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년전의 군대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근무했던 곳은 연천과 철원사이에 있는 백마고지라는 전방 GOP 였습니다. 영화 '고지전'의 실제 지형이기도 합니다.

GOP에서 근무하는 병은 직접 초소로 나가서 철책 경계 및 근무를 서는 보초병, 소초 상황실 내에서 CCTV로 24시간 경계체제를 유지하는 상황병으로 크게 둘로 나뉩니다.

소대 인원이 부족한 관계로 하루에 잠을 거의 4~5시간만 자면서 근무를 서던 때, 저는 상황병으로서 평소와 마찬가지로 소초내에서 열심히 cctv를 관찰중이였습니다.

상황실 내에는 항상 무전（96k）가 배치되어있는데 2개는 주파수가 항상 맞춰져있는 실제 사용하는용도이고 1개는 혹시 다른 무전이 고장났을 때를 대비하는 용도로 3개를 항시 준비해놓습니다.

새벽 2~3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였나? 배치되어있는 무전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치직...치지..직 ....지원 바란다, 하나하나둘 셋네다섯 ...... 적에게 집중포화 당하는 중.. 지원 바란다.. 지원 바란다... 치치-치칙 치치칙 당소~~~~..~~~ 지형이 불리해 ... 뚫 ... 지원... 치직"

조금 시간이 지난 기억이라 정확한 무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집중포화를 받는 상태이고 지원을 바란다는 내용의 무전이였습니다.
당시 상황실 내에는 저를 포함한 병2명 간부1명이 근무중이였고 셋다 이 무전을 들었었죠, 당시에 짬이 꽤 차있던 저는 초소에 나가있는 보초병이 장난을 치는줄 알고 크게 혼낼 생각으로 무전을 잡았습니다. （근무중에 무전으로 이런 장난을 쳤다간 당시 분위기에는 영창은 기본이였죠）

제가 무전을 잡고 몇마디 말을 했습니다. "너네 이런 장난치면 진짜 큰일난다. 주파수가 중대 상황실까지 연결될 수도 있으니까 자제하고 조심해라, 졸려도 이런 장난은 치는게 아니다" 라고..

근데 무전에서는 여전히 무슨 포탄 터지는소리와 사람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립니다.

게다가... 알고보니 그 무전은 예비용 무전이었습니다. 주파수가 그냥 대충 설정되어있는... 상황을 깨닫고 저는 너무 놀라서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뒤 따라나온 부소초장도 도대체 저게 무슨 무전이냐고 묻고 셋다 너무 놀라서 10분정도 멍때리다가 상부에 보고를 했고.. 중대장/보급관이 새벽에 순찰하러 소초에 방문했을 때도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보급관은 우스갯소리로 너네가 625 무전을 들었나보다... 라고 말하는데 ㅋㅋ.. 그 상황에서는 정말 너무 무섭더라고요..
전역전까지 그 상황을 얘기하면서 원인을 파악해보려 했지만 실패했죠..

이 상황을 회귀 할 때면 항상 그 목소리가 생생히 맴돕니다..

그리고 당시에 상황실내에 같이 있던 3명은 이제 2명이 됐습니다.. 당시에 선임이였던 이모 병장.. 전역후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 때의 공포의 감정은 적어졌으나.. 이 사실을 알고있는건 이제 당시 부소초장과 저 두명밖에 없네요.
도대체 무슨 무전이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