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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일병의 모습은 아주 가관이었다. 입을 막고 엄청나게 떨리는 동공. 나는 박 일병을 애도하며, 다시 컴퓨터를 보았다.

[...이상입니다 뭐 질문 있나요]

그냥 넘어갔다. 못 들은 척 한 건지 봐준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

지원과장이 손을 들었다.

[질문입니까]

“아 예.. 그 게임이란 게 어떤 게임입니까? 우리가 아는 게임입니까? 혹시 컴퓨터로 하는...?”

[아참]

땡그랑!

“으아아악!!”
“끄아악!”

컴퓨터에 글자가 뜸과 동시에 옆에서 텀블러 하나가 떨어졌다. 모두가 화들짝 놀라 엎드렸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짜 간 떨어질 뻔 했다.

[아 제가 잊어버렸군요 아까 중얼거린 사람 신경이 쓰여서 깜빡했네요 하 하 하 하 지금 알려 드리죠]

웃음소리 실화냐. 진짜 무섭다. 근데 박 일병 들켰었네.

[게임은 간단합니다 점령전이죠 그쪽이랑 우리랑]

...점령전? 어떻게? 그쪽의 아주 약한 충격에도 머리가 터지는 우리들이랑?

“저기..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닙니까?”

세상에. 보급관이 나섰다. 맙소사 개멋있어.

“아까 보셨다시피, 우리는 아주 약합니다. 그런데 그쪽과 상대가 되겠습니까?”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우리와 싸운다면 당연히 그쪽이 지겠죠 그 약하디약한 충격에도 머리가 터지는데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의 병사를 만들겁니다 적당히 여러분들과 비슷하도록 말이죠 설명이 너무 길었군요 그럼 시작]

그리고 팟! 하는 불 꺼지는 소리와 함께 컴퓨터의 글자와 파란 화면은 사라졌다.

“휴... 머리 터지는 줄 알았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병사라는게 뭔 소리입니까?”
“글쎄다... 뭐 막 로봇 같은거 나오려나? ...근데 바깥이 왜 이렇게 시끄럽냐?”

보급관의 말마따나 밖에서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이상한 메시지가 떴다.

-좀비들을 피해 살아남으십시오

그제서야 바깥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너네들 뭐야! 이거 하극상이... 아파 임마!! 이거 놔!”
“크어어억...크아아아!!”

창문 바깥으로 본 바깥 상황은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난무하는 피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상황. 다행히 창문은 닫혀서 좀비가 열 수 없었고. 건물 쪽 문은 열려 있어서 나는 건너편 문을 잠그러 뛰어갔다. 그런데 문 앞에 누군가 있었다.

“저기 간부님! 빨리 들어오십쇼! 바깥은 지금...”

나는 간부겠지 싶어 소리쳤지만, 나는 말을 끝낼 수가 없었다. 그 형체가 기이하게 꺾여서 나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하체는 가만히 있고 상체와 머리만 말이다.

“크어어어억!!!”

그 좀비는 바로 달려들었고, 나는 벙쩌서 움직이지 못했다. 물렸다 싶은 순간, 누군가 날 뒤로 잡아끌었고, 건물 쪽 문이 닫혔다.

“야! 정신 안 차려? 너도 저렇게 되고 싶냐?”

보급관이었다.

“모두 문 싹 걸어 잠그십쇼! 너는 창문 걸어 잠궈!”

간부 병사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참모부를 돌아다니며 모든 문을 걸어잠궜다. 이미 잠겨 있다면 다시 잠갔다.

“휴.. 일단 한숨 돌리겠군요.”

여전히 바깥에서는 비명 소리와 좀비들의 쥐어짜는 소리가 가득했다. 하필 점심시간이라 바깥에 다니는 사람이 많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일단 식량부터 확인하죠. 얼마나 버텨야 할지 모르니까요.”

벌써 살아남을 생각을 하고 있는 보급관이었다. 특전사는 역시 달라.

