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 한 마을에서는 눈, 코, 입, 귀가 다 막혀있는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의 생김새는 흡사 물에 젖은 천으로 아이의 얼굴을 감싼 것 처럼 보였다. 구멍이 존재할 곳들이 얇은 무언가로 막혀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저 꿈틀댈 뿐이었다.
산파는 아이를 받은 후 두문불출했으며, 산모는 아이에게 의미 모를 강한 증오를 느꼈다.
시간이 지나고, 진정이 된 산파는 자신을 걱정하던 마을 사람들에게 이유를 설명하다 아이에 대해 얘기하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가 악마의 자식이라면서, '마녀의 집을 불태우자' 라며 산모의 집을 찾아간다.
산모는 목이 졸린 채 죽어있었다. 목덜미에 손자국이 강하게 나 있었다.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산모는 미혼모였으며, 주변 사람이나 가족 또한 전무했다.
마을 사람들은 마녀를 처벌한 누군가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산모와 아이에 대한 흔적은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듯 사라지고 사람들의 뇌리에만 남았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한 방송사는 새 예능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과거에 풀리지 않았던 미스테리를 다시 찾아가, 현대의 기술로 해석하는 것.
서프라이즈 제작팀이 맡은 만큼, 미스테리라는 방송 주제의 갯수는 넘쳐날 정도였고
그 정체는 대부분이 사람들의 착각 혹은 실수를 덮으려는 시도였으나, 방송 특성상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었으며, 순한 맛의 예능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그러 들 때쯤 이었기 때문에 사내의 임원들은 프로그램의 가치에 대해 상당히 고평가를 한다.

방송은 현재 1화까지 나갔으며, 상당한 입소문을 탄 상태였다. 국내 최고의 MC를 섭외한 이유도 있었으나, 노련한 편집의 힘으로 논란거리가 될 것들은 모두 없앴으며, 조작과 왜곡의 힘으로 방송 내용을 더욱 더 자극적이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가차없는 경고를 주었기 때문에 2화를 내기 힘들 상태가 되었다. 결국 2화는 무산되었으며, 3화는 조작과 왜곡이 들어가지 않은 방송을 녹화해야 했다.
3화의 촬영을 준비하던 작가들은, 1800년대에 일어난 아이에 대해 녹화하기로 한다.
죽은 산모와, 사라진 아이.
적절하게 자극적이며, 찾을 방도가 없다.
시청자들의 호기심과 상상력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녹화에 참가했다. 내 직속 선배가 그 사건에 대해 한번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해당 마을 탐방기에 짧게 수록된 글이었는데, 그나마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자료였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 수기만을 올리던 선배는, 방송 아이템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유명세를 탈 기회였기 때문에 제작진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러나 말을 조리있게 하지 못 하는 선배는, 고기방패 혹은 대리인삼아 나를 녹화에 참여시켰다.
물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과거 마녀사냥의 기록에 따르면, 마녀와 악마의 자식은 100년마다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한다.
1900년대의 기록은 없지만, 편집 과정에서 어떻게든 해결한다고 했으며 - 방송통신위원회의 경고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보였다 - 2000년대인 지금, 아이를 찾는 방송을 녹화한다고 했다.
선배의 인터뷰는 이미 사전촬영에서 끝났지만, 해당 마을을 다시 찾아가는 장면을 위해 우리는 연락을 받고 현장에 나갔다.
그곳에는 국내 최고의 MC, 배우, 아이돌, 개그맨 등 매체로서만 보던 인물들이 있었다. 짧게 인사를 나눈 후 녹화를 시작했다.
플롯은 단순했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갔다가, 경비행기를 타고 외부인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오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해당 마을에 도착하는 과정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나, 도착하고 난 후 현장에 있던 제작진들이 트러블을 전해왔다.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외부인을 막는다는 이유였다.

며칠 전만 해도 해당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주지가 관광지로 탈바꿈되리라는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에서 갑자기 마을에 대해 알아보러 우르르 몰려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전 답사 및 준비를 위해 찾은 제작진들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으며, 방송을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들고 그들을 찾았다.
그러나 이틀 전, 마을의 분위기가 급속히 냉각되더니 이제는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PD는 행복해보였다. 이거야 말로 미스테리에 걸맞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나.

