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있는데 딱히 안 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보시면 좀 더 재밌게 보실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전편: 꼴깍

http://m.humoruniv.com/board/read.html?table=fear&number=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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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하고 오셨나요?

아, 예약은 안했다구요.

그러면 예약을 잡아드릴까요?

네?

예약이 필요하신 게 아니라고요?

저희는 동물 친구를 보지도 않고 처방을 내려드리지는 않아요.

이 동네 다른 동물 병원도 다 그럴거에요.

예전에 안 좋은 사건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무래도 좀.....

전혀 아니라고요? 그러면 무슨 일로?

형사님이셨군요.

무슨 일로 오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오래 걸릴까요?

협조라면 얼마든지 하겠지만 지금 점심시간 이후로는 예약이 꽉 잡혀있어서 오랜 시간은 곤란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저희 이미지도 있고 영업에 방해라서.

약물 관리대장이라면 여기 있어요. 저희 병원에서는 항상 약품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답니다.

보시면 알거에요.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병원에서도 마찬가지일거니까.

아, 발령된지 얼마되지 않아서 모르시는구나.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한.... 15년 전쯤인가?

사람들이 죽은 일이 있었거든요.

저 건너편에 편의점 보이시죠? 원래는 편의점이 아니라 동물병원이었어요.

정선 동물병원.

우리 병원보다는 좀 규모가 작았는데, 그 병원장은 여기 토박이라서 손님이 많았어요.

그 때쯤엔 우리 병원쪽이 더 시설도 좋고 신식이었어도 파리가 날렸었죠.

그쪽의 선생님이 워낙 성격도 싹싹하고 친한 사람도 많았어서 애견인들 사이에서 사랑방 역할을 했거든요?

왠만한 애견인들은 다 그쪽 병원 선생님을 오래도록 알아온 사이니까 당연한건데 그땐 잘 모르고 들어온거였어요.

그 때만 생각하면....어휴.

아무튼 그쪽 동물병원 단골 중에는 요크셔테리어를 키우는 아주머니 하나도 있었는데, 정말 그 요크셔테리어를 아들처럼 소중히 길렀었대요. 이름이....기억은 나지 않으니까 민수 어머님이라고 할게요. 이게 또 워낙 오래된 일이라.

어쨌든 민수 어머님이 얼마나 그 개를 아꼈냐면, 그 요크셔테리어를 무릎에 앉히고 먹던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이면서 ‘아들아들, 이것 좀 먹어봐. 맛있다.’ 하질 않나, 사람 옷가게를 데리고 가서 옷가지에 억지로 강아지를 집어넣고 ‘이것 봐, 민수야. 엄마가 이쁠거라고 했잖아.’ 하면서 옷을 사간 다음에 그 옷을 개에 맞게 고쳐 입히질 않나.

아주 왠만한 극성도 아니었대요.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장난식으로 받아주던 주변 어머님들도 진심으로 개를 사람취급하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는지 멀어졌다고 해요.

민수 어머님이 이곳에서 인망이 없던 것도 한 몫한 거죠.

생각해보면 안된거죠. 유난이라고 비웃기 전에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생각해야 했어요.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했어야 했다고요.

그런데, 아무도 그러지 않았어요. 그냥 ‘저 여자 또 시작이네’하면서 티타임 수다나 술안주로만 써먹었다고요.

마음 의지할 곳이 있었다면 더 달라졌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남편이라도 집에 잘 붙어있었으면 그것보단 나았겠죠. 그쪽 바깥양반은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바깥으로 나도는 건 아니었고, 분명 민수 어머님을 사랑했지만 민수 어머님의 곁에 남아있던 건 개 한 마리 뿐이었어요.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죠. 커피 좀 마실게요. 아까 내려놨었는데 잊어먹어서. 형사님도 한 잔 타 드릴까요?

향이 좋죠? 원두를 최고급으로 썼거든요. 이번에 커피머신도 좋은 걸로 하나 들여서.

음......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아, 그 일이 일어난 것은 겨울이었어요. 민수 어머님이 우리 병원으로 뛰어들어왔어요.

왜 단골인 병원을 두고 우리 병원에 왔나 궁금했지만 물어볼 필요도 없이 금방 알 수 있었어요.

아주머니의 품에 안겨있는 강아지는 거의 뭉개진 상태였거든요.

