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인 나의 딸은 다른 공부는 별로이지만 피아노는 또래 아이들보다는 잘 쳤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매일 다니던 레슨은 잠시 쉬고 원격으로 주 2회 수업을 듣고 있다.


아이는 빨리 배우는데 학습 콘텐츠가 따라 가지를 못 하고 있다.

원격수업이라고 특별히 수업료가 싼 것도 아니라서 '이 돈이면 주 5회 오프라인이 나은 거 같은데....'라는 생각에 다니던 학원에 전화했다.

"이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한 번 확인...."

시국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 한 것 같다.


"어서 오세요~ 어머님, 아버님~ 니가 민아구나~ 어디 실력 좀 볼까?"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겨우 주 4회로 주말까지 레슨을 하는 학원을 찾았다.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대기실은 온풍기를 최대로 틀어 놓아서 그런지 조금 더웠다.

외투를 벗어서 무릎에 올려놓고 눈치를 보다 온풍기의 바람 세기를 낮추었다.


딸랑. 딸랑.

출입구에 걸어둔 종이 울린다.

아이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 그대로~ 정수기로 직진한다.

마스크를 내리곤 종이컵을 후후 불어 물을 마신다.

그리곤 턱에 마스크를 걸친 채 레슨룸으로 뛰어 들어갔다.

조금 불편한 마음이지만 물을 먹는 걸 말릴 수는 없었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잠시 후 대여섯명쯤 되는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오곤, 이어서 엄마들도 들어왔다.

아이 6. 엄마 6. 왁자지껄 대기실에는 외투를 벗는 아이, 가방을 챙기는 학부모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밖이 추웠는지 손끝이 빨간 사람도 보인다. 목도리와 장갑을 낀 사람도 있다.

합주를 하나 보다.

방음이 된 창밖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옹기종기 앉아서 악기를 만지는 아이들이 보인다.

조막만 한 손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 이름 모를 현악기들을 다루는 게 신기하고 귀여웠다.

아직 추운지 손끝이 푸르스름한 아이들도 몇몇 있었다.

'장갑이나 좀 끼워서 오지..'

이내 자기 아이를 보고자 하는 학부모들로 창가가 꽉 차 내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엄마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보온병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그중 하나는 2리터는 돼 보이는 커다란 병이었다.

커다란 보온병을 꺼낸 엄마는 덩치도 컸다.

다른 엄마들은 각자 보온병 외에도 빵집에서 사 온 식빵과 케이크를 꺼내어 벌려 놓았다.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엄마들이 나서서 준비하는 모습이 묘했다.

큰 보온병 앞에 작은 보온병들이 먹이를 기다리는 참새 새끼처럼 입구를 벌리고 모여들었다.

이어서 시작되는 다과와 수다의 시간..

작게 들리던 음악 소리는 아줌마들의 수다에 묻혀 버린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신다.

불편한 마음에 이어폰을 챙겨둔 크로스백을 뒤진다.

"어머~ 아버님도 커피 한잔하세요~"

덩치가큰 아주머니의 호의 섞인 말투에 맞은편에 앉은 키가 작은 엄마는 호들갑스럽게 커피를 따를 종이컵을 챙긴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정말로.."

키작은 애 엄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컵을 다시 돌려놓으려 했다.

"아냐~ 말은 그렇게 해도 갔다주면 잘 드셔~"

높임인지 낮춤인지 모를 이상한 말투에 손사래를 쳤다.

"애그 안 드신다잖아~ 냅둬~"

길쭉한 아주머니와 덩치큰 아주머니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던 작은 애엄마는 창가를 보며 딴청을 피운다.

"요즘 시국이 이런데 여기서 드시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없는 용기를 짜내어 쥐꼬리만 한 소리로 말해 본다.

"저희는 예전부터 이렇게 했는데, 안 걸리던데요?"

덩치큰 아주머니는 의아한듯 쳐다보며 말했다.

"어른은 몰라도 애들도 많은데 좀.."

"안 걸리던데요?"

한손에 컵을 들고 돌아 않아서 내말 끊어 버린다.

"아니, 제가 뭐라는건 아니고요.. 아네...."

"쯧"

혀를 찬 건지, 입맛을 다신 건지 모를 소리에 움찔하였지만 이내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핸드폰을 쳐다본다.

연신 신나는 듯 다리를 떨면서, 웃으며, 먹고, 마시며 수다를 이어가는 무리였다.


레슨시간이 끝나고 나오는 아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선생님과 나누는 상담은 3분도 채 되지 않았다.

내가 조금 불편한 마음이면 어쩌랴, 아이가 좋아하는데..




지겨운 역병이 세계에 번진지 3년이 다되어 간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배우고 자라며, 어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시녀처로 전락해 버린 WXXO를 지지하던 국가들은 많은 희생을 치루었다.

나 또한 많은 것을 잃었다.

병을 앓던 아버지는 전염병과의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지인중에도 돌아가신 분도 있고, 전염병에 걸려 입원하신 분도 있다.

상황이 길어지자 사람들도 적응하였다.

각종 예방 수칙이 생활화되었고, 회사와 가정도 조금씩 맞춰져 갔다.



XX에서 발병한 병은 잠복기가 1주~3주 정도이지만, 1달에서 최대 6개월까지 잠복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대인 간의 타액으로 전염이 되며, 체온이 일반인보다 3~5도 정도 높으나 환자 본인은 덥다고 느끼지 못한다.

입가에 발진이 생기고, 심한 경우 목까지 발진이 생기며, 신체의 떨림이 있고, 손끝이나 발끝, 코끝 등 종단부가 붉어지며, 호흡곤란을 동반한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각종 합병증에 걸리기 쉬우며, 사망하게 된다.

현재 까지의 사망 율은 1.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