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야기가 듣고 싶으시다구요?

글쎄요. 제가 지금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모르겠네요.

뭐 숨기거나 하려는건 아니고 아직도 이게 현실인가 싶어서 머릿속이 복잡하거든요.

........

하긴 제 생각도 정리하고 마음도 다잡을 겸 처음부터 천천히 이야기 해보는것도 방법이겠네요.

대신 제가 조금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해도 믿어주세요. 전부 사실이니까.

그녀 이야기라....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아름답고 애틋한 이야기만 가득 했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네요.

물론 그녀가 운명이라 여긴적도 있었죠.

그녀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행복할거라 믿은적도 있었고.

또 우리 둘의 미래는 밝을거라 생각한적도 있었어요.

실제로 연애 초기에는 한없이 좋았죠.

조금 안맞는 부분정도야 둘이 충분히 맞춰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동거를 시작하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니까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어요.

식성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자는 습관이나 환경까지 달랐으니까요.

사랑이란 이름 하나로 맞춰가던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실로 다가온거에요.

그때부터 이제 사랑스런 그녀는 사라지고 껄끄러운 동거인만이 남았어요.

‘내가 정말 그녀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때쯤엔 더 이상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이가 어긋나 있었죠.

그녀도 아마 느꼈을거에요.

한가지.

헤어질 만한 단 하나의 일만 생긴다면 그 즉시 우린 갈라설거고

완전히 남으로 돌아갈게 분명했어요.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전 그 한가지 일을 기다리고 있었죠.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우릴 갈라서게 할만한 일이 생겼지만

그건 제가 생각하던 이별은 아니었어요.

상상도 못했죠.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거하게 한잔 하고 들어왔을 때,

그녀는 평소처럼 잔소리를 늘어놨어요.

왜 있잖아요. 아저씨들이 늦게 들어가면 와이프들이 할법한 바가지 긁기.

왜이리 늦었냐? 무슨 술을 이리 많이 마셨냐? 이상한데 간거 아니냐? 누구랑 마셨냐?

보통은 듣기 싫어서 그대로 침대에 들어가 잠든척 하고 말텐데

그날은 정말 맘 속에서 화가 들끓는거에요.

순간 훅 하고 이성이 날아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가 쓰러져 있었어요.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조심스레 다가가서 살펴봤더니 심장이 뛰질 않았어요.

예. 순간 욱해서 제가 그녀를 죽여 버린거죠.

그때 제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요?

슬픔? 죄책감? 두려움?

당연히 슬프기도 했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 였으니까.

죄책감도 있었고 무서운건 뭐 말할 것도 없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드는거에요.

이젠 그녀가 없구나. 드디어 난 자유가 되었구나.

더 이상 입에도 안맞는 음식 억지로 먹지 않아도 되겠구나.

잠잘땐 넓은 침대에서 편하게 잘 수 있겠구나.

이제 더 이상 잔소리를 안들어도 되겠구나.

왜요? 너무 쓰레기 같았나요?

그것도 이해해요. 저 역시 제가 참 한심했으니까.

그런데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되더라구요.

시체를 치울 엄두도 못내고 경찰에 신고할 엄두도 못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가

술기운 반, 패닉 반으로 그 자리에서 정신을 놔버렸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눈앞에 그녀 시체가 없었어요.

내가 꿈을 꾼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녀가 방문을 열고 나와 제게 걸어왔어요.

어제 분명히 죽은걸 확인 했는데 멀쩡히 일어나서 걸어오는 거에요.

죽은 눈을 한 채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그녀가 되살아났다고 이야기 하긴 어려웠어요.

그녀 눈은 죽은 시체처럼 빛이 꺼져 있었고 얼굴엔 핏기가 가셔서 창백해져 있었으니까요.

그냥 죽은 시체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게 맞겠죠.

그래도 겉모습 외엔 살아있을 때랑 똑같았어요.

아무일 없던 것처럼 내게 말을 걸어왔고 청소를 하며 노래를 흥얼거렸고 요리를 했죠.

아니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어요.

