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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박선생님. 박선생님. 이거 가져가셔야지"
격렬한 손짓을 했다.
박선생님은 또 또 복사한거 까먹고 가시네.
복사기에 놓고 가신 인쇄물을 꺼내어 들었다.
"이따가 커피 한잔 사세요~"
"무슨 ㅋㅋ 이걸로 커피를 사~"
"아니 내가 맨날 박선생님 인쇄물 챙겨주면서 치매보조!!하는거 모르셔~?"
"노총각 결혼시켜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네~~ㅋㅋ"
몰라몰라몰라 하며 인쇄물을 낚아채갔다.
암튼 못말리는 박쌤이다.
"전 수업 들어갑니다."
오늘 수업은 여기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복도를 걸어가다가 리드미컬하게 몸을 꺽어 다리를 교실문으로 밀어넣고는
미끄러지듯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 칭구들~ 하루 잘 보냈슙니까!!"
"네" "네에" （"네에"）
학생들은 피곤한 얼굴을 한채 소심한 대답들을 목구멍에서 겨우 굴려내었다.
"음.. 맨날 피곤하지 너네들.. 이해합니다. 얼마나 피곤할꺼야.. 학교에 학원에...
오늘도 힘냅시다~~ 자! 오늘 수업은 문자와 식 펴세요~"
수업은 매끄럽게 진행된다. 난 엄청난 스피드로 말을 뱉어낸다.
이 스피드로 논리에 부합하는 말들을 정확한 발음으로 조리있게 해낸다.
연신 입안의 침을 삼켜 입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면서 따발총같이 논리를 뱉어낸다.
빠르게 말하면 학생들이 못알아듣지 않냐고? 나한테 배우는 친구들은
이미 몇년을 한솥밥 먹으며 가르치고 있어서 아마 잘 알아들을꺼야.
나라는 선생한테 트레이닝받았거든. 이 일 처음할 때는 가르치는 맛을
잘 몰라서 많이 헤맸는데, 한 3년 쯤 일하니까. 가르칠 내용이 완전히
머릿속에 박히더라고.. 딱 그때 자유로움이 느껴지더라.
그 자유로움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기 시작하니까.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지더라고. 그리고 나도 가르치는 맛을 그때 안거지..
"문자는 있잖아. 어떻게든 무언가를 표현해 내고 싶어. 그런데,
문제의 문장이나 내부로부터 식을 만들어 내려면 필요한 것들이 이것 저것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데,
입속에서 이것 저것이라고 밖에는 표현이 안될때.. 바로 그때야..
바로 이것! 저것! 들을 문자로 두면 식으로 만들어질 준비가 되는거지"
한참을 열변을 토하고 있지만, 저 녀석이다.
저 녀석이 하.. 돌아와서 저 야리꾸리한 눈빛으로 본다.
장나윤.
이거랑 비슷한 장면을 인디아나 존스에서 본 적이 있다.
존스박사가 대학교 강의실에서 강의할 때 한 학생이 눈으로 레이저를 쏘면서
눈꺼풀에 'LOVE YOU'라고 써놓고는 눈 내리감는거. 그거.
나윤이는 중학교 때부터 나한테 수학을 배웠어.
그때 약간 반항적인 눈을 한 중1 여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나윤이었지.
처음 봤을 땐 이런 얘가 왜 학원을 다니고 있지? 싶은 생각이 드는거야.
중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모델같은 키에 남다른 발육상태.
하.. 그리고 화장 화장.. 지는 예쁘다고 하는데,
무슨 내 눈엔 키메라같이 보이는 펄 잔뜩 발라서 아이라인 그리는..
암튼 전혀 공부랑 어울리지 않는..
당장이라도 화류계 꿈나무가 될 것만 같은 얘였어.
꼴에 수학머리는 있었는지 수학을 잘해서
뭐 그래 쏘쏘 알아서 해라 수업듣다 말겠지라는 생각으로 대했지.
일이란게 다 그렇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학생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
그래서 학생들이랑 매우 친하게 지냈어. 날 잘 따르던 학생 2명한테 시험잘본 턱으로 맥도날드
햄버거세트를 사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장나윤이 들어오더니 시험지를 내밀더라고.. 나도 벙찌고,
같이 햄버거 먹던 친구 2명도 벙쪘지. 시험지 받아들고 점수를 봤는데, 100점 이더라고. 그러곤
하는 말. 세상 착한 억양으로.
"시험 잘 봤으니까. 저도 햄버거 사주세요."
암튼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날 엄청 따랐어. 수학점수는 뭐 항상 100점이었고.
한 학년 올라가니 정신을 차렸을까? 화장도 옅어지고 학생다워지더라.
이 친구랑은 계속 잘 지냈어. 시험끝나면 같이 영화도 보러가주고,
주말에 동물원도 가주고.. 아 어디까지나 선생님과 제자로서였어 ...
근데.. 사실 뭐 결과적으로 선을 못지킨 행동들이었지..
이녀석이 나와의 관계를 그렇게 볼 줄은 몰랐으니까.
한번은 그러더라고
"쌤. 저 이번 수학 100점 받으면 뭐 해주실 거에요?"
"어? 얌마 해주긴 뭘 해줘. 너 시험 잘보면 너가 좋은거지 내가 좋은거냐?"
"엥? 제가 시험 잘보면 좋으시다면서요~!"
"아 그건 당연히 좋지. 안좋은 선생님이 어디있겠어"
"그러니까 제가 시험을 잘보면 선생님 기분을 좋아지게 했으니까. 선생님도 좋은거잖아요."
어.. 틀린 말은 아닌데?
"선생님 기분 좋게 만들어 줬으니까. 선생님도 보답으로 뭐 해줄 수도 있는거잖아요!!"
