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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일기
# 2020년 6월 21일 밤 11시 22분
내 용돈이 한달 15만원인다. 서핑을 하다가 이전부터 중고로 사려고 계획했던
그림용 펜노트북이 30만원에 안전결재로 나온 것을 확인하고 대략 한달
5만원꼴 6개월 카드할부로 구매하였다. 없던 노트북을 발견한 아내가 자초지정을
묻고 듣더니 노발대발했고, 앞으로는 카드사용내역을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내 한달용돈에서 알아서 쓰는걸 왜 간섭하냐고, 이 쥐꼬리만한 용돈은
내 마음대로 쓸거라고 말했다. 막말을 서로 15분 동안 퍼부으며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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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엄망~. 알았습니당. 이따 그럼 빠르면 10시 30분 정도에 가겠습니당~.
알았다고요. 안까먹었어요. 집사람한테는 아침에 말하고 나왔으니 그렇게
알거에요. 엄마. 그럼 끊어용~. 넹~"
엄마가 무려 3년 동안 싱크대를 새 걸로 바꿀까 말까 고민하더니.
지난 달에 동네 인테리어 샵에서 상담을 받고, 지난 주말에 시공을 완료했다.
업체상담에선 꼼꼼하게 해준다고 아유 걱정하지 말라고 완벽하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막상 시공해주는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시간맞추기에 바빴는지 엄마의 여러 요청들을
듣는 듯 무시하는 바람에 소심해진 엄마는 그냥 옆에서 멀뚱하니 지켜만 보다가
설치과정에서 맘에 안드는 부분이 여럿 생겼나보다.
그걸 내가 고치러 와달라는 거다.
그럼 이따 차에서 드릴만 준비해서 가면 되겠지..
"김쌤~"
간드러지는 목소리. 박선생님이다..
"왜요?"
"어... 무미건조하네.. 여기 이거 받아요"
내 자리 파티션에 팔꿈치를 기대며 건내는 비타 500.
"아.. （뭐） 감사합니다 ㅎㅎ"
"요즘 김쌤 힘든 일 있나봐. 얼굴이 안좋아.. 흐~~음.. 총각 때가 좋았지?.."
박쌤이 왠지 알것 같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보며 물었다.
내 얼굴이 어쩄길래? 뭐 암튼 마누라 때문에 죽을 것 같긴 하다...
"아.. 그렇죠. 역시 총각 때가.. 좋았죠.."
"ㅋㅋㅋ 이제 말이 좀 통하네.. 옛날엔 진실한 사랑이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ㅋㅋㅋ"
부정할 수 없는 말이긴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난 박선생님과 지금 그런 이야길
주고 받을 정신이 아니다. 아니 정신보다는 그냥 박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하기 싫다.
"그러게요. 그걸 아시는 분이 왜 소개팅주선을 해주셔서.."
"그나저나 요즘 걔 다시 학원 나오더라?"
성급히 말을 돌리는 박쌤.. 찔리긴 하나 보지..
"아... 누구요?"
"누구긴 누구야 나윤이 말야.. 나윤이.."
"아 요번주부터 나오더라고요."
내쪽으로 머리를 기울이는 박선생님.
（"몸매가 아주 죽이더라고... 옛날보다 더.. 휴.."）
쑥 들이민 면상.
능글능글한 저 면상이 너무 싫다.
훅 퍼지는 치석냄새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진다.
몇 살이더라 이제 46살?
사석에서는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이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다니.
한번은 내게 욕을 해서 나랑 싸울 뻔도 했었다.
어림도 없지. 내가 선비는 아니지만 욕은 정말 아니지.
게다가 무엇보다 이 새끼가 싫은 건 여자와 관련된 더티토크를
즐겨한다는 것이다. 나이 가리지 않고..
순간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박선생님을 째려보았다.
"어허 알겠어 알겠어... 얼굴 구멍나겠네"
교무실 밖으로 교재를 들고 내빼는 시늉을 하면서 가버렸다.
