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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몰입감을 위해 선배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다른 동기, 형들 자취방에서 얹혀 살다가 1학년이 끝난 후 빠르게 군대를 다녀왔다.
군 생활 21개월은 내게서 '그 일'에 대한 무서운 감정들을 무뎌지게 만들었고, 나는 제대 후 호기롭게 다시 자취방을 잡았다. 이번에는 좀 더 시설이 좋은 자취방을 구했고, 침대와 앉은뱅이 책상도 구해 사람이 살 만한 자취방으로 꾸미기도 했다.
작은 원룸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 벽에는 작은 책상, 오른쪽 벽에 침대를 뒀다.
예비역으로 시작한 학교 생활은 즐거웠다. 비록 함께 술을 먹고 놀던 형들은 다 졸업하고 나와 나이가 비슷한 형 한 명만 남았지만, 후배들과 함께하는 학교생활도 즐거웠고 나 역시 취업을 위해 입대 전보다 열심히 수업도 듣고 나름대로 공부도 헀다.
그렇게 하루하루 흘러갔고, 나는 예전에 있었던 그 일을 까맣게 있고 잘 적응해가며 살았다. 성격이 무딘 건지, 인간이라는 동물이 원래 그렇게 잘 적응하는 건지, 아니면 일부러 기억 구석에 접어놓고 펼쳐보지 않은 건지...
어느날, 나는 친한 선배와 함께 과제를 하고 있었다. 레포트는 밤 늦게까지 끝나지 않았고, 도서관에 있던 우리는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 아. 너무 지친다 진짜... 옷이라도 좀 편하게 입고 싶다.
형은 어깨를 빙빙 돌리며 푸념했다.
- 형. 그럼 차라리 제 자취방 가서 할래요? 어차피 책상도 넓은 편인데, 제가 옷 드릴게요.
- 진짜? 야 그럼 나 오늘 니네 집에서 자도 되냐?
- 네 형. 가서 과제하고 술 한잔 하고 주무세요ㅋㅋㅋ.
그렇게 나는 선배를 데리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구간에 있었지만, 밤 10시가 넘은 시간의 학교는 초봄처럼 쌀쌀했다.
- 와씨. 침대도 있어? 잘 먹고 잘 사네.
- 형 침대 좋으시면 침대에서 주무세요. 제가 바닥에 이불 깔고 잘게요.
- 에이. 아니야. 니가 집주인인데 어떻게 집주인 자리를 뺐냐. 그냥 이불만 줘.
그렇게 침대 옆 바닥에 이불을 깔아놓은 채. 선배와 나는 책상에 노트북을 놨다. 조용한 자취방에는 작은 음악소리와 마우스와 키보드가 움직이면서 나는 백색소음만이 퍼져나갔다.
새벽 한 시가 넘었을 무렵, 어찌저찌 레포트를 마친 나는 굳은 몸을 움직였다.
- 으어어어... 힘들다...
- 다 했냐?
- 네... 와 너무 피곤한데 형 과제 끝나면 깨워주세요. 잠깐만 눈 좀 붙일게요...
- 부러운 새끼... 불 꺼줄까?
- 넵...
그렇게 나는 침대에 쓰러졌다.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선배의 한숨 소리와 타닥 타닥 거리는 키보드 자판 소리가 나른한 정신 사이로 귀에 감겨왔다.
적당히 켜져 있는 노트북 불빛을 느끼며, 한참 피곤했던 나는 금방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나는 너무 많이 잤다는 생각과 함께 눈을 떴다.
분명 선배가 과제를 마치면 나를 깨워서 같이 놀자고 했기에, 선배를 부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상체만 일어났다.
- 윽...!
그리고... 그 상태로 가위에 눌렸다. 쭉 펴진 다리에는 덮고 자던 이불이 아직 있었고, 상체는 일으킨 상태로 뻣뻣하게 굳어버린, 'L'자 모양으로 나는 얼어붙어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려 했지만, 가위에 눌려버린 탓인지 내 시선도 고개도 모두 정면에 고정되어버렸고, 그렇게 불 꺼진 방 안 정면에 보이는 작은 싱크대에 고정되어버린 내 눈은 굴러가지 않고 멈춰버렸다.