어우야 논리.. 너 임마..
"아... 들어보고 말해줄께.."
나윤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뽀뽀해주세요."
고개가 뒤로 넘어갈 뻔했다. 아니 거의 넘어갔다.
광대가 찡그려지며 만들어진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얘가 아무리 성인처럼 보여도 내겐 중2 학생일 뿐인데..
황당한 마음에 대답을 않자.
"꼭이에요."
대답도 안했는데, 히힛거리며 자리를 떠버렸다.
벙쪘지만.. 뭐 장난이겠지라고 치부했지.
다행히 다음 시험에서 나윤이는 20번에 나온 극악의 각도문제를
못풀어서 96점이 나왔어. 100점 맞았다고 가져왔으면 정오표가 나오길 기다렸을텐데,
나윤이는 그래도 순순히 한개 틀린 시험지를 내게 가져왔지. 대신 두 눈이 벌겋게
부어있었어. 그리고 한 주 정도 학원에 나오지 않더니 문자메세지를 보내왔었지.
[다음에 100점 맞으면 꼭 뽀뽀해주세요.]
아...
내가 선을 못지켰구나. 바로 답도 하지않고, 전화번호를 차단해 버렸어.
그리고 이 사건으로 큰 교훈을 얻었다.
학생들과 친하게 .. 특히 여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면 절대 안되겠구나.. 이후론 나윤이를 최대한 멀리했지.
전화도 안되고, 완벽히 구청 공무원같이 자길 대하는데..
거리를 둘려는 걸 저도 알았는지 다음달에 학원을 그만두더라고.
그러고 내가 그 다음 해 8월에 결혼을 했었지.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지난 주에 다시 학원을 등록해서
저기 저러고 앉아있네. 중2병은 없어진거 같은데..
하.. 저 눈빛은 그때 그대로다. 신경쓰지 말아야지.
"너네들 몽타쥬알지? 몽타쥬. 범인을 한번 생각해보자.
너네들이 범인을 잡을 때 몽타쥬가 있는게 편할까. 없는게 편할까."
학생들은 조용했다.
그 사이에서 한명이 조용히 읇조렸다.
"있는게 편할 거 같아요.."
나윤이.
"그래 잘 말해줬어. 당연히 있는게 더 편하지! 그거랑 비슷해.
자 문제에서 모르는 게 있다.
혹은 필요한 부분이 있다. 문제 속에서 필요한 걸 발견했는데..
수학에서는 발견만 하면 안되지 발견한 것으로 식을 만들어야 돼.
근데 발견한 것을 문자로 표현하지 않으면 식으로 원활하게 만들어지지 않겠지?"
나윤이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다.
* * * * *
열정적인 수업을 마치고 학원 건물 뒷편에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내랑 어제 싸워서 신경이 곤두서 있었는데, 나윤이까지 신경을 쓰다보니
장이 살살 꼬인 느낌으로 배가 아팠다. 유산균 음료를 만지작 거렸다.
이런 거라도 마시면 속이 좀 편해질까. 이걸 마실까 저걸 마실까. 와 이건 뭐 이렇게 비싸냐..
"선생님!"
이 목소린 나윤이다. 나윤은 편의점 매대 끝에서 날 밝게 불렀다.
하.. 오늘 가뜩이나 멘탈 너덜너덜한데, 나 이외에 아무에게도 신경쓰고 싶지 않다.
오롯이 나한테만 집중하고 싶다.
"어 나윤이 오랜만이더라~"
"아까 수업끝나고 뭘 그렇게 부리나케 도망가세요. ㅋㅋ"
"뭘 도망가. 배가 아파서 그랬구만."
"배요? 왜요?"
"아 음... 암튼 나 바쁘니까. 다음 수업 때 보자!"
대충 아무 유산균음료나 집어들고 계산대로 나왔는데,
이게 .... 이럼 안되는데..
"너 배고프면 뭐 사줄까?"
나윤은 차분하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아뇨. 괜찮아요."
"그래"
얼른 계산을 끝내고 나오는데, 나윤이도 따라나왔다.
옆으로 나란이 서니까. 담배냄새가 확 풍겨졌다.
그동안 뭐하고 살았나 했는데.. 일단 담배냄새가 풍기자.
뭐라 한마디 할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에이..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 낼 모레 보자~"
손을 흔들어주고 인사하자.
나윤이는 말없이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살짝 내리는.. 뭔가
인사같지도 않은 인사를 했다. 뭐.. 그래 암튼 신경쓰고 싶지 않네.
손을 두어번 더 흔들어주고, 차로 돌아왔다.
"햐 쟤가 다시 올 줄은 몰랐네."
유산균음료의 껍데기를 깠다.
아냐 아냐.. 아무 것도 신경쓰지 말자.
음료를 한 모금 들이켰다.
"햐.. 뭐야 이 오줌같은 맛은.. 에이 맨날 먹는 거 먹는건데..
아무거나 집어 나왔더니 망했네.."
더이상 먹을 것 같지 않은 음료병을 컵홀더에 처박았다.
아... 집에 가기 싫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아내다... 아내야..
왜 전화했지? 받기 싫다. 숨막혀
하 죽겄네...
손가락은 화면을 슬라이드하고 있었다.
10화 끝.
매주 월-목 업로드 합니다.
전편 추천 3개 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늘 감사해요.
지긋지긋관절염님, 매크리님 늘 관심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필력이지만,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의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모시겠습니다.
추운 겨울 늘 조심하세요~^^
* 펌 불허용 (타 사이트 등록을 불허하며 우클릭, 드래그 등이 금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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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0 [1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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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9 [23:54] |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네티켓의 기본입니다.게시물에 상관없는 답글이나 추천유도성 답글을 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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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10 [1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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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9 [23: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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