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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에서 '비너리어' 가지를 빼내 오른손에 쥔 단테. 와화는 단테의 손에 들린 물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건가.. 아까 허규가 말해준 것이. 그냥 보기로는 보통의 나뭇가지랑 같은데. 기운? 아냐. 기운같은 건 느껴지지 않아. 그러나 와화는 점점 미세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이 여자의 몸 곳곳까지 퍼져, 이 신체를 지배하고 있던 자신의 영이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은 것처럼 지직거리며 자그마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단테는 고개를 기울이며 장난스럽게. 또 여유있는 미소를 와화를 향해 지어냈다. 단테에겐 이 모든 것이 사소한 장난인걸까. "이거 궁금하지? 아까부터 와규가 이걸 궁금해 하더라고.. 아니 아니.. 와규가 아니고 허규" 큭큭큭큭큭. 아~ 아까부터 계속 와규가 먹고 싶다 했더니. ㅋㅋㅋ 허규. 이 땡중 이름 때문이었구나. 단테는 속으로 킥킥대며 손에 쥔 '비너리어' 가지를 흔들어댔다. "내가 너무 압도적이지? 나같은.. 음.. 글쎄.. 너희들 딴에 이런 '무당?'은 처음 만나봤을꺼야.." 단테는 와화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와화는 계속 말을 던져오는 단테에게 따로 할 말이 없었다. 처음 겪는 절체절명의 상황과 어울리는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드라마.. 그래 말 그대로 이건 드라마같은 상황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드라마대사라도 외워서 단테랑 티키타카라도 할 껄 그랬다. 지금 와화에겐. 그저 이 오른팔에 모아놓은 최선의 영력으로 단테를 어떻게 찢어발길까하는 상상을 계속하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사치였다. 단테는 집중하는 와화에게 말장난인 듯 아닌 듯한 말을 건내왔다. "와화야... 넌 너의 처음이 기억나니?" 와화는 대꾸하지 않는다. "내가 원래 이쯤되면 꼭 너희같은 귀신들에게 물어보는 거야. 뭐 내게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는 거지." 내 처음?.. 와화는 의도치 않게 단테의 말에 휘둘렸다. 오랜 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처음' '내 처음'.. 와화는 마음에 던져진 이 단어에.. 이렇게 된 자신의 '처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주 희미한.. 희미한.. 영에 새겨진 희미한.. 기억들이 이 찰나를 비집고 그 틈을 벌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 * 주인집 양반이 발소리를 쿵쿵거리며 쳐들어왔다. 엄마와 아빠는 재빨리 나를 방구석 궤짝에 구겨넣었다. "도리야 절대 나오면 안돼 입 꼭 닫고 조용히 있어야 한다!!!" 좁은 궤짝 속 빛에 새어드는 틈을 얼른 찾아 그 얇디 얇은 틈으로 가늘게 한 눈을 갖다대었다. 왈칵 열린 문으로 양반놈의 면상이 까꿍하듯이 들어왔다. 그리곤 인상을 얼굴 한가득 찌푸렸다. "솔개 이놈. 어서 나가지 못할까. 끌끌 눈치없는 놈 같으니.. 마당이나 깨끗이 쓸어라 이놈아." "아니 주인어른! 또 왜 이러십니까.. 달에 한번 씩만 사랑방으로 부르시겠다고 약조허지 않으셨습니까.." "약조는 개뿔이 약조냐. 이놈아. 니 주인 아랫도리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이 금수같은 놈이.. 어디서 눈을 부라리며 약조를 들먹여.. 사람이 금수랑 약조하는 거 어디서 본 적 있느냐" "아니 이거는 ...아아.. 왜 이래.. 이거 놔.." 엄마가 아빠를 방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만 해 둬요. 도리 아버지.. 제가 다 알아서 할터잉께.." "니가 뭘 알아서 해 뭘!!" "아니 이 놈들이 어느 안전이라고.. 