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린내와 개 짓는 소리에 나는 잠에 깼다. 개 짓는 소리가 멀어져가면서 피비린내도 기억만 남긴 채 사라졌다.
또 그 꿈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한 낮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에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는 강아지를 산책 시키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읽지 않는 메시지가 수십 건이 있었다. 상사는 내 병가 요청을
확인하고서 더 답이 없었다. 병가가 수리된 것인지 안 된 것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메시지를 남겼으니 할 만큼 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금 피비린내가 나는 듯 했다. 오늘은 예약했던 치과를 들러야했다. 나는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며 소형 접이식 칼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입 안에서 피 냄새가 올라오자 아까 꾸었던 꿈이 떠올랐다. 요새 들어 자주 꾸는 꿈이었다. 꿈의 내용은 조금 잔인한 면이
있지만, 몸서리치는 악몽 같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좀 불쾌할 뿐.


내용은 늘 같았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정확히 말하면 엘리베이터 문을 지나 층 버튼 패널 앞에 선다. 마치 엘리베이터에
문과 버튼 패널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무 층수를 누르고 문을 닫으려는데 웬 강아지 한 마리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온다. 문은 강아지를 감지하고
다시 열린다. 나는 강아지 주인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문이 자동으로 닫힌다.

그러자 강아지가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간다. 문은 강아지를 감지하고 다시 열린다. 난 문 닫힘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강아지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니 내가 슬쩍 짜증이 난다.

그리고 강아지가 내 마음을 안 것처럼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고 이번엔 들어오지 않는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 내가 안도하는
가운데, 엘리베이터 바닥에 못 보던 줄이 하나 보인다.

강아지 목줄이다.

엘리베이터는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강아지 목줄도 움직인다. 잠시 뒤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피가 배어나온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깬다.


내용이 불쾌한 덕에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괜히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가는 치과만 하더라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했다. 물론 엘리베이터에 강아지는 타지 않았다.

치료는 그리 길지 않았다. 스트레스로 인해서 잇몸에 염증이 난 탓에 자주 헐고 경우에 따라서는 출혈이 날 수도 있단다. 처방전을
받고 3일 뒤에 다시 방문하라는 말을 뒤로 하고 치과를 나섰다. 처방전은 회사에 제출해야했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왔을 때는 놀이터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13층에 있는 집으로 가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어딘지 고요한
것이 꼭 나 혼자 있는 것만 같았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나는 13층 버튼을 누른 뒤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때 웬 아주머니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열림 버튼을 누른 나에게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문이 다시 닫히는 찰라 강아지가 무언가에 홀린 듯 아주머니의 품에서 튀어나와 엘리베이터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주머니는
당황하며 강아지 목줄을 잡아챘다. 그러나 강아지 목줄은 꽤 긴 것인지 계속 풀려나고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문이 닫히더니 올라갔다.

나는 열림 버튼을 눌렀지만 고장인 것인지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 길지 않는 시간에 나는 꿈이 떠올랐다. 이것을 예고한
것일까? 덕분에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칼이 떠올랐다. 그 불쾌한 꿈을 꾸기 시작한 뒤로 쭉 넣고 다녔었다.

나는 재빨리 강아지 목줄을 칼로 끊었다. 잘린 줄 끝이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사라졌다. 엘리베이터는 4층에서 멈췄고, 나와
아주머니는 계단으로 1층으로 내려갔다.

강아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성이다가 주인을 알아보고는 놀이터 쪽으로 달려 나갔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고맙다는 시늉만
한 채 서둘러 강아지를 뒤 쫓아 1층 출입구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멀뚱히 보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으로 올라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약을 먹고 잠이 들었다. 약기운이 돌기도 했고, 아까의 사건으로 긴장을 했던 탓도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잠에서 깼다. 불쾌한 느낌과 함께.

또 그 꿈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엘리베이터에 나 말고 누군가 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생김새가 불분명한 누군가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는데, 꿈속에서 강아지가 죽을 때까지도 나만을 바라보았다.

불쾌함을 넘어 어떤 혐오감이 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부추기는 것만 같았다.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약효는
천천히 나타난다고 했다. 다행이 내일은 토요일이었다. 월요일에 출근할 땐 괜찮아지리라.


저녁은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자극적인 음식이 염증 치료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수고롭게 뭘 만들어먹고 싶진 않았다. 잠 좀 깨고자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괜히 다시 꿈이 떠올랐다. 주머니 속에서 접이식 칼이 만져졌다. 반복적으로 꾸는 꿈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누군가의 계시라든가, 무언가를 암시한다든다, 또 어쩌면 내 내면의 목소리일지도 몰랐다.

결론을 내기 어려운 추측의 추측이 꼬리를 물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나는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층 버튼을 눌렀다.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에 보이지 않던 강아지가
한 마리 뛰어 들어왔다. 목줄이 힘없이 바닥을 쓸고 다녔다.