이전처럼 저에게 잔소리 하지도 않았고 준비하는 요리는 제가 좋아하는 거였죠.

제게 하는 말은 전부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었어요.

그 이후로도 비슷했죠.

잘 때 뒤척이며 제 잠을 깨우거나 이불을 뺏어가지도 않았고

시도때도 없이 내던 짜증도 없어졌어요.

그저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간식을 만들어 주거나 다정하게 얼굴을 쓰다듬어 줄 뿐이었죠.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애정이 잔뜩 느껴지는 손길....

얼마만에 느껴보는 애정인지 눈물이날 지경이었어요.

생전 날 힘들게 했던 그녀가 죽은 다음에야 비로소 완벽한 여자가 되었다....

이상한 이야기죠?

저도 믿기질 않아요. 하지만 분명 현실이에요.

그때부턴 정말 신혼부부처럼 달콤한 시간을 보냈어요.

창백한 얼굴이었지만 비로소 예쁘게 보이기 시작했고

진심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이 행복이 오래 갈 것 같진 않았어요.

그녀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지만 그녀 육체는 죽어있었으니까.

네. 곧 시체가 썩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모습은 점점 기괴해 졌죠.

게다가 썩은 냄새가 풍겨오기도 했고.

구할 수 있는 방부제란 방부제는 모조리 구해다가 써봤지만 한계는 있었어요.

그녀 몸이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그녀 목소리도 그녀 움직임도 힘을 잃어갔죠.

그때 확신 할 수 있었어요. 이제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구나.

드디어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는데, 내게 딱 맞는 여자가 되었는데

이제 진짜로 헤어져야 되는구나.

그걸 실감한 순간, 진짜 슬픔이 찾아왔어요.

눈물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말그대로 오열할 수밖에 없는 슬픔.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이었죠.

뭔가 방법이 필요했어요.

그녀를 제 곁에 붙잡아 둘 방법.

아주 오랫동안 고민 했지만 사실 답은 간단했어요.

그녀 몸이 망가진다면, 새몸을 주면 되는거죠.

이왕이면 예쁘고 싱싱한 여자의 몸.

그녀는 소라게가 껍질을 옮겨가듯이 새로운 몸으로 갈아입으면 되는거에요.

이미 완벽한 그녀가 더욱더 완벽해지는거죠.

조금 걱정했지만 결국 제 생각은 맞았어요.

납치해온 여자의 목을 졸라 죽이고 얼마 안가 그 여자의 시체가 일어났어요.

아니 이제는 그녀라고 해야겠죠.

썩어가는 몸을 버린 그녀는 모습만 조금 바뀌었을 뿐 여전히 사랑스러웠어요.

그 순간 확실할 수 있었죠.

예전부터 꿈꿔왔던 삶.
그녀가 그걸 완성 시켜주었다는 걸요.

하... 그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로는 다 설명 못할 정도에요.

내 사랑, 내 운명, 내 행복....

어쩌면 살아있었을 때의 그녀는 이리도 완벽한 여자가 되기위한 고치였을지도 몰라요.

그녀가 죽음으로서 그 고치를 깨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거죠.

이제 남은 일은 넓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거에요.

저와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면서....

왜요? 이상하게 들려요?

대답해보세요. 제가 미친사람 같나요?

정신병자 같아요?

모르는 소리 마세요. 제 말은 전부 사실이라니까요.

그녀는 지금 더 완벽한 여자가 되었어요.

그냥 네 번 정도 모습을 바꾼 것 뿐이에요.

...........

아니, 이해를 못하시네.

살인이 아니라 고치를 깨고 나비가 되기 위한...

...........

그게 아니지!! 죽은게 아니라 살아있다고!!

아니 죽긴 죽었는데... 내말은...

.............

아 진짜 좀 내말좀 들어보라고!!!!

이 개새끼들아!!!

이거 풀어!!! 놔 이새끼들아!!

니들이 뭘알아? 알지도 못하는 새끼들이!!!

내 여자 어디있어? 어디 숨겼어!!

대답해 이 새끼들아!!!






By. neptun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