정선쪽에서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편하게 해주는 약을 놔주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거라고 했을거에요.

사실, 병원에서 근무하다보면 별별 사람들이 다 와요. 갑자기 강아지가 이런다 하면서 오는 사람도 있고 두고 가버리는 사람도 있고.

동물을 사랑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사람을 혐오하지 않기 위해 애쓰게 되요.

동물들은 한결 같이 사랑하는데, 사람은 언제나 변하기만 할 뿐이에요.

아니, 너무 말이 옆으로 샜네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는 학대당하거나 사고를 당한 동물들을 많이 봐왔어요.

홧김에 걷어차거나 던지거나, 장난으로 담배빵을 놓거나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요. 교통사고로 뭉개진 애들은 예삿일도 아니죠.

하지만 그 어떤 동물들보다, ‘초코’의 모습이 가장 끔찍했어요.

마치 고통을 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 같았어요.

뒤틀린 관절과 튀어나온 눈알, 그리고 만질때마다 잔뜩 묻어나오는 살점......

어딜봐도 최대한 오래 살려둔 뒤 오래 고문하기 위해 애쓴 모습이었어요.

에......초코는 누구냐고요?

그야 아주머니가 키우던 강아지죠. 요크셔테리어요.

아.... 민수는..... 민수에 대해서 제가 말씀을 안 드렸군요.

민수는 아주머니의 아들 이름이에요.




사람 아들 이름.





참 잔인한 이야기에요. 그 부부는 17년 동안이나 아이 소식이 없었는데, 겨우 임신한 것도 장애아였대요.

하지만 자기 아이가 장애인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고생고생을 하다 얻은 아이라면 더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주변에서 검사 받아봐라 해도 기필코 아니라고 하면서 화내다가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게 된거에요.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아도 보통 사람 반절은 따라올까 말까인데, 부정만 하면서 끼고 도는데 제대로 클 수 있었을까요?

아시다시피 장애인 아들은 멀쩡한 아들들보다 돈이 더 들어가잖아요. 남편도 그래서 밤낮으로 일하느라 잘 못들어오는 상황이었던거죠.

그런데 남편은 잘 들어오지도 않고, 아들은 나날이 몸집이 커지면서 감당이 안되는데, 제정신일 수가 있겠어요?

정말 문제가 된 건 민수가 커버렸을 때였죠.

커가면서 제대로 교육 받지를 못하니 본능에만 충실해져서 지나가는 여자애를 더듬기도 하고 바지를 내리고 자위를 하기 시작한거에요.

그때부턴 딸 있는 집이면 벌레보듯이 그 집 사람을 피하기만 하는거면 양반이고 빨리 이사가라고 무안을 주고, 이웃집 사람은 댁 아들 좀 잘 간수하라 따지러 갔대요.

감당 안된 민수 어머님은 민수를 홈스쿨링 하겠다는 명목하에 가둬 키웠나봐요.

짐승처럼. 하지만 동물도 가둬 키우면 미쳐버리는데 사람은 오죽하겠어요?

민수는요. 그 집 안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었대요. 이웃집은 좀 시끄럽기는 했어도 무방비하게 돌아다니던 그때보단 나으니까 그냥 참아냈고요.

여기까지 들으셨으면 좀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초코를 그렇게 만든 건 민수였다는 거.

질투였겠지요. 하나뿐인 엄마가 저 동물을 내 이름으로 부른다. 저 개가 내가 받을 사랑을 빼앗아갔다. 이런 유아적인 질투요.

그런 질투가 초코를 갈기갈기 찢게 만든거에요. 자신이 무슨짓을 하는지도 모르는채로 감정에만 치중해서 그런 일을 저질렀겠죠.

어쨌든, 우리 병원에 찾아왔을 때, 초코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상태였어요.

하지만 민수 어머님의 표정은 무시무시했어요. 차마 곧 죽을거라는 말은 하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전 돌려말했죠.

"초코가 더 편해지도록 도와드릴 순 있어요."

그 순간, 아예 표정이 사라졌어요. 민수 어머님이. 밀랍인형보다 더 인형 같았고, 사람의 얼굴 같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끌고 다니던 유모차에 숨이 까닥이는 초코를 처넣고-이 표현 외에 더 적절한 표현을 못 찾겠어요. 정말 물건 던지듯 던져넣었거든요.- 고개를 천천히 꾸벅이고 나가버리더라고요.

