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우연한 계기로 그 자식의 집 주소를 알게 되었다.
심각한 말더듬이에 사회성은 제로, 3년간 계속된 괴롭힘에 학업성적은 개뿔 간당간당한 출석일수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느꼈던 해방감도 잠시.
성인이 된 이후로도 그 자식은 술먹다가 심심하다고 부르고, 여사친들 앞에 본인 가오 잡겠다고 불러서 바지를 벗기고, 당구장 담배 심부름까지 시키는 등.
이건 너무하다 싶어 울면서 제발 놓아달라고 애원하면 그때는 매번 알겠다며, 잠깐 장난친건데 뭐 이리 과민반응하냐며 오히려 화를 내기도 하고, 알겠다면서 이제 안부른다고 재미없다고 가라고 하고.
그러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연락이 오고, 일부러 무시하고 대답안하면 그 자식은 날 오히려 협박하기도 했다.
잊을만하면 우리 엄마의 조그만 분식집에 찾아와 나에 대해 얘기하며 사람 좋은 미소와 얼굴로 떡볶이, 순대, 오뎅 등 먹고있었고, 그런 그자식의 본 모습도 모른채, 엄마는 우리 애한테 이렇게 예의바르고 좋은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줄 모른다면서 덤으로 튀김이나 김밥을 얹어주곤했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감이 차올랐고 당장이라도 그녀석 목구멍에 식칼로 숨구멍을 여러개 뚫어 주고 싶었지만, 막상 그렇게 행할 용기는 전혀 없어 또 혼자 자책하며 나만의 검은 공간으로 숨어들어가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는 나였다.
그러던 어느날.
이 자식으로 부터 '잠시 할 얘기가 있는데 만나줄 수 있냐'는 말에, 또 무슨 괴롭힘을 할려고 그러냐, 제발 나좀 놓아달라고 하니,
그동안 나에게 저지른 본인 잘못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하고 용서 받고 싶다고.
철없는 학창시절, 단순히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행동들이 네 입장에선 괴롭힘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다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 받고 싶다는 장문의 문자가 왔다.
원한다면 자기를 때려도 좋고, 돈으로 달라면 얼마가 됬든 줄 수 있는 만큼 주고 싶으니 제발 용서해 달라고.
순간 혹 하기는 했지만, 차마 그 녀석을 마주보고 때릴 용기도, 그렇다고 그 더러운 돈을 받고 용서할 자신도 없었기에
무덤덤한 침묵으로, 아무 대답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한번씩 찾아오던 그 자식도 언젠가 부터 내 주위에 나타나지 않았고, 엄마도 나에게 그 친구 요즘 뭐하냐고, 예전엔 자주 오더니 요즘 통 본지가 오래됬다고 말할 정도로, 점점 내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 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이력이 없어 취업도 못하고, 배운게 없어 시험에 합격할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 마음도 없었기에, 간간히 돈이 필요하면 일용직 알바나, 전단지, pc방, 만화방 땜빵알바 등등 하루벌어 하루살아가는 폐인처럼 살아가던 차,
코로나로 인해 급격하게 증가한 음식점 배달 수요로 넘쳐나는 블루오션, 배달알바를 시작하게 되었고, 밥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꾸준히 하니 한달에 웬만한 회사 월급만한 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배달 콜 수가 적어서 근처 이웃 동네 콜까지 잡은 날.
호텔 다이닝 식당에서 딱 봐도 비싸보이는 음식들을 들고 찾아간, 대문부터 꽤나 비싸보이는 그 집에 초인종을 누르고 음식을 받으러 나온 사람이 바로 그 자식이었다.
순간 당황해서 음식을 든 봉투를 손에서 놓을뻔 했지만, 다행이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 좋은 미소로 웃으며 고생하셨다고 카드를 건네는 그 자식을 본 순간 잊고 있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차마 표현은 못하고 아무 말 없이 카드를 받아 리더기에 긋고 평소같았으면 '맛잇게 드세요'라고 인사라도 할 법 하지만, 아무말 없이 그냥 카드만 돌려주고 돌아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건,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어 그 자식은 내가 누군지 못알아봤을 거라는 거 정도.
다리가 후들거려 오토바이에 겨우 걸터 앉아 담배 한대를 피우고나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이제부터 나의 처절하고도 하찮고 비겁하지만 순수한 방식으로 나만의 복수극에 최종장을 지으려 한다.
그동안 내가 받았던 괴롭힘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괴롭힘을 받아야 내가 죽을 때 조금은 덜 아쉬울거란 마음이 들었다.
