 이름 잊힌 귀신에 관한 것이었다.

음머-머-머-머-

그리고 마을 처녀가 죽었다. 사랑의 도피를 하려고 했던. 퉁퉁 불어서 알아보기도 힘든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모친에게 돌아왔다.

아버지가 저수지에 가지 말라고 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나?

겁에 질린 나를 보며 이야기를 하던 아버지는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귀신은 인간이 만드는거라고.

인간이 필요하다고 여겨서 이야기에 담아 인간이 만들게 되는거라고.

그러면 이건 전부 이야기에 불과한거냐고 묻자, 묘하게 웃으면서 고개 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을 생각할 때, 부풀려 생각하는 법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 것은 촌장도, 딸을 잃은 악에 받힌 어머니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온, 어른말은 죽어라고 안 듣는 겉도는 말썽쟁이 아이였다. 바로 아버지 당신이었다.

“나는 귀신을 믿지 않았어. 그런 건 전부 속임수야. 귀신 같은 게 있다면.....”

“정성껏 모셨던 우리 집을 이렇게까지 내쳤을리 없다고요?”

눈썹을 찡그리며 아버지가 내 눈을 들여다본다.

“내가 그런 말 한 적이 있었나? 그럴리 없을텐데. 절대 그럴 일 없을텐데. 내가 얼마나 입조심을 하고 살았는데.”

“할아버지가 말씀해주셨어요. 왜 아버지가 귀신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알려주시더라고요.”

아버지는 다시 평안하게 돌아와 귀 뒤를 긁적였다.

“뭐, 들었으면 알겠네. 우리 집안이 원래 무당집안이었고, 네 할머니대에 와서 그 기운이 다해버린 것. 마을이 인륜이 다해서 신이 떠났다는데, 그 신이란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왜 아버지가 그렇게나 귀신 이야기를 질색했는지 알 수 있었다.

기운 다한 무당집의 막내로 태어난 아버지로서는 가세가 기울고 가족을 돌봐주지 않는 귀신 같은 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 지금도 아버지는 신을 원망하는 것처럼 입술을 꾸욱 깨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더 증명하고 싶었을지도 몰라. 귀신 같은 건 없다고.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다고. ‘철중아. 나가지 마라. 사악한 것에 잡아먹힌다.’ 그렇게 간곡하게 말하는 할머니의 단도리도 공명심에 무시하고 말이야. 음머-머-머- 하는 소리를 따라 집을 나섰어.”

소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고, 작은 빛 한 조각조차 없이 어두운 가운데 아버지는 집을 나섰다.

황소의 소리를 따라가면 어디엔가 귀신의 실체가 있을 것이었다. 아버지는 흐릿한 달빛에 의지해 길을 걸었다.

사부작사부작, 등 뒤에서는 누군가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등 뒤로 싸늘한 바람이 몇 번인가 부딪혀 왔지만 그 나이 특유의 고집과 믿음으로 황소의 소리를 따라갔다.

음머-머-머-

황소가 울고 있었다. 갈대밭 근처였다. 황소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남자의 목소리 같은 것도 있었다.

갈대밭 사이에 몸을 숨긴채로, 아버지는 앞쪽에서 나는, 황소의 소리 사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 약속 지켜, 자네가 날 도와준 건 처음 한 번 뿐이니, 한 번만 도와도 될 것을 계속 도왔단 말이지. 다음이 마지막이야! 귀찢기 같은 건 알아서 하라고!

화난 듯한 거친 음성의 남자가 상대에게 윽박질렀다.

- 알겠어, 알겠다고요! 좀 조용히 좀 해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목소리가 상대방을 타일렀다. 그 말을 끝으로 목소리가 줄었다.

아버지는 더 잘 듣기 위해서 앞으로 몸을 기울이다가 엎어졌다. 손으로는 미끈하고 말캉한게 잡히며 눌렸다.

그러자 여태 주변을 울리던 황소의 소리가 꾸직하는 소리와 함께 끊어졌다.

- 히이이익.

- 잠깐만. 저기 뭔가가 있어.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그 소리를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잃기 전에는 공중에서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떠 있는 여자의 흰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일어났을 때는 다음 날로, 뒤통수가 뭔가에 후드려 맞은 것처럼 먹먹했다. 손에는 개구리가 쥐어져 있었다.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니?”

