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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거인형이 휴지로 입술을 닦으며 우리 곁으로 왔다.
"형 여기 인사드려 여기 스님은..."
그러고보니 아직 스님의 이름은 듣지 못했다.
스님은 얼른
"아 소개가 늦었지요.. 전 [땡중 허규]라고 합니다. 살라마리꿈."
토막거인형은 약간은 어색한 기색으로 스님처럼 합장을 했다.
"아 샬라마리꿈? 살라마리꿈.. 맞나?.. 아.. 전 방채수（토막거인형 본명）라고 합니다."
"어이쿠 반갑습니다. 살라마리꿈."
스님은 토막거인형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이쪽은 [넋청 김종만] 선생님이시래. 형처럼 도자기하셔."
"아이구 반갑습니다. 걍 여주에서 도자기 빚고 있는 김종만 이라고 합니다."
"와... 여기서 도자기 하시는 분을 뵙네요. 너무 반갑습니다."
토막거인형은 대학교에서 도자기를 전공하고 있었다.
허규 스님이 우리를 둘러보며 물었다.
"아니 근데, 여기에 어인 일로 오신 건가요? 고기나 잡수러 오신건 아닌 거 같고.. "
핑크넥타이 누나가 징쓰와 소금사리에게 막걸리를 부어주며 조금은 꼬인 혀로 대답했다.
"아ㅎ 저희는 서울에서 놀러왔어요~옹. 도자기축제에 갔다가 관광해설사라는 어떤 중년남성분을
따라서 이쪽으로 왔습니당~~!!."
김종만 선생님이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에잉. 그 방자한 바람둥이놈이 또 젊은 사람들을 홀렸구나.
여기 볼 게 뭐가 있다고.."
난 아까 우리를 안내한 중년남성분이 아줌마 3명과 함께 있던 것이 떠올랐다.
바람둥이? 능력 좋으시네..
징쓰와 소금사리에게 또 막걸리를 부어주는 핑크넥타이누나.
아 다들 왜 이래들. 우리 1박하러 온거 아니라고~~!!
"누나, 징쓰, 소금사리..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냐?"
"얌마 얌마 얌마. .. 얌마... 얌마... "
"취했어 누나 취했어.. 야 징쓰랑 소금사리도 ㅠㅠ 이제 그만 받아마셔~~!!
우리 1박으로 온 거 아니야~~ 제발 이제 슬슬 집에 가야해~~"
징쓰와 소금사리는 뭐가 웃긴지 깔깔댔고, 핑크넥타이누나가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얌마 얌마 얌마 얌마.. 누나가.. 임마 얌마.. 술 마시면 니가 데려다 주면 되지.."
"아니 누나 우리 술 마시러 온 게 아니라고.. 여주 관광하러 온거야~~ㅠㅠ"
"맞아 동생아 그러니까.. 우리 이 고달사지? 고달사지 맞지?"
"응 고달사지"
"이 고달사지에 대해서 앙? 관광왔으니 이곳에서 터를 잡고
역사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한번 해보자 이거지~~!!!"
핑크넥타이 누나가 아무말 대잔치를 하기 시작했다.
술이 왠수다.. 술이..
핑크넥타이 누나의 객기를 허규스님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고달사지에 얽힌 전설을 하나 얘기해 드릴까요?"
허규스님이 다 먹은 접시를 테이블에 내려 놓으며 끼어들었다.
그 말을 들은 징쓰와 소금사리가 막걸리잔을 든 채 눈을 반짝거렸다.
"네 스님~~ 저희 듣고 싶어요~!"
핑크넥타이누나는 이런 이야기에는 흥미가 없는지 똥덩어리를 불러
막걸리를 부어라 마셔라 하기 시작했다. 토막거인형도 세상 행복한 얼굴을 하며
함께 마시기 시작했다. 형 운전은 ㅠㅠ..
"이야기가 좀 긴데, 제가 재미있게 해볼테니 한번 들어보시오."
허규스님은 테이블에서 새로 고기가 담긴 접시 하나, 모듬전이 담겨진 접시 하나에
막걸리를 병째로 들더니 주변에 깔려있던 멍석에 자리를 틀었다.
나와 징쓰, 소금사리는 스님 주변으로 둘러앉았다.
"여기 고달사가 터가 참 엄청시리 크죠.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해보면
융성했었을 절의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됩니다."
"무려 통일신라시대인 경덕왕 23년에 세워졌으며, 고려 광종 이후에는
왕사와 국사를 배출하여 당시엔 전국 제일의 선찰이었다고 하죠.
그런데 이렇게 큰 절터를 가진 절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어떤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허규스님은 그럴 듯하게 의도에 맞추어 말끝을 흐렸다.
