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든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내가 태어남과 함께 엄마가 해주신 말씀으로 이 말은 처음이자 마지막 엄마의 말이었다.

그 뒤 아버지께 안겨 받은 이름 한 글자 '양'

안 그래도 하얀 수원 백（白） 씨에 밝을 양（亮） 자가 붙어 늘 희고 밝은 삶을 바라는 염원이 담긴 이름이 되었다.

이름값을 하는 삶을 산다면 나는 귀신을 보는 것 따위 못했어야 한다.




대대로 우리 집안은 무속인이었다. 현재는 아버지께서 신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계시기에 내게 영향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걷고 뛰고 말을 할 수 있을 때부터 내가 무언가 볼 수 있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걸음마도 한글도 바쁘신 아버지가 아닌 우리 집 터주님께 배웠으니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 허공을 짚고 걸음마를 하고 집 마당에 앉아 혼잣말로 대화를 하며 흙바닥에 글씨가 스르륵 써지는 모습은 분명 기괴하였을 것이다.




소문은 매우 빠르고 쉽게 퍼져나간다.

이미 동네에선 파다한 얘기였지만 유치원도 다닌 적 없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식 날부터 무당집 귀신 보는 아들이라는 얘기가 전교에 퍼질 정도니 말이다.

난생처음 받는 관심은 따듯했고 고마웠으며 대화하기도 쉬웠다.

열이면 열 대답하기 매우 쉬운 질문들을 하였으니 말이다.

귀신이 정말로 있는지 있다면 현재 교실에 귀신이 있는지 지금 자신의 옆에도 귀신이 있는지였다.

어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늘 그렇기에 그렇다고 대답하였고 그날 이후론 아주 쓸쓸한 학교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다들 쉬쉬하면서 알고 있지 않나? 귀신 얘기를 하면 귀신들이 듣고 모인다는 것 말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귀신 얘기를 하고 누구 하나라도 설마? 혹시?라는 생각에서 단 일말의 믿음이라도 갖는 순간 귀신은 그곳에서 생겨난다.

대게는 본인들이 볼 수 없기에 조금 지나면 믿음이 사라짐과 동시에 귀신도 사라져 버리지만 죽기 전에 한을 품으면 정말 귀신이 되어 한동안 구천을 맴돌기도 한다.

사실 귀신은 죽기 전에 자신의 강한 믿음이 발현된 형태이며 믿음의 방향에 따라 귀신의 성향이 정해진다. 그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나의 아버지와 나 그리고 돌아가신 엄마뿐일 것이다.




나는 나를 감췄다.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었다.

늘 그렇듯 아침을 먹고 나서는 등굣길이었지만 쿰쿰한 냄새가 나는 버스가 싫어 오늘은 조금 걷기로 하였다.

다섯 정거장 정도의 길이지만 평소보다 두 시간은 일찍 출발하기에 제시간에 맞춰 들어가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교복이 젖는 게 싫어 바지는 체육복을 입고 반바지 차림으로 걷어올렸고 슬리퍼를 질질 신고 비 맞는 것에 아무런 타격 없이 교문 앞이었다.

'수원 남중' 회색 베이스에 초록색으로 쓰인 글씨는 우중충한 날씨처럼 칙칙하다.

일찍 도착한 자신을 칭찬하며 오늘은 학교 뒷문 쪽 '수원여고'로 가는 길을 산책하기로 한다.

불과 300m 정도 떨어진 학교는 금남의 구역이다.

남자 냄새만 나는 나의 학교는 칙칙하기에 가끔 이렇게 누나들이 지나는 길을 걷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런 좋은 기분이었다.

빗물이 젖어야 할 슬리퍼 신은 내 맨발이 붉은 피웅덩이에 잠기기 전까지만 말이다.




본디 귀신은 멸하거나 쫓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랬다.

애초에 동네를 벗어난 적 없는 좁은 반경에서 얻은 지식이지만 그렇게 알았다.

그런데 그녀가 귀신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귀신을 죽였다.

마치 사람이 죽는 것처럼 그녀에게 목이 잘렸다.

귀신의 머리칼이 쥐어져 있는 그녀의 손을 따라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귀신의 얼굴이 섬뜩하다.




하지만 지금은 부상자가 있었다.

그저 의문을 가득히 품은 채 병원으로 향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