숨막힐 정도로 조용한 방이었다. 같이 놀기로 했던 선배는 과제를 마치고 옆에서 잠들어버렸는지, 어두운 방 안에서 작은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나를 죄어오는 이 적막감도 너무 싫었다.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적막감을 부수기 위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 ...윽...끄륵...으으...
어찌나 가위에 심하게 눌렸던지, 내 목에서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비명소리만 새어나왔고, 무언가가 내 목을 틀어막고 있는 기분이었다.
-...끄으...으윽...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내 목을 거쳐 나오는 소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 꽉 틀어막은 내 목구멍 사이로 간신히 비집고 나오는 소리 뿐이었고. 굳어버린 몸과 시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난 지금 가위에 눌려있고, 지금 이 상황에 귀신이나 이상한 형체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거 정도였다.
- 아으... 뭐야... 뭘 자꾸 중얼거려...
움직이지 않는 시선 밖에서, 선배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으으...
나는 제발 선배가 일어나서 지금 내 상황을 봐주길 간절히 바라며, 온 힘을 다해 목을 쥐어짜냈다.
- 아.. 진짜 쫌... 신경쓰여...
선배는 짜증을 내면서 일어났다. 짜증스러운 선배의 목소리와 한숨 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적은 처음이었다. 어찌됐건 누군가 내 옆에 있고, 그 사람이 이제 곧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선배의 짜증 정도는 웃으면서 받아줄 수 있었다.
- 아... 너 자다 말고 앉아서 뭐하냐...
선배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했다. 그러나 시선이 정면에 고정되어있는 상태에서도 잠이 가득 묻은 목소리와, 내 옆에서 나를 쳐다보는 선배의 시선이 느껴진다는 것은 내겐 큰 위안이었다.
- 으으....끄으....
나는 온 힘을 다해 말을 걸었지만, 여전히 뭔가 끓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 뭐... 똑바로 얘기해. 뭘 어떡하라고...
- 으으.....
- 아니 그냥 자라고 좀... 말을 하던가...
선배는 짜증을 내면서도 계속 내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고, 나를 유심히 보는 듯 했다.
- 아니 근데 왜 가만히 있냐. 굳은 거 마냥...
- 끄륵...으어...
- 응...? 야. 너 설마 가위눌렸냐?
- 으으...!끄...!
나는 내 지금 상황을 맞춰준 선배가 너무나도 고마웠고, 얼마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대답을 했다.
- 맞네! 이 새끼 가위 눌린 거 맞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떻게 앉아서 가위를 눌리냐 ㅋㅋㅋㅋㅋㅋㅋ진짜 븅신같이도 눌렸네ㅋㅋㅋㅋㅋㅋ
선배는 이 상황이 너무나 웃기다는 듯, 한참을 옆에서 깔깔거렸다.
- 야. 진짜 살다 살다 이렇게 가위 눌린 놈은 처음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도 안 움직이냐? 지금도? 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계속 선배는 옆에서 큰 소리로 웃음을 뱉어댔고, 나는 어느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 끄윽....!으으으.....므으...
나는 선배에게 할 수 있는 온갖 쌍욕을 하며 풀어달라는 뜻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애석하게도 내 입은 굳어 있었고, 내가 뱉은 쌍욕들은 겨우 가래끓는 소리로 나올 뿐이었다.
- 이 새끼 빡쳤네ㅋㅋㅋㅋㅋ야. 알았어. 형이 금방 풀어줄게. 화 내지 마.
- 으...으으!
- 야. 가만히 있어 봐. 가위 눌린 데는 이게 직빵이야.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잠시 말을 멈췄고, 잠시 후 앉아있는 내 옆구리에 손이 닿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 옆구리에 누군가의 손이 닿는다는 것. 평소 같았으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뭐라도 해서 굳어버린 내 몸을 풀어줬으면 했다.
