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을 받아 오묘한 느낌을 주는 새벽 거리
한 주택가에서 짐승 울음소리가 들린다.
울음소리를 따라가보니 거실에 고양이가 앉아있고 붉은 거실 바닥을 핥고 있다.
몇 번을 울다가 열려진 현관 쪽으로 몸을 움직이고 현관에 다 다랐을 때 목에 걸린 분홍색 목띠가 달빛을 받아 모습을 띈다. 고양이는 그 길로 현관 문밖으로 나가 버린다.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책상에 달력이 놓여져 있고 붉은색의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지금은 한창 여름의 꽃인 휴가철이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거나 혹은 꽁꽁 숨겨놓은 자신들만의 여행지를 마음껏 펼쳐내기 위해 젊은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여행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혜인도 그런 젊은이들 중 한 명이다.
혜인은 원래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여행을 가면 자신이 원래 살던 세상과는 다른 환경, 경험 크게는 문화까지 경험해 볼 수 있고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도 만나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혜인은 이것을 자신의 자산이라고 생각해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대학생 때도 주말에 역마살이 낀 듯 집에 있어 본 적이 없었고 방학이라도 되면 여행을 2~3번씩 가곤 했다. 물론 부모님께 손을 벌려서 여행을 간 적은 없다. 모든 경비 감당은 자신의 손으로 하였다.
경비를 충당하는 것은 고됐지만 그래도 혜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여행 준비를 할 때마다 이번엔 어떤 세상이 펼쳐져 있을까? 하며 행복해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황상 기세를 한풀 꺾을 수밖에 없었지만 열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이번 여행 또한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다.
"짐 싸 놓은 거 체크 좀 해볼까"
혜인은 미리 싸놓은 짐 중 깜빡한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
"아 참! 저번에 노트장 다시 사기로 했었는데 깜빡했네."
하며 노트를 사러 가기 위해 옷을 챙겨 입는다.
혜인은 한가지 습관이 있는데 새로운 경험을 하면 따라오는 느낌을 노트에 바로 적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과 견해적 차이가 있으면 노트에 곧바로 적는 습관이 있어 여행 갈때는 필수적으로 노트를 챙겨간다. 경험과 느낌을 구체화해가고 싶다는 생각이 습관으로 남은 것 같다고 자신은 생각한다.
곧바로 집을 나섰고 편의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전봇대 옆에 쓰레기 더미들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도 너무하지... 누가 치우라고 쓰레기를 쌓아만 두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고 고개를 다시 돌려 가려 하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혜인은 멈춰 서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어디서 나는 건지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쓰레기 더미 쪽에서 들렸고 그 사이에서 작은 흰색 고양이가 나왔다. 혜인은 쪼그려 앉아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어머! 고양이 너무 귀엽다~ 길고양이 인가?"
자세히 보니 목에 분홍색 목띠가 걸려있었고 G.O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목걸이가 있는 거 보니 주인이 있나 보네. 가만 보니 정돈도 잘 돼있고.. 야옹아~ 주인 어딨니?"
꽤나 잘 가꿔져 있는 것을 봤을 때 주인이 꽤나 지극정성으로 돌본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고 주인도 애타게 찾고 있을 것 같아 근처 동물 보호소로 맡겨주기로 했다.
고양이를 안고 골목을 나와 동물보호소로 향하였다. 고양이를 보며 주인은 어쩌다가 잃어버렸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서 그 이상 생각하지 않고 쓰다듬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보호소에 도착했고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 어? 혜인아 웬일이야."
보호소에 들어서니 고등학교 동창인 현우가 반겨줬다.
"하이~ 길 가다가 고양이를 봤는데 누가 잃어버린 거 같아서 맡기려구 찾아왔어."라고 말하며 현우에게 고양이를 건넸고 현우는 고양이를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현우를 기다리기 위해 앉았고 선반 위에 놓여진 TV를 보았다.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OO 시 OO동 2시 32분경 주택에 강도 무단..."
뉴스에서 나오는 동네는 우리 동네였다.
"아. 저 뉴스 지금 우리 동네에서 떠들썩하지. 강도가 잠시 부모님 없는 틈을 타서 무단 침입해 여자애를 죽이고 집안 물건을 다 훔쳐서 달아났다는 사건. 범인은 잡혔지만 세상 뒤숭숭해졌다고 다들 떨떠름해 하더라."
