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본 적은 없음
안 보여서 당연히 안 믿음
묘령의 웃음소리를 듣기만 함
괴담 읽고 등골 쎄한 것도 걍 기분탓이라고 생각함
괴담을 좋아하지만 그냥 즐겜러인 정도

하지만 살면서 귀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내 인생에 가능성을 제시한 사건 하나 있었음
한 3~4년 전? 한창 뮤지컬 덕질을 할 때였는데
중소극장으로 뮤지컬 보러다녀본 사람들 많겠지만 혜화역 중소극장은 공연장이 낙후된 시설도 많고 음침한 분위기도 있는 곳 많음
그래서 공연 보다가 귀신 봤다는 썰도 암암리에 돌았지만 진위여부는 모든 괴담이 그렇듯 알 수 없었지...

그때 모 극장에서 올린 xxxx이라는 뮤지컬을 보고 나온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카페로 갔었는데
（여름 시즌에 올라오는 호러극 아님 귀신 안 나옴 평범한 뮤지컬）
친구가 사색이 돼서 앉아있는 거임

뮤지컬 덕질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로 깨나 골치아프기도 할 텐데, 뮤지컬도 다른 공연예술（콘서트 등...）이랑 마찬가지로 밀녹/밀캠이 은연중에 횡행하고 있었음
밀녹/밀캠이란 뮤지컬이라는 장르 자체가 매일 올라오는 공연이 다르고, 기획사에 돈이 없으면 OST같은 거 찍어서 팔 수도 없으니 몰래 녹음/녹화해서 돌려보고 듣는 행위를 말함
밀캠은 진짜 몰래 팔아다 돈 좀 벌어야지~ 하는 사람들이 안경캠 같은 걸로 찍고 덕후들한테 팔고, 밀녹은 걍 핸드폰 녹음으로 극 전체를 녹음따가다가 혼자 듣거나 대사 복기하거나 하더라
그냥 핸드폰 가지고 공연장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 녹음 자체는 수익성이 별로 없어보였음

그리고 그 친구는 그날 그 공연 전체를 폰의 기본녹음기능으로 녹음을 함
무릎 위에 겉옷을 올려놓고 그 겉옷 안에 핸드폰을 숨긴 상태였음
배우들 목소리도 풀음량으로 해야 간신히 들릴 만큼 음질도 안 좋더라

그런데 극 내용에 없고 공연 중에 듣지 못한 여자 웃음소리가 함께 녹음되어있어서 파랗게 질려있었던 거였음

뮤지컬은 일단 1회 관람의 가격이 비싸고（좌석별 차등, 보통 3~10만원 정도） 그날 그 배우들의 이런 공연은 단 한 번 뿐이기 때문에 객석매너를 매우 철저히 지키기를 요구하는 편임
영화처럼 중간에 핸드폰 울렸다? 아 짜증나네~ 정도로 넘어가지 않고 뮤지컬 덕질하는 커뮤니티나 팬카페 등지에 오늘 N열 N번 좌석 중간에 관크있었어요（=비매너 있었어요） 핸드폰은 꺼놔야 매너 아닌가요, 이런 글 반드시 올라온다...
기침관크라고 화내는 사람도 봤고 예민한 경우엔 중간중간 물 마시는 걸로도 뭐라 그러는 거 봄

근데 웃을 씬도 분위기도 아닌데
혼자 하이톤으로 웬 ㅁㅊㄴ이

깔깔깔깔

코트로 덮어서 가려놓은 핸드폰에 녹음될 정도로 크게 웃으면 상식선에서 다른 사람도 들었어야 정상 아니냐
아니면 그 폰에 대고 처웃었든가
그날 친구랑 같이 관람했던 지인도 그런 웃음소리 못들었다고 하고 관크당했다는 후기도 없었음

당연히 말이 안 돼서 나도 그 녹음본 들어봄
진짜 여자가 깔깔깔 소름끼치게 웃는 소리가 배우들이 심각하게 대사치는 중간에 들어가있더라
현장에 있는 아무도 못 들은 소리가 밀녹본에 들어가있었던 거지...

다들 밀녹이 관행이건 뭐건 여기저기 떠벌리고 공유해선 안 될 잘못인 거 아니까 걍 조용히 넘기자 하고 몇 년이 지나 가끔 심심풀이로 꺼내는 말이지만
아직도 그 혜화역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공연 보고 나온 친구 핸드폰에 이어폰 꽂고 들었던 그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는 잊혀지지 않음...
공연 보고 나온 친구, 나, 다른 애까지 3명이 있었는데 공연 본 당사자 제외 둘이 이어폰 하나씩 나눠끼고 웃음소리 부분에서 그 왁자지껄한 카페 안에서 다같이 갑분싸된 것도...
버즈 에어팟 같은 무선이어폰 나오기 전이라 유선이어폰이었던 것까지 선명히 기억나고...
그 친구의 구형 삼성폰까지...

그때 이후로 뭔진 몰라도 뭔가 있긴 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하게 됨

* 집단환청 히스테리 아님 그 녹음본 그 카페에 있던 세 명이서 돌려듣고（심지어 그 중 두 명은 그날 공연 안 본 사람） 전부 다 웃음소리 들린다고 했음 이후로 다른 날짜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한테 들려줬을 때도 그대로 녹음돼있었음

친구는 그 이후로 개과천선해 녹음도 안 하고 뮤지컬 덕질도 안 하게 됨
나도 같이 볼 사람 없어지자 자연스럽게 탈덕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