늦은 밤, 우리는 적외선 카메라를 장착하고 마을에 잠입했다. 마을 사람들의 경계는 의외로 허술해서 쉽게 뚫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나뉘어서 단서를 찾고자 하였다. 나는 선배와 함께 경계가 심한 곳으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얼굴이 많이 알려진 상태지만, 우리는 아니었으며, 무엇보다 마을을 한번 와 봤던 선배가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는 표면상으로의 이유였다. 핵심적으로는, 명예욕에 눈이 먼 선배 때문이었다. 여기서 한 건만 제대로 하면, 자신은 단순 여행 기자 나부랭이가 아닌, 방송으로 잘 나가는 몇몇 사람들의 자리를 꿰찰 수 있다는 잔뜩 부풀어 오른 욕심 내지 희망 때문이었다.
제작진은 그 욕망을 잘 이용했다. 선배에게 바람을 넣고, 가장 힘든 일을 시켰다.
중간의 나만 죽을 노릇이었다.
근데 거짓말같게도, 경계가 심한 곳으로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장소를 지키지 않은 채 둘셋씩 모여 큰 목소리로 토론중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그 소리에 파뭍혀 점점 경계의 근원지로 나아갔다.
근원지가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경계를 서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넋 나간 사람이나 혹은 구석진 곳에서 벌벌 떠는 사람들만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허름한 판잣집에 도달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의미모를 기운에 몸이 압도되었다. 방 안에는 아이가 누워있을 만 한 작은 나무통만 있었으며, 가까이 다가설 수록 움직임없는 아이의 몸이 서서히 보였다.
머리털이 쭈뼛 섰다. 소문의 그 아이일 것이라 생각했다. 차마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못 했다.
그러나 선배는, 터져버리기 직전인 그 욕망의 끈으로 나를 옭아매어 아이를 집어오도록 시켰다. 그의 눈동자는 내 눈을, 그의 카메라는 그 아이를 좇은 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품에는 허름한 천으로 잔뜩 덮여있는 무언가가 담겨져 있었다. 절대 아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움직임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갓난아이에게 느껴질, 버둥거림이나 뜻모를 옹알거림은 커녕 썩은 나무를 운반하는 느낌이었다.
선배를 바라보니 행복하지만 끔찍한 꿈을 꾸는 사람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분명 웃는 얼굴인데, 사람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명예욕에 사로잡힌 인간인가. 토악질이 나올 듯 했다.

제작진들을 불러모아 얘기를 전했다. 5분도 채 안되어 사람들이 전부 모였다. 아이에 대해 조사하던 게 맞나 싶었다. 우리만, 아니 선배만 너무 몰입해있던 게 아닐까.
나는 아이를 내려놓았다. 조심스레 내려놓을 수 없었다. 생명이 깃든 무언가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가 바닥에 닿기 직전, 한 아이돌이 손을 뻗어 조심히 내려놓아 주었다.
난 뒤로 멀찍히 빠져 그들이 하는 대화에서 벗어났다. 나를 찍던 카메라도 곧 선배의 얼굴을 비췄다. 선배는 아이를 찾아 데려온 과정에 대해 과장 반 욕심 반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렇게 말을 잘 할거면 날 뭐하러 데려온 것일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 아까 아이를 만진 아이돌과 눈이 마주쳤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인 듯 했다. 내 손이 닿은 게 사람이 맞을까 싶은 얼굴. 나도 잘 모른다는 뜻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MC의 정리가 끝이 나고, 천을 치워 아이의 얼굴을 마주해야 할 시간이었다. 난 더욱 더 멀리 떨어져 상황을 보고 있었다. MC가 손을 뻗어 천을 치웠다.

순간 모두가 숨을 들이켰고, 난 그 침묵 속에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아이의 얼굴은 얇은 천을 댄 듯, 콧구멍과 귓구멍이 막혀 있었다.
눈과 입은 닫혀있어 확인하지 못 했다. MC는 촬영을 잠시 중단하고 PD와 얘기를 나눴다.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선배는 놀라움과 기쁨이 공존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나와 아이를 번갈아보았다.
나는 아이의 푸르스름한 피부색을, 죽은 시체에서나 볼 법한 그것을 외면했다. 어쩌면 진짜 죽은 것일까.