사실 나는 이 피곤한 정신에 그렇게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징쓰와 소금사리는 흥미진진해 했지만.
"물론 추정하는 바로는 조선 중종의 왕비이며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강력한 수렴청정을 하며 숭유억불 정책인 조선에서 불교를 장려하였으나,
1565년 문정왕후의 죽음은 불교의 완전한 쇠락을 불러왔고, 그래서 고달사가
때맞춰 강제적으로 폐사된게 아닌가 하는.. 뭐 그런 추정이 있습니다만.... "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추정.. 지금부터 해줄 이야기는 조금 현실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저같은 땡중이 하기에 딱 좋은 이야기죠."
스님은 잠깐 목을 크게 부풀리더니 한숨을 푸욱 쉬어냈다.
"고달사가 아직 융성했던 조선 중기 쯤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 정확한 년도를 얘기해드리면 아니.. 뭐 정확한 년도는 의미가 없겠네요."
"아무튼 이곳 고달사에서 수행을 하던 한 승려가 있었죠."
"이 승려는 지옥같은 속세를 떠나 깨달음.. 아니 깨달음보다는
안식처를 찾고자 했었죠. 여튼 어려운 결심으로 출가하였지만,
절도 사람이 사는 속세와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고달사는 너무 큰 절이었어요.
아주 많은 사람군상들이 모였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은 모인 사람들의 면면이 속세나 별 다름이 없었습니다.
절에서는 스님같지 않은 스님들이 있었고, 그들은 은근히 이 승려를
괴롭히기 시작했죠."
"물론 이 승려는 이미 괴롭힘의 이유를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승려의 얼굴과 등에는 크게 파인 곰보자욱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천연두].....
어린 시절 두역에 걸렸지만 그당시 두역은 친한 손님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
그런 것에 죽음을 가타부타 헤아릴 순 없었지만, 살 복이 있었는지 간신히 목숨은 부지했죠."
스님은 고기를 손가락으로 재빨리 집어 한 입에 몇 개를 털어넣더니 우걱우걱 씹으며 말했다.
"거 고기도 먹고 손에 들고 있는 막걸리도 자시면서 들으세요."
"아 네.."
손에 들고 있던 막걸리까지 까먹은 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홀짝 홀짝..
스님이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스님은 우리가 막걸리에 고기 한 두점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것을 보고 나서야 이야기를 계속했다.
"스님같지 않은 스님들이 이 승려의 얼굴과 등에 파인 동그랗고 커다란 수없이 많은
곰보자욱을 보고는 놀려대기 시작했고, 어느새 제 별명까지 지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스님]
이라고 말이죠."
.....?.... 왜 저렇게?
주변을 잠깐 둘러보니 잔치의 흥겨움이 아주 조금씩 화롯대 위의 꺼져가는 불씨처럼
사그라들고 있었다.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갔습니다. 밥그릇에 모래를 뿌려둔다거나
오줌을 싸놓기도 했고, 몸을 씻을 때면 늘 두려움에 떨었는데
어떨 때는 서너 명이 저항하지 못하게 팔다리를 잡고,
몸의 이곳저곳을 만지기도 했답니다."
으엑.. 혀를 내두르며 징쓰와 소금사리의 표정을 보니 나와 같이
세상에 스님들이? ... 라는 생각에 역겨움을 한가득 얼굴로 지어냈다.
"어느새 이 승려는 고독한 외톨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을 멈추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행을 하려 머릿속을 비울수록 이곳에서도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풍선처럼 부풀어 배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머리로 떠올랐습니다.
비어진 머리속은 어느새 원망으로 가득차 칠흙같이 새까매졌죠.
어떻게 하면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던 어느날 이곳 고달사지의 입구쪽에 있는
석조（石槽: 물을 담아두는 커다란 용기）로 물을 길어넣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데,
힘겨운 노동 끝에 석조에 물이 차오르자 갑자기 개구리 한마리가
석조의 반대편 끝에서 기어올라 물로 뛰어들더니
물 위에 동심원을 여럿 그려내며 헤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는 신나게 헤엄을 치다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스님을 발견했는데,
도망치긴 커녕 되려 스님쪽으로 열심히 헤엄을 쳐 왔지요. 스님이 자신도 모르게
살가운 마음으로 손을 내밀자.
개구리는 스님을 타고 오르더니 한발 한발 팔, 어깨, 목을 타고 스님의 머리에까지
기어올라갔습니다. 그때 이 멀뚱히 석조앞에 서있는 모습을 본 한 선사님이
크게 꾸짖으며 물지게는 내버려두고 지금 당장 창고로 가서
바라（바라춤을 출 때 쓰는 넓은 원판모양의 악기） 옮기는 일을 도우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영부영 고달사지의 구석에 자리한 음습한 창고에 도착해서
안으로 들어가보니 그곳엔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이 서넛 모여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곧장 뒤돌아 나가려고 했으나 그들이 도포를 잡아끌어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갔습니다. 따귀를 서너대 때리더니 갑자기 승려를 보고 크게 웃었습니다.
