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외로움을 친구 삼아 살아가기로 한 사람이었어요.

유일한 예외가 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좋은 것이었을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알 것 같아요.

청혼받았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 때 남편은 제가 거절할까봐 발발 떨며 불안해하면서 반지를 내밀었죠.

‘사랑해, 은재야. 너는 내 인생의 유일한 행운이야. 그러니 너마저 없어진다면 차라리 죽어버리겠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다른 사람과 잘 말을 섞지 않았어요.

과 내에서도 그나마 그와 대화를 하는 선배에게 친구 아니냐고 물어보면 잠깐 말이 없어졌다가 ‘에이, 그냥 이야기만 하는 정도지~’하고 말 정도였으니까.

성격 자체도 분명 사람이 달라붙을 성격은 아니었어요.

어쩌다 다른 일로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그이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는 것조차 하지 못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 내에서 그이의 평가는 매우 높았는데, 그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막상 그의 글을 보게 되면 납득하게 되더라구요.

그의 글은 이상했어요. 처음에 읽다보면 필력이 조잡스러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그 조잡한 것 같은 단어의 조합이 숨통을 조여오는 듯이 읽는 이를 사로잡아요.

한 번 읽고나면 그 끝을 보지 않고서는 이겨낼 수가 없게 되는거에요.

주로 다루는 것은 인간의 괴악한 추악함에 대해서였는데, 별 다른 것 없이 투박하게 묘사하다가, 모순적이게도 가장 천박한 부분에서 가장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쓰이기 시작하며 절정을 찍어요.

그의 글을 읽노라면 어쩌면 인간은 인간의 추악함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게 설계된 것은 아닐까 설득될 정도로 그의 글은 사람을 홀렸어요.

하지만 그이는 그 글만큼이나 아이러니한 존재였어요.

과의 사람들은 그의 아름다운 글을 읽고는 문인으로는 존경했을지언정 인간으로서 가까워지고 싶어하지는 않았어요.

그이에게는 괴상한 소문이 따라다녔으니까 더 꺼려졌겠죠.

정신병원을 다녔다던가,

친인척이 하나도 없는 것은 사실 그가 죽인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라던가....

사실이 확인된 것은 무엇도 없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사람들은 그를 꺼렸어요.

내가 그에게 말을 건 것은 그 소문을 안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나도 그 소문이 진짜가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 중 하나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긴장하면서 그에게 말을 걸어보니, 그도 나와 똑같더라구요.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시시껄렁한 농담에 피식거리고,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까,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먹을까 같은 사소한 거에 고민하기도 하고,

영화관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굴을 가리다가 제 시선을 느끼고는 아닌 척 애쓰기도 하고,

손 잡는 것조차 얼굴이 붉어지고 마는 평범한 남자였어요.

다만 말재주는 글솜씨와 다르게 처참해서, 오해를 풀려고 입을 여는 순간 오해가 더 깊어지게 만들었어요.

아마도 나쁜 소문이 돈 것도 그 매우 서툰 말재주 덕분인게 분명했죠.

전 그 안에 있는 마음은 따뜻하다는 걸 느꼈어요.

글에 대한 열정도 아름다웠고요.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느 순간 우리는 깊은 사이가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행복했죠. 처음 몇 년 동안은.

아들도 태어났고, 우리는 행복했었어요.

남편이 학부생 때 쓴 책의 인세만으로도 우린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거든요.

여기저기 놀러다니곤 했어요. 유럽도, 미국도, 하와이도, 호놀룰루도 전부 덕분에 가볼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동안에 그는 전혀 글을 쓰지 못했어요, 단 한 글자도.

우리의 수입은 줄어갔고, 점점 우리의 생활 수준도 낮아졌죠.

남편이 최선을 다했다는 건 알아요. 하루 종일 앉아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애썼는걸요.

하지만 남편은 그 ‘홀리는’ 글을 쓰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제서야 남편은 자신의 가장 깊은 비밀을 털어놓았죠.

......저어, 형사님. 제 남편이 쓴 책 중 알고 있는 거 계세요?

아, 비늘의 날개라. 그거 유명했죠.

그건 남편을 거의 키워주다싶이 한 친척형이 죽었을 때 썼던 거래요.

가장 최근에 쓴 건 뭔지 아세요?

....진홍색 죽음?

아, 진청색 죽음 말씀하시는거구나.

아뇨, 진청색 죽음은 가장 처음에 쓰여진 거에요.

남편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쓰여졌죠.

가장 최근에 낸 책은 ‘찢겨진 자리’에요.

아시겠어요?

남편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에요. 불행해야만 하는 사람이었죠.

사람들이 아름답다 극찬하는 그 글들은 그가 지독하게 불행해져야 비로소 써졌어요.

찢겨진 자리도.....아들이 죽은 직후에야 쓸 수 있었던 책이에요.

아들.....

우리 진수.

유치원에 다녀오면 늘 우리 사이에 앉아 조잘거리며 그 날 있었던 일을 말해주곤 했죠.

1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사이에 사랑이란 것도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진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동료 같은 느낌으로 살아왔어요.

왜, 연애는 꿈 같은 것이고,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들 없이는 대화조차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어요.

아들을 잃었을 때가 되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죠.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서로 대화가 없었고, 그저 동거인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하지만 다시 가족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어요.

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걸요.

아들이 계곡에 빠져 죽던 그 날 우리는 아들을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이는 내가 통화하러 사라졌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 원망했겠죠.

내가 그이를 옆에 있었으면서도 죽게 내버려뒀다고 마음 속으로 원망하는 것처럼.

어쩌면 그게 사고가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나는 그 순간에 그 자리에 없었던 엄마인데.

