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7개월동안 남은 복무일수를 일부러 안세면서 지냈다. 하루하루 세면 셀수록 시간이 더럽게 안가니까 고통스럽더라구.. 근데 그게 습관이 돼서 전역 직전까지도 내일 주말이라고 일과 안뛰니 좋다는 생각을 갖게 되니 진짜 미친게 분명하구나 싶을 정도다.
하루남은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득과 실이 분명히 보이는데
얻고가는 건 "심리상담, 40여 곡의 작곡량, 읽었던 수많은 책, 입대 전과는 다른 인생관, 조금 불어난 체중（멸치탈출）" 정도 인것 같고
잃어버린 건 "젊은 나이의 시간, 흥청망청 써서 늘어난 빚, 순수, 늘어난 욕" 정도가 되겠다.

군대가 무조건 청춘의 낭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름 그 안에서 자기개발할 수도 있었고 보이진 않아도 군데군데 기회가 숨어 있기도 했다. 삶의 경험이라는 관점에서는 갇혀있으면서 억지로 해야했던 단체생활이 사람에 대한 고찰로 이어졌기 때문에 꼰대가 되어버릴 뻔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좋은 체득이었다.
결론적으로 정신과 시간의 방이었어. 나는 나름 얻은게 더 많은 것 같다.

그래도 뺄 수 있을 때 빼라고 말하고 싶은건, 저 모든 것은 마음만 단디 먹으면 굳이 입대하지 않고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거라서다. 군생활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간부의 지시나 행동들, 코로나때매 휴가통제당하면서 안그래도 미쳐있는 동기 선후임들이 더 미쳐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그렇게 물드는것 같아 매우 짜증이 났어.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가 사라져 버리니 밖에선 멀쩡할 것 같은 인간이 꼭 부대안에서 미친놈처럼 취급받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게 살면서 이렇게 쌍욕을 서로 주거니받거니 한 건 군생활이 처음이다. 이딴 거 물들지 말고 내 신념대로 나아가면 되는건데 나는 유약한건지 그게 어려웠다. 등신같고 또라이같지만 착해빠진 시키들. 그래도 미친 동기애시키들 때문에 덕분에 여러모로 빡치고 즐거운 생활이었다.

이제 간다. 나가면 솔직히 살짝은 겁이 나는데 걍 날 믿어야지 뭐.
아 개 존나 좋다 전역이라니 흐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