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살고 있는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중학생 때 일이니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네요.

저희 가족은 집을 두 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가족이 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삼촌 가족에게 빌려주고 있었어요. 한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그 집에 자주 놀러가기도 했고 한동안 저와 동생만 그 집에서 삼촌네 가족과 살기도 했었습니다. 삼촌 가족과 살 때는 그 집에 사람 소리도 끊이지 않고 빛도 잘 드는, 동네에서 가장 밝은 집이었어요.

그러던 중 삼촌 가족이 아파트를 사 이사를 가고 저희 가족이 삼촌 가족이 살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근데 참... 이때부터 뭔가 좀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집에 이사를 오고 얼마 안 지나 아버지는 신장병에 걸리셔서 투석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잠드실 때 가위를 눌리는 일도 많으셨고요.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은 그 집에서 정말 종일 잠을 자도 피곤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어요.

그리고 저는 원래 시험기간에 예민한 편이기는 했지만 이사를 가고 처음으로 맞은 시험기간에 입술과 입안이 전부 헐어 입을 벌리면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거의 2주간 요플레같은 간단한 것만 먹으며 시험기간을 버텨냈습니다.

시험도 다 끝나고 맞은 주말, 안심하고 방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꿈에 검은 옷을 입은 흉흉한 장신의 남자 셋이 나타났습니다. 셋이 저를 둘러싸고 내려다보며 웃고 이상한 노래를 하는 것을 듣다 잠에서 깨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소파로 쓰러져 처음으로 기절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그냥 개꿈이겠지, 싶기도 했고 별로 얘기를 꺼내고 싶지도 않아 당시에는 그냥 그렇게 넘겼습니다.

그 집에 살면서 안 좋은 일은 계속 일어났습니다. 그냥 타이밍이 그랬을 지는 몰라도... 친척들과 사이도 틀어지고 저는 이유 없는 괴롭힘으로... 아니, 사실 이유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공부를 더 잘해서 작정하고 따돌렸어요.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그게 심하기도 했고... 지레짐작이 아닌, 나중에 다른 친구 한 명의 자백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따돌림은 주도한 애의 어머님께서 그렇게 지시를 하셨다고. 덕분에 저는 등교 거부까지 하며 겉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겹쳐 어머니는 결국 점집이라는 곳에 발을 들이셨습니다.

그런 것을 믿는 분은 아니었지만... 다녀오신 어머니 입에서 나온 말은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우선, 위에 말했던 아버지가 자주 가위에 눌렸다고 얘기했었죠? 아버지도 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남자를 이 집에 이사오고 지속적으로 보고 계셨던 겁니다. 그 꿈에 대해 무당에게 얘기하자

"거기 집이 터가 안 좋아요. 6.25 때 사람 묻은 터인데..."

라고 얘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동네 유지들에게 물어 알아보니 실제 그 집이 당시에 시체를 몰아넣고 그냥 덮었다더라,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무당은

"제나 굿은 생각도 하지 마세요. 그건 산 사람이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거니까... 그냥 생각날 때 소주나 한 잔 따라주며 인사나 드리세요."

라며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이 기가 약하고 집에 안 맞는 사람들이라 안 좋은 일이 생긴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실제로 어머니는 기가 참 세다고 해야 되나요... 아버지보다 더 든든하신 이미지입니다. 여장부세요. 둘이 집안에서 하는 일도 어머니가 전등을 갈면 아버지가 요리를 하시고...

삼촌네가 영향을 받지 않은 이유는 사람도 많고 늘 문과 창문을 열고 지내 밝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내외, 손주손녀들까지 해서 대가족이 살고 있었으니까요.

튼, 그리고 제 이름을 무당에게 얘기하자 "이쪽도 많이 힘들었겠네..." 하며 이름이 맞지 않아서 그렇다고 얘기했습니다.

제 이름. 제 이름은 뜻을 풀이할 수 없는 이름이었습니다. 이름을 글자가 다 따로 논다고 해야 되나요. 중간 글자는 보통 이름에 쓰지 않는 한자였고요. 더 특이한 것은 제가 제 이름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어요. 누군가에게 제 소개를 해야 된다면 저는 글로 써서 보여주고는 했습니다. 웃긴 게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 이름을 부를 때는 또 아무렇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듣고 오셨지만 자세하게는 얘기를 안 해주시더군요.

결국 저는 새로운 이름을 골라 개명을 하고 학교도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기숙사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죠.

전학을 가서는 정말 잘 지냈습니다. 매일 즐거웠고 고3 때는 반장도 하면서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친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신장을 이식 받으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집에 오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조퇴를 해가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근데...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타자마자 어머니께서는 신장을 이식해주기로 한 사람이 뇌사에 빠져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하고 전화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본가에 가지 않는 버릇을 들였습니다. 겨우 이정도 우연으로 뭘 그러냐, 할 수 있지만 꼭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본가에 가면 일이 틀어지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입니다. 학생회 선거에 나가려다 일이 틀어지거나 저나 제 동생이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실제 대학생 때는 아버지의 이식 수술 일정이 잡히기 전까지 어머니는 제게 이식 수술 예정이라는 말씀도 안 해주셨으니까요.


그렇게 저와 동생이 집에서 나가서 살며 아버지는 이식 수술도 받으시고 집안 상황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어머니께 들은 얘기인데... 그 무당이 어머니께 정 뭐라도 하고 싶으면 새벽에 시간을 정해주시고... 아마 새벽 3시인가? 그랬을 겁니다... 입에 칼을 물고 집을 돌며 물 떠놓고 4번 절을 하라고 하셨더라고요.

이게 뭔 일인가, 싶었지만 실제 그 일 이후로 아버지도 가위에 안 눌리셨고 집안 일도 풀리기 시작했고... 그냥 플라시보 효과라도 얻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 않나, 하고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희 가족은 그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만 저와 동생은 밖에서 지내고 어머니와 아버지만 지내고 계십니다. 지금은 뭐 크게 나쁜 일이나 안 좋은 일은 없으니 다행이지만 이사를 준비하고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