마침 현우가 나오면서 뉴스를 보고 있는 혜인에게 말했다.
"전혀 몰랐네.. 나도 조심해야겠다. 이제 현관에 남자 신발이라도 하나 둬야겠네"
혜인은 현우에게 인사하고 보호소를 나왔다. 그리고 뉴스가 자꾸 떠올랐다.
우리 동네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자꾸 꺼림칙해졌다. 빨리 노트만 사고 집으로가 내일 떠날 여행 스케줄을 다시 검토해 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여행을 떠난다는 행복한 기분 때문인지 전날의 꺼림칙한 기분은 사라졌다.
비행기 이륙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모든 준비를 맞추고 여권 등등 필요한 것을 챙겼는지 최종 확인하고 집 밖으로 나섰다.
집 밖으로 나와 화장 체크를 하기 위해 거울을 꺼냈다.
거울을 들어 얼굴을 반사시켜 체크를 하고 있는데 거울 너머 모퉁이에서 웬 흰색 옷을 입은 소녀가 혜인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비쳤다.
모퉁이에 숨어서 쳐다보는 게 왠지 기분이 나빴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걸음을 옮겼다.
혜인은 벌써부터 모든 것이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것들을 만나볼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있었다.
한껏 들뜬 채 큰길가로 진입했고 신호등 앞에 멈춰 섰다.
신호등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고 계속해서 많아졌다.
그 모습은 마치 점점 차올라 터져버릴 것 같은 봇물 주머니를 연상케 했다.
혜인은 그런 관경이 재미있어 천천히 주변을 더 돌아 보았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다 문득 이질감이 들었고 그 공간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거기에는 거울 속에서 봤던 소녀가 서있었다.
소녀는 대략 14살 정도 되어 보였고 얼굴은 머리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계속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집 앞에서부터 자신을 보고 있던 것도 그렇고 신호등에서 다시 본 것도 그렇고 우연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한편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빵!!
생각에 빠져있는데 갑자기 울리는 경적소리에 시선을 빼앗겼다. '갑자기 뭐야'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고 거기에 소녀는 없었다. 혜인은 자신이 잠시 예민해진 것이라고 생각했고 잠시 후 신호가 바뀌어 횡단보도를 건넜다. 조금 걷다 보니 버스터미널이 보였다.
터미널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서 승차해야 할 버스의 위치를 확인해보았고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2층을 보고 있으니 잠시 현기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올라가기 위해 시선을 옮기며 에스컬레이터를 찾아보았고 별로 멀지 않는 곳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하지만 앞에 수리 중이라 써져있는 푯말이 놓여 있었다.
혜인은 계단으로 가야 하나 고민하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작 한 층이지만 짐도 무거워 계단으로 가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 2층을 눌렀다. 올라가는 도중 거울이 있어 잠시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덜컹하더니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 갑자기 왜 이러지?"
라며 비상벨을 눌러 보았다. 하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여기서 시간이 지체되면 곧 버스가 출발할 시간이라 자칫 비행기도 타지 못하게 된다.
이미 성수기 때라 다른 시간대, 다른 날도 모두 만석이었다. 혜인은 조급해져 비상벨을 연신 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 없이 정적만 흘렀다. 혜인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고 불안에 휩 쌓였다.
치지직...
갑자기 스피커가 반응하기 시작하더니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못.... 가..."
정체불명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혜인은 불길하면서도 안도했다.
"얘 언니가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거든? 경비 아저씨 좀 불러와 줄 수 있니?"
스피커 너머로 말을 건네 보았다.
그냥 경비실에 있는 여자애가 장난을 치는 거라 생각해 더욱 간절하였다.
하지만 더 이상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발을 동동 구르다 혜인은 정말 이대로면 갇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해 엘리베이터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마땅히 문을 열 도구도 없었고 힘으로 열릴지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문에 손을 갖다 대 힘껏 힘들 주었다.
그런데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혜인은 자신도 의아해했지만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문을 조금 더 열어 밖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을 만한 틈이 됐고 밖을 확인한 혜인은 경악했다.