그 순간, 아이가 움직였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거리를 두었다.
아이의 눈구멍과 입이 열렸고, 난 똑똑히 보았다.
역시 무언가로 막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단, '저것'이 살아 움직인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PD는 잔뜩 흥분했다. 아이템이 대박났다며, 당장 병원으로 아이를 데려가 진단을 시켜보자 했다. 진단 결과에 따라서 자신들의 위상이 바뀔 것이라 하며, 적어도 국내는 벗어날 유명세에 대해 기대감있게 얘기했다.
선배는 그 옆에서 그의 얘기를 경청했다. 그와 똑같은 얼굴로.
고조된 기대감 때문인지, 제작진은 재빨리 움직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끔 짐을 챙겨 멀리 움직였으며, 경비행기 한 대를 다시 불러들였다. 웃돈을 잔뜩 챙겨준다는 말이 인상깊었는지, 잠이 덜 깼지만 횡재했다는 눈의 기장이 역겹게 느껴졌다.
깜깜한 밤에 경비행기가 날 수 있을 지 걱정이었으나, 기장은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MC는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지만, 그와 날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은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아이를 만진 후 얼굴을 찡그리던 아이돌은, 이제 우리 멤버들 모두 고생길이 끝났다며 고개를 파묻은 채 울고 있었다.
그녀를 달래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보이지 않는 흥분감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선배의 품에 안겨 숲 위를 날고 있었다. 선배는 노련하게도 PD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단지 아이를 거리낌없이 대할 수 있어서이기 때문인 듯 했다. 하긴, 저런 몰골을 한 괴물을 태연히 안아 옮길 수 있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비행기가 착륙했고, 우리는 곧바로 산부인과를 향했다. 제작진이 미리 아이에 대해 언질을 준 것인지, 이제 막 동이 트는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잔뜩 나와 있었다.
사람들이 산부인과로 아이를 옮길 때, 나는 그 옆의 숙소로 가 내 짐을 풀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가 숙소로 배정받은 곳은 산모들이 쉬는 공간이었다. 그날 밤, 아이를 출산한 산모들은 예정되지 않은 퇴실 소식에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갔다고 한다.

내 방은 2층이었고, 계단으로부터 3번째로 떨어진 방이었다. 대충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 제발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아이가 어떻게 진단받을 지는 상관 없었다. 이 일로부터 무관해지고 싶었다.

잠에 들기 직전, 갑자기 귀를 찢는 괴상한 소리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균형을 잡지 못 하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엄청나게 큰 소리가 귀를 헤집었다. 손으로 막아도 소용이 없었다. 입의 침이 바싹 말랐으며, 눈은 타들어가는 듯 했다.
숨도 채 쉬어지지 않았다. 복부에 고통이 느껴졌다. 온 몸은 바스라질 것 같았으며,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입 안에서 피맛이 느껴지다가, 갑자기 침이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혀가 고통을 내질렀다. 입을 벌려 침을 내뱉으려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뒷목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크게 젖혀지고, 팔꿈치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무릎은 마치 반대로 꺾인 듯 했고, 내가 아닌 무언가가 날 죽이려 드는 듯 했다.

그 순간, 전화벨 소리가 들리더니 이 모든 현상이 갑작스레 끝이 났다.

난 급격한 변화에 기침을 내뿜으며 몸의 중심을 잡았다. 바닥에서 가까스레 일어나 화장실 변기로 달려갔다.
급격히 변기 뚜껑을 올리고 토악질을 했다. 목이 따가웠다. 콧물과 눈물이 질질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닌 것 같았다. 1층에서 사람들이 괴이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다들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벗어날 수 없는 고통에, 바닥을 기어다니며 괴로워 하고 있었다.

난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정신차리라고 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몸부림만 더 심해질 뿐 이었다. 이것 저것 시도해 보고 있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들은 눈이 풀려 있었으며, 무엇보다 나와 같은 증상이라면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터였다.
그러던 와중,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전날 비행기 시간을 고려해 새벽에 일어나도록 알람을 맞추었는데, 꺼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난 알람이 울리는 것도 모르고 사람들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찾았다.

정신을 찾은 사람들을 위해, 쓰레기통과 물을 날라 주었다. 쓰레기통은 곧 오물로 가득 찼다. 바닥에는 미처 처리하지 못 한 토사물이 곳곳에 있었다. 난 얼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나와 같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몇몇은 잠에 들었었고, 몇몇은 자신들이 이룰 행복한 미래를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엄청나게 크고 괴상한 소리가 주변을 뒤덮었다고 했다. 곧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고통스러운 경험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내 알람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나 또한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린 게 기억이 났다. 2층 복도에 있던 전화기가 날 살린 것이다.
아무래도 전화벨이나 알람 등, 사람의 신경을 다른 곳으로 옮길 소리가 해답인 듯 했다.
그러던 중, 조명팀의 막내라는 사람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옆의 산부인과에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선배 또한 그곳에 있을 터였다.
난 사람들에게 핸드폰의 알람소리를 켜둔 채로 주변사람들을 챙겨달라 말했다. 그들은 군말 없이 따라주었다. 나 또한 알람소리를 반복재생으로 켜 놓은 채 산부인과로 향했다. 혼자 가고 싶진 않았으나, 다들 가고싶지 않은 눈치였다.

산부인과에 도착하자, 역시나 사람들이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정신 차리게 만들면서, 한 편으로 선배를 찾았다. 선배는 보이지 않았다.
정신 차린 사람들을 상대로 핸드폰 알람을 켜달라고 부탁하며, 다른 사람들을 돕도록 만들었다.
사람들은, 선배는 PD와 함께 원장실에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난 원장실이 있는 4층으로 향하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챙겼다. 괴이한 상태에 노출된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점점 정신을 차리는 시간이 길어져만 갔다.