“김 병장아 최근에 보급 나온거 아직 막사에 안 올렸지? 그거 다 가져와봐”
“옙”

***

보급 음식과 안 먹고 쌓아뒀던 전투 식량을 싹 모으니 한 무더기는 되었다. 모두 일단은 안심했다. 이 정도면 몇 주는 버틸 수 있을 테니. 우리는 과자와 음료수를 하나씩 잡고 일단 허기를 채웠다.

“하... 이게 무슨 일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모두가 대충 음식을 먹고 잠시 쉬고 있을 때, 눈앞에 다시 메시지가 떴다.

-좀비에게서 살아남으셨군요
-여러분이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목표 지점을 점령해 게임을 승리하십시오

메시지가 사라지며 멀리 건너편에 화살표 표시가 나타났다.

“뭐야 이건 또?”

지원과장이었다. 이 아저씨도 메세질 봤나 보다.

“필요없어. 난 여기서 단 한 발작국도 안 나가.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틸거다”

맞다. 굳이 이곳에서 나갈 필요가 없다. 군부대인데 누군가 연락 받고 구하러 오겠지. 하지만 다음에 나타난 메시지에 억장이 무너졌다.

-게임의 진행에 방해되는 것은 배제합니다.

그 메시지가 사라지자마자 모든 식량이 먼지로 변했다. 맙소사. 하지만 괜찮아. 그런데 창문이든 문이든 다 사라져버린 것은 안 괜찮았다.

“크어어어어어!!”

문이 사라지자 건물에서부터 바로 좀비들이 쳐들어왔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다들 도망가!”

의도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외부로 나가는 창문에는 좀비가 없어서 그 쪽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김 병장! 빨리!!”

나도 무사히 보급관의 손을 잡고 나갔다. 하지만 박 일병이 문제였다.

“헉! 다리가... 김 병장님! 김 병장님!!”

나는 나도 모르게 창문을 발로 걷어차 부숴 버렸다. 순간 손을 놓고 도망갈까 생각했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박 일병! 괜찮아? 뛸 수 있어?”

다행히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헉...헉...괜찮습니다. 김 병장님... 병장님이 아니었으면 저는...”
“야 울지 마 살았잖아! 빨리 뛰어!”
“어이! 김 병장! 여기야!”

그때 멀리서 지원과장이 우릴 불렀다.

“뭐야? 어디서...”
“저쪽 501호입니다!”

울먹이는 소리로 박 일병이 501호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미 차에 탑승한 지원과장과 보급관이 있었다.

“야! 빨리 와! 위험해!”

아닌게 아니라 주변을 보자 언제 나타났는지 엄청난 수의 좀비들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좀비들은 하나같이 군복이었고 기이한 몸동작으로 달려오는 걸 보니 모 영화의 기차역 씬이 생각났다. 그나저나 설마 아까 창문 부수던 그 시간 때문에 죽는 건 아니겠지... 나는 박 일병과 함께 501호로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으아아아악! 제발!!”
“크아아아아아!”

내가 차량에 탑승하자마자 좀비들이 유리창에 다다다닥 붙어 손으로 긁어대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긁히는 것은 나였겠지.

“헉...헉”
“다들 괜찮아?”
“예... 무사합니다.”

와락-
갑자기 박 일병이 나를 껴안았다.

“김 병장님... 저는 김 병장님이 아니었으면..”
“으..알겠어 꺼져. 징그러우니깐”

짜식이.. 육군 병장은 전우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구.

“김 병장. 여기서 살면 모범 병사 꼭 건의하겠다.”

지원과장이 목소리를 깔면서 말했다. 모범 병사라니! 이런 걸 거절하면 나중에 후회한다.

“아하하.. 뭘 그런 걸 다..”
“...거절했으면 더 멋있었을 겁니다.. 김 병장님..”

박 일병 이새끼... 그냥 놔두고 올 걸 그랬다.