“개구리가 귀신이었나요?”

“그래, 개구리가 귀신이었지. 황소의 소리도 그 개구리가 낸 거였어.”

“엥, 황소개구리라도 되는거에요?”

“그 땐, 황소개구리 같은 게 없었어. 그래서 그 생경한 울음소리를 듣고 동네 사람들 모두 있지도 않은 황소 귀신을 만들어내서 두려워한거야. 사실, 개구리를 키워보겠다고 외국에서 들여온 사람이 관리 소홀로 풀어진 후 번식한 건데 말이야.”

“뭐야, 그러면 그냥 개구리가 운 건데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한 것이라고요?”

아버지는 변명하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술을 홀짝이면서 귀 뒤를 긁었다. 한참이나 그렇게 있다가 힘겹게 입을 뗐다.

“그 땐 내가 너무 어려서, 내가 뭘 봤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어. 그래서 난 뭣도 모르고 황소 귀신 같은 건 없어요! 사람이에요!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어! 분명 저수지집 아들이야! 라고 소리치고 다녔지.”

“뭘 봤는데요?”

“아무것도. 그냥 내가 지어낸 말이었지. 어둠 속에 있다보면 온갖 상상을 하지 않겠어? 그래서 네 할아버지가 아빠를 많이 쥐어박았다. 이상한 상상 좀 그만하라고.”

“저수지집 아저씨는 왜 나왔는데요?”

“난 내가 본 게 저수지집 아들인줄 알았지. 그런데 아니었던거야. 과수원집 노총각이 그러더라고. 저수지집 아들은 밤새 자기랑 같이 있었다고. 그 날 저수지에 있던 건 아무것도 없었대. 있더라도 놀러온 외지인일거라고 하는거야.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철 없는 아들이 동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 드리러 가느라 아주 혼이 났더랬지.”

“에이, 누구나 어릴 땐 생각이 없으니까요.”

“맞아, 어릴 땐 그게 어떤 일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저지를 때가 많지. 그런데 그 대가로 내가 치른 대가가 너무 컸어.”

“할아버지한테 궁둥이 맞았어요?”

장난스럽게 물었으나 아버지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농담이 재미없었나 싶어 살피는데 아버지의 쥐어진 주먹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차라리 그랬으면 했어. 그 날 이후 어머니가 보이지 않지 뭐냐. 동네 전부를 뒤져봐도 없었고, 옆 동네를 가봐도 없었어. 어떻게든 내가 잘못했다며, 어머니 말을 듣지 않아 죄송하다고 빌고 싶었는데, 끝내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어.”

“그래서 할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하게 군 거에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곱씹어보니 잔잔하게 소름이 끼쳐왔다. 아버지가 정녕 개구리 말고 다른 걸 보지 않았다면 그런 말을 했을리가 없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 때 저수지에서 뭘 본거지?

“아버지, 저수지에 있던 게 개구리 말고도 있었나요?”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는 것이라면, 거기엔 아무것도 없는거야.”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더 캐물으려고 하자 눈을 싸늘하게 흘기며 말을 아꼈다.

“맞죠? 아버지는 거기서 뭘 봤던거에요?”

“할 말은 다 했다. 더 할말은 없어.”

그러자 의문들 속에서 어떤 끔찍한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이 의문 전부가 맞아들어가는, 아주 기분 나쁘고도 불쾌한 상상이었다.

상상이 점점 머릿속에서 구체적이 되어가자,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내 눈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더는 아버지에게 캐묻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함부로 말을 하면 안되는 것에는 언제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리를 지긋이 바라보는 저수지 집 며느리의 진한 눈빛을 무시하며 우리는 마저 술잔을 기울이다 도망치듯 나왔다.

얼마 후 저수지를 메꾸다가 밑바닥에서 매우 오래된 백골이 발견되었다. 중년 여자의 시체였다.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경찰이 추정하기로는 40년은 족히 된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께 사실을 말해드렸다간 쓰러질지도 몰랐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왜 동네가 시끄러운 것이냐고 묻는 아버지께는 그저 ‘황소가 울었다’고만 말씀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