주인 앞에서 실랑이를 하는게냐.." "아니 주인어른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주인놈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아빠의 뒷덜미를 잡더니 바닥으로 내팽개치려 힘을 썼다. 하지만 아빠는 넘어지지 않으려 버텼다. "아니 이놈이 힘을 써? 이놈이. 아이고 이놈이 주인한테 힘을 쓰네.." 주인은 문을 박차고 나가더니 "육정아.. 막산아.. 여기 몽둥이 들고 오니라!!!!!" 엄마가 울부짖으며 주인놈에게 애걸했다. "아니 주인나으리 왜 이런데유.." "여보 빨리 죄송하다고 해요... 빨리!!! 빨리!!!!!!" 어찌할 겨를도 없이 노비 둘은 몽둥이를 들고 방안으로 들이닥쳤다. "이 놈을 죽을 때까지 몽둥이질 하거라." 허공을 가른 몽둥이가 정확히 아빠의 대가리 한 가운데를 둔탁하게 때렸다. （"아.... 아... 아빠..... 아빠... 아빠....."） 입 밖으로 새어나올 뻔한 울음소리를 겨우 손으로 주워담아 입에 넣어 틀어막았다. [따~~악] 아빠의 눈알이 아래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어지지는 몽둥이질. 아빠는 육정이와 막산이의 몽둥이질에 하릴없이 쓰러져. 떡판위에 떡처럼 흐물거렸다. [퍽, 팍,, 팍.. 팍... 헉헉... 퍽 팍팍...] * * * * * "헉헉... 주인나리.. 솔개 이놈 정신을 잃은 거 같은데요.. " 아빠는 피로 뒤덮여 마치 잔치때 본 사발에 담긴 돼지간처럼 보였다. 엄마는 아까츰에는 목이 찢어질 것처럼 울부짖었지만.. 지금은 입을 막힌 듯 윽윽거리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이제 끌어낼깝쑈?" "이리내라" "이 쓸모없는 놈.. 지옥에나 떨어져라~!!!" [퍼석].... 어딘가의 뼈가 주저앉는 소리. 숨소리 하나가 조용히 사라져갔다. 노비들은 주인놈의 명령에 따라 피떡이 된 아빠를 방 밖으로 질질 끌어냈다. 주인새끼가 숨을 하악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빠가 흘린 피 위로 이불을 거칠게 펼쳤다. 엄마는 주인놈에게 다리를 잡혀 이불 위로 끌려가다가 나뒹구는 홑이불 하나를 겨우 손에 쥐어 궤짝으로 던져 올렸다.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악~~~" 엄마의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궤짝을 포근히 감싼 홑이불.. 더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 소리.. 엄마를 따라갔다가 저잣거리 구석에서 고양이가 개에게 뜯어먹히는 걸 우연히 본 적이 있었다. 그래 그랬어.. 이 소리였다.... 엄마는 고양이처럼 앙칼진 소리를 다 뜯어먹힐 때까지 슬프게 내었고, 개새끼는 개처럼 컹컹거리는 소리를 다 뜯어먹을 때까지 신나게 질러댔다. * * * * * "아유.. 후.. 후휴.... 이 앙칼진 년.. 솔개놈이 얼마나 .. 후.. 얼마나 발정이 나서 해댔으면.. 후.. 훅.." 고양이는 더이상 울지 않았다.. "후.. 후.. 야.. 육정아 막산아.. 그 피떡된 놈. 다시 이리 집어 넣고.. 이 더러운 집에 불을 질러라. 작년부터 허문다 허문다 했는데.. 잘 되었다." "어서 불살라버리고,.. 이놈들 계집 도리년이 어디있는지 그 년이나 찾아서 내 앞으로 데려오거라.. 아이 더러운 것들.. 퇘" "이 놈들은 지들 실수로 거처에 불이 난 것이다. 알겠느냐!!" "네 나으리.." 노비놈들은 집에 불을 피웠고.. 난 방안 자욱해진 연기를 참지 못하고.. 궤짝을 뛰쳐나갔다. * * * * * 그렇게 7살이 되던 해 부모를 잃은 후, 세종이 만든 종모법에 의해 난 당연하게도 이 집의 노비가 되었다. 원통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머리가 굵어질 수록 삶을 비교할 수 있었고.. 아무리 노비라도 내게 벌어졌던 일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했던 일이었는지 .. 그 기억들 하나 하나를.. 마치 불에 달군 쇠로 뼈에 찍어놓았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은 커져갔다. 그러나 부모잃은.. 여자.. 노비.. 