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척하게 젖은 진흙 위 짐승의 발자국. 흠, 크기를 보아하니 오소리나 새끼 사슴 정도인가.

나는 습관적으로 뒷주머니에 넣어 놓은 휴대전화를 꺼내들려다가 신호가 잡히지 않는 지역이라는 걸 깨닫고 허리춤에 매달아 놓은 무전기를 들었다. 아마 거실에 있는 그녀가 받을 것이다.

치익- 치익-
"그래. 사라. 농장 주변을 샅샅이 뒤져봤는데 사람의 흔적은 없더군. 끽해야 야영 캠프나 다녀갔던 흔적이면 모를까."

"그, 그런가요..? 그럼 이제 돌아오시는게.."

"어, 그래. 이제 돌아가야지. 그 전에 잠깐 확인할 게 있어서 말이야."

나는 발치에 널브러진 두어 개의 담배꽁초를 짓누르며 말했다. 하나는 방금 내 입가에서 떨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강하게 브레이크를 밟듯이 꽁초를 짓누르자 똑같이 불씨가 튀어나왔다.

얼마 되지 않았어. 근처인가. 이 자식.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라. 지켜보고 있다고 했지? 좋아, 그럼 그 눈에 총알을 박아넣어 주마.

그렇게 생각하며 더블배럴 샷건을 고쳐잡고 덤불을 헤쳤다. 숲 주변이라서 그런지 사위는 어두웠지만 경치를 둘러보는 데엔 딱히 문제가 없었다. 그나마 공기는 좋군 그래.

움츠리고 걷던 몸을 잠시 펴내며 왔던 길의 뒤편을 돌아보았다. 넓은 평원 위에 지어진 아름다운 농장과 2층 짜리 통나무집. 저곳이 내 죽은 친구의 아내, 사라가 그의 아들과 단 둘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거기부터 1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에는 숲이 있다. 지금 내가 살피고 있는 곳이기도 하는.

치익-
"사라. 그 미친 스토커 자식 말인데, 지난 주에 협박장을 보냈다고 했지? 오늘 찾아오겠다고 말이야."

"네, 네.. 죽이겠다고 하면서요.."

타닥탁탁- 다타탁탁-

"글쎄, 오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전부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군. 흔적이 꽤 남아 있어. 그 녀석 얼굴은 봤어?"

"아, 아뇨. 아침에 닭 여물을 주러 일어나보니 거실 탁자에 협박장만.."

타닥타다- 다다닥탁-

무슨 일을 그리 번거롭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분에서 일단 제정신이 아닌 놈이란 것은 확실하다. 그나저나 그녀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떨고 있었다. 하기야 정체모를 침입자가 있는데 오죽이나 할까. 아들이 있다고 해도 겨우 5살에 불과한 데다가 장애까지 있다고 했었지. 그래서 병에 차도가 있을까 이런 깡촌까지 내려온 것이고.

치익-
"알겠어 사라. 보아하니 이 근처에 있던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혹시 모르니 경찰을 불러 놓을 테니까.. 그나저나 목소리는 왜 그렇게 떨고 있어? 걱정은 한 시름 덜어 놓으라니까.."

"아, 알겠어요.."

타닥타타타탁- 타다타닥-

그녀는 연신 알겠다고 하면서도 목소리가 떠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사라의 목소리 너머로 아들 데이빗이 2층에서 뛰어노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녀석도 참. 아직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천진난만하군. 그런데 제 엄마가 처한 상황은 모르는 건가? 생각해보니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두 가지 소음을 계속 들어주기도 뭣하군.

나는 샷건을 등 뒤로 둘러매고 싸구려 담배를 꺼내물었다. 씁쓸한 냄새, 그리고 퍼지는 연기. 약간은 안심이 되는군. 역시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

치익-
"사라. 이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니 너무 겁먹지 말고 문단속 잘 하고 있으라고. 그리고-"

타다타다닥- 타닥닥-

"데이빗도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해 주겠나? 2층에서 뛰어 노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 해서 말이지. 하여간에."

"저, 레오.."

"음? 왜 그러나?"

"데이빗은.. 하반신 마비에요.. 뛰는 건 커녕, 걸을 수 조차 없다구요."