4층에 도착하자, 인큐베이터에 누워있는 아이 주변에 여럿이 쓰러져 있었다. 원장, 선배, 그리고 예상하지 못 한 MC와 제작팀 소수였다.
난 사람들을 정신차리게 한 뒤 역시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원장이 말하길, 명예는 나눌수록 줄어든다는 명목 하에, 최정예로 구성된 제작팀들과 함께 아이에 대해 은밀히 촬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는 살아있으나 숨을 쉬지도 않고 음식을 먹은 흔적이 없다고 했다. 양쪽 눈 또한 없다고 얘기했다. 눈두덩이 위의 막 때문에 일반인은 판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러면서 이 막은 무엇인지, 과연 아이는 갑작스런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이제 알아봐야 할 것이라 얘기했다고 한다.
원장은 카메라 앞에서 경력 32년의 의사 소견을 어필하기 위해, 또한 아이가 어떻게 호흡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엉덩이를 때리는 순간, 아이의 입이 크게 벌려지며 셋 다 쓰러졌다고 한다.

그럼 그 괴이한 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였단 말인가.

그러나 내가 도착했을 때 아이는 보통의 상태와도 같이 움직임이 없었고, 사람들은 다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오기 직전까지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고 했다.
갑작스런 고통에 의한 착각일까, 하지만 나도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진 그 소리에 노출된 상태였다.

어찌 된 일인지는 판단하기 힘들지만, 난 다시 아이를 돌려주고 이 일을 묻자고 얘기했다. MC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선배는 아직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고, 원장은 넋이 나가 보였다.
그 순간, 원장실 문이 열리며 PD가 들어왔다. PD에 대해 잊고 있어서 그랬는지 너무 놀랐다.
PD는 원장실 옆 진료실에서 산부인과의 간호사와 단 둘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당히도, 간호사에게 '앞으로 있을 유명세에 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애가 둘이나 있는 사람이, 어쩜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그러다가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괴로워하던 중, 내 알람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으며 문 밖에서 우리의 대화를 들었다고 한다.
PD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며, 아이는 지금 당장 촬영에 임해야 한다고 했다. 설사 돌려주더라도, 이 사건을 보도할 만한 충분한 영상거리를 만든 후 돌려줘야 한다고 얘기했다.

제작팀과 MC는 PD를 설득시키기 위해 갖은 얘기를 꺼냈다. 우리가 받은 고통이 이 아이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냐, 나는 이런 환경에선 못 한다, 적어도 살아 돌아가야할 것 아니냐 등.
나도 그 말에 거들었다. 내가 오지 않았으면 당신들은 죽었을 거라면서.
그러나 PD는 완고했다. 우리는 고통에 대한 접근법을 포기하고, 부성애로 노선을 변경했다.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은지에 대해, 아이가 받았을, 그리고 앞으로 받을 차별에 대해,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등.
나는 아이를 찾아갔을 때, 주변엔 아무도 없었고 아이 혼자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고 했다. 의외로 이 쪽이 먹히는지, PD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러던 와중, 원장 또한 아이의 부모가 걱정된다면서 해당 사건은 아이의 부모와 함께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대서특필된 사건은 맞으나, 부모의 동의가 없다면 이건 말 그대로 영아 납치 사건이 아니냐고 다그쳤다.

PD의 반성하는듯 한 묘한 눈빛 너머로, 난 아이의 눈을 보았다.
아이는, 눈이 있을 자리에서 피고름을 흘리고 있었다.

눈두덩이의 막 너머로, 꼭 무언가가 짜내지듯 천천히, 그리고 갑작스레, 붉은 피와 괴이한 고름들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아무 말도 못 한 채 서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PD를 계속해서 설득 중이었으나, 내가 굳은 걸 알아챈 선배가 아이를 돌아보곤 같이 굳어버리는 바람에 대화가 중단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아이를 향했고, 똑같이 굳어버렸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내 핸드폰의 알람소리가 뚝 끊겨버렸다.
알람을 너무 틀어놔서일까,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일까, 혹은 내가 상상하지 못 하는 그 무언가 때문일까.
깨뜨릴 수 없는 침묵만이 흐르고, 나는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가 제 악몽의 끝입니다.
꿈의 특성상 군데군데 구멍난 곳이 많았는데, 해당 글에는 앞뒤가 맞게끔 채워넣었습니다. 때문에 실화가 아닌 단편소설로 카테고리를 변경했습니다.
오랜만에 꾼 악몽이라 뇌리에 남아서 글로 적었는데, 3시간이나 소요됐네요..
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문맥이 매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시는 데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음에도 인상적인 꿈을 꾸게 되면 글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1.05.23 원주민괴담대회 참가로 인한 본문 살짝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