머리 위에 청개구리가 하나 올라가 있다며 역시 개구리스님이라고 놀리고는
그 중 한 놈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크게 손을 펼치더니 승려의 머리통을 강하게 내리쳤습니다."
다시금 입술이 나도 모르게 코끝으로 당겨지며 인상이 찌뿌려졌다.
"개구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리통과 손바닥 사이에 짜부라졌고,
손바닥을 걷어내니 스님의 횅한 정수리엔 납작해진 개구리가죽 사이로
내장과 피가 섞여 찐득거리는 검붉은 액체가 ... 아니 이건 자세히 말할 필요 없겠군요.."
스님.. 아니 수행자로 위장한 씨발 인생 개차반들이었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그때 어딘가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달사지 저 안쪽에서 들려오기도 하고,
느티나무 속에서 들려오기도 하고, 앞 쪽으로 펼쳐진 논에서 들려오기도 했다.
허규 스님은 구부정하게 있던 상체를 들어올렸다.
"이곳엔 예부터 개구리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스님 말씀하시는 거 듣다보니 제가 소름이....
제가 개구리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거든요... 양서류쪽은 좀...미끌미끌해서"
징쓰와 소금사리가 내 말을 듣더니 헤죽거리며 웃었다. 에휴 못났다는 눈을 하며
내 등을 툭툭 쳐댔다.
허규스님은 입꼬리를 올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놀람도 잠시.. 그 놈들은 지들끼리 킥킥 대더니 창고에 보물처럼 소중히 진열해 둔
바라를 잔뜩 들게 하더니 창고 밖으로 밀며 엉덩이를 걷어차는게 아니겠습니까."
"스님은 크게 넘어졌고, 손에 들고 있던 바라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죠.
찰나의 순간 이곳 저곳에서 쩅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요. 스님 앞으로 먼저 떨어진 바라 하나가 날을 세우고 있었는데,
앞으로 엎어진 스님의 목덜미로 깊숙히 파고 든 것입니다."
"스님은 피를 왈칵 쏟아내고는 죽고 말죠. 이 한많은 세상살이 끝낸 것을
축복이라도 하듯이 피는 사방으로 튀었고, 이 놈들의 얼굴은 피칠갑이 되었답니다.
이 놈들은 깜짝 놀라 자신들의 죄가 밝혀질 것부터 두려워 붙어있던 살가죽을 끊어내고
스님의 목과 몸을 따로 들고 십리 밖까지 도망쳐 으슥한 산기슭에 시신을 버렸습니다."
"시신이 버려지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아무렇게나 버려진 스님의 머리와 몸 주변의 땅이
울룩불룩 주먹만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솟아오른 땅은 쩍쩍 갈라지더니 갈라진 흙 사이로
작은 진주같은 것들이 달빛을 받아 반짝거리는게 아니겠습니까. 개구리들이었습니다.
땅 속에서 자고 있던 개구리들은 눈을 반짝이고 혀를 내두르더니 머리와 몸으로 달려들었고,
수백마리의 개구리들이 머리와 몸에서 흘러나온 피를 낼름거리며 맛보았습니다.
흘러나온 뇌수를 맛보던 한무리의 개구리들이 갑자기 머리통을 밀고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몸 쪽으로 머리통을 굴리더니 몸쪽으로 딱 맞게 끌고 왔습니다.
개구리들이 서로 몸을 비비적 거려 끈적 끈적한 거품을 잔뜩 만들어냈고,
배를 부풀리며 가열차게 울어대면서 끊어진 목으로 잔뜩 모여들었죠.
더.. 더 많이 스님의 온 몸을 뒤덮을 만큼 거품들이 보글거렸습니다."
"그러곤 보름이 지났을까요? 근처 마을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야이 허규 땡중아~!!!!!!!!!!!!!!"
우리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김종만 선생님 이셨다. 놀란 마음에 정신이 차려져 눈을 돌려 찾아보니
핑크넥타이누나와 똥덩어리, 토막거인형은 느티나무에 기대어 잠에 들어 있었다.
잔치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주섬 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고,
테이블엔 아직 먹지 못한 고기들이 잔뜩 남아있었다.
"깜짝이야.. 이놈 목구멍을 따버릴 놈~~!!"
허규스님은 산통이 다 깨졌다고 툴툴거리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4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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