그때의 조선에서 내가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노동을 끝내면 다른 여자 노비들 틈에 껴서 먹고 자고 싸는 일만으로도 버거웠다. "야 막둥아. 도리 저거 많이 예뻐지지 않았냐?" "야 임마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나.. 주인어른이 도리 침 발라 놓으신 거 몰라?" "아니 주인어른?.. 그게 아직도 선단 말야?" "쉿.. 닥쳐 임마.." "하.. 도리... 저렇게 예쁜데.. 아까워라.. 내가 그냥 확 델꾸 도망이나 쳐 버릴까?" "냅둬라. 잡혀서 뒤지고 싶지 않으면.." 쓸데없이 봉긋 솟아 풍만해진 가슴은 저고리에 그 태를 고스란히 드러내었고, 반듯한 이마에 오똑한 코.. 그리고 작은 티하나 찾기 힘든 백옥같은 피부는 백설기를 조개 속껍질로 주물러낸 듯 하였다. 굵고 검은 머리카락은 풍성했지만 탄력이 있어 바람에 흩날려도 서로 섞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연한 분홍빛의 입술로 살짝 꼬리진 웃음을 자그맣게라도 만들어 낼 때면 뭇 남정네들은 그 웃음에 마음을 빼앗기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냥 모양일 뿐 웃음이 아니었다.. 그랬다 .. 그때.. 그때부터 14살이 될 때까지 감정을 완전히 잃은 듯 웃지 않았고.. 혹여나 개새끼가 지 시중을 들라하면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져버렸다. . . 엄마에게 물려받은 외모는 독과 같았다. . . 그 해. 내겐 혼자 사용할 수 있는 방이 주어졌다. 다른 여자노비에겐 주어지지 않았는데.. 왜일까.. 일주일 후 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개새끼가 7년 전 그 날처럼 한밤 중에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가 멀다했다... 피가 밴 옷가지들을 몰래 빨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꼬마들이 날 따라오며 지들끼리 좋아라 노래를 불러댔다. "도리야 도리야.. 만두가게에 만두 사러 갔더니 신자치（개새끼）가 네 손목을 쥐었더라. 이런 말이 이 가게 밖에 드나들면 조그만 새끼 광대야, 네가 말한 것이라 하리라. 그 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그 둘이 잔 데같이 뒤엉켜진 데가 없다.~" 저건 나와 그 개새끼가 담겨 있는 노래였다. 개새끼가 여기저기 흘리고 다닌 게 틀림없었다. 이 노래는 어느새 개새끼의 아내인 숙비의 귀에까지 전해지고 말았다. 8편 끝. 이 이야기들의 정식 제목 '부두레코드（VooDoo Record）'를 타이틀작업하여 글 윗부분에 공개했습니다. 물론 작업은 제가 대충 했고요... 제가 그동안 쓴 모든 글은 다 '부두레코드'라는 이름 아래 연결되어 있습니다. 늘 답글로 용기주시는 매크리님 나폴나폴이님 보영이가좋아님 달려길동아님 겨울밤바다님 인생뭐없냐님 지긋지긋관절염님 다정다감한님 냉면서생님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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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좋았어 |
8편은 매운맛이네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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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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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단테 |
감사합니다. 가난이 좋았어님! 앞으로 매운 맛 글들이 꽤 많아질텐데.. 늘 감사히 읽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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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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