우리는 탄약고로 출발했다. 걸리적거리는 좀비들은 그냥 차로 쳐버렸다. 한 연대에서 같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엔 그 좀비들에게 공격을 너무 많이 받았다.

“이 정도 속도면 탄약고는 물론이고 목표 까지 차 타고 가도 되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하!”

우리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기름은 오늘 아침에 내가 가득 채워 놓았기 때문에 탄약고까지는 너무나 여유롭고도 넘쳤다. 그런데 너무 쉽게 가는 것이 불안했다.

팟!

그때 네비게이션의 지도 화면이 사라지고 아까의 블루 스크린이 나타났다.

[여러분 용케도 여기까지 잘 오셨네요 이런 반칙을 하고 말이죠]

역시나... 어쩐지 너무 쉽다 싶었다.

[하지만 재대로 확인하지 못한 저의 실수이니 여기까지 온 것은 봐 드리죠 하지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네비게이션의 화면은 다시 돌아왔다. 차도 잘 가고 있었고, 우리 몸도 이상이 없었다.

“뭐지? 앞으로 차 타지 말라는 소린가?”

그런데 차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앗 설마...?”
“하... 진짜 이건 좀 오반데..?”

아니나 다를까 차량에 꽉 차 있던 기름이 거의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모두들 말문이 막혔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무기 같은 것도 들고 올 걸 그랬습니다.”
“다들 이럴 줄 알았겠냐..”

그래도 탄약고까지는 거의 다 왔다. 대충 몇백 미터 떨어져 있는 정도였다. 물론 먼 거리는 아니다. 단지 좀비 천국이라는 것이 문제지.

“저걸 어떻게 뚫고 가냐..?”

할 말이 없었다. 좀비가 아무리 느리다고 해도 인간 4명이서 좀비 떼를 어떻게 뚫고 어찌어찌 탄약고에 들어 간 다음에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나마 차 안에 물건이 몇 개 있었지만, 무기로 쓸 만한 것은 휠 너트가 끝이었다. 모두가 거의 포기했을 때, 외계인이 다시 나타났다.

[모두들]

글자가 우리를 불렀다.

[여러분들을 스캔해보니 의욕이 하나도 없군요 난이도가 너무 높은가 보죠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너무 쉽게 와서 판단을 잘못한 것 같네요 그래서 선물을 주려 왔어요]

젠장. 병 주고 약 주는 건가. 그냥 처음부터 쉽게 하던가. 아니 아예 이런걸 하지 말았어야지.

[그 움직이는 박스 안에 있는 물건들 중 무작위로 좀비들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넣어 둘게요 그걸로 알아서 해 보세요 뭔지는 보면 압니다 그럼 이만]

팟!
외계인은 다시 사라졌다.

“....여기 있는 물건 뭐뭐 있냐?”
“점호도구랑 휴지, 선크림, 야경봉 뭐 이런 것 밖에 없습니다.”
“그거라도 확인해보자. 다 가져와봐.”

우리는 차를 뒤져 있는 물건 없는 물건 모두 찾아 꺼냈다. 생각보다 능력이 있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런데 물건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이 능력만 부여해 놓은 것 같았다.

“이게 다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확보한 물건은 휴지 몇 개, 야광조끼, 야광봉, 삼각대가 끝이었다. 사용 방법과 능력은 물건을 보면 팝업창 같은 것이 나타나 있어 바로 알 수 있었다.

“좋아... 이걸로 이제 탄약고까지 뚫고 가야 하는 건가? 좋지 않구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계획이라도 세워야...”
“계획이 어딨어? 숨을 곳도 없이 탁 트여 있는데. 물건 능력 써서 그냥 들이대야지뭐.”
“그냥 들이댄단 말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그리고 곧 어두워진다.”

보급관의 말처럼 이제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결국 우리들의 계획은 물건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달려가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이젠 가야 한다.

“..하나”
“...둘”
“..셋!!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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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