내가 강아지 목줄을 집으려하자 강아지는 내 손길을 피해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 나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마치 무언가
기다리는 듯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서 날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강아지를 보면서 목줄을 집었다. 기다렸다는 듯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는 철컹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줄이 서서히 위로 당겨졌다. 불현듯 내 등 뒤에 아까는 보지 못 한 누군가가
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은 마치 마비된 것 마냥 움직이지 않았고 그런 나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엘리베이터는 움직였다.

목줄이 한계까지 팽팽해지고 내가 쥐고 있는 것조차 힘들어지는 듯 하더니 갑자기 툭하고 당기는 힘이 사라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엘리베이터는 계속 내려가다 1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자 강아지 목줄이 엘리베이터와 층 사이의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강아지 목줄을 놓았다. 틈 속의 어둠이
게걸스럽게 목줄을 빨아들였다. 부들부들 떨며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조용히 닫혔다. 그리고 이내 위로 올라가버렸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어떻게 된 건지 확인하고자 다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13층에서 멈추고선
잠시 뒤 다시 내려왔다.

갑자기 공포가 몰려왔다. 하필 13층에서 누군가 탄 것일까? 그 사람들은 그 상황을 목격한 것일까? 이대로 도망쳐야할까?
아니면 태연한 척 해야 할까?

엘리베이터는 조용히 1층에 도착했다. 경쾌한 종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리며 문이 열렸다. 치과에서 보았던 의사와 간호사가
타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멀뚱히 보았다. 나는 당황하며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문이 닫히며 안에 타고
있던 손님을 태우고 위로 올라갔다.

뭔가 잘못됐다.

나는 발길을 돌려 아파트 밖으로 나갔다. 약기운이 도는 것일까.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냈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엔 여전히 읽지 않은 메시지가 잔뜩 있었다.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단톡방을 켰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메시지가 먼저 보였다. 약속에 늦은 친구에게 길을 알려주는 메시지였다. 그래, 친구들하고
술 약속을 잡았던 게 기억난다. 술을 많이 마셨었다.

그 다음에는 친구들이 서로에게 잘 들어갔냐는 메시지였다. 더불어 친구들은 나에게 힘내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나는
그 메시지를 보지 못 했다.

메시지를 더 내려가 보니 친구들은 시시껄렁한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왜 전화했냐는 메시지가 오가더니 알 수 없음이
나갔다는 메시지를 끝으로 더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아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하지만 신호음만 갈 뿐 받질 않았다. 다른 친구에게도, 또 다른 친구에게도 해보았지만
누구도 받지 않았다. 이상했다.

나는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어 보았다. 다행히 받으셨다. 어머니는 피곤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지만 나는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다 말하고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괜히 어머니를 불안하게 만든 것일지도 몰랐다.

찬바람을 좀 쐬고 있자 이상한 불안감은 가셨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호출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13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누르는데, 어디선가 강아지가 뛰어 들어왔다. 기괴한 경험을 하게
한 바로 그 강아지였다.

나는 엘리베이터 밖으로 뛰쳐나왔다. 강아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문이 닫히더니 그대로
위로 올라갔다. 나는 사방을 살폈으나 강아지의 주인은커녕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급격히 피곤해졌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포기하고 계단을 올랐다. 12층에 올랐을 때 문득 시선이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는 13층에 멈춰서있었다. 약간 겁이 났지만, 내가 13층을 누르고 내렸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13층으로 향했다. 계단 손잡이를 돌아 엘리베이터 쪽을 슬쩍 보자 어째서인지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린
채였다. 안은 마치 텅 빈 것처럼 검게 보였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뒷걸음치며 12층으로 내려가려 시선을 돌렸다. 12층에는 어느 샌가 아까 보았던 의사가 나에게 등을 보인 채 서있었다
. 시선을 돌려 14층 쪽을 보자 간호사가 역시 등을 보인 채 서있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12층을 보자 의사가 몸을 반쯤 돌린 채 내 쪽으로 조금 가까이 와있었다. 14층으로 시선을 돌리자 간호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밀려드는 공포감에 도망치듯 13층으로 뛰어들어갔다.

내가 13층으로 들어가자 층과 계단을 이어주는 문이 닫혔다. 갑자기 어둠이 엘리베이터 문에서 쏟아져 나오며 나를 감쌌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둠 속 저 너머의 무언가가 나를 데려가지 않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그때 저 하늘 위로 빛이 보였다. 그리고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빛이 흔들렸다. 무어라 말을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너무 나른하다.


“... 지난 밤, 한 20대 남성이 엘리베이터에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CCTV를 확인해 보면 몸을 가누지
못 할 정도로 휘청대는 피해자가 보입니다. 그리고 잠시 뒤 엘리베이터 앞에서 결국 중심을 잡지 못 하고 넘어지는데,
하필 엘리베이터 문 쪽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은 사내의 몸무게를 버터지 못 하고 그대로 열리며 사내는 그대로 추락하게 됩니다.

엘리베이터 제조사에서는 구조상의 문제로 엘리베이터 문은 강한 힘으로 밀게 되면 열릴 수 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지 말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