이 복수극을 위해서 가장 필요했던건 그 자식의 소재지였는데, 이것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나에게 필요한건 시간뿐이었다.
복수를 위한 기본적인 재료는 엄마의 가게에서 다 구할 수 있었다.
가게 마감시간에 맞춰 가게로 가면 엄마는 매대를 정리하시고, 주방이 빈 틈을 타서 난 나에게 필요한 물건 몇가지를 챙긴다.
완전히 밀폐가 가능한, 용량이 조금 큰 락앤락 통 몇개, 음식물 쓰레기통에 있던 손님들이 먹고 버린 음식 몇가지와 설탕 많이. 이 음식물 찌꺼기들과 설탕을 락앤락 통에 담고 다시 이 통을 엄마 몰래 챙겨서 집으로 가져오면 1차적인 준비는 끝난다.
그리고 그날 부터 며칠동안 매일 밤마다, 복수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재료를 모으기 위해 골목길 쓰레기통 여기저기를 열심히 뒤지고 다녔다.
버려진 길고양이 마냥 쓰레기 봉투를 들추고, 음식물 쓰레기 뚜껑도 열어보고 발로 흙도 파보고
그렇게 열심히 찾아서 모은 그 비장의 재료들 또한 락앤락 통에 최대한 담아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내용물이 들키지 않게 락앤락 겉 표면을 검은색 락카로 까맣게 색칠하고, 뚜껑과 옆면에 아주 작은 바늘구명 몇개를 뚫고 정성스럽게 선물용 박스에 포장했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선물을 5개 정도 더 준비했다.
이제 준비는 끝났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도 며칠이 지난 날.
난 다시 그 자식의 집으로 찾아가 근처에 잠복했다.
일단 그 자식이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 첫번째요, 내 복수를 위한 완벽한 타이밍을 잡는 것이 두번째 이유다.
오후 6시 30분 정도 되었을까.
검은색 고급 세단이 그 자식 집 차고에 도착했고, 그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바로 그 자식인 것을 확인했다.
그 자식이 집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몇시간과도 같은 30분이 흐른 뒤,
오토바이 헬멧을 머리에 눌러쓰고, 지난번 배달왔을 때 처럼, 그 자식 집 대문에 초인종을 누른다.
[누구세요?]
[...택뱁니다.]
마음속으로 몇번이고 연습했던 대사를 힘겹게 뱉어냈다.
잠시 후, 그자식은 저번처럼 직접 나와 문을 열고 사람 좋은 얼굴로 나를 반겼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들이밀었다.
상자에는 이미, 그 자식의 주소가 적힌 택배용지에 그자식의 이름이 적힌채로 붙어있다.
그 자식은 상자를 한번 보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한번 쳐다본다.
그러나 헬멧의 검은 바이저 안의 내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국 그 자식은 다시 그 선물상자를 보고는 양손으로 받아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감사합니다-]
그의 마지막 인사엔 굳이 대답해 주지 않았다.
선물이 아니라 지옥에서 온 택배임을 그 자식은 아직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 지옥에서 온 택배는 지난 몇년간 내가 받아온 수모와 괴롭힘의 발가락 때만도 못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 자식에겐 누구보다 강렬하고 끔직한 기억으로 남게 되리라.
대문이 닫히고, 난 오토바이 가방안에서 추가로 준비한 상자들을 모두 다 꺼내 그 자식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담장 밖에서, 난 선물 포장 속 락애락 통의 뚜껑의 잠금만 해제한 채, 담장 안으로 죄다 던져넣었다.
아 그리고, 그 중 한두개는 차고에 주차되어있는 차량쪽으로도 집어던졌다.
담장 안과 차고에서는 이제 내가 준비한 지옥의 악마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올 시간이다.
다시 오토바이로 돌아와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그 자식의 엄청난 비명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지옥 악마군단의 대 습격이 성공한 것이다.
며칠동안 어두운 밤거리 쓰레기통을 뒤지며 하나씩 줏어모은 악마 군단은 며칠동안 어두컴컴한 암실에서 음식물 찌꺼기, 설탕, 그리고 동족 포식을 하며 본능에 의해 엄청난 번식력으로 세력을 불려왔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처음 광명을 선사한 그 자식에게 악마 군단은 지옥같은 광경을 펼쳐줬으리라.
아니,
난 이미 지옥에 살고 있지만,
그 자식은 이제야 비로소 지옥의 입구에 발을 디뎠다.
40
0
2
2,635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게시물에 상관없는 답글이나 추천유도성 답글을 달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