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로리 띠로리..

세상에서 나를 가장 짜증 나게 하는 소리다.

띠로리 띠로리..

세상에 나를 꺼내 놓는 소리다.

도심지에서 벗어난 이곳이 싸고, 깨끗한데 출퇴근 시간이 너무 걸린다.

전세 3천에 한 달에 25만원. 19년 된 5층 빌라 탑 층에 당연히 엘리베이터도 없다.

5시 10분에 맞춰놓은 알람에 10분 간격으로 추가 알람을 2번이나 맞춰 놓았다.

띠로리 띠로리..

이게 몇 번째 알람 이었지?

"으끄...응"

귓가에 지잉 거리는 소리에 머리가 무겁다.

`5시 30분까지 반드시 일어 나야 해!`라고 머릿속의 직장인이 외치고 있다.

5시 28분

으득 드득..

목을 이리저리 비틀어 보고는 반쯤 죽은 좀비처럼 비틀거리면서 화장실로 간다.

치약을 머리에 바르고, 샴푸를 칫솔에 바른 것인지 치약 맛이 느껴지지 않지만 차가운 샤워기에 머리를 밀어 넣어서 냉각시켜주면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 오는 것 같다.

항상 머리를 다 감을 때 즘이면 뜨거워져 오는 물에 깜짝 놀란다.

손잡이를 중간으로 맞추면 이내 차가운 물이 콸콸 나온다.

어제 입었던 회색 긴소매 티셔츠와 엊그제 입었던 진청인지 연청인지 모를 밴드 청바지를 주섬주섬 입는다.

정장도 아니고 캐쥬얼도 아닌 어중간한 오리털 재킷을 입을까 진짜 같은 인조 퍼가 달린 파카를 입을까 3초쯤 생각하다 `3월에 파카는 오버지`라며 재킷을 들고 문을 나서다 회사 출입증과 휴대전화를 얼른 집어 들고 다시 문을 나선다.

6시 11분

터벅 터벅..

15분쯤 휑한 골목길을 걸어 큰길로 나오면 정류장이랄 것도 없이 전봇대에 표지가 붙은 마을 버스정류장이 있다.

6시 29분

"30분 차가 갔나?"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사람 없는 정류장을 둘러본다.

얼룩덜룩한 진한 갈색 표범 무늬의 코트에 와인색 부츠를 신으신 아주머니가 오는 걸 보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진다.

"학생 버스 아직 안왔수?"

"아, 예."

살짝 당황하며 부정인지 긍정인지 모를 대답을 한다.

`학생 아닌데.`

끼이이익~

별로 속도를 내지도 않은 마을버스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추고, 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는 나를 밀치듯 먼저 버스에 오른다.

7시 13분

17개의 정류장을 뱅뱅 돌아서 지하철역에 도착한다.

어디서 나온 지 모를 사람들이 까맣게 몰려들어 열차만 앞에 줄을 늘어섰다.

삐리리리리.. ..역입니다.

비몽사몽에 앉을 기회는 없지만 문 옆의 기댈 곳만 있어도 절로 눈이 감긴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 후드티를 뒤집어쓴 사람, 빨간색, 초록색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흔들거리며 각자의 목적지로 가고 있다.

1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내린다. 잠시 걸어 갈아탄다.

삐리리리리.. ..역입니다.

사람들이 내리고 사람들이 탄다.

내가 내릴 즈음이면 서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 정거장 남았지만 잠시 자리에 앉아본다.

8시 22분

역을 빠져나온 거리에는 마치 개미들이 줄지어 가듯 사람들이 줄을 지어 바쁘게 가고 있다.

커다란 건물에 입주해 있는 직장을 `나름 탄탄한 중소기업이야`라고 되뇌며 출입증을 게이트에 들이댄다.

삐비빅.

진땀이 흐른다.

다시 한 번 목에 걸린 출입증을 확인하고는 센서에 대본다.

삐빅.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8시 44분

드디어 직장에 도착했다.

