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타임머신을 개발해냈습니다."

정부의 발표였다.

"하지만 이걸 시중에 내놓거나, 기술을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도 제한적으로 사용할 생각…."

처음 발표가 공개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지만, 그들은 곧 `제한적 사용`이라는 말에 앞다투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타임머신을 개발했으면 뭐라도 써먹을 생각을 해야지, 하여튼."

"역사학계에 엄청난 도움을 줄 겁니다. 이 기회를 어떻게 놓친단 말입니까."

때마침 대선이 다가오고 있었고, 대선 후보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래로 가서 미래 기술들을 알아 오겠습니다."

"과거로 가서 우리 민족의 가려진 역사를 파헤치겠습니다."

"타임머신은 매우 위험한 물건입니다. 타임머신을 해체하고 관련 기술 문서를 전부 삭제하겠습니다. 타임머신을 손에 넣은 히틀러를 생각해보십시오."

모두 그럭저럭 무난한 공감을 받았다. 하지만 딱 하나는 예외였는데,

"저는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겠습니다. 단, 모든 범죄자를 가석방해야 합니다."

?
사람들은 그의 말에 황당해했다. 하지만 이어진 발언은 모두를 침묵시켰다.

"여러분, 10억 년 전 지구에 범죄자들을 가석방해주고 다시 돌아오는 겁니다. 그렇게 한다면…."

세상은 달라졌다, 그 대가가 뭔지 알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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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 요즘 작가들은 이런 허접한 말장난 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나?"

길을 걸으면서 핸드폰을 하던 한 청년이 말했다. 그의 입에서는 독한 냄새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의 뒤에서 책을 읽으며 걷고 있는 한 남자, 이은규가 바로 앞으로 벌어질 모든 일의 주인공이다.

이은규, 그는 최근 수많은 사탄의 먹잇감 신세가 되었다. 물론 이에 대해 이해하려면 사탄들이 어떻게 먹고사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사탄들의 업무는 타락해있는 시민을 찾아내거나 혹은 시민을 타락시키는 데에 있다.

따라서 항간에 사탄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졌다는 말이 돌던데, 그건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알아서 타락해있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 사탄들은 오히려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아무나 짚으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건의 발단은 간단하다. 사탄이 된 지 얼마 안 돼 많이 어설펐던 한 사탄이 아무나 찍어 타락시키는 데에 도전한 것인데, 그게 하필 이은규였던 것이다.

"이거 받으시죠. 저희 회사의 납품을 받아주시겠다고 하시니 뭐라도 드리는 게…."

사탄은 거래처 직원으로 분장한 뒤 미리 연습해둔 인간 말투를 능숙하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싸늘했다.

"아니, 받기 전에 묻겠습니다. 혹시 게하시라고 아십니까."

그가 되물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까닭에 사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르시는군요. 그러니 이런 짓을 하시겠죠."

그가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말에 사탄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난 이런 거 안 받습니다. 그게 13년간 일해오면서 만든 제 원칙입니다. 만약 한 번만 더 이런 걸 가져오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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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바보 같군. 조사도 안 하고 냅다 들이댄 건가? 아니 그리고 처음부터 뇌물 줄 생각을 하면 어떡하나! 도저히 이해할 수가…. 정말 바보 같아."

당연하게도 사탄은 무진장 야단을 맞았다.

"하지만 사소한 것부터 하라고 하셨…."

"뇌물이 사소해? 어떻게 내 말을 그렇게…. 지금껏 봤던 애 중에서 일을 이따위로 하는 애는 네가 처음이야."

한 번 타겟을 정한 뒤, 갑자기 바꾸는 것은 회사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머지 뒤처리를 할 겸, 또 신입을 교육할 겸 3년 경력의 대리가 함께 이 일을 맡게 되었다.

"네 일도 많은 거 알아. 하지만…. 부탁한다."

대리는 이런 뒤처리를 이전부터 많이 해왔었다.

그렇기에 수년간 익혀왔던 대로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다.

"사소하다는 건 무의식을 건드리는 걸 말하는 거야. 무의식이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엘리베이터를 잡아주거나 뒷사람을 위해 문을 밀어주는 것, 이런 사소한 것들이 인간의 무의식을 지탱하고 있지. 우리가 할 일은 그 일상을 서서히 망가트리는 거야. 뇌물을 주는 건 마지막에 가서야 할 일이고."

그의 조언대로 신입은 몇 주간 아주 사소한 작전을 수행했다.

가령 엘리베이터 벨을 잡아주면,

"아이씨, 계단으로 갈려 했는데 아저씨 때문에 엘리베이터 타야 하잖아요, 안 타자니 눈치 보이고."

문을 밀어주면,

"참나, 내가 힘이 없어 보여요? 나도 힘 있어요. 무시하지 말라고요."

신입은 이은규를 집요하게, 그것도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공격했다.

그러나 그는 버텨냈다.

"그랬니? 다음부터 너한테는 엘리베이터 안 잡아줄게."

"죄송합니다. 제가 문 미는 걸 좀 좋아해서요."

그의 무의식은 전혀 타격받지 않았다.

"대리님, 아무런 타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대리 역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조금 난감했다. 그래서 그는 신입 몰래 을 펼쳐보았다. 아직도 많은 사탄이 즐겨보는 이 책에 따르면 이런 경우엔 `큰 거 한방`이 필요했다.

"내가 사소한 것부터 하자고 했었지? 근데 그게 안 먹히는, 이른바 도덕적 인간한테는 큰 거 한 방을 먼저 날리는 게 좋아."