우리는 서로를 원망하는 말은 내뱉지 않았어요.

그저 조용히 살아왔어요.

서로 비난도 하지 않고 피해도 주지 않지만, 어떤 감정 교류도 없고 도움도 오가지 않게.

우린, 그 이후로 그냥 그렇게 살아왔어요.

형사님, 형사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저를 신문하는지는 알아요.

제가 형사님이었어도 절 의심했을거에요.

.....충분히

.... 의심스러우니까 말이에요.

물 좀 마실게요.

아까부터 목이 타네요.

형사님도 한 잔 드릴까요?

아, 네.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었죠?

아, 아들이 죽은 이후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죠.

그 이후부터 우리는 건조하게 살았다고.

그이는...얼마 전부터 묘하게 저에게 잘해주기 시작했어요.

정확히는 제주도 한달 살기에서 돌아오던 날부터였어요.

왠일인지 먹을 것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더군요.

‘우리, 오랫동안 마주보지 않았잖아. 이젠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 내겐 당신이 유일한 가족이잖아.’

그 한 마디에 모든 앙금이 풀리진 않았어요.

하지만 매일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는 풀어지더라고요.

그래도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어요.

우리는 여전히 대화가 없었고, 대화거리가 생기더라도 오래 이어지지는 않았거든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요.

내 마음도, 남편에 대한 내 묻어둔 원망도.

어느 날 남편이 불현듯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 우리 사이는 평화로웠어요. 편안했고.

.....길지는 않았어요. 며칠 전 저녁에 남편이

‘오랜만에 글을 다시 써보려 해.’

라고 말하지만 않았다면 그 평화는 좀 더 오래갔을거에요.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겠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제가 어떤 생각이 들었을 것 같나요?

저는, 저한테는 그게 사형선고였어요.

조금이라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뇨, 없겠죠.

절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거에요.

온 몸의 털이 쮸뼛 서고, 피는 전부 머리로 몰리고 있었어요.

눈 앞이 하얘졌다가 검어졌다가를 반복하다가, 정신차렸을 때에는 소리 높여 따지고 있었죠.

“왜?”

나는 내 아들이 죽은 그 때부터 그의 그 아름다운 글이 미워졌어요.

그의 글을 위해서 내 아들이 바쳐졌다는 생각을 도저히 머릿속에서 지워낼 수가 없었어요.

남편은 칭찬이라도 받을 줄 알았는지 미소지으며 절 보고 있다가 제가 화를 내는 모습에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되물었죠.

‘그야,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당신은 왜 내게 화를 내?’

그 뒤에 제가 뭐라고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남편은 내 화를 풀어주려고 몇 마디 더 했지만 그 말들은 오히려 제 화를 돋굴 뿐이었죠.

남편은 진정해보라면서 컵에 물을 따라줬어요.

풀릴 뻔 했죠.

그래서 그의 말대로 물을 마시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 순간에 그게 눈에 거슬리더라구요.

그이는.... 나에게 줄 물은 평소 자기가 아무렇게나 쓰던 컵에 따라주고, 본인이 마실 물은 제가 새로 선물 받아온 고급 찻잔세트에 따랐어요.

여태껏 선을 긋고 내것 네것하던 사람이, 나는 싸구려에 물을 내어주고, 자신은 나조차도 아까워 함부로 쓰지 못했던 고급 찻잔세트에 담아 마신다....

전, 화났어요.

그래서 남편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안 보는 틈에 슬쩍 우리 잔을 바꿨어요.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게도 남편은 제가 잔을 바꿨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어요.

전 제가 한 짓이 그런 결과를 만들줄은, 정말, 꿈에서도 몰랐어요.

사실 진심으로 화나긴 했지만 죽이고 싶은 정도는 아니었어요.

‘죽여버리고 싶다’와 ‘진짜 죽인다’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잖아요!

어쨌든, 저녁을 먹고 나니 남편이 갑자기 케이크를 사왔다며 작은 조각케이크 두 개를 꺼냈어요.

뭐 먹겠냐고 물어보길래, 난 티라미수를 먹겠다고 했죠.

다른 하나는 남편이 먹는데 잘 먹지 않는거에요.

왜 그런가 물어봐도 물만 들이키면서 시계만 쳐다볼 뿐 아무 말 없었어요.

그렇게 한 10분이 지났나?

남편이 갑자기 이죽이면서 비꼬는 거에요.

아들이 죽을 때 넌 뭘 했냐고.

숨이 턱 막혀오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제가 거기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어요?

아들의 옆에 남편이 있어서 믿고 친구랑 통화하던 건데, 남편은 제 탓만을 하는거에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 슬슬 약효가 돌겠네.’

제가 무슨 말이냐고 묻자, 제가 먹은 것에 독을 넣었대요.

수의사한테 우리 집 암캐가 미쳐버려서 안락사 좀 시켜야겠다고 약을 받아왔대요.

효과 좋을테니까 가는 모습 잘 지켜봐주겠대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도 안되고 어이없어서 언성을 높였어요.

분명 소설가고 상상력이 풍부하니까 이상한 말 지어내면서 날 겁박하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이더라고요.

독을 탔다는 말.

갑자기 남편은 목을 붙잡고 쓰러졌어요.

그리고 바닥을 벅벅 손톱으로 긁으며 제 앞에서 죽어갔어요.

뒤늦게 정신차리고 부른 119는 너무 늦게 도착했고요.

네, 제 남편은 죽었어요. 저를 죽이려다 일어난 일이었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다음 편: 꼴깍꼴깍
http://m.humoruniv.com/board/read.html?table=fear&page=0&number=81136&from=b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