분명 터미널 안이었는데 밖은 완전히 새까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모른 채 틈으로 손을 뻗으려고 하는데
"못 간다고!!" 하며 순간 시뻘건 눈을 한 여자 얼굴이 다가왔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담벼락과 전봇대 쓰레기 더미가 가득한 어딘지 모를 동네
혜인은 쭉 나열된 길을 걷고 있다.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왜 길을 걷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조금 길을 걷다 보니 길가에 누군가가 쪼그려 앉아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중학생 되는 소녀였고 혼자가 아니라 고양이와 함께 있었다.
고양이와 놀고 있는 소녀는 행복해 보였고 정말 그 동물을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소녀는 갑자기 고양이를 안더니 몸을 돌려 혜인을 바라보았다.
한창 부모님께 이쁨 받고, 사랑받고, 사춘기로 속 썩일 평범한 중학생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혜인도 그런 소녀를 바라보았고 소녀 팔목에 걸려 있는 분홍색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흡! 하는 소리와 함께 혜인은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침대에 누워있었고 자신의 팔에 링거가 꽂혀 있는 것을 봤을 때 병원인 것을 깨달았다. 혜인은 머릿속이 너무 뒤죽박죽했다.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인지, 엘리베이터에서 암흑은 무엇이었는지, 그 여자는 누군지...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고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대상 없는 원망만 가득했다.
혹시나 해서 시간을 확인해 봤지만 비행기는 이륙하고도 수시간이 지난 후였다.
낙심한 채 멍하니 건너편에 있는 선풍기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고개를 저으며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병실로 간호사가 들어왔고 혜인에게 몸 상태는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대답도 하지 않는 채 혜인은 간호사에게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건지 물어보았다.
간호사는 신고한 사람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터미널로 들어와서는 위쪽을 보더니 갑자기 홀 중앙에 멈춰 서서 뭔가에 홀린 채로 앞만 보고 있었고 5분 정도 지나더니 돌연 쓰러졌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혜인은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은 분명 엘리베이터를 탔었는데 홀에 서 있었다고 하는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점점 멀어져 가는 현실감에 그게 꿈이었는지 지금이 꿈인 건지 헷갈리리까지 했다.
복잡한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은 괜찮다는 말로 간호사를 보냈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릿속을 하나하나 비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통스러웠던 머리였지만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안정 너머의 허탈감은 여전했다. 오늘만을 바라며 버티고 또 버티며 기다려왔는데 그 버팀목이 무너진다는 것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혜인은 고개를 떨구었고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문득 혜인 머릿속에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정신을 잃기 전 보았던 여자의 얼굴이었다. 이상하게 시리 어디서 본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에서는 순간 튀어나와 몰랐지만 아침부터 계속 따라오던 소녀의 얼굴이었다.
혜인은 그 소녀와 꿈인지 환각인지 모를 아까의 상황이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도통 자신에게 무슨 이유로 자꾸 나타나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짐을 챙겨 혜인은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신발을 신기 위해 몸을 돌렸고 정면 TV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몸을 숙여 신발을 신고 일어나려 하는데 뉴스에서 낯익은 단어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OO 버스터미널 O 시 OO 분경 인천으로 가는 버스가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승객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보이고 원인은 브레이크 고장으로 출발 전 점검 상태가 미흡해 발생한 사고로....... 」
'저건 오늘 내가 타려고 했던 버스잖아..'
혜인은 바로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병원에 있지 않았다면 자신 또한 사망자 중 한 명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닐까 생각해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괴리감 때문인지 아픈 것도 잘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혜인은 급격하게 피로가 몰려왔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병원비 정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 집으로 향하였다.
혜인은 택시 안에서 시트에 머리를 기댄 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더 생각했다간 자신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해서는 짐을 풀지도 않은 채 침대에 몸을 뉘었고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리리링.... 고요한 공간에 전화벨 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시간은 오후 6시 정도였다.
혜인은 전화벨 소리에 깨어 휴대폰을 들었고 상대방이 누군지 확인하였다.
동물보호소에서 일하고 있는 현우였다. 현우와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응 현우야. 무슨 일이야?"
"자고 있었나 보네 깨워서 미안해. 전화한 이유는 며칠 전에 네가 고양이를 맡기러 왔었잖아. 그 고양이 주인들이 찾으러 왔어. 그런데 이분들께서 정말 정말 감사하다고 너를 꼭 보고 싶다는 거야 사례도 꼭 하고 싶고. 너무 강경하셔서 너한테 전화를 했어. 딸이 정말 아끼고 사랑했던 고양이라고 하더라고."