"음…. 어떤 게 있을까요?"

"내가 몇 년 동안 일해봤더니 술에 취했을 때 인간의 무의식이 가장 약하더라고. 우선 술에 취하게 만들자. 그 뒤엔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게 만드는 거지. 좀 고전적인 레퍼토리긴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는 분명 죄책감에 시달릴 거야. 자기 자신이 도덕적이라는 믿음이 붕괴되고…. 결국 조금씩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는 완전히 타락해버리는 거지."

신입 앞에 선 대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지시대로 신입은 몇 가지 일을 해야 했다. 첫 번째는 대대적으로 음주운전을 단속하는 날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이은규가 다니는 회사 이름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탁탁 소리와 함께 몇 글자가 모니터를 채웠다.

8월 14일, 광명 그룹

"대리님, 근데 겨우 음주운전 걸린 거 가지고 사람이 타락할까요?"

"음…. 그 양반 여자친구가 있다고 하긴 하던데 그거랑 엮을 수 있을까? 8월 14일이면 만난 지 며칠째 되는 날인지 알아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 8월 14일이 처음 만난 날이네요. 게다가 이은규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단 말이지…. 음주운전 벌금 통지서와 여자친구와의 다툼, 그 정도면 그의 무의식에 다가갈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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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복도, 오늘도 납품업체와 협상하고 와 살짝 피곤해진 이은규 앞을 누군가 지나갔다.

"어? 회장님, 여기는 웬일로…."

"뭐긴 뭐야. 자네 만나러 왔지. 혹시 술 한잔 괜찮은가?"

"아…. 감사합니다만 제가 술을 못해서…."

"정말 중요한 일인데, 술 한잔하지?"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술을…."

"자네 실적이나 됨됨이를 보니 여기서 썩힐 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네. 그러니…. 술 한잔 안 되나?"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한잔도 못 마셔서…."

대리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재밌는 친구네. 술에 떡이 되든 말든 상관없으니 그냥 한잔만 하자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최후의 방책이 필요했다.

물론 술 한잔 안한다고 이러는 회장이 있을 리가 없지만,

"이렇게 무뎌서 어떻게 이 일을 하고 있나? 술 한잔 안하면 그냥 잘라버릴 테니 그렇게 알게. 정말 바보 같군."

그러나 그 말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켰다.

"자르셔도 됩니다. 하지만…. 술은 못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은규는 그 짧은 순간 무언의 다짐을 한 듯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그냥 가버렸다. 대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가나? 아니…. 어디…."

대리는 재빨리 신입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이거 어떡하지? 이 양반 술 안 먹는데?"

"대리님, 그럼 다음에 다시 해봐도…."

"오늘 대대적인 음주운전 단속이 있잖아. 게다가 여자친구와의 기념일이기도 하고."

대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 양반은 뼛속까지 선으로 가득 찼나 봐. 회장이 먹자 해도 안 먹는다니….`

그때, 대리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깐만, 뼛속까지 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그는 신입에게 물었다.

"혹시 행사 같은 데 가면 마시는 거 나눠주는 부스 있잖아. 10분 안에 만들 수 있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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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약이 없어서 전세계에서 수십만 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원샷 캠페인에 참여해주세요."

퇴근길에 회사를 나서는 이은규 앞, 이상한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게 뭐 하는 건가요?"

이은규는 뼛속까지 선한 인간인지라, 이런 캠페인에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 컵에 담긴 음료수를 원샷하시면 캠페인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저희는 소독약이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단체입니다. 전 세계의 30% 인구가…."

종이컵에 담긴 음료수를 보며 그가 물었다.

"아…. 근데 이게 뭔가요? 술 냄새가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아 이 음료수가 소독약을 상징하는 거여서요. 알코올 향이 들어간 탄산수에요. 한 번에 드시면 됩니다."

꿀꺽. 그리고,

"이거 술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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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자네들이야. 이걸 해내다니 말이야."

팀장이 말했다.

"바로 처음 만난 날이 언젠지도 모르는 남자친구를 원망하던 한 여자가 갑자기 사랑한다고 온 문자를 보고 감격하도록 말이야. 자네들은 결별을 막아냈어."

"그렇게 될 줄 몰랐…."

"헛소리 말게. 이 사람은 본성까지 선한 사람이야. 애당초 술에 취해도 대리운전으로 올 사람이었다고. 게다가 네가 회장 행세하면서 해고하겠다고 협박한 것 때문에 쫄아가지고, 여자친구한테 사랑한다고 문자까지 보냈잖아."

팀장의 눈이 절망으로 가득 찼다.

"회장 바뀐 지 얼마 안 돼서 잘 보여야 하는데, 이렇게나 시간 많이 써놓고 실패했다고 보고할 순 없어."

하지만 팀 내에 이은규를 처리할 능력이 있는 사탄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럼 업계에서 유명한 사탄 모셔보는 건 어떨까요?"

"사립 사탄을 고용하자…. 불법이긴 하지만 꽤 괜찮은 생각인데?"

그리하여 좀 한물간 면이 있지만, 여전히 실력은 인정받는 한 사탄이 이 일을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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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다소 아쉬운 필력, 부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에도 불구하고 많이 다듬지는 못했습니다.
머릿속에 엔딩까지 다 담겨져 있는 제 입장에서는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방법만큼 재밌는 것 같은데
막상 쓰고 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2화에서는 실력 좋은 사탄이 이은규에게 어떤 작전을 펼칠지,
이은규가 과연 타락하게 될지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