-스윽
선배의 손은 내 옆구리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옆구리가 미친듯이 간지러웠다.
- 쫌만 기다려 봐. 간지럽히면 가위는 금방 풀려.
무심한 듯 이야기하는 선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점점 내 몸의 통제권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점점 손 끝, 발 끝부터 내 생각대로 움직여지기 시작했고,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움은 점점 온 몸으로 퍼져나갔다.
- 으...으ㅡㅇ... 크...크하...하하하!
나는 내 몸의 통제권을 되찾음과 동시에 간지러움을 참아왔던 내 옆구리를 움직이며 크게 웃었다.
간지러워서 웃음이 나온 것도 있지만, 선배가 이 새벽에 나를 도와줬고, 덕분에 가위에서 해방됐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고, 선배 말처럼 살다 살다 앉은 채로 가위를 눌렸다는 사실이 너무 웃겼다. 내일 학교에 가서 애들한테 들려 줄 이야기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날 구해준 선배와 함께 술 한잔 하면서 이 재밌는 썰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선배에게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 선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아 ㅋㅋㅋㅋㅋㅋ형 진짜 고마워요. 덕분ㅇ..ㅔ....응?
그렇게 웃으면서 돌아본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지금까지 내 옆구리를 간지럽히고, 나를 놀리던 선배의 목소리와 손이 닿는 느낌이 모두 거짓말인 것처럼, 방 안은 내가 앉아서 굳어있던 침대를 제외하고는 어느 곳에도 온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침대 옆에는 그저 가지런히 펴져 있는 이불만 있었고, 차가운 이불의 촉감은 지금까지 이 방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내게 말해주는 듯 했다.
- ...형?
괜히 한 번 선배를 불렀다. 아직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거 같아서. 꿈이라면 어서 깼으면 해서.
그러나 적막으로 가득 찬 어두운 방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 옆에서 내게 말을 걸고, 내 옆구리를 간지럽혀 가위를 풀어주고, 나를 놀리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아니 애초에 사람이 맞긴 한 걸까. 내 시선은 앞으로 고정되어 있었기에 나는 전혀 볼 수가 없었는데, 나는 왜 '그것'을 선배라고 생각했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확인하고 싶어졌다. 정말 그럴 리 없겠지만, 선배가 그냥 나를 놀리려고 그렇게 했고, 내가 비몽사몽 하는 동안 몰래 도망쳤다고, 선배가 그런 거라고 믿고 싶었다. 제발 그렇게 말해주길 바랐다.
- 어. 여보세요? 일어났냐?
- 형. 지금 어디세요?
- 나? 너 깨웠는데 니가 너무 곤하게 자서 다른 애랑 지금 피시방인데?
- 네? 언제 나가셨어요?
- 보자... 지금이 새벽 네시쯤이니까, 두시간 전 쯤? 왜? 너도 나오게?
- ...형?
- 어? 뭐 왜.
여기까지 전화를 하고, 나는 누가 뒤에서 떠밀기라도 한 것처럼 문 밖으로 튀어나갔다.
- 어? 여보세요? 야. 올거야?
나는 전화를 끊지도 않고 간신히 슬리퍼만 신은 채 밖으로 나왔다.
왜냐면, 전화하면서 내 두 눈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무심코 쳐다본 TV 화면. 불 켜진 새벽 원룸 안 까만 TV화면에는 그 화면에 시선을 두고 있는 나, 작은 방 내부가 보였고,
침대 구석에서 선배의 얼굴을 한 채 찢어지게 웃으며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형의 말투를 따라 똑같이 입모양을 만들던 머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난 이번에도 다른 집을 구해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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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0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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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0 |
헐.. 넘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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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
|
저글링핥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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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가위 걸릴까봐 분신도 만들고 가고 착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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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3 |
|
|
더활짝핀 |
귀신이 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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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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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sosso쏘쏘 |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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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7 |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게시물에 상관없는 답글이나 추천유도성 답글을 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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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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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0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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