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은 3D프린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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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아닌 공간에 물건을 바로 뽑아내는 신기한 기술이 세상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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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프린터의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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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설계도를 3D 데이터로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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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설계도의 레이어를 무한대에 가깝게 나눈다. 즉 미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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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첫번째 레이어부터 순서대로 인쇄해 나간다. 즉 적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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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어떤 제품을 출시하기 전 시험판 정도를 만드는 용도로 쓰였던 이 3D프린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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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로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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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처음에 쓰인 것은 '조리'였다.

햄버거의 설계도를 3D프린터로 인쇄하면 직접 만든것과 차이가 없는 햄버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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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는 수많은 음식의 설계도가 공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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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만든 것과 인쇄된 것의 차이가 전혀 없었기에 각종 자영업자들이 몰락하는 것을 막기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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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3D프린팅을 이용한 조리를 전면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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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D프린팅을 이용한 기술이 군사, 전자산업을 비롯하여 가정의 아주 사소한 물품에까지 쓰이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이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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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법적으로 금지한 것은 그 시기를 살짝 미룬것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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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누군가' 질문을 던졌다. 생물도 인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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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이 시작되자마자 인터넷은 PC통신의 등장 이후 200년 역사상 가장 뜨거운 토론장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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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미 이에 관련된 기술을 중국이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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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 내린 결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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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스캔 과정에서 매우 뜨거운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의 설계도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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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쇄과정에서 오차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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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미분과 적분은 개념이다. 레이어를 무한히 나눈다는 상상은 할 수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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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무한히 나눌 수는 없다. 1cm를 백만층, 천만층으로 나누어도 결국 오차는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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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 오차는 무생물을 인쇄하는 데는 문제가 거의 없지만, 생물에는, 특히 뇌와 같이 정교한 부위과 관련해서는 문제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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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1층부터 차례대로 인쇄하는 3D프린터의 원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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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반정도만 인쇄된 개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런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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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은 1층부터 차례대로 인쇄하는 3D프린팅 과정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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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윤리적, 기술적 논란을 가져온 이 질문은 그렇게 일단락 되는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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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시작은 2년 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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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차례의 잇따른 원전폭발과 대규모 자연재해로 국가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해가던 일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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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쥐려는 야욕으로 생물을 프린팅하는 기술을 개발 성공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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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 프린팅 기술의 핵심을 독점하려 했지만 일본의 지나친 요구에 화난 세계연합은 일본과의 무역을 전면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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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좋지 못한 상황에 기술 개발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 일본은 얼마못가 파산했고, 기술은 공개되어 각 나라로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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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인간의 프린팅이 가능해지고 지구상의 모든 인간을 데이터화하여 저장하는 프로젝트가 완료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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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걸렸다. 이제 인간에게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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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1년을 주기로한 데이터 백업이 의무화되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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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저장되지 못한 기억을 잃을뿐 재료비만 내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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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자아실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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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생존에 목적이란 없다. 생물이란 원래 생존과 번식 그 자체가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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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열심히 사는가? 언제 생존이 멈출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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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이 완벽하게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열심히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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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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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죽을지 불안해하며 그러니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사람들은 자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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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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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은 죽지못한다. 자살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벌금과 재료비를 청구하면서 사람들을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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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죽어봤자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국가는 청구한 돈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강제노동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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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부터의 자유는 삶으로부터의 속박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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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도 못하고, 고역스러운 일만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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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계속되지만 죽지는 못한다. 말 그대로 세상은 지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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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물학자였다. 그리고 '생물도 인쇄가 가능할까'는 첫번째 질문을 던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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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을 한 순간, 나 자신은 알고 있었다. 세상이 지옥이 될 것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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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나는 생물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생물의 설계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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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생물은 완벽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이토록 발전이 가능했던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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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많은 약점을 가진 불완전체였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죽지않게된 인간, 즉 완벽해진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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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다. 인간을 불완전하게 창조한 신의 느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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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만든 생물에게 다른 생물들이 가진 일반적인 본능외에 두가지 본능을 더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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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내가 조물주이며 나를 섬겨야한다 사실과, 다른 하나는 인간을 죽여야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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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은 아주 쉬웠다. 죽음이 의미가 없어진 세계에선 군대도, 무기도 필요하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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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오히려 죽여주는 것을 고마워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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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인간이 존재하지 않기까지는 단 이주일이 걸렸고, 그렇게 나는 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