휴... 진짜 징글맞다. 수업준비하느라 바빠죽겠는데,
그때 모니터 밑에 놓아둔 워크맨이 눈에 들어왔다.
수업을 마치면 교실 여기저기를 굴러다니는 지우개를 주워둔
작은 종이 상자 옆에 택배를 받은 날 만큼은 영롱하게 빛나던
워크맨이 비닐에 담겨 고이 모셔져 있었다.
아직 제대로 작동되는지도 모르는 워크맨..
사실 그냥 충동구매였지.. 불은 들어오던데.. 뭐
테이프를 넣어봐야 제대로 돌아가는지 알 수 있겠지.
아.. 이따 본가에 갈때 엄마한테 보여줄 겸 이 워크맨을 가져가야겠다.
집에 아마 카세트테이프들이 아직 남아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까먹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가방에 넣어두자.
워크맨을 가방 안쪽 포켓에 소중히 넣고 지퍼를 도르륵.. 잠갔다.
수업시간 다 됐네. 일단 수업부터 끝내자!
* * * *
"복소수는 바로 이 순환성이 가장 신기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지.
자기 자신을 반복해서 곱했을 때 몇 번의 곱 이후 다시 자기 자신이 되는 수.
이전의 수집합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성질이야."
잠깐 말을 멈추고 학생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학생들에게 눈을 마주치려 하자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는 친구들이 없다.
내 눈이 지나가는 길마다 고개를 그렇게들 푹푹 숙이니..
"이해되니?" "응?"
"네.... " " 네.." " 네에.."
이해를 하고 하는 대답인지 그냥 입에 말을 조금 덜어 내놓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학생들에게 자꾸 이해되냐고 되묻고 있다.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게 틀림없다....
이건 학생들이 문제가 아니다.
나 스스로 지금 내 수업이 어설프다는 걸 느끼고 있는거다.
마치 학원에 처음 와서 했던 첫 수업이 떠오른다.
분필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도 더듬고 그런 나를 한심스러운 듯
바라보던 학생들의 눈. 그때의 내가 떠올라 괴로운 마음.
그때의 나로 다시 되돌아가버린 느낌.
자꾸 페이스를 잃고 말이 빨라진다.
빨라지는 말의 속도를 구강근육이 쫓아가질 못하니.
말도 더듬어지기 시작한다.
쟤는 왜 다시 학원에 나와서 날 저렇게 째려보고 있는거지.
쟤가 내 페이스를 몽땅 헝클어놓고 있다.
저 색기어린 눈깔로 또 날 쳐다보고 있다.
"자 복소수의 순환성. 거듭제곱을 통해 돌고 돌아 다시 자신이 되는 이 특이성.
꼭 기억해야 한다. 이 순환셔... 수난셔.... 순환성이"
아 씨발..
"이 순환성이 유전이 되어 복소수 전체가 복소평면에서 회전성을 띄게 돼. 이건 뭐
너희들이 정확히 알 필요는 없고..."
"선생님!"
나윤이다.
"자 그럼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 볼께!! 자 다들 힘내서 고고 합시다!"
"선생님! 저 질문있는데요."
무시할 수 없다..
"어 그래 무슨 질문이니?.."
"복소평면이 정확히 뭐에요?"
"아.. 복소수를 표시하는 평면인데.. 너네들 대학교에 가면 배울꺼야..
자 다음 내용으..."
"복소수들이 어떤 식으로 회전성을 띄게 되나요?"
잠시 흐르는 마음 속 정적..
장나윤과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다.
하지만 도저히 눈을 그 상태로 둘 수 없어 고개를 돌리며
흘겨 피해버렸다.
"아.. 그건 지금 수업에서 시간관계 상 다룰 수 없으니까.
이따 수업 끝나고 질문해 주세요. 자 다음 내용은"
휴.. 지나갔다.
* * * *
수업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이번 주부터 수업 자기만족도가 최악이다.
교무실 의자에 몸을 주저앉혔다.