그 때 난 민수 어머님이 민수 어머님으로 돌아오길 바랬어요. 초코한테는 안된 일이지만 동물을 사랑하느라 자신의 가족을 외면하는 것도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민수 어머님은 나가서 정선 동물병원으로 향했어요. 그리고 차분하게 초코를 이제 보내주어야겠으니 안락사시키게 해달라고 했대요.

제가 보기에도 끔찍한 모습이었으니 정선 동물 병원 원장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었을거에요.

차라리 보내주는 게 낫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거에요. 그래서 안락사 약물 처방해 달라는 말에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겠죠.

하지만 민수 어머님은 추가적으로 하나의 어려운 부탁을 했어요. 아이를 보낼 때 집에서 보내주고 싶다고. 약만 주고 방법만 알려달라고.

친한 사람이 거의 정신이 나가서 그런 말을 하는데 거절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거에요. 직업윤리를 어기는 일이라도요.

민수 어머님은 주사를 놨고, 그 주사를 놓은 건 초코가 아니었어요.

그 동안 부정해왔던 민수였어요. 이상하게도 민수가 저항한 흔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그렇게라도 돌아온 엄마의 관심에 기뻐하면서 주사를 맞았을지도.....

그 다음 날, 민수 아버님이 집에 돌아오고, 그 집에선 짐승처럼 우짖는 소리가 들려왔대요.

멈추질 않았다고 해요.

몇 시간 동안.

하지만 다들 또 그 장애인 아들이 울부짖는거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찾아가질 않았대요. ‘저 새끼 또 시작이네’ 이러고 만거지요.

그 목소리가 좀 더 어른의 것이라는 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어요.

......시체들이 발견된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어요. 민수 아버님에게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워낙 어렸을 적에 부모를 잃은 애기도 하고 나이차도 좀 있어서 가까운데 살면서 좀 챙겨주던 관계였대요.

그 사촌동생이 반찬이 떨어져서 집에 찾아왔는데 안에 벌어진 광경을 보게 된거에요.

민수는 주방에서 잠자듯 죽어있고, 민수 어머님은 욕실에서 몸이 뭉개져서 죽은 강아지를 끌어안고 팔목을 그은 채 죽어있고, 그 앞에서 민수 아버님이 넥타이로 목매달아서 시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광경을요.

그 뒤의 이야기는 신문기사로도 찾아볼 수 있을거에요.

결과만 말하자면 정선동물병원 원장님은 약물 취급 위반으로 구속되었어요.

고의가 아님이 참작되어 많은 형을 살지는 않았지만요. 선의로 약을 넘겨줄 때, 그걸로 사람을 죽이리라고 예측했겠어요?

더군나나 알고 지내던 사람이 그랬을거라고는 더더욱 알 수 없었겠죠.

정선 동물병원 원장님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정 많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그래서 다시 이 동네로 돌아오진 못했어요. 어쨌거나 사람을 죽이는데 일조했으니까요.

이제 왜 이 주변 동물병원에서는 구했을리 없다고 했는지 아시겠어요?

.....음. 그리고 형사님.

이런 걸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니아니, 말해야겠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오늘 오신 거 얼마 전에 청송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런 거 맞죠?

소문으로 듣기에는 독약을 먹어서 그랬다고 들었는데요. 꽤나 고통스럽게 죽었다고도 들었어요. 듣자하니 얼굴은 새빨개지다 못해 흙처럼 변했고, 손톱은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동물병원에서 구했을리 없어요.

저희가 동물 안락사용으로 사용하는 약품은 주로 텐토바르비탈이에요.

만약 정말로 죽은 사람이 동물병원에서 구한 약물에 의해 죽은거라면, 적어도 고통스럽게 가지는 않았을거란 말이에요.

안락사 약물이 아닌 다른 약물을 구했다고 해도 말이 안되는게, 약물 중에는 생명이 위험한 것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어요.

죽이려는 목적으로 약물을 사용하려 한다면 최소한 관련 지식이 있어야 할텐데.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동물병원에서 구하지는 않았을거에요.

그런 약물을 처방해달라고 한다면 분명 이상하게 여기고 신고할거니까.

특히 이 근방에선 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만약 정말 죽은 사람이 독살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형사님이 조사할 곳은 동물병원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혹시 뭔가 놓치고 계시는 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