`출근 시간인 9시보다 무려 16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마을버스가 30분 간격이니 어쩔 수 없으니 나는 정말 착실한 사람이야.`

`이제 9시간만 있으면 퇴근하겠네!`

머릿속에 잡생각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나의 몸은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다.

하나의 구멍에 볼트 하나.

매일 같은 업무는 생각보다 피로감이 적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안 시켜도 할 일에 말을 붙이고 챙겨 주었다고 생색을 낸다.

매일 보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피곤하다.

5시 55분

주변이 조용한 게 동료들도 퇴근 준비를 마친 것 같다.

6시 정각

삐빅.

게이트를 통과하고 다시 역으로 향한다.

삐리리리리.. ..역입니다.

직장인들, 학생들, 고시생들, 장사하는 사람들, 등산객들, 아침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TV를 잠깐 틀어 놓고 햇반에 젓갈 통조림과 김치를 열어 바닥에 놓고 쩝쩝 소리를 내어 먹는다.

컴퓨터를 켜서 스트리머의 고기 자르는 솜씨에 감탄하고, 굽는 모습에 한 번 더 감탄하면서 맥주캔을 땄다.

"아이 4시 쪽에 애들 붙는 거 안보여요? 뭐? 니가 더 에바지"

화면 속의 캐릭터를 조금 쳐다 기지개를 한번 켠다.

12시 18분

`지금 자면 5시간 20분은 잘 수 있겠네.`





띠로리 띠로리..

짜증 나는 소리에 깨어 머리를 감으며 동시에 양치를 한다.

무얼 입을까란 생각을 하던 찰나에 볼 사람도 없음을 깨닫고 어제 입은 회색 티에 청바지와 점퍼를 입고 나선다.

어제보다 날이 조금 더 밝은 것 같다.

어제 본 아주머니는 벌써 가셨나 보다.

끼이이익~

마을버스를 타면 왠지 어지럽고 멀미가 나는 느낌이다.

삐리리리리.. ..역입니다.

`오늘은 학생들이 많네.`

대학과 학원이 많은 곳에서 내리는 이들은 학생이 많다.

다들 무언가에 집중하느라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운이 좋아서 자리에 앉는다.

등산복을 입은 저 여자는 매일 어느 산을 가는 걸까?

사람들 사이로 힘겹게 손잡이 봉을 잡고 있는 모습이 조금 동떨어져 보인다.

`빨간색, 와인색인가?`

메고 있는 가방도 검붉은 색이다.

사람들에 가려 있지만 흔들거리며 손잡이를 잡고 항상 서서 가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자주 있었던 것 같다.

`등산을 매일 다니면 다리도 튼튼할 꺼야. 아마도.`

삐리리리리.. ..역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회사가 있는 역에서 내린다.

삐빅.

`하마터면 엘리베이터를 놓칠 뻔 했네. 집에도 엘리베이터 있으면 좋겠다.`

8시 46분

가끔 앞 라인에서 볼트가 끼워지지 않은 제품이 흘러 있다.

`이런 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하는 거야?

6시 3분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출입구로 나온다.

왠지 같은 돈 받고 일을 더 한 것 같아 손해를 본 느낌을 만회하려 뛰다 걷다 해본다.

삐리리리리.. ..역입니다.

`있다.`

멀리 차량 연결 통로 쪽에 서 있는 등산객을 발견했다.

왠지 궁금함이 생겼다.

`체격이 작은 긴 머리의 아저씨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약간은 부스스해 보이는 머리이다.

조금씩 다가가지만 부스스한 뒤통수와 가방을 멘 어깨만 보인다.

평범한 빨간색 가방에는 망사로 된 주머니가 있고 물병이 끼어 있다.

조금씩 자리를 찾는 척하며 역에 사람이 내릴 때마다 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등산객은 다음 칸의 중간쯤에 서 있었다.

조금씩 이동한다.

삐리리리리.. ..역입니다.

`헉. 벌써!`

역을 지나치면 돌아오는데 최소 20분은 걸려서 허겁지겁 내렸다.

집으로 오는 내내 궁금증이 더해졌다.

