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오월의 날씨답지 않게 쌀쌀한 공기가 살갗에 스친다.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골목에 서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문다.
스읍... 후...
비 내리는 날에 담배가 더 땡기는건 날씨에 따라
담배 맛이 다르게 느껴져서일까?...
축축하고 스산한 가운데서도 포근한 연기가 내 속을 감싸는게 느껴진다.
담배를 피며 바라본 곳엔 낡은 건물이 하나 서 있다.
디자인 이랄것도 없이 콘크리트 외벽에 펴바른 페인트가
곳곳에 깨져있는 것이 건물이 흘러온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다.
4층 정도로 보이는 건물 1층엔 빨간 등이 켜진 정육점이 보이고
그 위로는 불이 꺼진 낡은 노래방 간판이 보인다.
왠지 흐르는 빗방울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겨오는것 같다.
그래... 진수가 알려준 건물이 저 건물이겠지.
건물에 다가서 정육점 옆 계단을 올라가는 입구에 들어서니
오래된 건물임을 보여주듯 비 오는 날의 퀴퀴한 먼지 냄새가
짙어진 피 냄새와 함께 풍겨온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보니 쇠창살로 막혀있는 것이 보이고
그 옆에 누군가 덕지덕지 붙여 놓은 부적이 보인다.
"시발... 재수 없게..."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거칠게 부적을 잡아 뜯는 소리에
인기척을 느꼈는지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계단을 내려온 이는 초췌한 모습의 50대 남자였다.
내가 뜯어놓은 부적을 발견하곤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젓고쇠창살을 열어준다.
"진수가 말한 분이시군요... 들어오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인사하곤 남자를 따라 올라간 2층엔
미등만 살짝 켜둔 노래방 입구가 보인다.
"여깁니다 들어오세요... 지금은 진수 때문에
영업은 잠시 중단한 상태라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진수는 어디 있습니까?"
"복도 끝 8번 방에 있습니다 제일 큰 방이라
우선 거기로 데려다 놨지요."
"잠시 진수랑 따로 봐도 되겠습니까?"
"음... 그러시죠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말씀해주시고요"
침울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으고 묵주를 만지고 있던 남자를
뒤로하고 복도를 걸어가니 8번 방이 있다.
문 앞에 다가서니 역시나 문고리에 붙여놓은 부적이 보인다.
"쓸데없는 짓을 많이도 해놨군..."
중얼거리며 문을 열자 문고리에 붙어있던 부적이 검게 물들다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다.
떨어진 부적을 잠시 바라보다 방 안으로 들어서니
숨 막힐듯 무거운 기운이 확 나를 덥쳐온다.
윽... 여기 같이 있었구만...
무언의 존재를 느꼈지만 애써 무시하고 진수를 향해 다가간다.
"진수야... 형 왔어"
소파를 붙여 만들어 둔 자리에 창백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진수가 보인다.
"신부님... 와주셨군요.. 흑흑... 흐윽..."
일어날 힘도 없는지 고개만 살짝 돌려 마주 보는 진수의 얼굴은
죽을병에 걸린 사람처럼 초췌했다.
"파면 당한 지가 언젠데, 나를 아직도 신부라 부르는구나... 진수야 괜찮니..?"
말없이 흐느끼는 진수의 뺨을 쓰다듬으려 손을 뻗는 순간
오른쪽 구석에서 기분 나쁜 기운이 확 풍겨온다.
흠칫 놀라 쳐다본 그곳에는 젊은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다가오진 못하고 가만히 있지만, 눈빛은 죽일듯한 기세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로구나 이렇게 만든 게..."
여자는 아무 말 하지 않지만 여전한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순간 밖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온다.
"조금만 참아 진수야... 무슨 일인지 보고 올게"
"흐윽... 신부님 가지마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진수야... 난 포기하지 않을거야... 바로 올게 잠깐만 기다려"
두려움에 떠는 진수를 달래고 방에서 나와 멀리서
입구 쪽을 쳐다보니 닫힌 문 너머로
웬 백발의 할머니가 소리를 치고 있었다.
"야 이 놈아 마누라도 못 지킨 놈이 지 새끼도 그렇게 보낼거여!
집에 꽁꽁 싸매놔도 모자랄 터인데 왜 데려 나와서 기어이 이 사달을 내버려!!"
남자는 악을 쓰듯 소리치는 노인의 호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없이 묵주를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래... 당신을 찾아간 건 소용없는 짓 이었던 거야...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에 눈이 멀어 잠깐 신을 저버린 실수 였던거지..."
노인이 등장한 이후 갑자기 방안에 기운이 날카롭게 변한 게
느껴지고 진수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비명 소리에 남자는 움찔하더니 눈을 질끈 감고
두손을 모은 뒤 기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진수의 비명 소리는 더욱 거세져만 간다.
이런 젠장 노인의 등장이 그 여자를 자극한건가 보군...
서둘러 진행해야겠어.
서둘러 다시 방에 들어서니 여자가 진수의 머리맡에 서 있다.
다급하게 가방에서 양초와 밧줄 그리고 십자가를 꺼냈다.
그러자 이제껏 가만히 있던 여자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그 기세가 뻗쳐와 목을 옥죄는 느낌이다.
무거운 몸을 애써 이끌고 겨우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혼절한 진수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밧줄로 묶어놓는데
여자가 깊고 짙은 살기를 뿜어낸다.
"이제 그만 포기해 !"
"그 정도면 됐잖아!"
내 말에도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강해진 살기를 뿜어낼 뿐이다.
그러자 울컥하고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시야도 붉고 뿌옇게 점점 흐려져 간다.
점점 짙어져 가는 기운에 육체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양초에 불을 붙이곤
십자가를 꺼내 들었다.
으윽... 이제 거의 다됐어. 십자가만 놓으면 돼...
다리에 힘이 풀려 걷지도 못하고 거의 기다시피 해서
검붉게 핏줄이 선 진수의 가슴팍에 십자가를 거꾸로 올려놨다.
그 순간 여자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며 기세가 팍 꺾였다.
됐다...! 됐어....
드디어!
"킥.."
"씨발~! 큭큭"
"말했잖아 이 씨발련아 포기하라고 큭큭큭..."
"꼴에 애미라고 으하하하 키킼"
"얘는 내꺼라니까 이 썅년아 킥킥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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