"아 그래? 찾으셔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피곤해서 가기가 힘들 것 같아.."
"그렇구나. 알겠어 다른 일 때문에 못 온다고 전할게. 그런데 고양이 하고 보라색 맞춤 팔찌, 목걸이까지 한정 도면 정말 아끼기는 했나 보다."
순간 혜인은 '보라색 팔찌?'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긋나있는 자신의 퍼즐을 풀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현우에게 지금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혜인은 간단한 세안을 마치고 모자를 쓴 채 집을 나섰다. 10분 정도 걸어가니 동물보호소가 나왔다.
보호소 앞에는 중년부부가 고양이를 안은 채 서있었다.
그쪽에서도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혜인 쪽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나비를 맡겨주신 분인가요?"
"네 맞아요. 쓰레기 더미에 있는 걸 제가 데리고 왔어요."
"감사합니다. 저희 딸이 정말 소중하게 키우던 고양이거든요. 아가씨 아니었으면 영영 잃어버릴 뻔했네요."
부부의 표정에서는 진심으로 고마움이 묻어 나왔다.
"별말씀을요 저는 당연한 일을 한 건데요. 그런데 따님은 같이 안 왔나 보네요?"
갑자기 중년부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네... 저희 딸은 같이 안 왔어요."
혜인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라고 직감했다.
"혹시 따님이 13~15살 정도에 팔에는 보라색 G.O 이니셜이 새겨진 팔찌를 끼고 있지 않나요?"
중년부부는 눈이 휘둥그레져 말하였다.
"어떻게 그걸...?"
혜인은 어제 아침부터 자신을 따라왔던 소녀에 대해 설명해 줬고 중년 부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리고 중년부부는 선뜻 말하지 못하다 이내 마음을 굳혔는지 혜인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자신들의 딸은 한 달 전에 살해당했다고 한다.
뉴스에도 많이 나온 사건으로 범인은 잡혔지만 딸을 잃어버린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한동안 깊은 슬픔에 빠져있다 나비가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고 딸이 동생처럼 아꼈던 아이였기 때문에 계속 찾고 있었는데 오늘 찾을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아마도 자신들의 딸이 소중히 했던 나비를 지켜줬기 때문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 나타난 게 아닐까라고 말하였다.
중년부부의 말을 듣고 난 혜인은 초 현실적인 상황이 믿기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어긋나던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중년 부부는 한마디 덧붙였다.
"우리 딸아이가 여행 다니는 걸 정말 좋아했어요. 처음 보는 게 있으면 시선을 떼지 못할 만큼 새로운 걸 흥미로워했고, 처음 보는 사람하고도 곧잘 친해지고는 했지요. 보아하니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는 거 같은데 딸이 살아있었다면 정말 좋아하는 언니가 되었을 것 같네요"
라고 말하며 슬픔 어린 웃음을 지었다.
그들과 헤어져 집으로 향하는 혜인의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못했다.
소녀에게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마운 한편 불쌍하다는 감정도 맴돌았다.
아직 어린 나이에 그런 변을 당한 것도 그렇고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꺾여버렸다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
집에 도착한 혜인은 자신이 소녀에게 해줄 것이 없나 생각하다 여태껏 모아놨던 여행 일지들을 꺼내 컴퓨터 앞으로가 타이핑 치기 시작했고 2시간 정도 타이핑 쳐 노트에 있는 내용을 전부 컴퓨터에 담았다. 그리고 노트를 전부 들고 근처 공원으로 향하였다. 공원에 도착한 혜인은 노트를 전부 바닥에 쏟았고 집에서 가져온 라이터로 불을 지폈다.
불길은 노트 하나하나로 옮겨지더니 크게 솟아올랐고 그 불길 속에서 혜인은 꿈을 향해 밝게 웃고 있는 자신과 소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너를 위한 선물이야"라고 말하며 연기를 바라보았다.
연기 속에는 혜인의 추억과 꿈이 퍼져있었고 소녀를 향해 하늘로 나아가고 있었다.






산다이바나시로 제 블로그에 쓴건데 한번 올려보고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