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즈음에 겪었던 일이야.
방학을 맞아서 친척 누나 형들이랑 같이 단양쪽 계곡으로 놀러갔었어. 앞에는 돌이 깎여 만들어진 절벽이 계곡을 따라서 쭉 있었고（성인 남성 키 정도 됬었던 것 같고 흙이랑 섞여서 나무랑 풀이 자라고 있었음） 그 앞에 물이 흐르고 조금 거친 자갈들이 깔려 있었어. 그때는 되게 좋은 풍경이었다고 느꼈나봐. 기분 좋아서 친척들 앞에서 노래도 부르고 텐트 치는 것도 되게 열심히 도와드렸거든.
내가 그때 중학생 형들보다는 누나들을 더 좋아했어서 형들이랑은 물장난 좀 치다가 누나들한테 가서 놀았지. 누나들은 예쁜 돌들을 수집하고 있었는데 계곡에 있는 자갈들 중에 은빛 금빛으로 반짝반짝거리는 돌들 본 적이 있을거야 그걸 모으고 있더라고.
그게 캘러버라이트?라고 하는 것 같아. 그때는 순진해서 그게 돌에 박힌 금이고 은인줄 알았다.
'와 시밤 부자된당!' 이럼서 더 반짝이고 더 잘생긴 돌을 찾아서 열심히 줍고 다녔어. 거의 인디아나 존스 빙의된 것 같았다.
돌을 정신없이 주우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까 계곡 상류쪽까지 간 것 같았음. 자갈길이 점점 좁아지고 나무들이 빼곡해지더라. 유속도 점점 빨라져서 물소리가 크게 들렸어.
돌을 줍던 나는 문득 누나들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고개를 돌렸는데 뒤에 아무도 없더라고.물소리 때문에 누나들한테서 멀어지는 것도 몰랐던 것 같아.
'뭐야.. 누나들 어디갔어.. 슬슬 돌아가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앞으로 시선을 옮겼는데
10미터쯤 앞에 한 아저씨가 서 있더라고
빨간색 등산점퍼였던 건 확실하게 기억나고 바지는 검은색이었던것 같아. 계곡 가운데에 발을 담그고 아까 말했던 절벽 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어.
초등학생때라 인사성 밝았기 때문에 그 아저씨를 보자마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는데 이쪽은 보지도 않더라고. 그때 바로 돌아갔으면 지금 이렇게 기억에 정확하게 남을 일도 없었을 거야. 그냥 여름방학 캠핑으로 남았겠지.
말좀 걸어 보려고 두 발자국 정도 걸어가다가 3초 정도 멈칫하고 나서 뒤로 존나 달렸거든.
그 아저씨가 이상한 행동을 취한 것도 아니고 나를 쳐다본 것도 아니고 소리를 낸 것도 아니었어. 겉으로도 그냥 산 올라가는 등산객 복장이었고.
뒤로 정신없이 내달리면서 물소리하고 자갈 밟히는 소리, 부모님이 있는 텐트까지의 그 얼마 안되는 거리까지 그 모든 게 너무 무서웠다. 중간에 형들이 돌로 담쌓아놓은 거에 발 걸려서 넘어졌는데도 훈련소 각개마냥 일어나서 뛰었다. 눈에 먼저 보인 누나한테 달려가자마자 울음 터지고 꺽꺽거리면서 텐트로 갔어. 다음날 저녁에 헤어지기까지 텐트 안에서 안나왔고 형들이 그거보고 나무빠따랑 삽들고 내가 갔던 상류쪽 갔다오고 아무것도 없었다면서 돌아왔어. 그래도 그 아저씨가 자꾸 생각나서 누나들 맨 가운데에서 이불 머리까지 다 덮고 잤음.
내가 그 때 무서웠던 건 그 아저씨가 이상한 행동조차 하지 않았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는데 그 마네킹같고 생물같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 자체가 너무 무섭더라.. 그 느낌을 느끼기까지가 3초정도 걸리는 것 같아.
사실 전부터 미용실이나 백화점 마네킹 아니면 사람 닮은 로봇같은거만 보면 자지러져서 그런지 몰라도 인간이 아닌 듯한 것에 큰 공포를 느꼈어. 오히려 영화에 나오는 귀신이나 미친사람 등은 갑툭튀만 빼면 하나도 무섭지 않았거든. 아무튼 사람?에게서 그런 공포를 느꼈던 적이 지금까지 이때 한번밖에 없었어서 이렇게 적어봐. 혹시 13년 전 여름에 안양 계곡에서 등산점퍼 입고 있었던 웃대인이 있다면 알려줘. 왜냐면
내 직감과 판단은 그 아저씨가 사람은 아니었다고 확신하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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