`지금 자면 5시간 20분은 잘 수 있겠네.`





찌이이잉- 머리가 울린다.

띠로리 띠로리..

으득 드득..

터벅 터벅..

끼이이익~

삐리리리리.. ..역입니다.

왠지 열차 칸을 두리번거렸지만 빨간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직장이 있는 역에 내리려는 찰나 끝편에 빨간색이 보였다.

사람들에 밀려 내렸지만, 플랫폼에 서서 그대로 지나가는 열차를 바라보았다.

출입문의 창으로 빨간 코트에（등산복이 아니었다.） 검붉은 가방을 맨 부스스한 긴 머리의 사람이 보였다.

열차가 빠져나간 철도를 바라보다 이내 인파 속으로 섞여들었다.

"야 뭐해! 볼트 안 끼었잖어!"

"아. 미안"

삐빅.

`오늘은 꼭 확인해야겠어.`

마치 공터를 탐험하는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았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빨간색을 찾아본다.

이 칸에서 저 칸으로.

살짝 등에 땀이 났다.

열차에는 가끔 이상한 사람이 탔다.

물건을 파는 사람. 종교를 믿으라 하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상한 몸짓을 하는 사람. 차 내부를 탕탕 치는 사람. 바닥에 누운 사람.

대부분은 야근하거나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는 늦은 시간에 나타났다.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조심했지만 조급한 마음에 조금씩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밀치게 되었다.

타인이 보기에 조금 이상해 보일 것 같다.

`찾았다.`

삐리리리리.. ..역입니다.

`아. 집에 가봐야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조금 차분해진 느낌이다.

천천히 게걸음으로 나아갔다.

시작 던전의 보스를 공략하는 게이머가 된 거 같았다.

몇 정거장이 지난 것인지 모르겠다.

수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 짐짓 다른 곳을 보기도 하고 딴청을 부리며 다가간다.

인파의 중심에 서 있는 빨간 옷의 사람과 나 사이에는 고작 1명이 있었다.

150 정도 되는 작은 키에 작은 어깨, 그리고 머리도 작았다.

부스스한 긴 생머리에 빨간 코트인가, 면의 질감을 보니 코트가 아닐 수 도 있겠다.

무슨 옷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가방은 의외로 평범하다.

어디 브랜드인지 모를 영어 비슷한 글자가 있고 좌우에 망사로 된 주머니 한쪽에는 빈 물병이 들어있다.

물병은 넓은 입구에 검정 뚜껑이 있었는데 안에 물기는 전혀 없고 무슨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게 조금 있었다.

`꿀꺽`

마른 침이 삼켜졌다.

천천히 그 여자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발을 옮겼다.

차 안이 덜컹거리고, 사람이 많아서인지 반쯤 돌아서는데도 시간이 제법 걸린 것 같다.

`따라 도는 건가?`

나는 여전히 가방을 쳐다보고 있다.

왠지 나의 존재를 상대방도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다시 오른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나는 여전히 조금씩 그 여자를 중신으로 움직였고, 그 여자는 제자리에서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지이이잉~ 지이잉~ 하고 머릿속에서…. 아니 귀에서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렸다.

양손 집게손가락으로 귓구멍을 세게 막았지만, 여전히 소리는 들린다.

혼절 할 것 같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종점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텅 빈 객실의 문이 모두 열려 있고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 있었다.

건너 칸에 옷자락이 보였다.

열차 칸을 청소하는 분이었다.

어벙해진 기분이다.

열차에서 내려 멍하니 손을 쳐다보니 집게손가락에 피가 약간 묻어 있다.

귓구멍이 손톱에 긁혀서 피가 난 것 같다.

이윽고 열차 문이 닫혔다.

홀린 듯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두운 터널 속으로 열차가 빨려 들어간다.

부스스한 긴 머리에 붉은색이 보인다.

차창에 닿은 손바닥이 보인다.

등줄기와 겨드랑이가 흠뻑 졌어 있다.



`택시 타면 1시간은 걸리겠지…. 3시간은 잘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