나윤이 저 놈 눈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수업 때 페이스를 그냥 놓치네.
"휴.... "
숨을 내쉬기 무섭게 급한 마음이 들었다.
아 이러고 있으면 안되지. 빨리 자리를 뜨자.
얘 진짜 질문하러 올텐데..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김쌤~~"
"아 문석아 나 오늘 좀 바쁘다."
"아 잠깐만 잠깐이면 돼.."
"아냐 아냐 문석아.. 나 오늘은 진짜 더 빨리 가야돼."
"아 그래 그럼 내일 얘기하자!"
얜 보나마나 별 일도 아니면서
또 무슨 주식얘기나 박선생님 욕이나 할꺼면서 왜 난리지.
얼굴을 보니 어두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뭔데, 뭔데 저런 표정을 짓고 있어..
"야 미안미안.. 그럼 나 먼저 들어간다~~"
얼른 교무실을 빠져나와서 엘리베이터 앞까지
몸을 이리 휘고 저리 휘며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우두커니 서서 버튼을 다다닥 눌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눈을 휘둘러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니 다행히 나윤이는 타고 있지 않았다.
얼른 타고 닫힘버튼을 눌렀다. 지하3층 버튼.
아 죽겠다. 아니 쟤는 도대체 뜬금없이 왜 다시 학원을 다니는 거야.
하 미치겠네 진짜. 내 정신이 제정신이 아닌데... 왜 이럴 때
쟤까지 나타나서 신경을 긁지.
[띵~]
엘리베이터문이 열리자 마자 주머니를 뒤져 차키를 꺼냈다.
[삐빅]
두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반기는 빨간색 베르나.
그때였다.
"선생님!"
어두운 주차장에서 팔 다리를 괴랄하게 꺽으며 온몸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아흐흐으으으윽 뭐... 뭐야..."
내가 심약한건지 리액션이 좀 과한 편이다..
아~~ 간 떨어질 뻔했잖아.
기둥뒤에 서 있던 나윤이가 배시시 웃으며 걸어나왔다.
"선생님 질문있었는데..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야 임마 간 떨어질 뻔했잖아~~~!!! 뭐해 여기서. 질문은 뭔 질문이야..
수업 끝났으면 집에 가야지.."
너무 놀라서 되려 화가 났다. 심장이 아직도 빠르게 뛰고 있다.
"뭐 사실 질문이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요... 그냥 선생님 보고 싶어서 내려왔어요.."
당돌하다 진짜. 당돌해.. 난 이런 타입의 학생을 얘 말고는 만나본 적이 없다.
당황스럽다. 내가 널 어떻게 해야되니.
"아니 니가 왜 날 보고 싶어해.."
"그럼 안보고 싶겠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냥 대꾸하지 않고 몸을 돌려서 차로 향하며
등 뒤로 마음에 도 없는 말을 흘렸다.
"어서 들어가라 부모님 걱정하신다."
차에 타서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부르르르르~~~]
차를 몰고 나가려는데, 세차를 안해서 뿌연 차창밖으로
나윤이가 빛나는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 끝으로 톡톡 치고 있었다.
[위이이이이이이잉]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11화 끝.
코로나로 생업에 변화가 생겨서
업로드일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당분간 쓰는 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변화에 적응하게되면 다시 정기적으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늘 감사드려요.
꾸벅.
* 펌 불허용 (타 사이트 등록을 불허하며 우클릭, 드래그 등이 금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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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바다 |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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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
 |
젊은단테 |
감사합니다. 겨울밤바다님 덕분에 재미있게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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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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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뭐없냐 |
이제 연재 안하시는 건가요ㅜㅜ 생각난김에 왔는데 다음화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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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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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로미온느 |
뒷이야기 궁금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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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8 |
|
젊은단테 |
에로미온느님 감사합니다. 지금 잠시 멈춰둔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부부싸움 한번 더 진하게 하면 글 이어나가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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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1 |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게시물에 상관없는 답글이나 추천유도성 답글을 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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